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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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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재박 . . . . 154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대구광역시/인물)]
         || '''학력''' || 대구초-경북중[* 현 경운중]-[[대광고등학교 야구부|대광고]]-[[영남대학교|영남대]] ||
         || '''소속팀'''[* 실업야구 시절 포함.] || [[한국화장품 야구단|한국화장품]] (1977~1981) [br] '''[[MBC 청룡]]-[[LG 트윈스]] (1982~1991)''' [br] [[태평양 돌핀스]] (1992)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석코치 (1993~1995) [br] '''[[현대 유니콘스]] 감독 (1996~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04, 2006) [br]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06) [br] [[LG 트윈스]] 감독 (2007~2009) ||
         || '''KBO''' || KBO 경기감독관 (2010~2016) ||
         '''[[MBC 청룡]]-[[LG 트윈스]]의 원조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김재박]] - [[이종범]] - [[박진만]] - [[강정호]]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야구 간판 유격수 계보의 원조'''
         '''[[왕조(스포츠)#s-4.1.1.2|현대 왕조]]를 이끌고 네 번의 우승을 이룬 명감독'''
         [[대한민국]]의 前 야구선수 및 前 감독이자 前 [[KBO]]의 경기감독관. 2015년부터 새로운 독립야구단 [[연천 미라클]]의 코치도 겸임하고 있다.
         ~~DTD 몸소 실현~~ [[LG 트윈스]] 감독 시절 ~~위대한 용안~~
         두 번에 걸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2003년 제22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겸 [[2004 아테네 올림픽]] 아시아 예선 대표팀 감독.
         2006년 제15회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야구대표팀 감독.
         하지만 결과는 좋지 못하였다. 2003년에는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에 이어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대만]]에게도 패함으로써 '[[삿포로 참사(야구)|삿포로 참사]]'를 겪었고[* 덕분에 아테네올림픽은 본선에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듬해에 야구계를 뒤흔든 큰 사건이 터졌다.], 06년에도 대만에 이어서 주로 사회인리그 출신[* 프로에 준하는 선수들이었다고 쉴드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선수단 22명 중 프로에 진출한 선수는 8명이고, 프로에서 제몫을 한건 초노 히사요시 한 명 뿐이다. 1명 빼고 전원 프로였던 한국이 10점 주고 박살날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으로 구성된 일본팀에게도 패함으로서 '[[도하 참사]]'이란 말을 들었다.
         앞으로 대표팀 감독을 다시 맡는 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
         == [[KBO]] 경기 감독관 ==
         감독 임기를 끝내고, 바로 다음 시즌인 2010 시즌부터 [[KBO]]의 경기감독관 자리에 앉았는데 팬들에게 영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우천취소]] 결정에 있어서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본인이 꼴리면~~ 비가 안 와도 때려버리는 말도 안되는 짓을 해대고 있기 때문에 반발이 심하다. 오죽하면 [[고척 스카이돔]]에서 경기 열어도 관중 오기 불편하단 핑계를 대고 우천취소 때려버릴 양반이라는 말이 나올까.
         쌓이고 쌓여서 2015년 6월 5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릴 경기를 비가 그쳤음에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l&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414294&date=20150605&page=1|우천 취소를 때려버려]]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급기야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84855&cpage=&mbsW=search&select=sct&opt=1&keyword=%C0%E7%B9%DA|SBS 스포츠]]에서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2&mbsIdx=1298498&cpage=&mbsW=&select=&opt=&keyword=|우천취소 메뉴얼]]까지 제안해가며 김재박을 깠다. 2015시즌 후반부 월요일 경기 및 더블헤더 임시 도입에 이 사람의 우천취소 남발이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도 있다.
         2016년 4월 4일, KBO사무국이 김재박 감독관에게 6경기 출장 정지를 내렸지만, 야구팬들은 솜방망이 처벌~~도 아니고 일주일 휴가~~이라는 평이 대다수이다. 이전에 [[최동원]] 감독관이 비슷한 사유로 똑같은 징계를 받은 만큼, 이번에는 최소 20~30경기 출장 정지는 받았어야 한다는 의견이 대다수이다.
         이후 동년 4월 16일 전국에 비가 내리자 광주구장에서 열리기로 한 ~~비오는 날 돔구장 놔두고 원정경기하는 팔자인~~넥센-기아 경기를 제외하고는, 상황을 지켜보다가 30분-1시간정도 후 우천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김재박 경기감독관도 이날 삼성-두산전에 배정되었다가 45분 기다려 보고 우천취소를 선언했다. 솜방망이 처벌 문제는 둘째치고, 어느정도 경각심을 가지게 된 효과는 분명히 존재하는 듯 하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2016시즌을 끝으로 경기감독관 직에서 물러났다.
  • 김시진 . . . . 9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사진 설명 =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의 김시진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한국 야구 위원회|KBO]] / [[1983년]] [[5월 3일]] <br /> [[삼미 슈퍼스타즈|삼미]]전 구원
         |마지막 경기 = [[한국 야구 위원회|KBO]] / [[1992년]] [[5월 15일]] <br /> [[한화 이글스|빙그레]]전 구원
         '''감독 경력'''
         * [[현대 유니콘스]] 감독 (2007년)
         *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 (2009년 ~ 2012년)
         *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12년 ~ 2014년)
         * [[KBO (단체)|KBO]] 경기 감독관 (2008년)
         |야구 월드컵 = [[1982년]] 서울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데뷔해 [[1992년]]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할 때까지 10시즌 동안 통산 124승 73패, 16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이라는 뛰어난 성적을 남겼다. 은퇴 후 [[태평양 돌핀스]]를 시작으로 13년 동안 투수코치 생활을 하다가 [[2006년]] 시즌 후 [[김재박]]의 후임으로 [[현대 유니콘스]]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었다. [[2009년]]부터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감독직을 맡아 [[2012년]]까지 재임하였다. 2013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직을 맡았으나 2014년 10월 팀 성적 부진으로 자진사퇴하였다.<ref name="ohmynews">[[오마이뉴스]] - 2008년 4월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2861 "최동원 · 선동렬에 가려진 위대한 투수"]</ref>
         | 제목 = 프로야구 三美(삼미), 「射程(사정)거리」고수
         | 제목 = 프로야구 MBC·해태 스타트 快調(쾌조)
         | 출판사 = 한국야구위원회
         | 제목 = [윤병웅의 야구 기록과 기록 사이] MVP 향배를 갈랐던 과거 속 요소들
         1980년대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 사건으로 인해 [[1988년 한국 프로 야구|1988년]] [[11월 23일]] [[전용권]], [[오대석]], [[허규옥]]과 함께 [[최동원]], [[김성현 (1963년)|김성현]], [[오명록]]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리고 한 달 뒤 두 팀은 [[장효조]]와 [[김용철 (야구인)|김용철]] 등의 트레이드를 성사했다. 이후 4년 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13승 24패를 추가하는 데 그쳤고, [[1992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정규 리그 통산 124승을 올렸지만, [[한국시리즈]]에서는 승리없이 7패로 좋은 기록을 내지 못했다.
         == 야구선수 은퇴 후 ==
         [[롯데 자이언츠]]에서 은퇴하고 [[1993년]] [[태평양 돌핀스]]의 투수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오랫동안 [[김재박]]과 같이 활동하였으며, [[2007년]] [[현대 유니콘스]]의 마지막 감독이 되기 전까지 투수 코치로 계속 활동했다.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아마추어 실업 야구 팀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에서 잠깐 코치 생활을 하기도 했었으나, 이내 곧 [[1998년]]에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로 임명되어 프로에 복귀했고, 그 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이래 첫 우승을 거두었다. [[현대 유니콘스]]의 투수 코치를 맡으면서 그는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오주원]], [[황두성]], [[박준수]], [[장원삼]] 등 뛰어난 투수들을 조련하고 육성하는 데에 뛰어났으며 [[투수]]를 보는 안목이 탁월했다. 투수 코치를 맡은 기간 동안 그는 '명 조련사'로 불렸는데, [[1998년]] [[김수경 (야구인)|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주원]] 등이 [[한국 프로 야구 신인왕|신인왕]]을 수상했던 것을 예로 들면 그는 투수 코치로서 선수들을 키우는 데에 있어서 일가견이 있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는 감독 생활에도 이어져 [[키움 히어로즈|넥센 히어로즈]] 최초 1차 지명으로 선발한 좌완 투수 [[강윤구 (야구 선수)|강윤구]] 역시 [[2009년 한국 프로 야구|2009 시즌]]에 옥석으로 평가받았다.<ref>[[스포츠 서울]] -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3&article_id=0002013951 "히어로즈가 끝까지 지킨 강윤구는 누구?"]</ref> 시즌 전 트레이드로 홍역을 앓았음에도 불구하고 [[2010년]]에는 걸출한 신인 우완 투수 [[고원준]]을 배출하였으며, 트레이드로 영입한 [[금민철]]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 그가 투수 코치로 있는 동안 [[태평양 돌핀스]]와 [[현대 유니콘스]]에서 뛰어난 [[투수]]들이 많이 배출되어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 감독 시절 ===
  • 권혁 . . . . 89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top1=한화 이글스/선수 목록,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한화의 수호신, 야구인생 2막을 연 한화 이글스 시절''' ||
         ||<:> '''학력''' || 대구수창초 - 성광중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2년/신인드래프트|2002년 신인드래프트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
         불펜 투수가 이렇게 화제성이 높은 경우는 최근 한국야구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김성근]] 감독의 엄청난 혹사를 꿋꿋히 버텨내면서 자신의 몸을 불살라내는 모습이, 꼴지를 전전하던 한화가 2015시즌 가을야구 싸움을 하면서 얻은 투혼의 팀컬러와 잘 맞았기에 가장 언급이 많은 선수중 한 명이 되었다. 기존의 한화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1982)|김태균]]과 더불어 2015년 한화의 아이콘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닐 정도.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
         수창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나, 성광중학교 2학년까지만 해도 키가 '''160cm'''정도에 그쳤기 때문에 결국 야구를 그만두게 되고 경상공업고등학고로 진학하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키가 급속도로 자라기 시작하여 키가 30cm 이상 자라게 되었고''',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야구부]]의 [[오대석]] 감독의 눈에 띄어, 고등학교 2학년부터 야구를 '''다시''' 시작할 만큼 남들에 비해선 출발이 늦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037776|#]]
         2002년 연고구단 삼성의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 뒤 2년차였던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등판하기 시작했다. 2003년 시즌 초부터 ~~덩치좋은 좌완파이어볼러 덕후 [[김응용|코감독]]의 눈에 들어~~ 불펜과 선발을 오가며 몇 차례 기회를 갖다가 9월 6일 수원 현대전에서 선발 등판해 5⅓이닝 1실점으로 프로 첫 '''선발승'''을 따냈는데,[* 프로 입단 후 첫 승은 2003년 8월 16일 불펜으로 등판해 거두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때도 수원 현대전이었다.] 상대 선발투수는 '''선발 21연승 행진'''을 이어가던 [[정민태]]였다.[* 우연의 일치로 정민태와 권혁은 12년 뒤인 2015년부터 한화에서 선수-코치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 2004년에는 37경기 81이닝을 소화하면서 삼성 불펜의 한 축으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그해 9월 18일 두산전에서 156km/h의 구속을 찍으며 다시 주목을 받았지만, 시즌 후 [[토미 존 서저리]]를 받으면서 2005년 시즌은 등판하지 못했다. 2006년 후반 1군에 복귀한 뒤로부터 슬슬 완성형 투수로 자리잡는데, 선발보다는 계투진에 중심을 두는 [[선동열]] 감독의 방침에 따라 철벽 불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2007년 평균자책점 2.79, 7승 1패 19홀드로 중간계투요원으로 100탈삼진을 달성했다.
         덕분에 실제로도 [[선동열]] 감독도 2010 포스트시즌에 그런 그의 활약을 기대했으나...
         2010년 10월 7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플레이오프 1차전, 팀이 스코어 5:6으로 이기던 9회 초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사 1, 2루, 2S1B 상황에서 어처구니없게도 자기 혼자 실수로 투수판을 밟은 상태에서 공을 떨어뜨리면서 보크를 범하여 아이작 궈낵 경[* [[물리학자]] [[아이작 뉴턴]]의 패러디.]이라는 별명을 얻었다.[[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65&page=3&bbs=|#]] [[http://gall.dcinside.com/list.php?id=samsunglions&no=768354&page=3&bbs=|#]] 보크를 저질러 1사 2, 3루가 되자마자 [[안지만]]으로 교체되었고, 안지만이 3번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유격수 플라이, 4번타자 [[양의지]]를 중견수 플라이로 아웃시키고 경기를 끝냈으니 망정이지, 기껏 이겨논 경기 말아먹을 뻔했다. 이날 권혁은 0.1이닝 12투구수 1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지만, 보크를 기점으로 (본인 왈)멘탈에 심각한 문제를 안게 되어 이후 최악으로 치닫게 된다.
         권혁은 2010 프로야구 플레이오프에서 3경기 ⅔이닝 1홀드 2피안타 4볼넷 2실점(2자책) '''ERA 27.0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 시리즈에 진출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 : 1타자 상대하여 스트레이트볼넷 1실점(1자책) '''평균자책점 99.99, 패전'''[* [[오승환]]이 [[김재현]]에게 [[분식회계(야구)|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며]] 결승점을 득점한 주자를 내보낸 권혁이 패전투수가 되었다.].
         좌완 중계로서 권혁의 역할은 삼성내에서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146015=|선감독 왈 '유일무이']]라고 불리운 그는, 10월 16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와의 2010년 한국 시리즈 2차전, 팀이 스코어 1:3으로 지던 8회초에 3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첫 타자이자 7번타자인 [[박정권]]을 7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삼진으로 잡아냈지만, 다음 타자 [[박경완]]을 상대로 홈런을 맞았다. 이 피홈런 때문에 또 다시 멘탈이 붕괴했는지, 다음 타자인 [[나주환]]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정인욱]]으로 교체되었다. 권혁의 한계라고 보기엔 2010시즌 자체의 그의 성적은 그렇지 않았기에 삼성 선수단과 삼성팬들로서는 이해가 안 될 뿐이었다. 이날 권혁은 ⅓이닝 16투구수 1피안타 1피홈런 1볼넷 1실점(1자책)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4로 패했다.
         결국 권혁은 10월 1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등판하지 못했고, 팀이 시리즈 전적 3패로 몰린 10월 1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2010년 한국시리즈 4차전, 팀이 스코어 4:1로 지던 8회초 2사 1, 2루 상황에서 6번째 투수로 등판했지만, 첫 타자이자 8번타자인 [[박정권]]을 상대로 내리 3볼을 던지고 투구폼이 평소보다 매우 불안하다는 평을 받으며 1타자밖에 상대하지 못했다. 권혁은 이날 ⅓이닝 5투구수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4:2로 패했다.
         2010 프로야구 한국 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0.2이닝 1패 1피안타(1피홈런) 2볼넷 1K 2실점(2자책) '''ERA 27.00''', 1패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종합''', 2010 프로야구 포스트 시즌 9경기 중 6경기에 등판하여 1.1이닝 1홀드 1패 3피안타 (1피홈런) 6볼넷 1K 4실점 4자책점 '''ERA 27.00''',[* 플레이오프, 한국시리즈, 포스트 시즌 평균 자책점을 모두 '''27.00'''을 찍는 위엄을 달성.] 1패를 기록했다.
         스포츠 기사나 선동렬 감독등의 인터뷰를 볼 때 '권혁을 비롯한 불펜의 부진'이라는 표현이 쓰였는데 좋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이 높게 평가받고 있었고 나쁘게 해석하자면 그만큼 권혁은 이번 포스트시즌 전반적으로 좋지 못했다.
         8월 2일 넥센전까지 38경기 11홀드 1블론 ERA 2.70 WHIP 1.33 30이닝 23피안타(1피홈런) 18사사구 15K를 기록 중이다. 뭐 충분히 뛰어난 성적이긴 하다. 그러나 이름값과 1억 9천만 원이라는 연봉을 생각하면 기대에 많이 못미친다. 보면 알겠지만, 경기당 1이닝이 안되는 수치로서 이는 당초 기대되던 강력한 셋업맨이 아니라 LOOGY, 즉 [[원 포인트 릴리프]]다.[* 물론 예전과 달리 선발 투수들의 소화 이닝이 6이닝 이상까지 올라갔으며 8회에는 [[안지만|힙합전사]]가, 9회에는 [[오승환|인간투석기]]가 풀가동 중인 점을 감안하면 이는 6~7회의 아웃카운트 4~6개를 [[정현욱]], [[권오준]]과 나눠 소화하게 되기 때문에 납득하지 못할 변화도 아니다. [[권오준]]만 해도 경기당 1이닝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LOOGY들에게 가장 금물이라 할 수 있는 '''볼질'''이 심해졌다. 작년만 해도 73K/19BB였고 통산 K/BB도 2를 넘는데 올해는 어째... 물론 [[삼성 라이온즈]]나 국내 야구판에 권혁만한 레프티 릴리버가 있어도 얼마나 더 있겠냐마는, 이전에 비해 좀 안습인건 사실이다.
         그러나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5경기 중 3경기에 나와 ⅓이닝 2피안타 1볼넷으로 부진하고 말았다. 그런데 의외로 '''실점은 0'''이다. 사실 권혁 다음 투수가 1차전에서는 [[오승환]], 4차전에서는 [[안지만]]인지라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안 당해서 실점이 없는 것뿐이었다.[* 상세하게 따지면, 1차전에서는 1타자 상대 1피안타, 3차전에서는 팀이 1:2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SK의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았고 4차전에서도 1타자 상대 1볼넷을 기록했다.]
         6월 27일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와 1군에 복귀했다. 이후 7월 5일 두산전에 등판하여 나쁘지 않은 투구를 보여줬다.
  • 조진호 (축구인) . . . . 87회 일치
         |포지션=감독 (선수 시절 [[미드필더]])
         |국가대표팀 연도 = 1991-1993<br />1992-1995<br />1994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br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br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 <br />{{0}}{{0}}7 {{0}}(0)<br />{{0}}12 {{0}}(2)
         |감독 연도 = 2003-2009<br />2009<br />2009-2010<br />2011-2012<br />2013<br />2013-2014<br />2014-2015<br /> 2016<br>2017
         |감독 클럽 =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 / 제주 유나이티드]] (코치)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대행) <br /> [[제주 유나이티드 FC]] (코치) <br /> [[전남 드래곤즈]] (코치) <br /> [[대전 시티즌]] (수석 코치) <br /> [[대전 시티즌]] (대행) <br /> [[대전 시티즌]] <br />[[상주 상무 축구단|상주 상무]]<br>[[부산 아이파크]]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10년]] [[6월 30일]]
         '''조진호'''(趙眞浩, [[1973년]] [[8월 2일]] ~ [[2017년]] [[10월 10일]])는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였으며, [[대전 시티즌]], [[상주 상무]],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을 지냈다. 본관은 [[함안 조씨|함안]].
         조진호는 [[대륜고등학교]] 재학 시절 일찌감치 재능을 인정 받아 [[1991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남북단일팀에 선발되었다. 당시 대표팀의 공격진은 대부분 북한 선수들이었지만, [[서동원]]과 더불어 남한선수로는 유일하게 대표팀의 공격진을 이끌었으며,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공헌하였다. 실력을 인정받은 조진호는 [[1992년 하계 올림픽|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축구대표팀에 선발되며 당시 최연소 한국올림픽 축구대표팀 선발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1993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에 2회 연속 출전하였으며, [[1994년 FIFA 월드컵|미국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되였으며,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카메룬]]과의 월드컵 직전 두차례 평가전서 연속골을 기록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고, 조별리그 3라운드 [[독일 축구 국가대표팀|독일]]전에 [[서정원]]과 교체로 출전하였으며, [[구이도 부흐발트]]의 전담 마크맨으로 활약했으나, 한국의 2:3 패를 피하기는 역부족이었다.
         월드컵에서의 활약을 인정받아 [[1994년 아시안 게임|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본선 출전하였지만,끝내 한국은 4강에서 떨어졌고, [[1996년 하계 올림픽]]을 앞두고 선임된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체질개선을 선언하였고,좋은 체격조건을 가진 선수를 추구했던 탓에 조진호의 대표팀에서의 입지는 줄어들었으며, [[1995년]] 다이너스컵 출전을 앞두고 [[아나톨리 비쇼베츠]]의 기용방식에 불만을 품고 올림픽대표팀 합류 거부 파문을 일으켰고, 황금기를 열지도 못한채 6개월 선수 자격정지와 함께 축구팬들의 외면을 받아고, 부상으로 인해 포항에서조차도 [[고정운]],[[박태하]]등에 밀렸으며, [[2000년]]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로 이적하였다.
         선수 시절 활약하였던 [[제주 유나이티드 FC|부천 SK]]에서 코치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전남 드래곤즈]]를 거쳐 [[2013년]] [[대전 시티즌]]의 수석 코치로 부임하여 [[김인완]] 감독을 보좌하였다. [[K리그 클래식 2013|2013 시즌]] 말미 김인완 감독의 병세가 악화되어 감독 대행으로 팀을 이끌게 된 후,<ref>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html?no=357027/ 대전시티즌, 조진호 감독대행 선임] </ref> [[10월 9일]] [[경남 FC]]와의 홈경기서 처음 나섰으나 0:1로 패했다. 그러나 [[11월 20일]] [[제주 유나이티드 FC|제주]] 원정경기 1:0승을 시작으로 [[11월 17일]] 성남전 1:0승리까지 총 리그 4연승을 거두며 돌풍을 일으키며 강등으로부터 구해내려 분투하였으나, [[11월 27일]] [[경남 FC]]와의 원정경기서 승리를 거두지 못하며 최종적으로는 강등의 쓴 맛을 맛보게 되었다. 하지만 [[11월 30일]] 전남과의 리그 패막전 2:0 승리 등으로 시즌 막판 리그 6경기 연속 무패등의 부임 후의 좋은 성적에 힘입어 감독 대행 신분으로 2014 시즌에도 팀을 계속 이끌게 되었다.<ref> [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312090100072310004325&servicedate=20131208/ 대전 시티즌, 다음시즌은 조진호 체제] </ref>
         [[K리그 챌린지]]에서 시작한 2014 시즌 개막전에선 [[수원 FC]]에 대패하였으나 [[3월 30일]] [[고양 Hi FC]]전 4:1 대승을 시작으로 [[4월 27일]] [[부천 FC 1995]]전 까지 총 리그 5연승을 거두었으며, 5월 8일 [[감독 대행]]에서 정식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6월 21일]] [[대구 FC]]전까지 총 14경기 연속 무패와 더불어 한시즌동안 11경기 연속 홈 무패를 기록하며 구단의 한시즌 홈 최다 연속무패 신기록을 세움<ref> 이 기록은 2016년 [[최문식]] 감독이 한시즌 홈 12경기 무패를 기록하며 깨졌다.</ref>과 동시에 리그의 절대강자로 치고 올라가는 등 상승세를 보이자 [[5월 8일]] 마침내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으며, [[5월 11일]] [[안산 경찰청 축구단]]과의 정식감독으로서의 데뷔전에서 2:0승을 이끌었으며, 5월 이달의 감독에 선정되었다.<ref> [http://osen.mt.co.kr/article/G1109868314/ 대전 돌풍 이끈 조진호, 연맹 선정 5월의 감독] </ref> 이후 시즌 종료까지 꾸준히 리그 1위 자리를 수성하며 대전의 1부 리그 승격을 이끌었으며, K리그 챌린지 최우수감독에 선정되었으며, 구단 역사상 최초로 한시즌에 20승 이상을 거둔 감독이 되었으며, 대전팬들 사이에서 '''갓진호'''라는 별명을 얻었다. <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139&aid=0002028091/‘갓진호’, 축구특별시 부활 이끈 지휘자] </ref>
         [[K리그 클래식]]에서의 [[K리그 클래식 2015|2015 시즌]]을 앞두고 [[안영규]], [[정석민]], [[임창우]] 등 주축 선수들이 다수 빠져나가는 등 악재를 겪었고 시즌 개막 후 11라운드까지 1승을 거두는데 그치자 계약조건을 토대로 사임, 사실상 경질되었다.<ref> [http://sports.hankooki.com/lpage/soccer/201505/sp2015052110281493650.htm/ 대전 조진호 감독, 성적부진으로 사의 표명] </ref>
         그뒤 독일에서 지도자연수를 받은뒤, [[박항서]] 감독의 후임으로 [[상주 상무]]의 감독으로 취임했으며, <ref> [http://sports.news.naver.com/kleague/news/read.nhn?oid=343&aid=0000055866?? 상주, 신임 사령탑에 조진호 전 대전 감독 선임] </ref>2016시즌 상주를 최초로 리그 상위 스플릿 A에 진출시켰다.<ref> [http://m.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343&aid=0000064222/ 조진호 감독, “첫 상위 스플릿 진출 선수들에게 고맙다”] </ref> 이는 [[박항서]]도 하지 못한 [[K리그 클래식]] 잔류를 상위 스플릿으로 확정지은 것이다.
         [[11월 25일]] [[부산 아이파크]]의 감독으로 취임하였으며, [[이정협]]을 비롯한 공격 자원을 앞세워 시즌 내내 리그 상위권을 유지하였으며, [[FA컵 2016|FA컵]]에서는 [[FC 서울]]과 [[전남 드래곤즈]] 등의 강호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어 4강에 진출하였지만, [[10월 8일]] 리그 1위 [[경남 FC]]전에서 패하면서 사실상 리그 2위를 확정지었다.
         이틀 뒤인 [[2017년]] [[10월 10일]]에 화명동 [[부산 아이파크]] 숙소를 나서다 상주 시절부터 좋지 않았던 심장에 심적 부담이 더해진 것이 원인이 되어 급성 [[심장마비]]로 쓰러져 병원에 후송됐지만, 끝내 향년 4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양산부산대학교병원 장례식장 특 2호실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12일 오전에 이루어졌다.<ref name="sportschosun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박찬준 | 뉴스=스포츠조선 | 제목=[속보]조진호 부산 감독, 심장마비로 사망 | url=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26/http://sport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60548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ref name="yonhapnews_2017-10-10_death">{{뉴스 인용 | 저자=김태종 | 위치=서울 | 뉴스=연합뉴스 | 제목=프로축구 부산 조진호 감독 심장마비 별세(종합2보) | url=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날짜=2017-10-10 | 확인날짜=2017-10-12 | 보존url=https://archive.today/20171012131801/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10/10/0200000000AKR20171010097452007.HTML | 보존날짜=2017-10-12 | 깨진링크=아니오 }}</ref> 그의 유해는 김해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경기도]] [[광주시 (경기도)|광주시]] 추모공원에 안장되었다.
         조진호 감독 사망 이후 [[K리그]]에 소속된 각 구단들 또한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고인을 추모하는 메세지를 올렸으며, 특히 [[경남 FC]]는 추모에 더해 '그동안 멋진 경쟁에 감사했다'는 메세지를 추가로 남겼다.
         [[10월 10일]] 당일 [[스위스]] 베른 주 빌에서 열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모로코 축구 국가대표팀]]의 평가전 시작 전 선수들이 묵념의 시간을 가졌으며, 10월 14일부터 15일까지 모든 K리그 경기에서도 추모 묵념을 진행했으며, [[10월 14일]] [[수원 FC]]와 [[부산 아이파크]]의 경기에서는 부산 측 원정 서포터석에 조진호 감독의 사진을 걸었며, 이 날 [[이정협 (축구 선수)|이정협]]은 패널티킥으로 골을 성공시킨 뒤 조진호 감독의 사진 앞에 달려가 얼굴을 파묻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10월 15일]] [[대전 시티즌]]과 [[부천 FC 1995]]와의 경기에서 대전 홈팬들이 조진호 감독이 대전을 K리그 챌린지에서 우승시켰던 2014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자 경기 시작 후 14분 동안 응원을 하지 않으며 조진호 감독을 추모했다.
         비록 [[수원 삼성 블루윙즈]]과의 FA컵 4강전은 조진호 감독의 사망으로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감독 대행이 지휘했지만,이미 조진호가 FA컵 4강 대진표가 나왔을 때 대비해 전술을 모두 파악해 놓은 상태였으며, 이를 인수인계받은 [[이승엽 (축구인)|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의 전술을 파악해 전방 압박을 충실히 해서 조진호 감독이 원했던 공격적인 축구를 선보였고, 승부차기 끝에 수원 삼성 블루윙즈를 꺾고 FA컵 결승에 진출하며 명장의 마지막 경기에 피날레를 찍었으며, 이날 경기에서 이승엽 대행은 조진호 감독이 입었던 속옷을 입고 경기를 지휘했다고 한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71567 |제목="아, 감독님" 이정협의 되새김질과 이승엽 대행의 '속옷'|출판사=SPO TV |저자=조형에 |날짜=2017-10-26}}</ref>
         한편 이번 조진호 감독의 사망을 통해 감독의 고충과 스트레스가 재조명받으며 감독이라는 자리가 선수들보다 더 힘든 직업인지를 깨우쳐 주고 선수들과는 달리 마땅히 스트레스를 풀 만한 방법이 없는 현실에 대한 개선과, 건강검진 의무화 및 관리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그리고 K리그는 2018년부터 감독 및 코칭스태프들의 건강검진을 의무화시킨 계기가 되었다.
  • 류중일 . . . . 8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7년]] [[4월 6일]] <br /> [[해태 타이거즈|해태]]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9년]] [[10월 20일]] <br />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2006년]], [[2009년]] - [[2010년]])
         '''감독 경력'''
         * [[삼성 라이온즈]] 감독 (2011년 - 2016년)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년 WBC]],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2014년 AG]])
         * [[LG 트윈스]] 감독 (2018년 - 현재)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1983년]] 서울
         '''류중일'''(柳仲逸, [[1963년]] [[음력 4월 28일|4월 28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내야수]], [[감독]]이자, 현재 [[LG 트윈스]]의 감독이다.
         [[1982년]] 3학년 재학 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기념으로 열렸던 와의 우수 고교 초청 대회 결승전에서 [[투수]] [[김종석 (1964년)|김종석]]을 상대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야구장]] 개장 1호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410&aid=0000011188 류중일 감독, 손주인-강명구에게 특별한 선물] - 매일경제</ref> 1981년 봉황대기 미기상고 주장을 맡은 1982년 대통령배 감투상, 대붕기 최우수선수상을 수상. 초고교급 유격수로 발돋음하고. [[한양대학교|한양대]] 체육학과(1983학번) 시절 1985년 ~ 1986년에 3학년, 4학년 때 대학야구 올스타 [[유격수]]로 선정되었다.
         == 야구선수 은퇴 후 ==
         === [[삼성 라이온즈]] 코치 & 감독 시절 ===
         [[2006년]]·[[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및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 코치로 발탁되어 활동했다. [[199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고 [[2000년]]부터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김응용]], [[선동열]] 감독 밑에서 코치로 보좌한 후, [[2010년]] [[12월 30일]] [[선동열]]이 경질되자 [[선동열]]의 후임으로 [[2011년]] [[1월 5일]]에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취임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609&yy=2011 류중일 감독 "신인 패기로 KS 우승 데뷔 축포 쏜다" ] - 매일신문</ref> 그가 감독으로 부임하게 되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오랜만에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감독을 맞이하게 되었다.<ref>최초의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감독은 [[서정환]]이고, 류중일은 [[삼성 라이온즈|삼성]] 출신 선수 중 선수 및 코치로 활동하면서 단 한번의 팀 이동 없이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2011년]] 감독 부임 첫 해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1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으며, "야구 대통령"을 줄인 '''"야통"'''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고,<ref>[http://sports.chosun.com/news/ntype.htm?id=201109280100191240017032&servicedate=20110927 류중일호, 우승을 가능케 한 키워드 4개] - 스포츠조선</ref> [[대한민국]] 챔피언 자격으로 참가한 [[2011년 아시아 시리즈]]에서 [[일본]] 챔피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소프트뱅크]]를 꺾고 [[대한민국]] 프로 야구 팀 최초로 [[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325476 '야통' 류중일 감독, 야신도 못한 亞 정상 위업] - OSEN</ref> [[2012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과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뤄 냈다. [[2013년]] 정규 리그 우승과 [[2013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 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었으나 1라운드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3년]] 시즌 후 계약 기간 3년의 조건으로 계약금 6억 원, 연봉 5억 원 등 총액 21억 원에 [[삼성 라이온즈]]와 재계약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72898 류중일 감독, 3년 재계약…총액 21억원 사상 최고 대우] - OSEN</ref> [[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 아시안게임]]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발탁되어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 WBC]] 1라운드 탈락의 쓰라림을 딛고 우승을 이뤄냈다. [[2014년]]에 정규 리그 우승과 [[2014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면서 팀의 사상 최초 통합 4연패를 달성하였고, [[2015년]] 역시 정규 리그 우승으로 5년 연속 정규 리그 우승으로 새 역사를 썼지만,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가 개최되기 전, 삼성 투수들의 해외 원정도박 파문으로 인해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우승을 [[두산 베어스]]에게 내주고 만다. [[2016년]]에는 [[박석민]], [[야마이코 나바로|나바로]], [[채태인]]을 잃었고, 외국인 선수 농사 실패, 선수들의 줄부상과 부진으로 팀 최초 정규리그 9위에 머물게 되자, [[2016년]] [[10월 15일]] 계약 만료로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기술고문을 맡게 되었다.
         === [[LG 트윈스]] 감독 시절 ===
         2017년 10월 3일 정규 시즌 최종전에서 계약기간 3년에 총액 21억원(계약금 6억원, 연봉 5억원)에 계약하며 [[LG 트윈스]] 12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631314 오피셜 LG 공식발표, "양상문 단장-류중일 감독"] - OSEN</ref>
         === 코치 및 감독 시절 ===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
  • 장태영(야구선수) . . . . 58회 일치
         ||<#eeeeee><:> '''학력''' ||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등학교]]-[[서울대학교]] ||
         ||<#eeeeee><:> '''포지션''' || [[투수]][* 고교야구 시절], [[외야수]][* 실업야구 시절] ||
         ||<#eeeeee><:> '''소속팀''' || [[상무 야구단|육군 야구단]](1954년~?)||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등학교]] 청룡기 2연패, [[황금사자기]] 3연패의 주역이자 부산야구가 배출한 원조 슈퍼스타. 고교야구 통산 전적 32승 1패.
         165cm의 단신의 몸에서 뭄어져 나오는 140km/h[* 당시에 스피드건이 존재하진 않았지만 당시 야구 원로들이 회상하기로 140에 달하는 매우 빠른 공이었다고 회상한다.]빠른 직구와 칼같은 제구력으로 고교야구를 주름잡았던 인물이다.
         [[김양중(야구)|김양중]]과는 세기의 라이벌이었으며 [[고교야구]]에서 뛸 당시에는 부산의 장태영, 광주의 김양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맞수 대결은 어느 스포츠, 어느 선수에게도 있는 법이다. 이러한 대결의식이 스포츠에 활기를 불어 넣는 요인이다. 나와 태영이는 고향과 성장배경이 달랐어도 야구라는 세계에서 선의의 경쟁을 해온 맞수며 둘도 없는 친구다.'''
         1929년 경상북도 선산에서 장인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5살이 되던 해에 부산으로 내려가 살았다. 1944년에 경남중학교에 입학해 [[유도(스포츠)|유도]]부에 입부해 유도를 배우던 그는 1945년 [[해방]]과 동시에 경남중학교에 야구부가 생기자 야구부에 입부하면서 그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 축산업을 하던 그의 아버지는 경남중 야구부후원회장까지 맡을 정도로 재정적으로도 풍족한 사람이었고 이런 환경속에서 그는 야구 하나만 보고 성장할수 있었다.
         처음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고 그의 첫 고교무대 데뷔전이었던 1946년 제1회 [[청룡기|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당시로써는 파격적인 왼손잡이 유격수로 출전해 허종만, 정상교, 조성일, 박정표, 송주창등과 함께 팀의 준우승에 일조하기도 했다. 그리고 1947년, 故 고광적 당시 경남중 감독은 당시 선발이었던 장갑영 대신 그를 [[투수]]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경남중등학교를 전국 최고의 팀 반열에 오르게 만들었다.
         투수로 전향한후 출전한 1947년 제2회 청룡기쟁탈 중등학교 야구선수권에서 140km/h의 매우 빠른 공을 던져 타자들을 꼼짝도 하지 못하게 하며 우승을 차지했고 이어 [[황금사자기]]에서도 팀의 우승을 이끌어 내자 세간에서는 그를 '''[[태양]]을 던지는 사나이'''라고 불렀다. 빠른 직구 뿐 아니라 제구력도 매우 좋았는데 당시 [[동래고등학교 야구부|동래중등학교]]의 에이스였던 [[어우홍]]은 그를 회고하며 "좌완에 아주 빠른 볼을 던졌다. 또한, 몸쪽, 바깥쪽 로케이션이 좋았고, 볼도 낮게 깔려 들어왔다"라는 평을 남기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64&article_id=0000002009|기사]]
         그의 활약으로 경남고등학교는 1947년 제2회 청룡기 부터 이듬해인 1948년 제2회 황금사자기 때까지 4개의 전국대회에서 파죽의 12연승을 기록했으며 1948년 제 4회 청룡기에서도 전주공업중, 춘천농업중,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연달아 꺾으며 연승을 15까지 늘리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결승전에서 김양중이 버티고 있던 광주서중과 대결을 펼치게 되었는데 이때 김양중과의 연장 11회에 걸친 대결은 고교야구 최고의 명승부중 하나로 꼽힌다.
         1949년 6월 13일, 뜨거운 태양 아래 5천명 수용가능한 [[동대문야구장]]에는 15,000명의 관객들이 발디딜 틈도 없이 들어차있었다. 그리고 이들의 눈은 두명의 투수가 그라운드에서 모든것을 쏟아 붓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시 경남중은 당대 최강의 야구팀이었고 그 누구도 우승을 하지 못할것이라는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당시 결승전을 앞두고 1,311명을 대상으로한 현장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99.4%가 경남중학교 우승을 점쳤고 광주서중의 우승을 점친사람은 단 8명, 0.6%의 인원뿐이었다. 그도 그럴것이 경남중은 2년간 15번의 경기에서 모두 승리했고 모든 트로피를 쓸어 담은 최강의 팀이었으며 그 중심에는 장태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4회 청룡기에서도 1차전 전주공업을 상대로 13:1로 6회 콜드게임승, 2차전에서 춘천중학을 상대로 10:0 5회 콜드게임 승, 준결승에서 막강한 상대였던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업중]]을 상대로 2:1 승리를 거둬 들였다.
         상대는 [[김양중(야구)|김양중]]이 이끄는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광주서중]]. 광주서중은 전라도 지역의 최고의 팀으로 불리긴했지만[* 이때 [[군산상고 야구부]]는 창단되기 전이다. 군산상고 야구부가 만들어 진것은 1968년이다.] 전국대회 수준에서는 미치지 못한 수준의 야구팀이었고 에이스 김양중의 분투에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중학]]과 대전사범중을 상대로 힘든 승부끝에 결승전에 올라왔다. 언론들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경남중학교의 우승을 점쳤고 경남중학교 측에서도 이 분위기에 흠뻑 취해 이미 이긴것이나 다름 없다며 전날 미리 축하연을 펼쳤다. 반면 광주서중은 이기든 지든 김양중을 믿고 최선을 다하자는 다짐을 결의했다.
         8회말까지 장태영은 광주서중의 타선을 단 1안타로 꽁꽁 묶어내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김양중도 경남고의 타선을 철저히 틀어막으며 단 1점도 내주지 않는 투구를 선보였다. 스코어링에 0이라는 숫자가 사라진 것은 9회초, [[경남고등학교 야구부|경남중]]의 1번타자 허종만과 2번타자 정상규가 연속안타를 기록하며 2사후 1점을 기록하면서였다.
         그리고 가진 9회말. 광주서중의 문택영이 삼진으로 물러났고 김의석도 유격수 땅볼로 아웃. 그리고 타석에 이완재가 들어섰고 장태영이 던진 공을 쳐냈고 그것이 내야 땅볼이 되며 경남중학교 2루수 정상규의 품안에 안겼다. 모두가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정상규의 송구가 1루수 뒤로 빠지며[* 이때 정상규는 게임이 끝났다고 생각해서 오버핸드로 던지지 않고 언더스로로 폼을 바꿔서 던진게 화근이었다.] 이완재는 2루까지 전력질주해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타석에 3번타자이자 에이스 [[김양중(야구)|김양중]]이 들어섰다. 풀카운트 2:2의 상황에서 5번째 직구를 김양중이 그대로 받아치며 중전안타를 뽑아냈고 이완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홈으로 달려와 득점에 성공, 1:1 동점이 되버린다.
         참고로 이날 패배는 그의 고교야구 인생에서 유일한 패배다.
         ||[[박현식]](좌)과 [[장태영]](우).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정확히 말하면 당시 서울클럽이라는 야구팀 유니폼이다. 당시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하는데 나라에 돈이 없다보니(...) 유니폼을 따로 제작할수가 없어서 당시 국가대표팀 선수단 유니폼을 서울클럽에서 빌려서 출전했다.] ||
         경남중 재학시절 "운동선수도 공부를 잘할수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코피가 날정도로 공부도 상당히 열심히 했던 그는 [[서울대학교]] 상과대에 진학했다. 대학교 졸업후 그는 [[육군]]에 입대해 [[상무 야구단|육군 경리단]]에 입단하게 되었고 고교시절 라이벌 이었던 김양중, [[박현식]]등과 함께 [[한국실업야구]] 무대를 누볐다.육군 시절에는 외야수로 출전하게 되었고 1954년 제1회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회에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초대 멤버로 참가, 야구대표팀의 첫 국제대회 안타를 기록해 내기도 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295&article_id=0000001259|기사]]
         1957년에는 제5회 군-실업야구쟁패전[* 훗날 대학팀과 실업팀 토너먼트인 백호기의 전신인 대회.]에서 11타수 9안타, 타율 .818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수상했는데 이 기록은 1993년 [[홍익대학교]]의 문희성이 대학선수권대회에서 7타수 7안타 1.000을 기록하기 전까지 단일대회 최고 타율이었다.
  • 이창동 . . . . 54회 일치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소설가]], [[교수]], [[교사]], [[전 문화관광부장관]]
         | 수상 = [[베네치아국제영화제]] 감독상(2002년)<br />[[칸국제영화제]] 각본상(2010년) 등
         '''이창동'''([[1954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 겸 [[영화감독]]이다.<ref>[[네이버]] 인물 정보 - [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txc&where=people_profile&ie=utf8&query=%EC%9D%B4%EC%B0%BD%EB%8F%99&os=158601 이창동]</ref><ref>MDL http://www.mydvdlist.co.kr/mdlkth/movie/name.asp?peoplecode=51334</ref>
         데뷔작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부터 시작해 《[[박하사탕]]》,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 《[[밀양 (영화)|밀양]]》, 《[[시 (영화)|시]]》 등 많은 작품들이 좋은 평가를 받아 각국의 영화제에서 상을 휩쓸면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감독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경상북도]] [[대구시]](現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신일고등학교]] 국어 [[교사]]를 하다가 1983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중편 소설〈전리(戰利)〉가 당선되면서 [[소설가]]로 등단하여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1993년 영화《[[그 섬에 가고 싶다]]》의 시나리오를 쓰고 조감독을 맡으면서 영화계에 뛰어들었다. 영화계로 들어선 이후에는 소설보다 영화에 주력하게 되었다. [[1997년]] 이스트 필름의 창립 작품이기도 한 [[한석규]] 주연의 영화 《[[초록물고기|초록 물고기]]》를 통해 [[영화 감독|감독]]으로 데뷔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2년 뒤 내놓은 영화 《[[박하사탕]]》은 1999년 [[부산 국제 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며 [[설경구]]란 걸출한 배우를 탄생시켰다. 2002년 설경구, [[문소리]]와 다시 호흡을 맞춘 영화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로 [[베네치아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ref>{{뉴스 인용|제목=‘오아시스’ 이창동―감독상·문소리―신인상 등 5관왕…베니스 영화제 쾌거|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05&aid=0000118051|출판사=국민일보|저자=이광형 기자|날짜=2002-09-09}}</ref>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내기도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영화과 교수를 맡고 있다. 2009년 열린 [[칸 영화제]]에서 [[중화민국|타이완]]의 영화 배우 [[수치 (배우)|수치]](서기)와 함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ref>{{뉴스 인용|제목=이창동 감독 장편 부문 심사위원 위촉… “칸에서 나의 국적은 영화”|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514004092&subctg1=15&subctg2=00|출판사=[[세계일보]]|저자=김용호 기자|날짜=2009-05-14}}</ref> 2010년에 열린 50회 칸 영화제에서는 영화 《[[시 (영화)|시]]》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 영화 감독 작품 ==
         * 《[[초록 물고기]]》 (1997년) 각본, 감독
         * 《[[박하사탕 (영화)|박하사탕]]》 (2000년) 각본, 감독
         * 《[[오아시스 (영화)|오아시스]]》 (2002년) 각본, 감독
         * 《[[밀양 (영화)|밀양]]》 (2007년) 각본, 감독, 제작
         * 《[[시 (영화)|시]]》 (2010년) 각본, 감독
         * 《[[버닝 (영화)|버닝]]》 (2018년) 각본, 감독
         * 《[[그 섬에 가고 싶다]]》(1993년) 조감독, 각본
         * 1997년 제33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신인감독
         * 1997년 제18회 [[청룡영화상]] 감독
         * 1998년 제3회 [[씨네21 영화상]] 감독
         * 2000년 제1회 한국영화축제 관객들이 뽑은 감독
         * 2000년 제1회 한국영화축제 영화인들이 뽑은 감독
         * 2000년 제20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감독
         * 2000년 제37회 [[대종상]] 감독
  • 안지만 . . . . 53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6차 5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3년]] [[4월 15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6년]] [[7월 14일]] <br /> [[포항야구장|포항]]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구원
         |아시안게임 = [[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2010]],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2014]]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0년 아시안 게임|2010 광저우]]|[[2010년 아시안 게임 야구|단체전]]}}
         {{금메달|[[2014년 아시안 게임|2014 인천]]|[[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단체전]]}}
         '''안지만'''(安志晩<ref>{{웹 인용|url= http://www.koreabaseball.com/file/ebook/pdf/2009KBO_guide.pdf|제목= KBO 프로야구 가이드북 2009|출판사=[[KBO (단체)|한국야구위원회]]|확인날짜=2017-01-10}}</ref>, [[1983년]] [[10월 1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200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2년]] [[삼성 라이온즈]]의 2차 5순위(전체 4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2005년]]에 [[오승환]]과 함께 불펜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2010년]]에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며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에 참가하여 금메달을 획득했다. [[권혁]], [[정현욱]]과 함께 불펜의 '안정권' 트리오라는 별칭이 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8200005 오치아이 코치가 바라보는 안정권 트리오] - OSEN</ref> [[2011년 한국시리즈]]에서 4홀드로 맹활약하며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013년]] [[8월 17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우완 [[투수]]로써 최초의 100홀드를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377859 삼성 안지만, 우완 투수 최초 100홀드 대기록] - 스포츠조선</ref> 그리고 [[2014년]] 프로 데뷔 12년 만에 FA 자격을 획득하여 계약금 35억, 연봉 7억 5000만원으로 총액 4년 65억에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재계약하였다. 그 뒤 [[2015년]] [[6월 5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는 [[KBO 리그]] 최초 개인 통산 150홀드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하지만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해외원정 불법도박 혐의로 [[2015년 KBO 한국시리즈|2015년 한국시리즈]]에 승선하지 못했고 [[2015년 WBSC 프리미어 12|2015년 프리미어 12]]에도 탈락하였다. [[2016년]] [[7월 20일]]에 검찰로부터 불법 스포츠 도박사이트 자금 투자와 관련한 혐의를 받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오면서 [[삼성 라이온즈]]는 다음날 계약 해지를 발표함에 따라서 유니폼을 완전히 벗게 되었고, 구단에서 퇴출되었다. 퇴출 이후에는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가르치며 지도자 생활을 하고 있다.
         == 국가대표팀 경력 ==
         [[송은범]]과 함께 불펜에서 맹활약하며 금메달에 기여하였고, 병역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 [[조동찬]]과 함께 이미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였으나, 금메달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 힙지만 - 그는 시합에 나갈 때마다 [[모자]] 챙을 세우면서 나가는데, 이로 인해 '힙지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자 챙을 세우게 된 이유로는 예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었던 [[강영식 (야구 선수)|강영식]](현재 [[롯데 자이언츠]])과의 내기로 모자 챙을 세웠다고 한다. 모자를 삐딱하게 쓰는 이유는 예전에 같은 팀 선배였던 [[양준혁]]이 "너는 인상이 선해서, 모자로 포인트를 줘봐라" 라고 한 후 쭉 그렇게 쓰고 있다고 한다. 몇 번의 예외가 있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선배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활동하였던 [[장효조]]가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갑자기 사망하자 그 무렵에는 경기에 나갔을 때 추모를 위해 모자 챙을 세우지 않았다. 그리고, 국제대회에서도 힙합모자를 쓰지 않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42945 삼성 안지만, 힙합 스타일을 버린 까닭은?] - 스포츠조선</ref>
         * 안순신 - [[2014년 아시안 게임]] [[야구]] 결승전 [[중화민국]]과의 경기에서 7회말 무사 1, 3루를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우승에 기여하자 나라를 구했다며 [[이순신]] 장군에게 빗대어 지어진 별명이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국시리즈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10월 15일]]에 팀의 [[스타]]급 플레이어로 평가받는 간판투수 3명이 마카오에서 바카라 도박을 즐겼다는 혐의로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며칠 뒤 [[삼성 라이온즈]]는 [[윤성환]], [[임창용]]과 함께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다. 결국 팀은 [[두산 베어스]]에게 1승 4패로 패배하여 통합 5연패가 좌절되었다. 검찰 조사가 늦어지면서 같이 거론된 [[윤성환]]과 함께 [[삼성 라이온즈]] 전지훈련에 참가하였다. [[2016년]] [[4월 3일]] 1군에 재합류했다. 경찰은 "도박 혐의로 수사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에 대한 수사를 마무리하려면 중요 참고인을 소환해야 하는데, (그들이) 외국에서 아직 안 들어오고 있으니 현재 상황이 계속될 경우 수사는 '참고인 중지' 결정으로 끝날 수 있다"라고 말하며 이들의 소재가 불분명하다고 수사 가능성을 낮게 봤다. 그러나 6월 초에 이들은 경찰 조사를 받은 것이 확인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8&aid=0002510793 '원정도박 혐의' 안지만-윤성환, 수사보류 가능성↑.. 복귀?] - 스타뉴스</ref> 이후 7월 중순에도 불법 도박사이트 개설에 연루되어 검찰 조사를 받았다. [[2016년]] [[7월 21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그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으며, 이에 [[삼성 라이온즈]]는 [[KBO (야구)|KBO]]에 계약 해지 승인을 요청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사실상 퇴출됨으로써 유니폼을 벗게 되었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50401 삼성라이온즈 안지만, 보류선수 명단 ‘제외’… ‘사실상 은퇴 수순’] -이뉴스투데이</ref>
         결국 지인의 도박 사이트 개설 자금 지원과 관련한 1심 재판에서 징역 8개월, 집행 유예 2년, 120시간의 사회 봉사 명령을 선고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468&aid=00002349</ref> 검찰은 수익금을 분배 약정을 했다는 점에서 안지만을 공범으로 판단했는데, 그나마 재판부에서 직접적으로 사이트 운영에는 직접 가담하지 않은 데다 그동안 이로 인해 언론의 도마에 오르내리며 손해를 받은 점을 참작해 집행 유예 처분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안지만은 항소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01&aid=0009035460</ref> 안지만의 항소로 재판이 장기화되는 데다, 앞서 언급했듯이 재판부도 안지만을 도박 사이트의 공범으로 판단했기 때문에<ref>그동안 법원 판례에서 불법 도박 사이트에 돈을 댄 사람도 공범으로 인정해 왔다.</ref> 향후 야구계 복귀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승리 투수|승<br /><br />리]]!![[패전 투수|패<br /><br />전]]!![[승률|승<br /><br />률]]!![[평균 자책점|평<br />자<br />책]]!!출<br /><br />장!![[선발투수|선<br /><br />발]]!![[완투|완<br /><br />투]]!![[완봉|완<br /><br />봉]]!![[세이브 (야구)|세<br />이<br />브]]!![[홀드 (야구)|홀<br /><br />드]]!![[이닝|이<br /><br />닝]]!![[안타|피<br />안<br />타]]!![[홈런|피<br />홈<br />런]]!![[볼넷|볼<br /><br />넷]]!![[고의 사구|고<br /><br />4]]!![[삼진 (야구)|탈<br />삼<br />진]]!![[몸에 맞는 볼|몸<br /><br />맞]]!![[보크|보<br /><br />크]]!![[폭투|폭<br /><br />투]]!![[실점|실<br /><br />점]]!![[자책점|자<br /><br />책]]!![[타자 (야구)|타<br />자<br />수]]!![[WHIP|W<br />H<br />I<br />P]]
         |style="text-align: center;"|[[2003년 한국프로야구|2003]]
         |style="text-align: center;"|[[2004년 한국프로야구|2004]]
         |style="text-align: center;"|[[2005년 한국프로야구|2005]]
  • 정동진 (1946년) . . . . 53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감독 경력'''
         *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야구감독 (1977년 ~ 1978년)
         * [[삼성 라이온즈]] 감독 대행 (1986년)
         *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88년 ~ 1990년)
         * [[태평양 돌핀스]] 감독 (1991년 ~ 199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1969, 1971 서울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메달 경기|[[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1971 서울|야구}}
         '''정동진''' (鄭東鎭, [[1946년]] [[4월 23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국가대표팀 [[포수]]로서 이름을 알렸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을 거쳤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 [[1977년]]부터 [[1978년]]까지 모교의 감독을 역임하였지만 물러나고 잠깐 야구계를 떠나 [[한국스탠다드차타드은행|제일은행]]의 평범한 은행원으로 7년 간 종사했다.
         이후 [[1984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수석코치로 영입되어 [[김영덕 (야구인)|김영덕]],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감독을 보좌하였다. [[1989년]] [[삼성 라이온즈]]의 감독으로 선임되어 전력이 약화된 팀을 4위까지 올렸고, [[1990년]]에도 정규 시즌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플레이오프에서 그동안 번번이 삼성의 우승을 가로막았던 난적 [[해태 타이거즈]]를 3연승으로 스윕하고 [[1990년 한국시리즈]]에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1990년 한국시리즈]]에서 [[LG 트윈스]]에게 스윕을 당해 우승에 실패하여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고질병이었던 [[한국시리즈]] 징크스를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다.(이 징크스는 [[2002년 한국시리즈|2002년]]에 깨졌다.)
         [[1990년 한국시리즈]] 우승 실패의 책임을 물어 삼성의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미국]]으로 야구 연수를 떠났다가 [[1992년]] [[태평양 돌핀스]]의 감독으로 영입되었다. [[1992년]] 6위, [[1993년]] 최하위로 마감했지만, [[1994년]]에는 그동안 부상으로 신음했던 투수들이 복귀하여 정규 시즌 2위로 마감하는 선전을 하였다. 그 해 [[태평양 돌핀스]]가 [[LG 트윈스]]에게 [[1994년 한국시리즈]]에서 스윕당해 [[LG 트윈스]]가 우승했지만, 그 해 성적은 [[1998년]] [[현대 유니콘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전까지 [[인천광역시|인천]] 연고 야구단 최고의 성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감독으로 2번 경험한 [[한국시리즈]]에서 모두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하고 모두 [[LG 트윈스]]를 상대로 스윕당했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1995년]]에는 정규 시즌 7위로 마감했고, [[태평양 돌핀스]] 야구단이 [[현대그룹]]에 매각되었을 때 잔여 계약 기간 1년을 남긴 시점에서 팀 개편에 따라 수석코치 [[김재박]]에게 감독직을 넘겨 주고 물러났다.
         이후 야구 해설가, [[KBO (야구)|KBO]] 규칙위원, [[KBO (야구)|KBO]] 경기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다.
         |전임자 =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직책 = [[태평양 돌핀스]] 감독
         |전임자 = [[김영덕 (야구인)|김영덕]]
         |후임자 = [[박영길 (야구인)|박영길]]
  • 봉준호 . . . . 52회 일치
         | 직업 = 영화감독, 각본가, 영화제작자
         '''봉준호'''([[1969년]] [[9월 14일]] ~ )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영화감독]], [[영화 각본|각본가]]이다.<ref>[http://www.cine21.com/do/person/detailView?person_id=3778 씨네21 프로필]</ref><ref>[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9479 네이버영화 프로필]</ref>
         == 감독으로서의 행보 ==
         1993년 6mm 단편 영화 《백색인》을 연출하여 영화계에 데뷔했으며, 2번째 단편《지리멸렬》은 큰 화제가 되었다. [[배두나]]가 출연하였던 첫 장편 《[[플란다스의 개 (영화)|플란다스의 개]]》가 흥행에 실패했으나 이후 [[송강호]]와 김상경이 출연한 《[[살인의 추억]]》을 개봉하였는데 크게 흥행하였고, 작품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잡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2006년 7월에 3번째 장편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을 개봉했다. 2008년 그는 [[미셸 공드리]], [[레오 카락스]] 감독과 함께 [[도쿄도|도쿄]]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 프로젝트 영화 《[[도쿄!]]》에 참여하였다. 3편의 영화 중 "흔들리는 도쿄"에서 [[카가와 테루유키]], [[아오이 유우]]와 호흡을 맞췄다. 이 영화를 통해 멜로적 감수성 또한 인정 받았다.
         2009년 5월 4번째 장편 《[[마더 (2009년 영화)|마더]]》를 개봉했다. 살인 사건에 연루된 아들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엄마의 이야기이며, [[김혜자]]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으로도 화제가 되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소를 배경으로 비현실적이고,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장면을 포착하고, 영화 속 주인공들의 난감한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도록 유도하면서도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서늘한 풍자를 심어 놓는 특유의 영화 감각을 가지고 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5071055411120 봉준호 감독 '무(無)평에 상처받은 적 있다'], 마이 데일리, 2008년 5월</ref>
         영화 《[[마더 (2009년 영화)|마더]]》가 한국 영화 최초로 [[미국]] 비평가 협회에서 받은 외국어 영화상만 무려 7개로 보스톤평론가협회, 남동부비평가협회, 샌프란시스코 영화비평가협회 등에서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여주인공인 [[김혜자]]는 헐리우드 톱배우들을 제치고 LA 평론가협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해외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은 2011년 미국 최고 독립영화제인 [[선댄스영화제]]의 심사위원으로 위촉되기도 했다.
         [[프랑스]] 만화를 각색한 《[[설국열차]]》를 준비한후,<ref>[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6050627 네이버 책 '설국열차'], 뱅자맹 르그랑, 장 마르크 로셰트, 자크 로브 저, 김예숙 역, 현실문화, 2009년 8월 5일</ref> 2012년 초 크랭크인하여 2013년 7월 31일에 개봉하였다.<ref name="설국열차">[http://news.naver.com/main/hotissue/read.nhn?mid=hot&sid1=106&cid=307165&iid=364668&oid=020&aid=0002268463&ptype=011 프랑스 만화 각색한 ‘설국열차’ 400억대작 이끄는 봉준호 감독], 동아일보, 2011년 8월 16일</ref>
         ! width=75 | 감독
         | {{small|*}} 《모텔 선인장》|| ||1997년||(각본, 조감독)
         | {{small|*}} 《거장, 한국 최고의 흥행 영화 감독》||다큐멘터리||2013년||에피소드2. 봉준호 감독
         * [[2017년]] 제17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감독
         * [[2014년]] 제14회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감독
         * [[2014년]] 제5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 [[2014년]] 제5회 [[올해의 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
         * [[2013년]] 제13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감독
         * [[2013년]] 제33회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최우수작품상, 감독
         * [[2013년]] 제34회 [[청룡영화상]] 감독
         * [[2010년]] 제10회 [[대한민국청소년영화제]] 감독
         * [[2009년]] 제5회 [[대한민국 대학영화제]] 감독
         * [[2007년]] 제44회 [[대종상]] 감독
  • 황보관 . . . . 51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1988-1993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0}}37 (1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2007년]] [[6월 30일]]
         |감독 연도=1999<br />2000-2003<br />2004<br />2005<br />2006-2010<br />2010-2011<br />2011
         |감독 클럽=[[오이타 트리니타]] (코치)<br />[[오이타 트리니타]] U-18<br />[[오이타 트리니타]] <br />[[오이타 트리니타]] <br />[[오이타 트리니타]] (부의장&디렉터)<br />[[오이타 트리니타]] <br /> [[FC 서울]]
         '''황보 관''' (皇甫 官, [[1965년]] [[3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축구 클럽 경영자이자 전 [[대한축구협회]] 소속의 행정가였다. [[일본]] [[J리그]] 팀 [[오이타 트리니타]]의 코치, 감독을 거쳐 오이타 구단의 부사장 및 이사를 맡았고 [[2010년]]부터 오이타의 감독직을 다시 맡게 되었다. [[2011년]] [[대한민국]] [[K리그 클래식|K리그]] 팀 [[FC 서울]]의 감독을 맡아 [[대한민국]] 무대에 복귀했으나 성적 부진으로 117일 만에 사임하고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감독직을 넘겼다. 사임한 후 [[대한축구협회]]로 옮겨 기술교육국장을 맡았고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 본관은 [[영천 황보씨]]이다.
         [[1988년]] [[12월 11일]], [[1988년 AFC 아시안컵]]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이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1990년 FIFA 월드컵]], [[1988년 AFC 아시안컵]] 등의 많은 대회에서 뛰었고, [[A매치]] 36경기에서 10골을 넣었다.
         3전 전패로 탈락했던 [[1990년 FIFA 월드컵|이탈리아 월드컵]]에서 예선 2차전 [[스페인 축구 국가대표팀|스페인]]전에서 [[안도니 수비사레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시속 114 km 캐넌슛을 넣어 화제가 된 바 있다.<ref>[http://www.segye.com/Articles/SPN/SPORTS/Article.asp?aid=20120523022576&subctg1=&subctg2= 축구 슈팅속도 얼마나 되나]</ref> 이 득점은 [[1990년 FIFA 월드컵|이탈리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기록했던 유일한 득점이었다.
         은퇴 후 그는 지도자보다는 구단 경영자, 행정가로 더 두각을 드러냈다. [[1998년]] 은퇴한 후, [[아시아 축구 연맹|AFC]]에서 주관하는 'C,B,A 코스' 및 '프로페셔널 지도자 코스'를 이수하였다. [[1999년]]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대표팀]] 트레이너를 맡은 뒤, [[오이타 트리니타]]에서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1년]] [[오이타 트리니타]] 유스 팀 감독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4년]] [[오이타 트리니타]]의 수석 코치로 활동하였다. [[2005년]] [[요한 베르거]]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사임하자,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으로 승격하였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4120600017 황보관 J리그 오이타 감독 승격]</ref> 감독 취임 뒤, [[경상남도]] [[통영시]]에서 열린 [[통영컵]]에 참가하여 데뷔전을 치러 우승을 차지하여 성공적인 시작을 알렸으나,<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5022700011 황보관의 오이타, 2005 통영컵 패권]</ref> 성적 부진으로 9개월 만에 해임되었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220&g_serial=167328 황보관 오이타 감독, 전격 해임 '성적 부진 탓']</ref> 이후 [[오이타 트리니타]] 유소년 육성부장을 거쳐, [[오이타 트리니타]] 부사장 및 이사에 올랐다. [[2008년]] 팀이 [[J리그 컵]]에서 우승하자, 우승컵을 갖고 [[대한민국]]을 방문하였다. 또한 [[일본문리대학]] 축구부의 테크니컬 디렉터도 맡았다. 오이타가 [[2009년]] 경영난 속에 [[J리그 디비전 2|2부 리그]]로 강등된 후, 이듬해 감독직에 복귀하였다. 그러나 2부 리그에서도 15위에 그치자 사임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황보관, J2 오이타 사령탑에서 퇴임|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300164 |출판사=OSEN |date={{날짜한글화|2010-11-30}} }}</ref>
         이후 [[2010년]] [[12월 28일]] [[넬루 빙가다]] 감독의 후임으로 [[FC 서울]]의 감독직을 맡았으나,<ref>{{뉴스 인용|제목=FC 서울, 빙가다 후임에 황보관 감독과 2년 계약|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Soccer/Article.asp?aid=20101229000575&subctg1=05&subctg2=00|출판사=스포츠월드|date={{날짜한글화|2010-12-28}} }}</ref> [[2011년]] [[4월 26일]] 리그에서 1승 3무 3패라는 초라한 성적을 거둔 후 [[최용수 (축구인)|최용수]]에게 사령탑을 넘기고 사임했다.<ref>{{뉴스 인용 |제목=못다 이룬 꿈, 117일 만에 아듀|url=http://sports.news.nate.com/view/20110426n05840?mid=s0300 |출판사=스포츠조선 |date={{날짜한글화|2011-4-26}} }}</ref> 사임 후 [[대한축구협회]]의 기술교육국장으로 부름을 받아 행정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ref>[http://news.donga.com/3//20110525/37501428/1 축구협회 기술교육국장에 황보관] - 동아일보</ref> [[2011년]] [[11월 9일]] [[이회택]]의 후임으로 기술위원장이 되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160731 이회택 기술위원장 사임, 후임에 황보관 기술교육국장] - 스포츠조선</ref>
         * [[2000년]] ~ [[2003년]] {{국기그림|일본}} [[오이타 트리니타]] U-18 감독
         * [[2005년]] {{국기그림|일본}}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
         * [[2010년]] {{국기그림|일본}} [[오이타 트리니타]] 감독
         * [[2011년]] {{국기그림|대한민국}} [[FC 서울]] 감독
         * [http://www.national-football-teams.com/v2/player.php?id=21642 클럽 & 국가대표팀 기록]
         |직책 = 제9대 {{국기그림|대한민국}} [[FC 서울]] 감독
         |제목=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span style="color:ffffff;">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span>]]
         {{FC 서울 감독}}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선수]][[분류:오이타 트리니타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축구 감독]][[분류:FC 서울의 코칭스태프]][[분류:1988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FIFA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축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서울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영천 황보씨]][[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감독]][[분류:J1리그의 축구 감독]][[분류:J2리그의 축구 감독]][[분류:K리그1의 축구 감독]][[분류:재팬 풋볼 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감독]]
  • 이수민(야구선수) . . . . 48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이 문서는 1995년생 야구선수 이수민에 대해 다룹니다. 동명이인, rd1=이수민)]
          * [[야구 관련 인물(KBO)]]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1995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좌완 투수]] [[분류:좌투좌타]] /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 '''학력''' || 도산초-대서중[* 단 중학교 시절은 구미중에서 보냈으며, 상원고 진학 전 대서중으로 전학갔다. 자세한 사항은 하단 참고]-[[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
         ||<:>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2012~2016) || → ||<:> '''이수민(2017~)''' || → ||<:> 현역 ||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신인 [[투수]]. 2009년 이후 5년만에 부활한 연고지 1차 지명의 대상자이면서, 같은 년도에 [[kt wiz]]에 1차 지명된 [[박세웅(1995)|박세웅]]과 함께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이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기대를 받고 있는 선수다. 고교 시절 별명은 [[이계인|모팔모]].
         구미 도산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야구를 시작하였으며, 구미중학교에서 야구를 하다가 3학년 2학기때 대구 [[달서구]]에 있는 대서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특이하게도 이 대서중학교는 야구부가 없는 학교다. 이는 대구에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한 것으로, 체육특기자 여부를 떠나 모든 중학교 졸업예정자는 다른 시도의 고등학교[* 거주지 제한이 없는 일부 특목고/자사고 등은 제외.]로의 진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구미와 대구가 가깝긴 해도 엄연히 다른 시도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에 진학하기 위해서 구미중학교에서 대구시내 모 중학교로 전학을 온 이와 비슷한 사례의 어느 학생 말에 따르면 대구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체육특기자 지정을 받아 전학을 오게 되었다고 하며, 중학교 야구는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면 모든 일정이 마치게 되어 푹 쉬기 때문에 전학을 가더라도 굳이 야구부가 있는 학교로 갈 필요는 없다고 한다. 사실 타 시도에 있는 고등학교 운동부로 스카웃 된다면 이런 식으로 중3 2학기때 미리 해당 시도내의 아무 중학교로라도 전학을 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많은 대구시내 중학교 중에서도 굳이 대서중으로 전학을 온 이유는 근처에 야구부가 있는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가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 학기 잠시 거쳐간 학교이니 별 의미는 없다. 보통의 고등학교 운동부에서는 해당 학교로 진학예정에 있는 예비 신입생들을 겨울방학때 부터 미리 훈련을 시키는 경우가 많기도 하니, 아무래도 가까운 학교가 편리해서 였을 것이다.
         상원고등학교 1학년이던 2011년에는 '타 시도 전학생 출신은 1년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상 [* 동일학교급의 등록팀 수가 적은 시도로 이적하는 경우는 6개월이다. 그래서 전국체전을 제외한 정규 대회가 거의 마무리되는 9월을 전후해 선수들의 전학이 보통 이루어진다. 단 선수 수가 18명 미만인 팀으로 전학하거나, 창단 1년 이내의 신생 팀으로 전학하거나, 팀의 해체로 인해 부득이 전학한 경우에는 이 규정을 적용받지 않고 바로 출전이 가능하다.] 경기에는 참가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량은 계속 성장하여 2012년 제25회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2학년임에도 불구하고 합류, 미국전과 캐나다전에서 승리를 거두며 팀 내 유일한 2승 투수로 활약하였으며, 2013년 4월 7일 포항구장에서 열린 대구고와의 경기에서 '''9이닝동안 무려 24개의 탈삼진'''을 잡아내었으며, 10회에도 마운드에 등장, '''총 10이닝동안 26개의 탈삼진'''을 기록하며 한국 고교야구 한 경기 최다 탈삼진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종전 기록은 진흥고 [[정영일(야구선수)|정영일]]이 2006년 4월 8일 동대문야구장에서 경기고를 상대로 13⅔이닝동안 기록한 23+2개]
         이 영향 때문이었을까, 2013년에 창단한 KT 위즈의 신인 우선 지명 대상자로도 잠시 거론되었으나, [[kt wiz]]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개성고]] [[심재민]]과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류희운을 지명함으로서 [[삼성 라이온즈]] 및 삼성 팬들은 한숨을 놓을 수가 있었으며--그리고 [[한화 이글스]]와 한화 팬들은 울었다--, 경북고 박세웅과 함께 누가 삼성의 1차지명 대상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선택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 7월 1일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 대상자로 최종 선택되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66963|#]]. 지명 이후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3|2013 IBAF U-18 대회]] 대표팀에 발탁되어 활약하기도 했다.
         대신 다른 팀의 1차지명 선수들과 달리 계약은 좀 늦어져서, 1차 지명자의 입단 협상 기간인 9월을 넘겼다. 그래서 해를 넘긴 2014년 1월 8일 계약금 2억 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이수민의 계약이 늦어진 건 상원고 감독인 [[박영진(야구)|박영진]]이 제자를 위한답시고 계약을 질질 끌었기 때문이었다.[[http://sports.media.daum.net/sports/column/newsview?newsId=20140228230025367&gid=110341|#]]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이수민 본인과 이수민의 부모님만 돈을 밝혀 계약을 질질 끌었다고 욕을 먹었다. 계약이 늦어지면서 다른 신인들과 달리 이수민은 개인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마무리 훈련은 물론이고 KBO에서 실시하는 신인선수 교육에도 불참했다.
         6월 18일 [[SK 와이번스]]전에서 10회에 등판해 1점차의 상황에서도 전날과 마찬가지로 [[볼질]]도 안 하고[* 볼넷을 1개 내줬는데, 좌투킬러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을 고의사구로 걸렀다.] 선배인 [[김헌곤]]이 파울타구를 끝까지 쫓아다가 놓치자 괜찮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 등, 신인답지 않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0⅔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1볼넷을 기록한 후 [[김건한]]으로 교체됐고, 팀이 승리하면서 첫 홀드를 챙겼다.
         6월 20일 [[NC 다이노스]]전에서 3:3으로 맞선 6회말 2사 2루에서 [[김건한]]의 뒤를 이어 등판하여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에게 볼넷을 주었으나 후속 타자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을 플라이로 처리하였고 7회말 타선이 대폭발하며 상대 구원 [[이민호(야구선수)|이민호]]를 박살내버리며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었다. 여유 있는 점수차에서 기회를 주기 위함인지 [[류중일]] 감독은 이수민이 9회까지 경기를 책임지게 하였고 이수민은 9회 1실점하긴 했으나 감독의 믿음에 부응하며 경기를 마무리짓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이날 기록은 3.1이닝 1피안타 6볼넷 1사구 1탈삼진 1실점. 볼넷이 많긴 했으나 그 유명한 [[김풍기]] 주심의 괴악한 스트라이크존에 의한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 어지간한 베테랑 투수도 멘탈이 붕괴될 만한 상황에서 끝까지 자기 공을 던지며 실점을 최소화한 점은 칭찬할 만하다.
         2014 시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 지원하였다. 구단에서 장래를 내다보고 일찌감치 군 팀에 입단시켜 군 복무를 마치게 하려는 듯.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그동안 수면 위에 떠올랐다가 가라앉았었던 문제인 고교야구 혹사 문제를 수면 위에 떠오르게 했던 선수다. 2013년 동안 프로야구의 하향 평준화와 순수 신인 육성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면서 이수민의 179개 투구수는 모든 야구팬들의 분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게다가 고교를 졸업한 투수들 80%가 어깨, 팔꿈치 부상을 안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까지 나오면서 이에 2014년부터 고교 야구에도 투구수 제한이 도입되었다.[* 한 경기에서 한 투수가 던질 수 있는 최대 투구 수를 130개로 제한했다. 원래 130개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휴식일을 주도록 했으나 실제 경기에서는 129개쯤 되면 바로 투수 교체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휴식일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 상태.]
         [[박세웅(1995)|박세웅]]과는 구미 도산초등학교 시절부터 함께 야구를 한 친구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구·경북 야구 팜에 오랜만에 등장한 투수 유망주였기 때문에 삼성 팬들은 하필 같은 년도에 두 선수가 신인드래프트 지명 대상자에 오른 것에 대해 매우 아쉬워했다. 삼성라이온즈 역시 두 선수 중 누굴 1차지명 대상자로 삼을지 고민하다가 결국 이수민을 선택하였는데, 이유는 이수민이 왼손잡이인 점이 가장 컸기 때문이다. 삼성팬들은 대체로 이 결과에 만족하면서도 비슷한 체격[* 프로필 상의 키는 180cm로 나와 있으나 지명 당시 실제 키는 177cm 정도라고 한다.]을 지닌 [[박민규(야구선수)|2009년 지명 당시 희대의 망픽 지명 선수]]의 프로 행보를 생각해 볼 때[* 실제로 삼성 스카우트진 역시 201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수의 예상과는 달리 비슷한 체격을 지녔던 [[박종윤(투수)|박종윤]]을 지명하지 않았다. 물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아무래도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의 영향 때문이 가장 큰 것으로 보여진다.], 한편으로 걱정하는 삼성 팬 역시 적지 않는 편이다.~~부디 장준관 거르고 [[배영수]]의 결과처럼 되게 해주세요~~ 다만 단순히 체격이 비슷하다고 비교하기는 곤란한 것이,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는 고교 당시 속구가 최고구속이 140km/h를 못 넘긴 것과 달리 달리 이수민은 최고 구속 144km/h로 고교 선수치고는 빠른 편이다. 또한 스타일도 전혀 다른데, [[박민규(야구선수)|박민규]]가 변화구와 제구로 승부하는 스타일이라면 이수민은 속구와 슬라이더의 투 피치로 타자를 잡는 스타일이다.
         [[임지섭]], [[이건욱]], [[한주성]]에 이어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2014년 신인지명 선수]] 중 네 번째로 항목이 개설된 선수다.
         [[한국프로야구/2014년/신인드래프트|2014년 신인 2차지명 회의]] 후 열린 신인 인터뷰에서 "마무리 훈련과 스프링캠프를 열심히 해서 '''왼손 투수가 없으니까''' 빨리 자리잡겠습니다."라고 말해, 본의 아니게 [[장원삼|팀]] [[권혁|선배]] [[차우찬|좌완]][[조현근|투수]][[백정현|들을]] [[박근홍(야구선수)|모조리]] 디스해 버렸다(…).
         2014년 퓨처스 올스타전 때 모습. 보다시피 상당한 [[노안]]이다. 이수민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은 같은 노안동지(...)인 동갑 [[조영우(야구선수)|조영우]]. ~~정우람????~~
         후에 스타로 떠오른 [[이수민(2001)|하니 이수민]], [[이수민(1984)|음악의신 이수민]], [[이수민(1999)|판타지오 출신 이수민]]을 제치고 위키에서 가장 먼저 이수민 이름으로 생성된 문서다(...) 2015년 11월 전까지 이수민을 검색하면 야구선수가 나왔으나, 후에 동명이인 문서로 바뀌고 야구선수 문서가 따로 나왔다. ~~이제 삼성 복귀하면 [[야갤]] 별명은 [[보니하니]] 확정~~
  • 최준석 . . . . 48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1년/신인드래프트|2001년 신인드래프트 2차 6라운드 전체 49번]] ([[롯데 자이언츠|롯데]]) ||
         ||<-5><#151B54><:>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width=150]] [br] '''[[한국프로야구/2010년|{{{#ffffff 2010년}}}]] [[KBO 리그|{{{#ffffff 한국프로야구}}}]] [[1루수|{{{#ffffff 1루수}}}]] [[KBO 골든글러브|{{{#B8860B 골든글러브}}}]] [[KBO 리그 골든글러브 역대 수상자|{{{#ffffff 수상자}}}]]''' ||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
         전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 [[NC 다이노스]] 소속의 야구선수.
         대단히 몸집이 크고 느린 선수.[* 사직구장 펜스 직격타에도 2루에 못갈 정도다.] [[KBO]] 프로필 상 187cm/130kg 라고 나와있지만, 최소 150kg~~[[김정은]]~~은 넘었다는게 중론이다. [[이대호]]와 옆에 있으면 이대호가 날씬해보일 정도. 이대호가 더 키가 크긴 하지만(194cm) 비슷한 키에 이대호가 125kg라는걸 생각하면 190cm 가까운 장신에 비대한 체격을 가진 최준석은 일반 체중계로 잴수있는 체중(150kg)은 훨씬 넘었을 확률이 높다. 야구선수 특성상 기본적인 체중만 해도 100kg에 가까울 테니...[* 삐쩍 마른 [[조승수(야구선수)|조승수]]조차 키가 192cm이다 보니 몸무게가 85kg이나 나간다. 최준석과 비슷한 신장에 같은 [[1루수]] 포지션을 맡고 있는 [[박병호]], [[오재일]], [[채태인]]등도 100kg 전후의 거구. 최준석과 비슷한 체형의 선수로 2017년 kt에 입단한 1루수 한기원이 있다. (지금은 살을 뺀 상태) 프로필 상으로는 182cm/130kg이지만 실제로는 141kg라는게 기사에 나온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뛰어난 장타력에도 불구하고 2차 9라운드에 지명되었다.(주말리그와 전국 대회 성적 편차가 큰 것도 있었지만.)]
         2006년 5월 [[트레이드]]를 통해 [[김진수(야구)|김진수]]와 함께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다. 대신 [[최경환(야구)|최경환]], 이승준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였다.
         2010년 한국프로야구 1루수 [[KBO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수상 소감에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이 영광을 돌린다."''' 라고 감동스러운 코멘트를 남겼다.
         2012년 4월 8일 넥센과의 경기에서 [[손승락]]을 상대로 결승 3루타를 기록, 김진욱 감독에게 첫 승을 선물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신임을 받았는데도 삽을 계속 푸면서 두산팬들의 욕을 들어 먹었고, 결국 2012년에는 기대와는 달리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였다. [[김동주(타자)|김동주]]가 부상으로 골골대면서 중심 타선이 빈약해졌고 [[김현수(1988)|김현수]]가 어떻게든 분투했지만 3할 언저리를 왔다갔다하며 역시 부진했던 탓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 2차전에서는 출장하지 못했으나 10월 11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3차전 스코어 1:0으로 팀이 앞선 1회초 2사 1루 첫 타석에서 [[롯데 자이언츠|롯데]]의 [[선발 투수]] [[라이언 사도스키|사도스키]]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쳐내며 팀의 스코어 7:2 승리에 공헌했다.
         군 문제가 남아 있었지만 아래에서도 언급할 무릎 수술 문제로 면제를 받았다. 문제는 수비위치인데, 1루에 붙박이로 들어가려고 해도 [[김진욱(야구)|수비 잘하는 선수를 좋아하는 감독 특성상]] [[오재원]]이나 김현수에게 밀리며, 지명타자 자리에는 [[홍성흔]]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지라 쉽지 않다.
         '''2013 시즌 두산 가을야구의 영웅'''
         시즌 종료 후 [[FA 제도|FA]]를 선언했으며 11월 16일까지의 두산과의 우선 협상에 실패하여 [[손시헌]],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과 함께 시장에 나왔다.나중에 롯데NC의 무상트레이드로 NC로 이적됬다.
         많은 두산 팬들이 최준석의 이적을 아쉬워했지만 한편으로는 고마워했다. [[손시헌]],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은 [[NC 다이노스]]로 이적해버리는 바람에 규정상 보상선수를 얻을 수 없었던 것에 비해 최준석은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한 덕분에 보상선수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루 플레이나 수비가 안되는 [[지명타자]]를 35억원이나 주고 영입했다는 점에서 불안하다는 반응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자기 관리 실패로 인해 체중이 점점 불어나서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안고 있다는 점이 염려스런 부분이다. 최준석이 두산으로 트레이드되기 전이었던 2005년 말 [[이대호]]가 체중 감량을 목표로 통도사로 들어갔을 때 일각에서 '최준석은 왜 안 가냐'라고 반응했던 것을 떠올린다면 괜히 하는 소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롯데 구단이나 감독은 최준석 영입으로 인한 우산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하지만 기존의 1루수인 [[박종윤]]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굴욕인 것이, 누적 스탯을 보고 따질 것이 아니라 출루율을 비교하면 최준석은 커리어 .351, 13시즌 .376을 기록했다. 박종윤은 커리어 .294, 13시즌 .298로 규정타석을 채운 타자 중 NC의 대졸신인 [[권희동]]에 이어 뒤에서 두 번째이다. 거포라고는 불릴 수 없지만 [[대타]]로서는 확실한 일발장타력을 갖춘 박종윤이 1루수로는 노답이라고 평가되는 이유가 선구안임을 감안하면 둘의 타격은 레벨이 다르다. 한편 [[1루수]], [[좌익수]], [[지명타자]] 자리에 구멍이 뻥뻥 뚫린 롯데의 상황상 지명타자 자리 고정이 큰 문제는 아니므로 수비능력 또한 무조건 최악의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또 최준석의 통산 스탯이 거포라고 하기에 부족한 것은 최준석이 파워툴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늘 부상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건강한 최준석이 [[잠실 야구장]]을 홈구장으로 쓰던 거포임을 부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최준석 영입이 상당히 비판받는 이유는 첫째도 둘째도 체중관리와 부상이다. '''분명히 건강하면 팀에 도움이 될 선수이지만 부상 위험이 정말로 큰 선수'''를 '''포스트시즌 반짝 성적'''과 '''FA시장의 과열'''로 인해 '''너무 비싸게 샀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어야 할 것이다.
         한편 [[NC 다이노스]]에서 은퇴한 [[이호준]]의 공백을 채우기 위해 두산 시절 [[김경문]] 감독과의 인연도 있고 해서 영입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루머가 돌았다. 그러나 NC 측에서 영입할 계획이 '''없다'''며 일축했다. [[모창민]]이 2017년 입단 이래 최고성적을 내며 중심타선에 안착하여 굳이 최준석을 데려올 이유가 없고, FA 시장이 열리기 전부터 자연스러운 세대 교체에 집중하기 위해 외부 FA 영입은 없다고 공언한 터였다. [[http://v.sports.media.daum.net/v/20171207053039271|기사]] [[김태군]]의 입대로 포수 문제가 당장 시급한 상황임에도 FA [[강민호]] 영입이나 트레이드를 시도하지 않았다.
         조원우 감독은 최준석에게 이번 FA 시장에 나가는 건 위험이 크다고 만류했지만 최준석은 결국 FA 시장에 나가 지금같은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안타까워했다.
         감독만이 아니라 팀으로서도 이 정도로 답이 없을 줄은 몰랐는지 2018년 1월 23일 롯데가 최준석을 '''무상 트레이드'''[* 대표적인 사례로는 FA 계약에 실패 후 보상권리 포기로 SK와 계약한 투수코치 [[최영필]]이 있다. 이 방법으로 은퇴 위기에 있었던 최영필은 2017년 KIA 타이거즈에서 은퇴할 때까지 6년이나 선수생활을 연장할 수 있었다.]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5939|해당기사]]
         상대적으로 지명타자 자리에 여유가 있는 KT와 삼성이라면 한번쯤 고려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이 있었으나,[* 17시즌 후 이승엽의 은퇴로 최준석이 지명타자 자리를 대신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삼성은 이미 지명타자 자리에는 박한이가 있다. 당장 김한수 감독이 박한이 안쓴다고 2017년에 엄청 욕먹었었는데 그런 박한이를 뒤로한채 최준석을 영입한다면 대구아재들은...][* KT의 경우 지명타자 자리에 [[이진영]]과 1루수, 지타를 병행하는 [[윤석민(타자)|윤석민]]이 있다. 또한 KT는 2017년 [[황재균]]을 '''4년 88억원'''에 영입한 데다 KT는 넥센 다음으로 돈을 적게쓰는 구단인 만큼 삼성보다도 영입할 가능성이 낮다.~~[[남태혁]], 한기원의 체중 관리 문제로도 벅찬데~~] 막상 어느 팀도 트레이드조차 고려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206027|관련기사]]
  • 강영식 . . . . 47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2><table align=right><#000000> {{{#FFFFFF 경찰 야구단 No.74}}} ||
         || '''학력''' || 칠성초-경복중-[[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0년/신인드래프트|2000년 2차지명 2라운드]] [br] (전체 10순위, [[해태 타이거즈|해태]]) ||
         || '''지도자''' || [[경찰 야구단]] 투수코치 (2018~) ||
         || [[신동주(야구)|신동주]](1994~2000) || → || '''강영식(2001)''' || → || [[임창용]](2002~2006) ||
         前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
         140km/h 중반대의 빠른 공을 던진다는 강점을 갖고 있지만, 제구력이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주무기는 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인 사실상 투피치 투수. 커브나 체인지업도 장착했지만 그다지 위력적이지는 못하다. 그래서인지 좌완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좌타자한테 약점'''을 보였다. 덕분에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위장좌완'''이라고까지 불렸다(…).
         그래서 그런지 [[선발 투수]]나 좌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나왔을 때는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탈삼진 능력은 뛰어나지만 가끔씩 몰리는 공에 장타를 크게 맞는 경향이 있다. 또한 서두에 상술되어 있듯이 새가슴으로 유명한데, 이는 불펜 투수로서는 결정적인 약점이다. 그리고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비교적 제구 잘 되는 날의 비율이 높으며 구위도 언터처블한 모습을 보이지만 잔부상이 잦고 체력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닌지 이후 귀신같이 피홈런이 증가. 설명서가 필요한 불펜 투수의 전형적인 사례. 그래서 [[양승호]] 감독 체제에서 아주 잘 써먹은 반면, [[김시진]] 체제에서는 한 달만 잘 하다가 나머지 달에는 원 포인트로 기용되어 많이 말아드셨다. [[제리 로이스터]] 前 감독 때는 2008시즌 언터처블이었으나 불펜 붕괴로 이후 시즌에는 다소 불가피하게 혹사당한 감이 있다.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장신에 140km/h대 중후반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던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그는 ~~덩치 큰 [[왼손잡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김응용 감독은 왼손잡이, 그 중에서도 곰처럼 덩치큰 왼손잡이 선수를 매우 선호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우승을 그렇게 많이 해봤어도 그 라인업에서 투타 막론하고 좌완이라곤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꾸준히 활용할 수 있었던 선수가 [[김정수(1962)|김정수]] 말고는 가물가물할 정도니... ] [[해태 타이거즈]]의 감독 [[김응용]]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직접 거둬서 [[햄]] 구워서 [[밥]]을 해 먹일 정도로''' 애정을 보였으며, 김응용 감독이 2001년 삼성 감독으로 가자 삼성의 주전 외야수였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보내면서까지 그를 삼성으로 데려올 정도로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김응용]] 감독이 이 정도로 대놓고 애정을 보여준 선수는 거의 없다. 후에 강영식도 롯데로 트레이드될 때 눈물로 [[김응용]]에게 작별인사를 고했고, 여전히 꼬박꼬박 연락을 드린다고 한다. 여담으로 이때의 생활이 [[http://mlbpark.donga.com/mbs/articleV.php?mbsC=kbotown&mbsIdx=733693&cpage=&mbsW=&select=&opt=&keyword=|방송 캡쳐]]로 떠도는데, 옆에서 같이 밥 먹던 어린 선수는 당시 전도유망했던 투수 '''[[채태인]]'''이다. ~~역시 좌완성애자 코감독!~~]
         투수 오타쿠 [[선동열]]이 버릴[* 강영식은 훗날 [[선동열]] 감독이 자신에게 '사람이 해선 안 될 말'까지 서슴없이 하며 인격적으로 모독을 당했었다고 한다. 그때부터 강영식은 적어도 '''[[선동열]]이 있는 삼성'''에겐 미련이 없었다는 걸 볼 수 있다. 즉 [[선동열]]과 강영식 둘 다 서로 딱히 같이 동업할 이유도, 동기도 없었던 것이다.] 정도라는 삼성 팬들의 말이 있을 정도로 불안한 투구를 보였다. 어느 날인가도 ~~평소처럼~~ 마운드에서 부진한 뒤 라커룸에서 개털렸다고 한다. 강영식은 이날 털리면서 "아 나는 정말 여기까지인가보다"하는 자괴감이 들어 남들 보는 앞에서 펑펑 울었다고 한다. 딱한 처지를 보고 코치들이 트레이드를 권유했고, 마침 좌완 [[중간계투]]가 없는 롯데와 짝이 맞으면서 트레이드 되었다. [[신명철]] 역시 롯데에서는 [[박정태]]의 후계자로 점찍었으나 공갈스윙만 하고 영 궤도에 못 오르는 2루수였기에 [[트레이드]] 시점부터 ~~둘 중 하나만 터져도 되니까~~ 윈윈으로 평가받은 특이한 사례다. 결론적으로 신명철은 [[박종호]]의 노쇠화로 인해 삼성의 주전 2루수로 활약하며 2009년 [[20-20 클럽]]도 가입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였고 강영식도 롯데 불펜의 일원으로 활동했으니 나름 서로 윈윈한 트레이드인 셈. 롯데에서는 [[강병철의 양아들]] 시리즈에 들면서 매우 자주 등판했다. 사실 당시 롯데에 쓸만한 좌완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2008시즌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로이스터 매직]]인지 아로요 투수코치의 [[아로요 매직]]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항상 랜디영식 모드로 변신... 항간에는 강영식의 메뉴얼이 영어로 되어있어서 외국인만이 사용 가능하다는 루머도 있다. 시즌전에 도미니카 윈터리그에서 뛴 것도 도움이 되었다고 하는 모양.
         하여간 프라이머리 셋업맨으로 롯데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롯데 자이언츠 갤러리]]에서는 하루가 멀다하고 랜디영식을 찬양하였다. 그 당시 팬 사이에서는 롯데의 차기 [[마무리 투수]]로 생각되기도 했다. 하지만 괴상망측한 '우타자 더 잘잡는 좌완'[* [[KIA 타이거즈]]의 [[박경태(야구)|박경태]]도 이런 성향을 가진 좌완투수다.] 이라는 딱지는 떼지 못했다. 수치를 보면 좌타자에게 약한 것도 아니지만...
         이러니 저러니 해도 삼성이 친정팀이다 보니까 [* 원래는 해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지만 출신지가 대구인데다 대구상고를 졸업, 여담이지만 삼성리틀야구단 출신이다. 흠좀무] 삼성 선수들을 잘 알고 있으며 2008 준 플레이오프 시작하기 전에는 삼성이 1선발 공개를 빨리 안 하자, 휴일에 [[배영수]]의 집 에다가 전화 걸어서 미리 배영수가 1선발 이라는 걸 알아냈다. 어떻게 알았는가 하니 원래 배영수는 휴일에 집에 잘 없는데 전화를 받아서 그때 낌새를 쳤다고 한다(...).
         그리고 제리 로이스터의 무리한 투수 운용으로 이기는 경기, 지는 경기 구분없이 등판하다가 허리 부상이 왔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허리부상이 아니라 팔꿈치 부상이었다고... 허리부상이라고 속였다가 당시 강민호의 팔꿈치 부상 이후 팀 내 모든 선수들의 부상 여부를 조사하다가 드러났다. [* 팀 내 다른 불펜 투수들은 3일 이상 연투 금지에 왠만하면 휴식일을 지켜주고 불펜도 가능한 한 로테이션을 돌려 관리를 해주고 있지만 강영식은 당시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을 제외하면 팀내 유일한 좌완 불펜이었다. 따라서 이닝은 많지 않은 데 비해 출장 경기수는 상당히 많은 편이다. 08시즌에 64경기, 56⅓이닝을 던졌으니 원 포인트 릴리프라도 어지간한 경기에서 거의 항상 등판해오다 시피 한 것에 대한 후유증이 없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 등을 비상식적으로 투입--'''세 선수 합계 이닝이 30이닝 미만이라는건 함정'''--하여 계투진을 운용[* 로이스터는 좌완 원포인트로 써야할 선수인 김이슬을 좌타, 우타 가리지 않고 상대시켜서 --'''무려 13경기에 내보내서 8이닝씩이나 소화하게 하는 엄청난 혹사를 한 끝에'''-- --'''결코 80이닝이 아니다'''-- 망가뜨렸고 신인 하준호를 위급한 상황에 아무렇게나 투입하는 운용으로 난타당하게 만들었다.]하기보다는 [[이정훈(투수)|이정훈]] -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 [[김일엽(야구)|김일엽]] - [[임경완]] 등을 돌려가며 탄력적으로 필승계투조를 꾸려갔으면 훨씬 나았겠지만 [[로이스터]]의 투수 운용은 무조건 한놈만 팬다는 식으로 특정 투수 한명만 주구장창 기용한 다음 그 선수가 혹사로 나가 떨어지면 다시 다른 선수로 옮겨가는 식이라...[* 하지만 여기에는 당시 롯데의 좌완 불펜이 거의 전무했던 문제도 있다. 사실 [[로이스터]]의 불펜 운용방식은 로테이션을 돌리는 식으로 불펜투수들에게 여유를 주는 운용방식이었다. 다만 좌완투수의 경우 심각한 부족을 겪어서 이 방식이 지켜지지 않았는데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 [[김유신(1986)|김유신]], [[하준호]]는 좌완투수의 부재로 어거지로 1군에 올려서 기용하였을 뿐 수준미달의 투수들로 잠시 1군에 기용된 이후 대부분 2군에 머물러 있는 선수들이었다. 심지어 [[김이슬(야구선수)|김이슬]]은 구속이 130km대에서 상승하지 못해 결국 방출되기까지 하였다. 앞에서 이야기 한 [[이정훈(투수)|이정훈]],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김일엽(야구)|김일엽]], [[임경완]] 이 넷은 모두 우완투수로 당시 롯데 내에 쓸만한 좌완투수로는 사실상 강영식이 유일한 상황이었다.]
         1군에 올라온 이후로는 몸 상태가 정상은 아닌지라 1이닝을 소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대부분 [[원 포인트 릴리프]]로 뛰었는데, 7월 29일부터 무려 30경기 가까이 등판했음에도 '''자책점은 0'''이었다. --물론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는 했었다--
         9월 21일 2위 자리를 다투는 SK와의 경기에선 역전 결승타를 허용하여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를 함으로써 가루가 되도록 까였지만, 여전히 믿음직한 불펜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전체적으로 공은 괜찮은데 이쯤되면 지쳤겠다 싶은 날에는 피안타율이 높은 것으로 보아 그냥 체력적인 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평소에도 그랬지만 이 시즌엔 유독 전반기와 후반기의 성적 차이가 심했다. 전반기엔 6.14의 평균 자책점과 18삼진을 잡는 동안 14볼넷, 4홈런을 허용했으나 후반기엔 '''0.47'''의 평균자책점과 1할 7푼대의 피안타율, 21삼진을 잡는동안 8볼넷, 1홈런만을 기록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분식회계(야구)|분식회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후반기 0.47의 평균자책점은 '''이 해 [[오승환]]과 동급'''!
         강영식은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 3피안타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4.50, 1승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 이정훈 (1963년) . . . . 47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1순위([[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감독 경력'''
         * [[북일고등학교]] 야구감독 (2009년 ~ 2012년)
         *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 (2012년)
         * [[한화 이글스]] 2군 감독 (2013년 ~ 2015년)
         [[한화 이글스|빙그레]] 입단 첫 해였던 [[1987년]] 22게임 연속 안타 기록과 0.335의 타율을 기록해 신인왕을 수상하였다.<ref>[http://news.naver.com/sports/new/expertContents/read.nhn?category=baseball&expert_name=pdh&page=1&id=263 야구가 내게로 왔다, 빙그레 이글스 외야수 이정훈] 《박동희의 Mr.베이스볼》, 2009년 5월 14일 작성</ref> 정교한 타격과 빠른 발, 그리고 근성 있는 플레이 스타일로 '''악바리'''란 별명을 얻었고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8년]] 시즌 후 [[LG 트윈스]] 코치에서 물러나 [[북일고등학교]] 야구감독으로 취임했고<ref> [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1270041 이정훈 전 LG 코치, 북일고 야구감독 취임] 《Osen》, 2008년 11월 27일</ref>, [[2012년]] 친정팀인 [[한화 이글스]]의 2군 감독으로 선임되어 돌아와 유망주 육성을 담당하고 있다.
         == 프로 야구 선수 전 ==
         [[198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7년 신인 지명]]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내야수]] [[강기웅]]과 [[류중일]]을 1차 지명해, 연고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고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신인 첫 해 가장 많은 안타를 때려냈고, 신인상을 받았다. [[1991년]]과 [[1992년]] 2년 연속 타격왕에 올랐다.
         은퇴 후 도미하여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후 [[한화 이글스]]에서 [[1999년]]부터 [[2005년]]까지 코치로 활동했고,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았다. [[2005년]] 시즌 후 [[LG 트윈스]]에 영입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048264 한화 이정훈 주루코치 LG로] - 대전일보</ref> [[2008년]]까지 [[LG 트윈스]] 코치를 역임한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감독으로 부임했다.
         [[2009년]] 제 63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준우승을, [[2009년]] 제39회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등학교]]를 우승으로 이끌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2587634 <고교야구> 이정훈 북일고 감독 "이제 시작이다"] 《연합뉴스》, 2009년 4월 2일 작성</ref>
         [[2012년]]에는 세계 청소년 야구선수권 대회 국가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북일고등학교]] 야구감독직을 [[이강돈]]에게 넘기고, [[한화 이글스]]와 2군 감독 계약을 체결하여 2013 시즌부터는 2군 감독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년|연<br /><br />도]]!!소<br /><br />속!![[나이|나<br /><br />이]]!!출<br /><br />장!![[타석|타<br /><br />석]]!![[타수|타<br /><br />수]]!![[득점 (야구)|득<br /><br />점]]!![[안타|안<br /><br />타]]!![[2루타|2<br />루<br />타]]!![[3루타|3<br />루<br />타]]!![[홈런|홈<br /><br />런]]!![[타점|타<br /><br />점]]!![[도루|도<br /><br />루]]!![[도루|도<br /><br />실]]!![[볼넷|볼<br /><br />넷]]!![[삼진|삼<br /><br />진]]!![[타율|타<br /><br />율]]!![[출루율|출<br />루<br />율]]!![[장타율|장<br />타<br />율]]!![[OPS|O<br />P<br />S]]!![[누타수|루<br /><br />타]]!![[병살타|병<br />살<br />타]]!![[몸에 맞는 볼|몸<br /><br />맞]]!![[희생 번트|희<br /><br />타]]!![[희생 플라이|희<br /><br />플]]!![[고의 사구|고<br /><br />4]]
         |style="text-align: center;"|[[1987년 한국프로야구|1987]]
         |style="text-align: center;"|[[1988년 한국프로야구|1988]]
         |style="text-align: center;"|[[1989년 한국프로야구|1989]]
         |style="text-align: center;"|[[1990년 한국프로야구|1990]]
         |style="text-align: center;"|[[1991년 한국프로야구|1991]]
         |style="text-align: center;"|[[1992년 한국프로야구|1992]]
  • 박승호 (야구인) . . . . 4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프로 입단 연도 = [[1983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83년]]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1차 2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3년]] [[4월 4일]] <br />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해태 타이거즈|해태]]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2년]] [[9월 26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지명타자]]
         '''감독 경력'''
         * [[공주고등학교]] 야구감독 (2009년 ~ 2010년)
         *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1년)
         [[대건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졸업한 뒤 [[병역|군복무]]를 위해 [[대한민국 공군|공군]] 소속의 성무 야구단에 입단하여 야구 선수 생활을 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83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였다. [[199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0 시즌]]에는 [[지명 타자]]로서 110경기에 출전하여 0.307의 [[타율]], 75 [[타점]], [[홈런]] 20개, 0.505의 [[장타율]]을 기록하였고,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지명 타자)|골든 글러브 지명 타자 부문]]을 수상하며 자신의 선수 경력에 있어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하지만 [[1990년]]을 제외한 나머지 시즌에선 대체로 2할 중후반대의 타율과 4할대의 장타율을 기록하며 아주 뛰어난 선수로 기억될 만큼의 활약은 펼치지 못했다. 그는 비록 1980년대 함께 뛰었던 팀 동료 [[이만수]], [[장효조]], [[김성래]]와 같은 커다란 업적을 남긴 수퍼 스타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팀에서 꾸준히 제 역할을 한 선수로서 통산 11시즌을 보내고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매일신문]] - 2009년 8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37060&yy=2009 "삼성 ‘골고루 한방’이 4강권 이끈다"]</ref>
         [[삼성 라이온즈]]에서만 현역 생활을 하다가 은퇴한 박승호는 [[1993년]]부터 [[1999년]]까지 친정 팀에 계속 머무르며 타격코치로 일했다. 그는 5년 코치 생활을 하는 동안 [[1995년]] [[투수]]로 입단한 [[이승엽]]에게 타자로 전향할 것을 권유하기도 했는데 당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야구인)|박흥식]] 코치와 함께 그가 대형 타자로 성장하는 데에 도움을 주었다.<ref>[[매거진 t]] - 2008년 9월 기사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2004000&article_id=48717 "t MAP - 이승엽"]</ref>
         [[200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0 시즌]]부터 박승호는 [[SK 와이번스]]로 팀을 옮겨 4년간 타격코치로서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고, [[2004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4 시즌]]부터는 팀을 옮겨 [[KIA 타이거즈]] [[김성한 (1958년)|김성한]] 감독, [[서정환]] 수석코치의 지휘 아래 타격코치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8&aid=0000027357 기아 김성한 감독 재계약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0481897 <프로야구소식> 박관용 국회의장, KS 1차전 시구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09800 KIA, 서정환 2군감독 1군코치 임명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09720 최하위 기아 코칭스태프 개편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이 시작되기 전에는 [[KIA 타이거즈]] 코칭 스태프 개편을 통해 [[서정환]]이 감독으로, 박승호가 수석 코치로 승격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1190864 <프로야구소식> KIA, 코칭스태프 보직 확정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7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7 시즌]] 전반기에는 팀 성적이 최하위에 머물면서 6월에 대대적인 코칭 스태프 개편이 있었고, 수석 코치로 있었던 박승호는 2군 감독으로 보직이 이동되었다.<ref>[[마이 데일리]] - 2007년 6월 기사 [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706181438192229 "KIA, 조범현 전 SK 감독 영입 등 코칭 스태프 개편"]</ref><ref>[[한겨레]] - 2007년 6월 기사 [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216991.html "기아 1·2군 코치진 맞교체… “분위기 쇄신” 효과 관심"]</ref> 2007 시즌이 끝날 때까지 끝내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KIA 타이거즈]]는 시즌 후 [[서정환]] 감독을 경질하였고, [[2007년]] 시즌 중 배터리 코치로 영입했다가 새로 선임한 [[조범현]] 감독이 코칭 스태프를 새로 구성하면서 그는 구단과 재계약하지 못했다.<ref>[[스포츠 칸]] - 2007년 10월 기사 [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212230173&sec_id=510201 "조범현 감독 KIA 코치진 물갈이"]</ref> 하지만 그가 키워냈던 [[이용규]]는 국가대표 외야수로 우뚝섰다.
         프로 야구계를 떠나 [[2008년]] 그는 [[공주고등학교]] 야구감독으로 부임하여 지도자 생활을 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37047 공주고 야구 감독 경질 논란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한국일보]] - 2008년 8월 기사 [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0808/h2008080802505591830.htm "북일 · 대전, 어깨가 든든"]</ref><ref>[[엑스포츠 뉴스]] - 2009년 8월 기사 [http://www.xportsnews.com/tabid/92/EntryID/103120/language/ko-KR/Default.aspx "봉황대기 고교 야구 - 안승민의 공주고, 8강행 확정"]</ref>
         [[2011년]] [[10월 4일]]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직에서 물러나고 [[NC 다이노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한국 프로 야구 2010 시즌 7월, 올스타전]]이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에서 치뤄지면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박승호가 레전드 [[지명타자]]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고전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ref>엑스포츠 뉴스 - 2010년 7월 기사 [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23489 "이만수, 김성래… 삼성 레전드 등장에 대구 야구 팬 열광"]</ref>
  • 김용국 (야구인) . . . . 4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5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5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5년]]
         [[한양대학교]] 재학 시절 뛰어난 활약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1984년 하계 올림픽|1984년 LA 올림픽]]에 참가하였다.<ref name="imaeil">[[매일신문]] - 2007년 7월 기사 [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9528&yy=2007 "최종문의 펀펀 야구 - 영어가 뭐기에"]</ref>
         [[한양대학교]] 졸업 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한 [[1985년 한국프로야구]]부터 주전 [[3루수]]로 뛰었지만 [[1987년 한국프로야구]]에는 [[류중일]]의 입단으로 설 자리를 잃어 [[유격수]]에서 전향했던 [[오대석]]과 병용으로 출전했다.
         그러나, [[류중일]]이 다음 해인 [[1988년 한국프로야구]] 때 팔꿈치 수술로 출장 입지가 줄어들어 [[오대석]]이 [[류중일]] 자리에 들어가게 되면서 [[1988년 한국프로야구]]부터 [[1993년 한국프로야구]]까지 줄곧 팀의 주전 [[3루수]]로 활약했다. 또한 1991~1992년, 2년간 팀의 주장을 맡으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하였다.<ref name="imaeil" /> [[1루수]] [[김성래]], [[2루수]] [[강기웅]], [[유격수]] [[류중일]], [[3루수]] 그로 이어지는 내야 수비진은 리그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한편, 그는 뛰어난 수비 실력에 비해 타격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에 아쉽게도 매번 [[해태 타이거즈]] [[3루수]] [[한대화]]에게 밀려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수상자 (3루수)|3루수 골든 글러브]]는 단 한 차례도 수상하지 못했다.
         [[1993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3 시즌]]이 끝나고 [[태평양 돌핀스]]로 트레이드되면서 삼성의 3루수 자리를 후배 [[김한수 (야구인)|김한수]]에게 물려 주었다.
         1994~1995 시즌 [[태평양 돌핀스]] 선수로 뛴 후, 돌핀스를 새로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가 기존의 선수단을 리빌딩하는 과정에서 [[1996년]]에 세대 교체의 명분 아래 현역 은퇴를 하면서 [[199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1996 시즌]]을 맞이했다.<ref name="imaeil" />
         ==야구선수 은퇴 후==
         그는 은퇴하면서 [[현대그룹]]의 [[대한민국의 실업 야구|실업 야구단]] [[현대 피닉스]]에서 [[1996년]]부터 바로 수비 코치를 맡았다. 1년 뒤엔 프로 구단 [[현대 유니콘스]]로 발령나기를 기다렸으나 도리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고, 실망감을 안은 채 어린 두 아들과 아내를 데리고 무작정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ref name="imaeil" />
         [[1997년]] 그는 무보수 방문 코치로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루키 리그 야구단 [[헬레나 브루어스]] ([[:en:Helena Brewers|Helena Brewers]])에서 코치로 있다가 그해 9월 마이너 리그 내의 교육 리그, [[애리조나 폴 리그]] ([[:en:Arizona Fall League|Arizona Fall League]])에 속해 있던 야구단 [[메사 솔라 삭스|선 시티즈 솔라 삭스]] (Sun Cities Solar Sox; 現 메사 솔라 삭스 [[:en:Mesa Solar Sox|Mesa Solar Sox]])에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55979 <프로야구>김용국, 애리조나 폴리그 코치 영광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한 달간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의 싱글A 야구단 [[스탁턴 포츠]] ([[:en:Stockton Ports|Stockton Ports]])에서 수비 및 주로 코치로 일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294321 <프로야구> 김용국, 미국 프로야구 지도자로 데뷔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1998년 말, 1년간 그를 지켜본 [[스탁턴 포츠]]는 그에게 연봉 3만 달러를 제안함과 동시에 1999 시즌부터 정규 시즌 코치로 일할 것을 제안하였다. 1999 시즌이 끝난 뒤엔 연봉이 3만 5천 달러로 오르면서 트리플A 야구단 [[인디애나 인디언스]] ([[:en:Indianapolis Indians|Indianapolis Indians]])의 코치로 승격되었다. 2000 시즌 도중에는 [[스카우트]] 자격으로 한국에 2주 동안 출장을 오기도 했는데, 그때 한국의 4개 프로 구단으로부터 코치 제의를 받았다. 그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코치에 도전해 볼 생각도 있었으나 [[LG 트윈스]]의 강력한 러브콜로 인해 국내 복귀를 택했다.<ref name="imaeil" />
         [[대한민국]]에서 연봉 5천만원에 [[LG 트윈스]]의 코치로 활동하기 시작한<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01&aid=0004551908 <프로야구소식> LG, 김대진, 김용국코치 영입]</ref> 그는 추후 자리를 옮겨 [[2006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6 시즌]]부터 [[2009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09 시즌]]까지 친정 구단 [[삼성 라이온즈]]에서 수비 코치로 활동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20171 삼성, 김용국·강성우 코치 영입]</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65 [사진]김용국 코치,'아픈 데는 괜찮나?'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0876 [사진]김용국,'글러브 가볍고 괜찮네!' :: 네이버 뉴스<!-- 봇이 따온 제목 -->]</ref> [[2009년]] 친정 팀의 코치 재계약에 실패한 후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2010 시즌]]엔 [[넥센 히어로즈]]에 자리를 옮겨 2군 수비·작전·주루 코치로 활동하다가<ref>''OSEN'' - 2009년 11월 기사 [http://www.osen.co.kr/news/Sports_View.asp?gisano=G0911190106 "히어로즈, 김용국 전 삼성 코치 영입"]</ref> [[류중일]]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아 친정 팀의 코치로 복귀했다.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올스타전]]에서 "[[삼성 라이온즈]] 레전드 올스타" 행사도 열렸는데, 그가 레전드 [[3루수]]로 선정되어 오랜만에 [[삼성 라이온즈]]의 옛 유니폼을 입고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였다.<ref>[[스포츠 서울]] - 2010년 7월 기사 [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올스타전, 팬들에게 추억을 선사한 레전드 행사"]{{깨진 링크|url=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857634.htm }}</ref>
         2016 시즌 후 [[류중일]]이 [[삼성 라이온즈]] 감독에서 물러난 후에 [[삼성 라이온즈]]과 재계약이 불발된 후 [[김진욱]]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부름을 받고 [[kt 위즈]]로 팀을 옮겼다.
         {{1983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태평양 돌핀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김해 김씨]][[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야구 참가 선수]]
  • 우용득 . . . . 4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감독 경력'''
         *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3년 ~ 1995년)
         *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1998년 ~ 2000년)
         * [[롯데 자이언츠]] 감독 대행 (2001년)
         * [[롯데 자이언츠]] 감독 (2001년 ~ 2002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1971 서울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메달 경기|[[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금메달|1971 서울|야구}}
         '''우용득'''(禹龍得, [[1950년]] [[2월 13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야구 감독, 야구 해설가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우리은행|한일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포지션은 [[포수]]로서 [[1970년]]대 국가대표 선수였다. [[1981년]] 선수 생활을 은퇴하고 [[우리은행|한일은행]] 코치로 있다가 [[1982년]] [[KBO 리그]]의 출범과 함께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진에 합류하였다. 코치라고는 했지만, 그 당시에 워낙 젊었기 때문에 [[1983년]]까지 종종 선수를 겸하여 출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계속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재직하다가 [[1993년]] [[김성근 (야구인)|김성근]]의 후임 감독으로 데뷔하였다. 감독이 되자 세대교체에 힘써서 노장 선수들을 정리하고 젊은 선수들로 체질을 개선했다. [[1993년]] 정규 시즌을 2위로 마치고 [[1993년]]에서 숙명의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와 접전을 벌여 초반에 2승 1패로 앞서 나갔으나, 젊은 선수들의 경험 부족으로 3연패를 당해 우승에 실패하였다.
         [[1994년]]과 [[1995년]]에 내리 5위로 시즌을 마감하여 감독에서 물러났다. 이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2군 감독을 지내다가 [[2001년]] [[김명성 (1946년)|김명성]] 1군 감독의 급사로 감독 대행이 되었다. [[2002년]] 시즌을 맞아 7년 만에 정식 감독으로 복귀하나, 투자에 소극적인 구단과 타선을 이끌었던 [[펠릭스 호세|호세]]의 2중 계약 파문 등 어수선한 팀 분위기 때문에 최하위를 전전하고 16연패를 당하기도 하면서 그 해 6월에 [[백인천]]에게 자리를 넘기고 해임되었다.
         이후 신문의 야구 컬럼을 쓰기도 하고 야구 해설가 등을 맡고 있다가, [[2009년]]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 팀에 합류하여 복귀했다.<ref>[http://isplus.joins.com/article/article.html?aid=1236142 삼성, 선동열 감독과 5년간 27억원 최고액 재계약] - 일간스포츠</ref>
         === 실업 야구 ===
         ===프로 야구===
         |직책 = [[롯데 자이언츠]] 감독
         |전임자 =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 서정환 . . . . 3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감독 경력'''
         * [[삼성 라이온즈]] 감독 (1998년 ~ 1999년)
         * [[해태 타이거즈]] 2군 감독 (2001년)
         * [[KIA 타이거즈]] 감독 대행 (2005년)
         * [[KIA 타이거즈]] 감독 (2006년 ~ 2007년)
         '''서정환'''(徐定煥, [[1955년]] [[7월 5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의 [[유격수]]였다. 현재는 [[KBO (야구)|KBO]]의 대구 감독관이다.
         [[건국대학교|건국대]]를 졸업하고 실업 야구 팀 [[포스코|포항제철]]과 경리단을 거쳐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멤버가 되었다. 그러나 당시 그의 포지션이었던 [[유격수]]에 [[오대석]], [[장태수]] 등의 쟁쟁한 선수가 많아 주전으로 출전하기 힘들게 되자 시즌 후 스스로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유격수]] 자원이 부족하였던 [[해태 타이거즈]]에 현금 트레이드로 이적했다. 이것은 [[KBO 리그]] 역사상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로 양 팀과 선수에 모두 도움이 된 win-win 케이스로 꼽힌다. 서정환의 트레이드는 최초의 현금 트레이드이고, 최초의 선수 간 트레이드는 [[1983년]] [[6월 27일]] [[MBC 청룡|MBC]] [[내야수]] [[정영기 (야구인)|정영기]]와 [[롯데 자이언츠|롯데]] [[포수]] [[차동열]] 간의 트레이드였다.<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00&g_serial=585648&rrf=nv 트레이드, 그라운드 밖의 승부수] - 조이뉴스24</ref> 이후 서정환은 견실한 수비와 빠른 발을 이용한 플레이로 198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6년]]에는 도루왕에 오르기도 했다.
         [[1989년]]에 은퇴하여 [[해태 타이거즈]]에서 코치 생활을 하다가 [[1995년]]에 도일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1996년]] 고향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하여 수비코치로 일했다. [[1997년]] [[10월 30일]] [[삼성 라이온즈]]는 라이벌 팀 [[해태 타이거즈]]를 벤치마킹하려는 경영진의 결정으로 [[해태 타이거즈|해태]]에서 오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를 [[백인천]]의 후임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 최초의 감독에 임명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201661 삼성,제 9대 감독으로 서정환 코치 전격 발탁] - 연합뉴스</ref><ref>서정환 다음으로 [[삼성 라이온즈|삼성]] 선수 출신으로 감독이 된 경우는 [[류중일]]이며, 서정환과 달리 [[류중일]]은 원 클럽맨 출신으로 삼성의 감독이 된 첫 번째 경우이다.</ref> [[1998년]]에 정규 시즌 2위, [[1999년]](이 해에 잠깐 양대 리그제로 바뀌었다.) 드림리그 1위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지만, [[롯데 자이언츠]]에 패해 [[1999년 한국시리즈]] 진출에 실패하고 그 해 [[11월 1일]]에 사임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563593 프로야구 삼성, 서정환 감독 사의] - 연합뉴스</ref> [[2001년]] [[해태 타이거즈|해태]]로 돌아와 2군 감독을 맡았고 시즌 중 수비코치로 보직 변경되었다. 이후 구단주가 바뀐 [[KIA 타이거즈]]에서 [[김성한 (1958년)|김성한]], [[유남호]] 감독을 보좌하여 코치 생활을 하였다. [[2005년]] [[유남호]] 감독이 시즌 최하위의 책임을 지고 시즌 중 사임하자 [[KIA 타이거즈]]의 감독 대행을 맡았고 [[2006년]] 정식 감독에 취임하였다.
         [[2006년]] 정규 시즌을 4위로 마감하여 포스트 시즌에 진출, [[해태 타이거즈|해태]]의 영광을 되살리는 듯했지만 [[한화 이글스]]와 맞붙었던 준 플레이오프에서 패해 탈락했다. [[2007년]] [[KIA 타이거즈]]가 최하위로 전락하자 그 해 시즌 중 영입한 배터리 코치 [[조범현]]에게 감독 자리를 넘기고 총감독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ref>[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710191144463&sec_id=510201&pt=nv 감독 대이동? 조범현 배터리 코치 KIA 새 사령탑] - 스포츠칸</ref>
         이후 [[MBC 스포츠+|MBC ESPN]]에서 해설가로 활동했고, 현재는 [[KBO (야구)|KBO]]의 대구 감독관으로 재직 중이다.
         |후임자 = [[김용희 (야구인)|김용희]]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직책 = [[KIA 타이거즈]] 감독
         |임기 = [[2005년]] [[10월 3일]] - [[2007년]] [[10월 18일]] (감독 대행 : [[2005년]] [[7월 25일]] - )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삼성 라이온즈|(1998년 ~ 1999년)}}
         {{한국야구위원회 전문위원회 명단}}
         [[분류:KIA 타이거즈 감독]][[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해태 타이거즈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KBO 도루상 수상자]][[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대한민국야구 해설자]][[분류:대한민국야구 감독]][[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
  • 조긍하 . . . . 37회 일치
          | 직업 = [[테너]] [[성악가]], [[피아노 연주자]],<br />사진 작가, 영화감독, 영화평론가,<br />음악평론가, [[영화 프로듀서|영화 제작자]],영화기획가, 영화 편집감독, 영화각색가,<br>영화각본가, 소설가
         '''조긍하'''(趙肯夏, [[1919년]] [[8월 16일]] ~ [[1982년]] [[1월 28일]])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영화감독]]이다. 본관은 [[풍양 조씨|풍양]](豐壤)이며 [[아명|아명(兒名)]]은 '''조중하'''(趙重夏)이다.
         [[대구광역시|경상북도 대구]] 출신으로 대구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구니타치 음악대학|도쿄 제국음악학교]] 성악학과를 졸업하였다<ref>[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48383&mobile&categoryId=1639 조긍하 - 네이버 지식백과]</ref>. 그 후 [[테너]] [[성악가]]와 [[피아노 연주자]]로 활동하다가 은퇴하고 [[사진가|사진]] 촬영과 [[영화]] 분야로 전향하였다. 사진작가의 관록으로 조감독 수련을 거치지 않고 바로 감독이 되었는데, [[1952년]]에 《베일부인》을 감독한 것을 시작으로 《황진이》([[1956년]]), 《곰》, 《육체의 길》([[1959년]]), 《인간만세》, 《과부》([[1960년]])등의 영화를 감독하였고, 시나리오도 직접 집필해왔다. 또한, 1960년대 말에는 《상해임시정부》, 《인천상륙작전》 등 애국지사들의 일대기를 내용으로 한 작품들을 만들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3000329212001&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30&officeId=00032&pageNo=12&printNo=11181&publishType=00020 故(고) 趙肯夏(조긍하)감독의 人間(인간)과 作品(작품)세계 고지식하면서도 유머풍부 - 1982년 1월 30일 경향신문]</ref>.
         [[1982년]] [[1월 28일]]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ref>[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12800209207008&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1-28&officeId=00020&pageNo=7&printNo=18559&publishType=00020 영화감독 趙肯夏(조긍하)씨 - 1982년 1월 28일 동아일보]</ref>.
         * [[1952년]] [[영화]] 《베일 부인(베일의 비밀)》으로 [[영화 감독|영화감독]] 데뷔.
         * [[1957년]] [[영화]] 《황진이》를 [[영화 감독|감독]], 이 [[영화]]로 함께 [[영화 각본|영화 각본가]] 데뷔.
         * [[1959년]] [[영화]] 《곰》을 [[영화 감독|감독]], 이 [[영화]]로 [[영화]] 편집[[영화 감독|감독]] 데뷔.
         * [[1960년]] [[영화]] 《과부》를 [[영화 감독|감독]], 이 [[영화]]로 [[영화]] 각색가 데뷔.
         * [[1961년]] [[영화]] 《쟌 발쟌(Jean Valjean)》을 [[영화 감독|감독]] 및 각색, 이 [[영화]]로 [[영화]] 기획가 데뷔.
         * [[1962년]] [[영화]] 《인간만세》를 감독, 이 [[영화]]로 [[영화 프로듀서|영화제작자]] 데뷔.
         * [[1969년]] 자신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세월이 흘러가면》을 [[영화 감독|감독]].
         === 감독 ===
         * 아들인 [[조동진]]과 [[조동익]], 그리고 딸인 [[조동희 (가수)|조동희]]는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ref>[http://news.maxmovie.com/movie_info/sha_news_view.asp?newsType=&page=&contain=&keyword=&mi_id=MI0095816228 <슈퍼스타> 조동희 음악감독, 포크음악 대부 조동진 친동생 - 2012년 5월 29일 맥스뉴스]</ref>.
         [[분류:일제 강점기의 성악가]][[분류:일제 강점기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1942년 데뷔]][[분류:투자가]][[분류:자유 연애]][[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구니타치 음악대학 동문]][[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풍양 조씨]]
  • 이강돈 . . . . 35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청림초 - 포항중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건국대학교|건국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br] [[한국프로야구/1985년/신인드래프트|1985년]] 지명권 양도 ([[빙그레 이글스|빙그레]]) ||
         || 지도자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연수코치 (1998) [br] [[한화 이글스]] 2군 타격코치 (1999) [br] [[한화 이글스]] 2군 주루코치 (2002~2003)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04) [br]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감독 (2006~2008) [br]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감독 (2008~2009) [br]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10~2012) [br]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등학교]] 감독 (2013~2016) ||
         |||||||||||||||||| '''1988 ~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외야수]]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수상자''' ||
         |||||||||||| '''1989,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최다 안타상''' ||
         |||||||||||| '''199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득점왕'''[* 최다 득점 부문은 1999년에 신설] ||
         |||||||||||| '''1993년 [[KBO 올스타전|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 미스터올스타''' ||
         오랫동안 빙그레-한화에서 선수 생활을 했기 때문에 대전 사람으로 아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은 포항 사람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1978년~1981년 졸업)를 졸업하고 [[건국대학교]](1981학번)에 진학했는데,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시절에 비해 [[건국대학교]]에서 기량이 일취월장하면서 [[1984 LA 올림픽]] 국가대표[* 이 당시에는 야구는 시범종목이었다.]로 발탁되는 등, 일약 대학 무대 최고의 톱 타자 중 한 명으로 성장했다.
         왜냐면 당시 빙그레는 막 생긴 신생팀으로서 기존의 6개 구단들보다 전력이 한참 빈약했기 때문이었다.[* 원년 참가 팀들을 제외하고, 1군 첫 시즌을 보낸 팀들 중 최저승률 기록을 갖고 있다.] 여기에 당시 빙그레의 초대 단장인 노진호는 바로 직전까지 삼성에서 [[프런트]]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결국 삼성은 전관예우 + 신생 구단에게 선심쓰는 차원에서 무상으로 그의 지명권을 양도했다. 그래서 이강돈은 빙그레에 입단할 수 있었고, 프로야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드래프트 질서를 거부하고도 별 일 없는 선수가 되었다.
         || 1987년 8월 27일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한 후.[* 사이클링 히트를 달성하고 받은 사사키 제품의 배트 세 자루와 KBO에서 준 황금배트를 들고 이강돈 감독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빙그레에서 이강돈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데뷔 첫 해 .297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빈약했던 빙그레 타선의 희망으로 떠오른 것이다. 비록 신인상은 [[MBC 청룡]]의 에이스로 급부상한 [[김건우]]에게 내줬지만, 이강돈은 빙그레의 주축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장종훈]], [[강정길]], [[이중화]]같은 선수들이 합류하면서 신생 빙그레는 일약 다이너마이트 타선으로 불리며 프로야구를 풍미하기 시작했고, 막강 해태에 도전장을 내미는 팀으로 자리잡았다.
         특이한 기록도 두 가지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1987년 8월 27일 [[OB 베어스|OB]]전에서 수립한 프로야구 통산 2번째 [[사이클링 히트]] 기록이다. 그런데 이강돈은 전날 저녁, 다음 날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만 믿고 밤새 술을 들이붓고 고주망태가 되었는데, 정작 경기 당일 비가 오기는 커녕 쨍쨍한 날씨인지라 정상적으로 경기가 거행되었다. 당연히 [[숙취]]에 찌들어 고통스러워하던 이강돈은 대충 휘두르고 죽자는 생각으로 출장했지만 뜻밖에도 홈런에 2루타, 번트 내야안타, 3루타를 차례로 때려내며 대 기록을 작성하였다. 나중에 이강돈은 사이클링 히트 기록에 대한 소감으로 "술기운이 남아서인지 공이 수박만하게 보이더라"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마찬가지로 술기운에 7타수 7안타 날린 [[오시타 히로시]]와 오버랩된다~~
         은퇴 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다이에 호크스]]에서 연수를 받고 한화의 코치로 부임했으나, 한화에서 롱런하지 못했다. 그 뒤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 감독도 잠시 역임했다가 [[롯데 자이언츠]]로 건너가서 타격코치로 재임했다. 그러나 프로구단 코치로서는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2 시즌 종료 후에는 [[이정훈(1963년생)|이정훈]] 前 북일고 감독이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에 선임되면서, 그의 후임으로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부|북일고]] 감독에 선임되었다.
         2013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북일고를 이끌고 결승까지 올라가 지역 라이벌인 [[공주고등학교 야구부|공주고]]와 맞붙었는데, 0:4로 끌려가던 중 상대 [[선발 투수|선발]]인 [[김훈호]]의 볼질로 한점차까지 따라간 상황에서 뜬금없는 스퀴즈를 지시했다. 결과는... 결국 준우승에 머물렀다.[* 공주고는 [[김경문]]이 활약하며 [[MVP]]로 선정됐던 1977년 이후 36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이었다. 이 날 경기는 월요일에 목동야구장에서 진행되었으며 공주고 동문인 손혁, 박정배, 조동화가 와서 관전했다. 박찬호는 아예 덕아웃 옆에 있었고...]
         2016년 10월 말에 북일고등학교 야구감독에서 물러나고, [[대전MBC]]에서 프로야구 중계를 기존의 여정권[* 현직 체육교사(체육학 박사)] 해설과 로테이션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2013년 홈경기 임시 해설 이후 4년만.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1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 황병일(1960) . . . . 34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LG 트윈스/선수단]]
         || '''지도자''' ||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 타격코치 (1990~2002) [br] [[LG 트윈스]] 1군 타격코치 (2003)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4~2005) [br] [[SK 와이번스]] 1군 타격코치 (2006) [br] [[KIA 타이거즈]] 1군 타격코치 (2008~2009) [br]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br] [[삼성 라이온즈]] 2군 타격코치 (2012) [br]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2013) [br]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4) [br] [[kt wiz]] 2군 감독 (2015) [br] [[kt wiz]] 1군 수석·타격코치 (2015~2016) [br] [[LG 트윈스]] 육성군 타격 인스트럭터 (2018~) ||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다.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때부터 타격 재능이 뛰어나고 정평났으나,[* 한국 야구 사상 기록된 것으로는 최초의 [[사이클링 히트]] 기록 보유자이다. 1980년 대학야구 춘계연맹전 원광대전] 워낙 두터웠던 당시 삼성 선수진 때문에 대개 백업으로 출전했다. 1986년 [[빙그레 이글스]]에 전력보강선수로 이적한 후 1990년에 은퇴하고 빙그레의 타격코치를 맡으며 일찌감치 지도자로 전향했다.
         은퇴하자마자 빙그레의 타격코치로 부임해 한화 이글스로 바뀐 후에도 2002년까지 12년 간 [[한화 이글스]]에서 타격코치로 재임했으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도 경험했다. 이 때 [[장종훈]], [[송지만]], [[이영우]], [[김태균(1982)|김태균]], [[이범호]] 등을 발굴하거나 성장시켜 2000년대 초중반까지 삼성의 [[박흥식(야구)|박흥식]] 코치, 현대의 [[김용달]] 코치, 두산의 [[송재박]] 코치와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타격코치 중 하나로 손꼽혔다. 이후 LG, SK 타격코치를 거쳤는데 SK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선수 시절에는 그저 그런 선수였지만, 과거 아마추어 시절에 뛰어난 타격 재능으로 유명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는 거포형 타자를 발굴하여 그 기량을 발전시키는 데 뛰어났다는 것이 중평. 코치로서 권위를 내세워 일방적으로 선수를 지도하기보다는 선수들과 직접 소통하며 선수 스스로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해 가도록 이끌어 가는 능력이 탁월해, 팀을 옮겨도 그를 따르는 선수들이 많다. [[송지만]]은 현대에 이적한 후로도 슬럼프에 빠졌을 때 황병일에게 조언을 구했고, 자신의 롤 모델로 [[장종훈]]과 황병일을 꼽았다. [[이범호]]도 한화에 있었을 때, 황병일이 한화를 떠난 후에 슬럼프에 빠지면 황병일을 제일 처음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2010년에 수석코치가 되었음에도 KIA 타자들은 타격에 대해 타격코치가 아닌 황병일을 찾았다고 한다. ~~[[최경환(야구)|하긴 당시 KIA 1군 타격코치를 생각해보면 그럴 만하다]]~~
         2008년부터 SK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조범현]] 감독을 따라 KIA에 타격코치로 부임해 2009년 우승의 공로로[* 무엇보다도 [[김상현(1980)|김상현]]의 포텐을 터뜨리는 데에 큰 공헌을 했다.], 2010 시즌부터는 수석코치로 승격되었다. 2010 시즌 20홈런 타자 5명을 배출하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지만, 오히려 KIA 타선의 성적이 하락하자 그에 대한 비난이 증가했다. ~~이 때 황붕어라는 별명도 생겼다~~ 수석코치가 된 후로는 [[조범현]] 감독을 보좌하는데 전념했다지만, 타격 쪽에 아예 손대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2010 시즌에는 경험이 부족한 [[최경환(야구)|최경환]]이 타격코치를 맡아 실질적으로는 황병일이 타격코치도 겸했다고 보는 쪽이 많다.[*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김한수]] 타격코치의 경험이 부족해 [[김성래]]가 수석코치로 승격된 첫 해에는 타격을 겸임한 바 있다.]
         2011 시즌이 끝나고 조범현 감독이 ~~경질되며~~사퇴하며 황병일도 수석코치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삼성 2군 타격코치로 부임했다. 무려 26년만에 친정팀에 복귀하는 것. ~~그리고 2012 시즌 삼성 2군 타자들은 죄다 부진했다.~~[* 2011 시즌 삼성 2군 팀 타격 기록이 도루 제외 전부문 전체 2위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불과 1년만에 팀 타격 기록이 전체적으로 하락했는데, 특히 사사구와 홈런이 급감해 출루율과 장타율 부분이 하위권으로 크게 하락했다. 참고로 2012 시즌 삼성 2군 타격코치는 황병일을 포함해 [[강기웅]]과 [[김종훈(1972)|김종훈]]까지 3명으로 등록되었었는데, 김종훈은 시즌 중 1군 선수단에 합류했고, [[강기웅]]은 이제 코치로 복귀한지 2년째가 되기에, 연배나 경험이 많은 황병일이 메인 타격코치를 맡았다.]
         [[2012년]] [[11월 4일]] [[두산 베어스]]의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애초에 삼성의 마무리훈련 명단에서 제외된 걸 보면 보다 전에 팀에서 재계약을 포기했다든가, 스스로 사의를 표하고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에 대한 [[두산 베어스]] 팬들의 평가가 안 좋으면서, 상대적으로 황병일에 대한 평가는 좋은 편. 한 때는 [[김진욱(야구)|김진욱]]을 경질하고 황병일을 감독 대행으로 앉히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후반기 두산의 성적이 좋아지고 한국시리즈에도 진출하게 되어 그런 이야기는 쏙 들어갔다.
         2013 시즌이 끝나고, [[송재박]] 타격코치가 수석코치로 승격되고 [[송일수]] 2군 감독이 [[김진욱(야구)|김진욱]]의 후임으로 신임 감독이 되자 공석이 된 [[두산 베어스/2군|2군]] 감독을 맡았다.
         그렇게 2군 감독을 1년간 지내고,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아 [[kt 위즈]]로 자리를 옮겼다.
         동시에 다시 1년 만에 [[송재박]] 2군 타격코치가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 [[kt wiz]] 2군 감독 및 수석 코치 시절 ===
         [[조범현]] 감독의 부름을 받고 [[kt wiz/2군|2군]] 감독으로 취임했다가, 4월 15일 자 코칭스태프 개편으로 수석코치로 올라왔다. 황병일이 타격도 겸임하면서 [[이숭용]]이 타격보조 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10월 12일 [[조범현]] 감독의 재계약이 불발되면서 후임 감독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었으나, [[김진욱(야구)|김진욱]] 감독의 부임 이후 수석코치에서 사임했다. 후임 수석코치는 [[이광길]].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야구감독]]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0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 서영무 . . . . 32회 일치
         '''서영무'''(徐永武, [[1934년]] [[5월 18일]] ~ [[1987년]] [[5월 26일]])은 전 [[대한민국]]의 야구 감독이자,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신으로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와 [[경북대학교|경북대]]를 졸업했다. 이후 공군 등 실업 야구 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였지만, 선수 시절에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모교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의 감독을 맡았다가 [[일본]]에 야구 연수를 다녀왔고, [[1967년]]부터 [[경북고등학교]] 야구감독을 맡아 명성을 쌓았다. [[1971년]]에는 전국 고교 대회를 모두 석권하는 위력을 보여 주며 고교 야구계에서는 '''"우승 제조기"'''로 불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22&article_id=0000100831 한국 야구 100주년 ⑬ 우승 제조기 서영무] - 세계일보</ref> 이후 [[한양대학교]], [[서울고등학교]], [[중앙대학교]] 야구감독으로 일하다가 [[1982년]] [[KBO 리그]]가 출범하자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에 임명되었다.
         당시에는 전·후기 리그로 연간 리그가 분리되어 있었는데, 전기리그는 [[두산 베어스|OB 베어스]]가, 후기리그는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우승하였다. [[1982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은 두 팀은 첫 경기에서 무승부를 기록하고 2번째 경기에서 [[삼성 라이온즈]]가 이겼으나 이후 내리 게임을 내주면서 4승 1무 1패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에 밀려 준우승에 머물렀다. [[1983년]]에는 조감독으로 영입된 [[재일 한국인]] 출신 [[이충남]]과의 지휘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생일을 일 주일 지난 그 해 [[5월 25일]]에 감독직에서 전격 사임하고 팀을 떠났다.
         삼성의 감독에서 물러난 이후에는 대구에 1급 차량 정비공장을 차려 운영하였다. [[1984년]]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초대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을 [[삼성 라이온즈]]에서 나은 조건으로 스카웃하여 차기 감독으로 영입하게 되자, [[두산 베어스|OB 베어스]]는 이에 맞서 그 해 [[4월 13일]] 서영무를 자문역 역할인 관리 이사로 영입하여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 분석을 맡기기도 하였다.
         [[경북고등학교|경북고]] 출신의 명 선수인 [[이선희 (야구인)|이선희]], [[황규봉]], [[배대웅]], [[조창수]], [[임신근]], [[강문길]] 등이 그의 제자였기 때문에 '''대구 야구의 대부'''라고 불리며, 엄격한 훈련과 함께 선수들의 책임과 품위를 철저히 강조한 감독이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8&aid=0000199354 with 라이온즈 열정의 30년 ⑩‘대부’의 쓸쓸한 퇴장, 원년 감독 서영무] - 매일신문</ref>
         |직책 = [[삼성 라이온즈]] 감독
         {{삼성 라이온즈 역대 감독|삼성 라이온즈|(1982년 ~ 1983년)}}
         {{토막글|야구인}}
         [[분류:삼성 라이온즈 감독]][[분류:대한민국야구 감독]][[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34년 태어남]][[분류:1987년 죽음]][[분류:뇌졸중으로 죽은 사람]]
  • 정정용 . . . . 31회 일치
         |현 소속팀=[[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8]]
         |국가대표팀 연도 =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감독 연도=2008<br />2008<br />2009<br />2011<br />2012<br>2014<br>2015<br>2016-<br>2016<br>2016<br>2017-
         |감독 클럽=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 (코치)<br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br />[[대한민국 U-14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4]] (코치)<br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코치)<br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코치)<br>[[대구 FC]] (수석 코치) <br />[[현풍고등학교]]<br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8]]<br>[[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감독 대행)<br>[[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감독)<br>[[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감독 대행)
         '''정정용''' ([[1969년]] [[4월 1일]] ~ )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및 축구 지도자이다. [[2017년]] 7월부터 9월까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을 지냈다.
         |직책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
         |직책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대행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이랜드 푸마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주중학교 동문]][[분류:청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 FC의 코칭스태프]][[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 박철우(배구) . . . . 30회 일치
         || 응원가 || 이전 : [[DJ DOC]] - 나 이런사람이야[* 나 이런사람이야~ 삼성의 철우~ 난 박철우야~ 최!강!삼!성!박!철!우!(x 2)] [br] 현재 : '''[[루트비히 판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 [[엘리제를 위하여|Für Elise]]'''[*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워워워워~ 워워워~ 워워워~ 워워워~최강삼성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박!철!우!'''][* [[SK 와이번스]] 소속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 선수와 현 [[SK 와이번스]] 소속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 선수의 KIA시절 응원가가 동일하다.][* 원래 응원단장들이 응원가를 만들 때 여러 종목을 겸업하는 단장들은 주로 야구선수의 응원가들 중 호평을 받은 응원가들을 편곡해서 만드는 편인데 이 응원가의 경우는 예외적으로 박철우 응원가가 원조이고 이후에 이홍구, 이재원 순으로 만들어졌다.] [br] [[굿 럭!!]] OST 'Departure'[* 삼성 삼성 삼성 박철우 오오오오오 승리를 위해~*2][* 현 [[KT 위즈]] 소속 외야수 [[이대형]]의 KIA시절 응원가와 같다.] ||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에서 2004년 데뷔해 2010년 삼성화재로 FA 이적을 했는데 그 배경에 전 [[부천 KEB하나은행|신세계 쿨캣]]의 [[농구]] 선수 [[신혜인]][* 이 열애설이 더 유명해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신혜인]]의 아버지가 삼성화재의 감독인 [[신치용]]'''이기 때문이었다.(어머니는 농구선수 전미애) 그래서 그가 현대캐피탈 소속이던 시절에 많은 이들이 이들의 연인 사이를 배구판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비유하기도 했으며, 배갤에서의 별명이 무려 '''사위'''(...)다. 그리고 박철우가 삼성전에서 유난히 부진한 것을 보며, 장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그런다고 많이들 깠었다. 박철우가 FA로 이적하면서 사위와 장인이 한 팀으로 뭉쳤다.]과 연인 관계였던 것이 드러나서 유명하다.
         [[1985년]]생으로 [[김요한]]과 나이상 동기지만, 프로 데뷔가 엄청나게 빨랐던 것은 그가 고졸 자격으로 현대캐피탈에 입단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남자 배구판에서는 20년 전 경북사대부고에서 럭키금성(現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KB손해보험]])으로 직행한 김찬호 현 [[경희대학교|경희대]] 배구부 감독에 이어 2번째인 고졸 현역 데뷔 선수. 가난한 집안 사정과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으로 인해 대학-실업 간 선수 수급에 대한 합의 등이 없던 상황을 이용해 당시 현대캐피탈 감독이자 ~~주로 부정적인 쪽으로~~[[스카우트]]의 귀재인 [[송만덕]]의 아이디어로 프로행을 선언, 초고교급 대어였던 박철우를 잡기 위해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이 모두 계약을 시도했고, 경쟁의 승리자는 현대캐피탈이 되었다. 학교 지원금(공식적으로 명지대에 일반 학생으로 입학한 케이스)을 포함해 총 '''계약금 8억 원'''을 받고 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이것이 대학연맹과 실업연맹 간 갈등 악화를 부채질했고, 결국 [[이경수]] 드래프트 파동이 정상화되었을 때 대학배구연맹은 '''고졸 선수의 프로 직행을 금지하는 조항'''을 프로 연맹에 요청해 공식적으로 명문화되었다.[* 이후 2013년 드래프트부터 이 조항이 삭제되어 고교졸업 예정 선수들도 드래프트에 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개정에 따라 지명된 선수가 송림고등학교 졸업 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지명을 받아 입단한 [[정지석]]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중대한 결정을 주도한 당시 현대캐피탈 [[송만덕]] 감독은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방신봉]]의 항명 파동으로 인해 현대캐피탈 감독직에서 사실상 해임되었다는 것.[* 사실 박철우의 고졸 프로 진출보다 더 파격적인 사례가 있었다. 그 주인공은 1990년대 초반 중학교 졸업 후 [[구미 KB손해보험 스타즈|럭키화재]]에 입단했던 이상욱. 그러나 이상욱은 이렇다 할 활약을 보이지 못한 채 1994-1995 슈퍼리그 직전 슬그머니 방출되었다.]
         2009년 9월, 당시 국가대표팀 코치였던 [[이상열(배구)|이상열]]에게 피멍이 들 정도로 구타를 당했다. 이례적으로 공개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의 상처를 공개하였는데, 이 일을 계기로 체육계의 고질적인 선수 구타 관행이 재조명되며 대한체육회에서도 적극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나섰다. --하지만 실효성은(...)-- 그 때 배구 대표팀은 [[태릉선수촌]]에서 쫓겨났고,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무기한 제명'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그 ~~[[이상열(배구)|이상열]] 코치~~는 지도자로서 활동할 수 없으나 KOVO 경기 감독관으로는 활동할 수 있었는데, 징계가 슬그머니 풀려서 [[경기대학교|경기대]] 배구부 감독으로 복귀했다. 하긴 전임 [[이경석(배구)|이경석]] 감독도 비리 문제로 물러났다가 은근슬쩍 복귀한 전례가 있었으니...
         '''2010 오프 시즌 때 FA를 선언하여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로 이적했다.--아버님!!!--''' 현대캐피탈은 세터 [[최태웅]]을 박철우의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최태웅]]은 5년 후 선수 생활을 마무리한 뒤 현대캐피탈의 감독으로 취임했다.
         2010년 12월 4일 V리그 개막전에서 친정 팀 현대캐피탈을 상대로 주전으로 나왔다. 포지션은 현대에서 뛰었을 때처럼 라이트. [[가빈 슈미트|가빈]]이 레프트[* 명목상 레프트일 뿐이지 실제로 레프트 공격수가 받아야 할 대부분의 리시브는 가빈의 대각에 서 있는 석진욱이나 신으뜸이 담당했다.]로 옮겼지만 정작 몰빵이 중요한 순간에 [[신치용]] 감독은 박철우를 교체시키고 가빈을 중용했다. --몰빵에서 라이트가 레프트에게 밀리다니!!-- [[안습]] 중요한 순간에 실수하거나 정줄 놓는건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와 달라진 게 없어서 비록 개막전 경기에서는 현대캐피탈이 완패를 당했지만, '경기 중 중요한 고비 때마다 박철우가 정줄을 놔버려서 현대캐피탈에게 유리하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를 가진 현대 팬들이 많아졌다.
         다만, [[신치용]] 감독은 선수들이 서브 실수할 때 [[김호철]] 감독과는 다르게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현대캐피탈에 있을 때보다 서브는 마음 편하게 하는 듯.
         [[국군체육부대|상무]],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와의 경기에서 완벽하게 컨디션 난조를 보였다. 상무와의 경기에선 범실도 많고 가빈에 비해 안정감을 실어 주진 못했지만 어쨌든 27점이나 올려 줬다. 하지만 LIG경기에선 6득점에 그쳤고 아예 2세트에는 나오지 못했다. 더욱 안습인 것은 작전타임 때 --장인어른-- [[신치용]] 감독에게 이름도 제대로 못불리고 '야 임마!!'라고 불리며 [[유광우]]와 함께 뒤지게 까였다. 여담으로 그 상황에서 [[신치용]] 감독은 세터 유광우에게 "아마추어나 하는 플레이를 하냐?" 라며 깠다.
         [[2011년]] [[9월 3일]], [[신치용]] 감독의 딸로 알려진 신혜인[* 前 여자농구 선수였다.]과 결혼하게 됐다. 스포츠 판 [[로미오와 줄리엣]]이 해피엔딩으로 결말졌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신치용|장인어른]]한테 주구장창 깨지겠지.~~ 그런데 [[신치용]] 감독에게 [[홍길동|장인을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고 감독님이라 부르는]] [[안습]]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적어도 박철우가 은퇴하기 전까지 아니면 신치용이 삼성 감독을 그만둘 때까지는... 그런데 그렇게 된 건 신치용 감독이 박철우에게 장인이라 부르지 못하게 해서 그런다고. 사실 이건 [[신치용]] 감독이 잘 한 것이다. 사석에서야 장인-사위지만, 선수단에서 있을 때는 공적인 자리인만큼 되도록이면 서로의 지위에 맞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 비슷한 예로, 최고참급 현역선수가 코치보다도 나이가 많으면 코치를 존중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예. [[김병지]], [[박찬호]])]
         또한 소속 팀에서의 안습한 위치뿐만 아니라 국가대표팀에서도 서서히 발탁되는 경우가 줄어들고 있다. 2011년 [[박기원]] 감독이 국가대표를 맡은 이후 박철우보다 더 젊고 더 유용한 [[김정환(배구)|김정환]]이 발탁되는 경우가 많아졌고[* 김정환은 소속 팀과 국가대표팀에서 거의 노예급으로 굴리긴 하지만 아직까지 큰 부상이 없다. --다만 [[V-리그]]의 대표적인 [[노안]] 선수라 얼굴이 폭삭 늙고 있어서 팬들이 안타까워한다 카더라.-- 또한 라이트 치고 서브 리시브 능력까지 출중해 당장에 리시버가 아쉬운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정말 중요한 자원이다.] 현재는 아예 김정환이 국가대표 주전 라이트윙으로 고정된 상태나 다름없다. --아니 사위가 어찌 그렇게 됐는고?--
         이렇게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가 많았지만, 2014년 월드리그 대회에서 국가대표팀 주포로 자리잡게 됐다. 박철우 이외의 날개 포지션에는 [[서재덕]], [[전광인]], [[송명근]] 등 후배들이 리시브를 잘 받아 주며 박철우는 공격에 전념할 수 있게 되면서 20점대 중후반 대의 득점을 올리는 경기가 많아졌다. --몰빵으로 영원히 고통받는-- [[전광인]]에 이어 147점으로 팀 내에서 2번째로 많은 득점을 올렸다.
  • 김강민 . . . . 29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3,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SK 와이번스/선수단, top3=먹튀/야구)]
         || '''학력''' || 대구본리초-대구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01년/신인드래프트|2001년 2차 2라운드]] (전체 18번, [[SK 와이번스|SK]]) ||
         || '''2010년 [[KBO 리그|한국프로야구]] [[KBO 골든글러브|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
         빠른 발과 뛰어난 판단력, 투수 출신답게 강한 어깨와 주자를 속일 수 있는 테크닉까지 외야수로서 수비면에서 갖춰야 할 모든 걸 갖추고 있는 선수. 타 선수들이 다이빙을 해야 잡는 타구를 뛰어난 타구판단과 스타트로 서서 잡아버린다. 현역 감독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한국 최고의 외야수비'''[* 외야수 중 최고 수비력를 놓고 경쟁구도를 펼쳤던 [[이우민]]과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이 타격부진이나 부상 등의 이유로 경기에 출장하지 못하거나 수비력이 쇠퇴하는 반면, 김강민의 수비력은 꾸준히 좋아졌다. ~~아니 이우민은 뭐 경기를 나와야 수비력을 보지~~]로 뽑혔다. 타격에 대해서는 ~~플루크~~[* 2013,14년에 3할을 기록하며 2010년의 활약이 플루크라는 시각이 사라졌다.] 2010년 이후 2할7푼~3할대의 타격과 대충 10홈런을 넘기는 파워로 매우 준수하다. ~~이우민이 이 정도만 했어도...~~[*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갖다 맞히는 능력은 좋으나 선구안이 많이 안좋아서 기복이 심하고 타율에 비해 출루율이 낮은 편이었으나 점차 나아지는 중. 장타력은 어느 정도 한방이 있는 수준은 된다.]
         별명은 인간을 넘어선 짐승같은 플레이라는 의미의 짐승강민, 짐강민이라 주로 불린다.[* 만화가 [[최훈]]의 프로야구 카툰에서는 늑대인간 비슷한 모습으로 묘사된다.] 그런 탓에 못하면 별명이 가축으로 바뀐다.
         [[박재상]], [[조동화]]와 함께 2006년까지는 외야에 자리가 남으면 메꿔주는 백업 멤버 수준에 가까웠지만, 부상당한 [[이진영]]이 풀타임 주전을 하지 못하기 시작한 2007년부터 [[박재홍(야구)|박재홍]]이 우익수를 더 많이 보기 시작함에 따라 주전 중견수로 발돋움하게 시작했다.
         2007시즌에는 박재홍보다 중견수 수비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주전에 기용되는 일이 잦아 박재홍이 불만을 갖기도 했으며, 형편 없는 타격 때문에 주전으로 기용시마다 김성근 감독 양아들이라고 하면서 까이기도 했다.
         [[2010년]] [[12월 11일]], [[두산 베어스|두산]]의 김현수,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과 함께 2010 시즌 외야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6월 20일 [[문학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스코어 1:3으로 SK가 리드하고 있는 8회 초 2사 1, 3루 상황에서 [[엄정욱]]의 직구를 [[강민호]]가 받아쳐 좌중간 깊숙히 날렸으나 귀신같이 뛰어와서 잡아내면서 실점을 면하는 수비를 보여주었다.[* 이 타구를 못 잡았으면 순식간에 동점이 되고 선발투수 김광현의 승리는 날아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날도 타격은 무안타.
         6월 28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스코어 0:2로 삼성이 앞서고 있는 3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조동찬]]의 뜬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머리 뒤로 공이 떨어지고 말았다. 직접적인 원인은 조명탑 라이트인 듯. ~~[[정수빈#s-1|김명탑]] 등극~~] 이닝 종료 찬스를 날려먹고 3점을 허용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김강민은 멘붕하고~~[[식빵]]!~~, SK는 0:6으로 패배했다. 공교롭게도 그날부터 7월 7일 한화전까지 SK는 6연패에 빠졌다. ~~조명탑의 저주?~~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9월 18일 사직 롯데전에서 홈 쇄도 중 [[강민호]]와 충돌해 강민호가 목부상을 입음으로써 롯데 파괴자로써의 칭호를 이어나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9월 19일 롯데팬들이 SK [[이만수]] 감독의 얼굴에 레이저빔을 쏘는등 양쪽 관계는 그야말로 앙숙이 되어갔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1028 대첩|2012년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7:8로 앞선 6회 말 2사 2루 상황에서, 삼성 배터리는 [[박정권]]을 거르고 김강민과의 승부를 이어갔으나 김강민은 좌측담장을 그대로 넘겨버리는 통렬한 스리런 홈런을 작렬했다. 이 홈런으로 승부는 완전히 SK쪽으로 넘어갔다. 9회 초에는 아웃 타구를 모두 김강민이 처리했다. 마지막 [[최형우]]의 타구는 날카로웠지만 김강민의 수비 범위가 더 넓었다. ~~김강민 짐승모드?~~ SK는 이날 스코어 8:12로 이겼고 김강민은 선발 중견수 겸 6번 타자로 출장하여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1득점을 기록하여 이 날 경기의 '''MVP'''로 선정되었다.
         5월 30일 현재 45경기에서 180타수 57안타 타율 .317, 출루율 .403, 장타율 .561로 3/4/5를 기록 중이며 도루 14개, 홈런 9개 타점 27개로 리그 탑급의 1번 타자 역할을 해주고 있다. ~~팀은 6위~~ 팀에서 야구 하고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다(...).
         8월 14일 삼성전에서 7회 초 무사 1루 상황에서 [[이지영(야구선수)|이지영]]의 중견수 앞 안타를 8-5-3 병살타로 둔갑시켰다.
         6월 21일 LG전에는 [[류제국]]의 사구에 맞고, 1루로 나가는 중 김강민을 계속 응시하던 류제국과 말다툼 끝에 [[벤치 클리어링|주먹다짐]]을 벌였다. 두 선수 모두 경기에서 퇴장당하고 KBO에서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제재금 300만 원과 유소년 야구봉사활동 120시간을 부과했다. 그나마 그 경기 다음 날에 두 선수가 서로 훈훈하게 사과한 것은 다행. ~~[[정상호]] 의문의 1패~~[* 당시 네티즌들이 정상호는 왜 설쳐서 잡았냐고 욕했다. 더군다나 둘이 알아서 터지든 냅둬야 하는데 문제는 김강민의 그 날 컨디션이 최악 + 아픈 상처를 더 깊게 입힌 것에 네티즌들의 2차 분노까지 간 것이다.]
         6월이 거의 끝나가는 27일 현재 2할 1푼의 타율과 1개에 불과한 홈런으로 충실한 [[먹튀]]의 길을 걷고 있다. 수비력은 여전해 1군 엔트리에 머물고 있지만 [[조용호(야구선수)|조용호]], [[노수광]], [[정진기]] 등에 밀려 대수비, 대주자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56억짜리 슈퍼백업~~
         올시즌이 끝나고 2번째 FA자격을 취득한다. 현재까지 FA에서의 성적은 56억이라는 몸값에 걸맞지 못한 기록을 보여주었다. 올시즌마저 부진하면 [[한동민|외]][[김동엽(1990)|야]][[노수광|자]][[정진기|원]][[조용호(야구선수)|이]] [[김재현(1987)|탄]][[정의윤|탄]][[윤정우|한]] SK로썬 딱히 재계약을 할 이유가 없다. 재계약을 하더라도 단년 계약 정도에 그칠 정도라고 보며, 사실 단년 계약만 해주더라도 엄청난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부진했다. 올시즌만큼은 꼭 부진에서 벗어나야 하는 시즌.
         5월 2일 기준으로 퓨처스 리그에서도 15경기에 나와 38타수 9안타 4볼넷 10삼진 타율 0.237를 기록하며 부진하고 있어 1군에는 올라오지 못하는 상태이다. 2군의 다른 외야 자원인 [[조용호(야구선수)|조용호]]와 [[김재현(1987)|김재현]]은 3할 중반대의 고타율을 보이고 있고, 둘 다 주루센스도 좋은 편이라 대주자로도 가치가 있는 편이라 콜업 순위에서 김강민보다 우위에 있는 상태로써 현재 김강민의 설 자리는 더욱 좁아지고 있다. 아무래도 올 시즌이 마지막 시즌이 될 수도. 다만 조용호, 김재현은 일단 1군에 올라오기만 하면 타격이 시망 수준이라 글쎄.... 특히 김재현은 나이도 상당히 많다. 일단 2군 성적은 이들보다 확실히 저조하다. 베테랑의 품격과 더불어 그 두 선수가 가지고 있지 못한 장타력을 어필할 필요가 있다.
         6월 28일 [[LG 트윈스]]와의 경기에서 8회 말 견제사를 당했고, 그가 견제사당한 직후 타자 [[이재원(야구선수)|이재원]]이 1점 홈런을 쳤다 (...) 김강민이 아웃당하지 않았으면 역전 홈런이 되었을 것이기에 조금 아쉬운 부분. 그래도 다행히 9회 말 [[제이미 로맥]]의 끝내기 홈런으로 팀은 승리에 성공했다.
  • 한용덕 . . . . 2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8년]] [[7월 1일]]<br />[[숭의야구장|인천]] 대 [[태평양 돌핀스|태평양]]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4년]]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국가대표팀 투수코치 (2013년)
         '''감독 경력'''
         * [[한화 이글스]] 감독 대행 (2012년)
         * [[한화 이글스]] 감독 (2018년 ~ 현재)
         '''한용덕'''(韓容悳, [[1965년]] [[6월 2일]] ~ )은 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감독이다.
         [[대구광역시|대구]]에서 태어났으나 [[대전광역시|대전]]으로 이주하였다. 대전천동초등학교에서 처음 [[야구]]를 시작하여 충남중학교를 거쳐 [[북일고등학교]]에서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과 인연을 맺게 된다. [[북일고등학교]]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북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아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1학년 때 어려워진 가정 환경과 무릎 관절염으로 인해 [[야구]]를 포기하고 대학도 자퇴하였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9&aid=0000101109 사회인 선수 → 프로 무대‘연습생 신화’] 《대전일보》, 2007년 4월 23일 작성</ref>
         [[동아대학교]] 중퇴 이후 병역을 마쳤으나 [[야구]]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선수로서의 꿈을 이어 가던 중 [[북일고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당시 감독이었던 [[김영덕 (야구인)|김영덕]]의 주선으로 [[1987년]] 9월 [[빙그레 이글스]]에 [[신고선수]]로 입단하였다.<ref>[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62553 무관의 투수왕 '한용덕'] 《오마이뉴스》, 2006년 9월 27일</ref> 선수들에게 배팅볼을 던져 주는 힘겨운 [[신고선수]] 시절을 보내고 2년 뒤에서야 비로소 정식 선수로 승격되었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12년]] [[8월 28일]] [[한대화]]가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경질되자, 감독 대행으로 보직 변경되어 남은 시즌을 치르고 시즌 후 사의를 표명했다. 이후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한화 구단에서는 [[류현진]]의 해외 진출과 함께 [[로스앤젤레스 다저스|LA 다저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을 것을 제의하여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이후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마친 후 [[한화 이글스]]의 프런트로 복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95143 한용덕 코치, 프런트 변신 "한화맨으로 죽겠다"] - OSEN</ref>
         [[2014년]] [[12월 4일]] [[두산 베어스]]에 2군 총괄 코치로 영입되었다. [[2015년]] [[김태형 (야구인)|김태형]]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1군 투수코치로 승격하였다. 2018년부터 [[한화 이글스]]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 [[2000년]] [[8월 23일]] : 개인 통산 100승 달성 (프로 통산 14번째)<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38&aid=0000019931& 프로야구 - 한용덕 100승. 구대성 150S] 《한국일보》, 2000년 8월 24일 작성</ref>
         |직책 = [[한화 이글스]] 감독대행
         |전임자 = [[이상군]] 감독대행
         |직책 = [[한화 이글스]] 감독
         {{KBO 리그 감독}}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대전천동초등학교 동문]][[분류:충남중학교 동문]][[분류:북일고등학교 동문]][[분류:청주 한씨]]
  • 강동우 . . . . 28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두산 베어스/선수단)]
         || '''생년월일''' || [[1975년]] [[4월 20일]] ([age(1975-04-20)]세)[* 네이버 등에는 [[4월 20일]] 출생으로 1974년생이라고 기재되어 있는데 이는 호적상 생일로 주민등록상에만 이렇게 올라와 있고, 실제로는 1975년생이라고 한다. ~~태어나기도 전에 출생신고를?~~ 그래서 1974년생 [[이병규]]를 단국대 1년 선배로 취급하고 1975년생 [[조인성(야구선수)|조인성]], [[김동주(타자)|김동주]]와 친구로 지내는 듯.] ||
         || '''학력''' || 칠성초-경상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단국대학교|단국대]] [* 1994학번]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8년/신인드래프트|1998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삼성]]) ||
         || [[김영진(야구)|김영진]](1995~1997) || → || '''강동우(1998~1999)''' || → || [[진갑용]](2000~2015.8.6) ||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야구]] 선수이자 '''비운의 선수'''로 꼽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한 명. 2018년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1군 타격코치.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 - [[단국대학교|단국대]]를 졸업하고 [[199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당시 삼성의 외야에는 [[최익성]], [[신동주(야구)|신동주]], [[양준혁]]이 주전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전년도 맹활약했던 최익성-신동주 우타 외야 라인에 부진 및 부상이 닥치자 데뷔 첫 해 주전 자리를 꿰차며 맹활약했다. 그 해 신인왕 후보에까지 올랐으나 고졸로 12승을 거둔데다 우승 프리미엄까지 누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고졸 신인 [[김수경(투수)|김수경]]에게 신인왕 자리를 내줬다. 또한 그 해 개최된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에 선발되어 있었다. 삼성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 토박이인지라 프랜차이즈성도 탁월하여 향후 삼성의 주전 [[외야수]]가 될 것으로 기대받으며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16일]] 벌어진 사건으로 인하여 강동우의 지독한 불운이 시작되었다.'''
         [[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 때 [[이병규]]의 큼지막한 홈런성 타구를 뛰어올라 잡아내는 과정에서 왼쪽 다리가 펜스 사이의 틈새에 끼면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구장]][[개미를 죽입시다 개미는 나의 원수|을 주깁시다 대구구장은 우리의 원쑤]]~~ '''정강이뼈가 뒤틀리며 골절되는 중상'''을 입고 바로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이때 [[이병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던 도중 손가락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한 것이 방송을 타면서 '후배(강동우는 [[이병규]]의 단국대 1년 후배)가 부상당한 게 그렇게도 고소하냐'며 무한 까임을 당했다. [[이병규]]는 강동우가 부상당한 것을 모르고 홈런성 타구가 잡힌 것이 아쉽다는 표현을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판단은 알아서.][* 이후 베이스볼 긱에서 [[이도형]]과 함께 한 인터뷰에서 [[이도형]]이 이 사건을 언급하였다. 강동우는 '병규형이랑 단국대 다니면서 참 친하게 지냈는데'라는 말부터 꺼냈는데 그 후엔 계속 [[이병규]]를 '''그 사람'''이라고 하였다. 끝에는 [[이병규]]와 오해를 풀었다는 말을 했지만 대학 1년 선배를 '''그 사람'''이라고 칭한 것 자체로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2017년 시점에서는 강동우가 은퇴하고 두산 코치로 합류하고 이병규도 은퇴한 뒤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던 시절엔 서로 웃으며 연락처도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76&aid=0003097584|주고받는 등]] 지금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닌 듯.] 이 부상 탓에 강동우의 인생이 망가지기 시작했다. 부상만 아니었다면 강동우는 트레이드되지 않고 마지막까지 삼성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뛰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시 의사의 소견으로는 '야구 선수로는 물론이고 정상인으로서의 생활도 힘들다'고 했을 정도로 심한 부상이었다. 당연히 대표팀에서도 탈락되었으며[* 어쨌거나 이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기는 했다.][* 대신 드림팀 막차에 승선한 [[심재학]]은 1998 시즌을 마치고 공익 입대가 예정되어 있어 군대로 끌려갈 뻔했던 상황이었는데, 강동우의 대타로 합류해 병역특례를 받는데 성공했다.] 2년 간의 재활이 시작된다.
         피나는 노력으로 재활을 마치고 2000년 시즌 막판에 겨우 복귀해서 다시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약하지만, 신인 시절의 성적은 다시 나오지 않았고 평범한 선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래도 [[류중일]] 코치가 선수 시절에 달던 1번을 달고 뛰며 타격에서는 나름대로 제몫을 하며 삼성의 주전 외야수로 활동했고, 2002년 [[김응용]] 감독 아래에서 타율 0.288, 9홈런으로 어느 정도 부활에 성공하였다. [[2002년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는 2001년 데뷔하여 삼성의 붙박이 타자가 된 왕년의 좌타 [[라이벌]] [[박한이]]와 함께 [[테이블 세터]]를 이뤄 활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즌 타율이 2할 중후반에 머무르는 바람에 '비운의 톱타자'라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후 [[선동열]] 감독과 마찰을 빚게 되었고 외야진 보강 차원에서 2006년 3월 [[두산 베어스]]의 [[강봉규]], [[김창희(야구)|김창희]]를 상대로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당시 삼성 팬들은 격분하여 난리를 쳤다. 이는 훗날 [[양준혁]]의 등떠밀기식 은퇴, [[이승엽 와도 자리없다]]는 발언 등과 함께 [[선동열]]의 삼성 프랜차이즈 내치기 사건 중 하나다.
         [[트레이드]]를 통해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기는 했지만, [[저니맨|이후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여러 팀을 전전하게 된다.]] 2006 시즌에는 두산에서 그럭저럭 주전 경쟁을 했지만, 2007년 [[김경문]]이 직접 키운 [[외야수]]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김현수(1988)|김현수]] 등등이 펄펄 날아다니기 시작하면서 1군에서 탈락, 줄곧 2군에 머물게 된다. 결국 2007 시즌 종료 후 다시 좌완 투수 이윤학[* 2018년부터 KIA에서 뛰는 우완투수 [[이윤학]]과는 동명이인. 이쪽은 좌완투수였다.]을 상대로 [[KIA 타이거즈]]에 트레이드됐다.
         이제 나이도 있고 하니 체력적으로 힘든 [[테이블 세터]]를 다른 선수가 맡아주길 바랬으나... [[고동진(야구선수)|개막전에서 시범으로 다른 선수를 1번으로 기용했다가 쫄딱]] [[망했어요]]. 그래서 이 해도 1번타자로 활약했다.(...) ~~그나마 포지션은 주로 [[우익수]]로 뛰는게 다행...인가?~~
         이후 꾸준히 제몫을 해냈으나 허리 미세통증으로 인해 6월 26일자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회복기간을 거쳐 7월 10일 1군에 복귀. 한화는 강동우가 2군에 내려가 있는 동안 [[고동진(야구선수)|고동진]], [[양성우(야구선수)|양성우]] 등을 1번 타자 자리에 기용하였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실제로 강동우가 2군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 한화는 2승 7패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마지막에는 '''[[장성호]]가 1번 타자'''로 기용될 정도였으니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지? 1군으로 올라왔으나 별 활약을 하지 못하고 8월 2일 이후로 다시 2군행. 다행히 1번 구멍은 [[오선진]]이 각성하면서 메울 수 있게 되었다.
         '''[[한화 이글스|팬]], [[김응용|감독]], 그리고 [[이대수|선]][[김태완(1984)|수]]들이 목놓아 기다리는 그 분.'''
         [[삼성 라이온즈]] 시절 그의 재기를 도운 [[김응용]] 감독을 만나 의지를 불태웠으나, 결국 그 해가 [[한화 이글스]]에서 마지막 해가 되었다. 시범경기 11경기에 출장해 16타수 5안타 타율 .313 2타점 2볼넷 출루율 .389를 기록해 다시금 KBO 최고령 1번 타자의 재림을 노리고 있었으나,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시범경기에서 발가락 부상(골절)을 당해 2군으로 내려가고 말았다. 2012 시즌 종료 직후 가을 마무리훈련부터 [[일본]] [[오키나와]] 스프링캠프까지 빠짐없이 훈련을 소화했기에 더욱 아쉬운 부상이었다. 다행히 1번 타자의 공백은 [[이대수]]가 나름대로 메워주고 있지만 팀이 개막 직후부터 연패 수렁에 빠져있고 마땅한 좌타자 요원도 없는 상황이라 그의 공백이 더욱 더 아쉬운 상황이었다.
         5월 말 1군에 복귀하여 타선에 나름대로 힘을 보탰으나 14경기에서 30타수 6안타에 그쳤고, 팀의 리빌딩 방침과 맞물려 다시 2군으로 향했다. 다행히 [[퓨처스리그]]에서는 3할대의 타율을 기록하며 타격감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그 후로 전혀 1군에 올릴 기미가 안 보인다. 그토록 대타를 남발하는 상황임에도 정작 강동우의 복귀는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일각에선 '(감독의 권위를 위한) 베테랑 죽이기'로 의심할 정도.
         [[2015년]]에는 2군 주루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는데, 기동력 강화 차원에서 [[4월 7일]]에 1군 1루 주루코치로 콜업되었다. 대신 [[장원진]] 타격코치가 말소되고 기존의 1루 주루코치이자 수비코치 겸임이었던 [[강석천]]은 수비코치만 맡는다. [[장원진]] 타격코치는 [[박철우(야구)|박철우]] 타격코치를 보조하기로 했다.
         여러 팀을 전전하는 [[저니맨]]이었다. 은근히 1990년대 중후반에 [[삼성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저니맨들이 많다. 그의 전임 1번타자였던 [[최익성]]과 [[이동수(야구선수)|이동수]], [[신동주(야구)|신동주]] 등.
         O형 수염 자국이 선명한, 살짝 [[마초]]적인 매력이 느껴지는 상당한 [[미중년]]이다. 2014년 4월 19일까지 미혼(!!)이었다. 2011 시즌 중반부터 굉장한 활약을 펼치던 때의 스포츠신문 인터뷰 중 '체력 관리의 비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충청남도]] [[금산군]]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보내 주는 [[인삼]]을 꾸준히 먹고 있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팬들은 '저런 건 친구가 아니라 와이프가 챙겨줘야 되는데...'라며 심히 안타까워했다. 어느새 '동우햄 장가 보내기'는 새 시즌 한화팬들의 중요한 목표가 되어 가고 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류택현]] 바로 다음으로 나이 많은 미혼의 프로야구 현역 선수였다. 위의 사례에서 팬들이 안타까워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결국 2013 시즌 종료 후 은퇴하면서 이제는 노총각 코치(...). ~~삼성에서 뛰던 소싯적에 선배였던 [[양준혁]]을 그렇게 잘 따랐다더니 엉뚱하게 노총각 운명까지 따르는 걸까~~
         2012년 말 암 투병 중이었던 후배 야구선수 [[이두환]]에게 후원금을 전달해 스토브리그를 훈훈하게 달구었다. ~~이제 장가만 가면 된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74년 출생]][[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좌투좌타]][[분류:삼성 라이온즈 은퇴/이적]][[분류:두산 베어스 은퇴/이적]][[KIA 타이거즈 은퇴/이적]][[분류:한화 이글스 은퇴/이적]]
  • 김인철 . . . . 28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초-포항제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지도자 경력''' ||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2017~) ||
         || 박홍철(1990~1994) || → || '''김인철(1995~2001)''' || → || [[임동규(야구)|임동규]](2003~2007) ||
         [[삼성 라이온즈]], [[KIA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에서 뛰었던 전직 야구선수이자 2017년 11월 현재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등학교]] 야구부의 감독. 등번호는 67번(1991~1994) - 13번(삼성) - 40번(KIA, 한화)
         원래는 투수로 입단했다. 선발투수로도 활약했다. 1992년에는 규정이닝을 채우며 8승을 거뒀고[* 피안타율은 훌륭한 수준이지만 그게다 볼넷이랑 바꿔치기한게 문제였다.] 당시 감독이 [[김성근]]임이면서 볼넷을 저렇게 내줌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왔단 것으로 보면 구위는 매우 훌륭했던 것으로 봐야할 듯.~~볼넷이 더 적었다간, [[살려조|큰일 날 뻔했다.]]~~
         2004 시즌 후 기아에서 방출되지만, 그를 눈여겨 보고 있던 한화의 [[김인식]] 감독이 그를 영입했다.
         현역 은퇴 후에도 자신의 마지막 현역 팀인 [[한화 이글스]]와의 관계를 유지했고, 한화의 원정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다가 스카우트팀 과장으로 인사이동되었다. 그 후 2017년 선수폭행으로 물의를 빚은 장 모 감독과 심 모 감독의 뒤를 이어 [[한화 이글스]]의 연고지역 야구부인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취임했다.
          *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71년생 동갑내기이자 2017년 현재 삼성 감독을 맡고 있는 [[김한수]]와도 얼굴형이 조금 닮은 편이다.
          * 전 [[한화 이글스]] 감독인 [[김성근]] 감독과는 1991~92년 삼성 1군에서, 2000년 삼성 2군에서 함께한 바 있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로 복귀하면서 15년 만에 재회하게 되었는데, 김성근 감독 부임 후로 일은 많아졌지만 팀 성적 향상에 확신을 갖고 본인 포함 전 스태프들이 성실하고 즐겁게 일하고 있다고.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931220|해당 기사]]
          * 2017년 7월 청주고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 장정순은 상습 폭행건으로, 경질되고, 심정진이 새로 부임했는데, 과거 폭력전과가 있어서 해임되었다.]나온 기사에 따르면 은퇴 후 한화의 전력분석원, 스카우트를 맡을 때도 틈틈이 공부를 하는 '공부하는 야구인'이었으며, 현재 대학원 입학을 위해 공부 중이라고 한다. 나중에 꿈은 대학 강단에 올라서 제대로 된 야구인을 육성하는 것이라고. 또한 심판, 기록원, 스카우트 등 야구계 전반에서 활동할 이들에게 체계적인 야구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삼성 라이온즈]][[분류:KIA 타이거즈]][[분류:한화 이글스]]
  • 최채흥 . . . . 26회 일치
         || [[이지영(야구선수)|이지영]](2012~2018) || → ||<#c0c0c0> '''최채흥(2019~)''' || → || 현역 ||
         ||<:> '''학력''' || 경주 동천초 - 포항중[* 경주중에서 전학]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 - [[한양대]] ||
         상원고 시절 동기인에 가려져 투수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한양대 진학 후 본격적으로 투수로 전업하였고, 대학 야구 최고의 투수로 군림했다.
         암울했던 고교선수생활을 청산하고 대학야구 그리고 연령대대표팀의 에이스가 되다.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 시절에는 동기에 밀려 주로 1루수로 출장했고 고등학교 3학년때 3할 4푼 5리의 타율을 기록한 적이 있다.[* [[http://www.hsbaseball.kr/player/daesang25]]] 그러나 1루수로는 특출난 성적을 내지 못하여 지명받지 못하고 한양대로 진학한다.[* 고교야구 팬이 아니라면 의아함을 느끼겠지만, 경기수가 적어 0.345의 타율도 높은 성적은 아니다. 그 해 [[http://www.hsbaseball.kr/record/batter_unity.htm|타율 40위이고]], 파워도 있는 편이 아니다.]
         한양대학교 진학 후, [[김한근]] 한양대 감독에게 투수가 아니면 야구를 그만두겠다고 선언했고, 이에 김한근 감독은 너를 투수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그러면서 투수로 전업하여 1학년 때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팀의 마무리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67.2이닝 동안 피홈런 없이 54삼진 6사구 16볼넷 평균자책점 0.93을 기록했다. 1학년이던 2014년부터 팀의 에이스로 자리를 잡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는 팀을 17년만의 대통령기 우승으로 이끌며 우수투수상을 수상했고 바로 U-21 세계야구선수권 대회에 국가대표로 승선했다. 투수 전업 첫 해에는 평균구속이 130km/h 중반대에 불과했지만, 빠른 성장세로 평균구속을 10km/h 가까이 끌어올리면서 탈삼진 능력도 늘어나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2015년에는 27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 뽑히면서 활약했다. 2016년에는 학점 관리한다고 8월 이후에는 경기에 나오지 않았음에도 [[대한민국 U-23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임지섭]]과 원투펀치로 많은 이닝을 소화하면서 혹사 논란까지 일었을 정도.
         이렇듯 엄청난 퍼포먼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으면서, 대졸 선수들의 연속된 실패로 대학 졸업반 선수들에 대한 팬들의 여론이 굉장히 부정적임에도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신인드래프트]]에 참가 예정인 투수 중에서는 [[휘문고등학교 야구부|휘문고]] [[안우진]]과 함께 전체 1번을 겨룰만한 선수로 거론되었다. 거기에 삼성이 이 해 1차지명 후보로 최채흥 외에 강력한 후보가 없었던 만큼, 지명 전부터 최채흥의 1차 지명은 기정 사실 수준의 평가를 받았고 2017년 6월 26일, 2018년 1차 지명에서 고향팀 삼성의 선택을 받았다.
         2017년 8월 20일 신베이 신창 야구장에서 열린 체코와의 타이페이 하계유니버시아드 A조 예선에서 7.1이닝 3실점의 퀄리티스타트와 탈삼진 9개를 기록했다. [[http://sport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569&aid=0000000033|해당기사]]
         10월 13일 대구에서 열린 넥센과의 시즌 최종전에서는 선발 [[아델만]]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또 다시 3회 2사만에 강판되면서 분위기가 이번 시즌 넥센전의 전철을 밟는 것은 아닌가 우려했으나, 중간계투로 올라온 양창섭이 4회에는 [[김혜성(야구선수)|김혜성]]과 [[김재현(1993)|김재현]]을 연속 탈삼진까지 잡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7회에는 [[이정후]]에게 3루타를 허용했고, 후속타자인 [[임병욱]]을 상대로는 투수 땅볼을 유도했으나 비디오판독 결과 [[임병욱]]의 발이 조금 더 빠른 것으로 판정되어 내야안타로 바뀌면서 1타점을 내주고 말았다. 그래도 기록은 3⅔이닝 동안 3탈삼진 4피안타 1볼넷 1실점으로 충분히 잘 던져주면서 2018 시즌을 마무리했다.
         부상으로 빠진 [[양창섭]], 그리고 [[윤성환]]을 대신해 개막 선발 로테이션에 합류했다. 그리고 3월 28일 [[사직야구장]]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 선발 등판해 5이닝 96투구수 (S:60, B:36) 4피안타 2사사구 8삼진 4실점 3자책을 기록하며 시즌 첫 경기에서 첫 승을 신고했다.
         4월 14일 역시 [[kt wiz]]를 상대로 홈경기에 출전, '''7이닝 104투구 (S:71,B:33) 6피안타 1피홈런 (1회 유한준 3점) 1볼넷 7삼진 3실점 3자책'''을 기록해 [[QS+]]를 기록했다. 타선이 간만에 터지며 3:14까지 점수를 벌렸으나 이후 올라온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 [[김대우(1988)|김대우]], 최충연을 상대로 [[kt 위즈]] 타선이 9점씩이나 뽑아내며 12:14까지 좁혀져 승을 날려 먹을 위기에 놓였었다. 역전 주자까지 내보낸 상황에서 [[장필준]]이 두 명을 삼진으로 잡으며 어찌어찌 2승에 성공. 이때 덕아웃을 비춘 카메라에 잡혔는데, 볼 카운트 하나하나에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 보여 많은 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투수 전향 후 가장 도움이 된 선배 선수 이야기가 나오면 와 [[이용찬]]을 꼽는데, 2015년 27회 아시아 야구선수권대회 때 같이 대표팀에 뽑혔었다.
         오해들을 하는 것이, 최채흥을 단지 흙수저 출신의 깜짝 활약 선수로 많이 인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틀린 것이 최채흥은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고교]]시절 에게 밀린 것은 사실이나, [[한양대학교|대학]]야구의 에이스 투수였고 대학야구 3대명문중의 하나인 한양대를 나왔으며, 대표팀 역시 아시아선수권 우승, 광주하계유니버시아드 동메달, 23세 이하 세계선수권 3위 등을 이끌고 대표팀 역시 u-18,u-21,u-23 등 연령대 대표팀을 단계적으로 밟았을 뿐만 아니라 핵심투수로 활약하며 엘리트 코스는 차근차근 밟은 선수다. 오히려 대표팀 경력만 보면 또래인 95년생 동기들보다 화려하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1995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좌완 투수]] [[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 김성현 (1989년) . . . . 2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8년]] 6차 1라운드([[현대 유니콘스]])
         |대륙간컵 (야구) = 2010 대만
         '''김성현'''(金聖賢<ref>한국야구위원회, 2011 가이드북</ref>, [[1989년]] [[1월 3일]]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줄곧 초등학교와 중학교 야구부에 들어 활동했고, 대구고 1학년 재학 중이던 2005년, 대구고를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청룡기 전국 고교 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으로 이끌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당시 맞상대가 프로 야구를 주름 잡는 괴물 투수 [[류현진]]이 이끌던 [[동산고등학교|인천 동산 고등학교]]. 결승전에서 대구고는 먼저 8점을 내지만, 경험 부족으로 9점을 내주면서 대역전패하게 되어 준우승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지게 된다. 1차 지명이 있던 시기라 오랜만에 나온 유망주에 대구를 연고로 하는 [[삼성 라이온즈]] 팬들도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대구고 1학년을 마치고 전격적으로 제주 관광 산업 고등학교(현 [[제주고등학교|제주 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당시 제주관산고의 감독인 [[성낙수]] 감독의 스카웃 및 설득으로 옮겨갔다고 하는데, 후에 고등학교 스승의 인터뷰에 따르면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제주특별자치도]]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전학생 출전 정지 규정에 묶여 1년을 쉬게 된다.<ref>[[빠른 생일]]이지만 다른 1989년생들과 같은 년도에 입단한 이유.</ref> 그리고 이때 [[경상남도]] [[김해시|김해]]에서 같이 제주관산고로 건너와 친하게 된 친구가 바로 전 [[두산 베어스]]의 투수 [[김수완 (야구 선수)|김수완]]. 그 뒤 2년 동안 제주관산고에서 공을 던지지만 특별히 대구고 1학년 시절처럼 주목받지는 못했다.
         == 프로 야구 선수 시절 ==
         이후 소속 팀이었던 현대가 해체되고, 선수단은 우리 구단으로 인수되면서 부임한 [[이광환]] 감독은 그의 강속구를 보고 과감하게 그를 주전 마무리 투수로 발탁한다. 하지만 겨우 21살이었던 투수에게 마무리는 너무 큰 중압감이었고, 결국 마무리 결정은 실패로 돌아간다. 투수 [[황두성]]에게 마무리를 넘겨 준 후, 줄곧 2군에서 던지면서 활동한다. 간간히 1군에 올라왔지만 성적은 그다지 신통치 않았다. 2009년의 [[방어율]]은 65⅔이닝을 던져 7.13.
         [[2010년]]에 본격적으로 선발진에 들어왔고 [[2010년]] [[5월 2일]] [[잠실야구장|잠실]]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시즌 첫 선발승을 기록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186576 첫 선발승 김성현, "부모님께 큰 선물 됐다" 첫 선발승 김성현, "부모님께 큰 선물 됐다"] - 조이뉴스24</ref>
         2011년 8월 6일 [[한화 이글스]] 전에 드디어 LG 소속으로는 처음으로 선발 등판하였다. 한화 전에서 좋은 모습을 많이 보여서 기대되는 대목이었지만 5⅓이닝 동안 4실점하면서 그날 패전 투수가 되었다. 하지만 이걸 자세히 들여다 보면 김성현보다 [[박경수 (야구 선수)|박경수]], [[김태완 (1981년)|김태완]] [[키스톤 콤비]]의 생각은 수비 때문에 벌어진 일이며 실책을 줘도 할 말 없는 게 두 개나 있었지만 웬일인지 실책으로 기록이 안 되고 고스란히 그의 자책점으로 연결된 것이다.
         2012년 초, 투수 [[박현준 (야구 선수)|박현준]]과 함께 [[2012년 한국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승부 조작 사건]]의 당사자로 밝혀졌다. 박현준과 마찬가지로 혐의를 부인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 2012년 2월 28일, 국민 체육 진흥법 위반으로 [[대구지방검찰청|대구 지방 검찰청]]에 체포되었고, 3월 1일 범죄 사실이 소명되고 증거를 없애거나 도주할 염려가 있다는 이유에서 구속 영장이 발부되었다. 김성현은 8시간 가량 조사를 받았고, 넥센 시절이던 2011년 시즌 4~5월 브로커와 짜고 두 차례에 걸쳐 일부로 '1회 첫 볼넷'을 던져 승부를 조작하고 이에 따른 사례금 1,000만 원을 챙긴 혐의를 받았다. 2012년 4월 18일, [[대구지방법원|대구 지방 법원]]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집행 유예]] 2년, 추징금 700만 원을 선고하고 사회 봉사 활동 120시간을 명령했다. 이에 따라 2012년 3월 6일, 박현준과 함께 같이 LG 구단에서 웨이버 공시되고 [[KBO (단체)|한국 야구 위원회]](KBO) 상벌 위원회는 4월 18일자 재판 결과를 근거로 김성현을 영구 제명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5588057</ref>
         재판 이후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막노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인터넷 야구 커뮤니티에서 돌았으나 출처는 불분명하다. 그 이후에는 군대 문제를 해결했을 가능성이 있다.
         [[프로야구 매니저|프로 야구 매니저]]에서는 본명에서 '신성수'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게이머들 중에는 차라리 신조작이라고 하지 그랬냐는 의견도 있다. [[마구마구]]에서는 장유엽으로 카드명이 변경되었다.
         컴투스 프로 야구 매니저에서는 김설민이라는 가명으로 나왔으며, 이사만루 2014에서는 김신홍이라는 가명으로 나왔다.
         어째 이상하게도 컴투스 프로 야구 2011에서는 업데이트가 되어 있는데도 본명으로 존재하는 이 선수가 아직도 남아있다.
  • 구자욱 . . . . 23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2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3월 28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 [[상무 야구단]] (2013년 ~ 2014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2017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은메달|[[2013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2013 톈진]]|[[야구]]}}
         '''구자욱'''(具滋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2월 12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이승엽]]이 '포스트 [[이승엽]]'으로 지목한 선수이다.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로 고향팀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으나 초기에는 주로 2군에만 머물러 있었으며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였다.
         ==[[상무 야구단]] 시절==
         [[2013년]]에는 3번이나 5번 타자로 출장하면서 시즌 중반에는 3할 중반대의 타율을 기록했지만 시즌 후반 부상으로 결장하면서 3할대의 타율로 시즌을 마쳤다. 그래도 장타율이 늘었고 볼넷/삼진 비율도 꽤나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 2013 시즌 말 동아시아컵에 [[상무 야구단|상무]]-[[경찰 야구단|경찰]] 연합팀의 일원으로 출전했는데, 거기서 좌익수로 전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U-21 야구 월드컵에 참가해서 4할이 넘는 타율과 6번의 도루를 기록하며 절정의 타격감을 보여주었고 도루왕 타이틀까지 차지했다. 이 대회서는 2루수와 중견수로도 나왔는데([[상무 야구단]]에서는 1루수, 3루수, 좌익수, 우익수로만 나오고 중견수를 본 적은 없었다), [[2014년]] 시즌에 투수, 포수, 유격수를 제외한 모든 포지션을 소화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스프링캠프와 시범 경기 때 맹활약하며 기대를 받았으나, 외야의 [[최형우 (야구 선수)|최형우]], [[박해민]], [[박한이]], 내야의 [[채태인]], [[박석민]]을 제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범 경기 때 부상을 당한 [[채태인]]을 대신해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갔으며, 3월 28일 [[SK 와이번스]]와의 개막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었다. 데뷔 첫 타석에선 유격수 땅볼로 물러났으나, 두 번째 타석에서 우측 펜스를 직격하는 2루타를 쳐,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였다. [[4월 1일]] [[kt 위즈|kt]]전에서 [[정대현 (1991년)|정대현]]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 그러나 시즌 초반 아쉬운 1루 수비를 보여주었다. 두 번째 홈런을 기록한 [[4월 3일]]을 기점으로 타격감이 안좋아지자, [[강봉규]]가 한동안 1루수로 출전하게 되었다. [[4월 9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강봉규]]의 대타로 타석에 나와 [[김승회]]를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며 데뷔 첫 끝내기 안타를 기록하였다. 다음날 경기에서 부상당한 [[채태인]]이 1군에 올라와 시즌 첫 선발 출장을 했으나, 한 타석만에 그와 교체되었고, 그는 홈런 포함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하였다. [[채태인]]이 다시 2군으로 내려가며 주전 자리를 이틀만에 꿰찼지만, 다시 타격감이 안 좋아져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이 주전으로 나섰다. 그러나 [[김정혁 (야구 선수)|김정혁]]도 기대 이하의 실력을 보여주었고, [[4월 29일]]에 그는 다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면서 데뷔 첫 3안타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뒤로 꾸준히 타격감을 끌어올린 그는 [[채태인]]이 부상에서 돌아오자, 타격 부진에 빠진 [[박해민]]을 대신해 중견수로도 출장하며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5월 21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윤명준]]을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였고, 이 홈런은 [[삼성 라이온즈]]의 4000번째 홈런이 되었다. [[6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이승엽]]의 [[KBO (야구)|KBO]] 최초 400호 홈런이 터지던 날, 대수비로 출전한 그도 나란히 홈런을 기록하며 자신이 포스트 [[이승엽]]의 자격이 있다는걸 증명했다. 꾸준히 타격감을 올린 그는 [[6월 18일]] 경기에서 3타수 2안타를 치며 3할고지를 돌파하였고, 시즌 끝에는 3할 4푼 9리의 좋은 성적을 보여주었다. 그 뒤 그는 부상으로 빠진 [[박석민]]과 [[박한이]]를 대신하여 3루 수비와 우익수 수비도 소화하며 수비에서의 재능도 보여줬다. 그는 전반기 0.329의 타율과 9개의 홈런으로 [[2015년]] [[올스타전]] 드림 올스타의 1루수로 뽑히게 되었다. 그는 [[8월 4일]] [[kt 위즈|kt]]전에서 [[저스틴 저마노|저마노]]를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며 신인 최다 경기 연속 안타인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였고, 다음 날 경기에서도 안타를 기록하며 23G 연속 안타로 기록을 늘렸다. [[8월 22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5타수 5안타 5득점 1홈런으로 맹활약하며 생애 첫 5안타, 5득점에 두 자릿수 홈런까지 달성하였다. [[9월 20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타격 후 옆구리 통증으로 시즌을 아쉽게 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역대 신인 최고 타율을 갱신하였다. 최종 성적은 11홈런, 17도루, 57타점, 97득점이었다. 이는 타율 3위, 득점 10위, 출루율 10위의 대단한 성적이였다. 비록 [[2015년 KBO 한국시리즈|한국시리즈]]에서는 0.286의 타율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며 팀은 준우승을 하였으나, [[김하성]]과 [[조무근]]을 제치고 신인왕에 오르게 되었다.<ref>[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5/11/24/0200000000AKR20151124125600007.HTML?input=1195m '타격 3위' 삼성 구자욱, 2015 신인왕 수상] - 연합뉴스</ref>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정혁 . . . . 23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삼성 라이온즈/선수단)]
         || '''학력''' || 포항초 - 포철중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동국대학교|동국대]] ||
         || '''소속팀''' ||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2008 ~ 2010)[br][[삼성 라이온즈]] (2011~2017) ||
         전 [[삼성 라이온즈]] 소속의 내야수이자 현재는 [[삼성 라이온즈]]의 전력분석원. 주 포지션은 3루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는 1루수나 좌익수로 더 많이 나왔다. 이 때문에 같이 복무하던 [[모상기]]와 포지션이 겹쳤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와 [[동국대학교|동국대]]를 졸업하고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에서 복무를 마친 후 [[삼성 라이온즈]]에 [[육성선수|신고선수]]로 입단했다.
         동국대 시절이나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시절에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상무 피닉스 야구단|상무]] 복무 첫 해에는 51경기에 출장해 46안타 4홈런 25타점 24득점 타율 0.317을 기록했고, 두번째 해에는 78경기에 출장해 59안타 6홈런 27타점 28득점 타율 0.278을 기록했다.
         저러한 활약에 신고선수가 정식으로 1군 등록이 가능한 [[6월 1일]]에 바로 정식선수로 등록되었다. 하지만 1군에는 올라오지 않아 팬들의 속을 태우고 있다. ~~감독님 한번 좀 써 봅시다~~ 1군에서 기용하기에는 수비가 떨어진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어쨌든 로스터가 확장되는 9월에는 1군에 올라오겠지 하고 기대했으나, 손목 부상으로 [[10월 4일]]이 되어서야 1군에 등록되었다. 정규 시즌 게임이 고작 3경기가 남았을 때 올라온 것. [[안습]].
         다만 팬들의 의견과는 달리, 현장에서 김정혁의 1군 중용에 대해선 부정적인 상황이다. 우선 [[류중일]] 감독은 수비가 되는 선수를 1군으로 올리는 경향이 있고, 거기다 삼성의 주전 3루수 [[박석민]]은 김정혁과 동갑이다. 거기다 지명타자로 가자니 삼성의 [[지명타자]] 포지션에 오를 선수들은 '''[[이승엽]]'''. '''[[최형우]]''', [[채태인]]이다.
         시즌 초반에는 3루수로 출장하다가 [[정현(야구선수)|정현]]의 3루 출장 비율이 늘면서 1루수로 출장했다. 8월 초반부터 결장하면서 2군 시즌을 마쳤지만, 0.302의 타율로 2011년 이후 3년 만에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 10월 8일 [[조동찬]]이 허리 부상으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면서 정식선수로 재전환됨과 동시에 3년 만에 1군에 올라왔다.
         그동안 주전 1루수를 맡았던 [[구자욱]]의 타격 페이스가 떨어진지라 1군에 올라오자마자 7번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군에서는 기회를 잘 못 받았지만, 팀 내에서는 소문난 노력파라서 그런지 [[류중일]] 감독이나 [[최형우]]나 김정혁의 활약을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396&article_id=0000307495|기대하는 말을 했다]].
         개막전 엔트리에 들지 못하면서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고, 4월 11일 1군에서 빠진 [[정인욱]]을 대신해 12일 1군에 등록됐다. 4월 22일 [[정인욱]]이 1군에 올라오자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28일 [[김현우(야구선수)|김현우]], [[최선호(야구선수)|최선호]]와 함께 1군에 올라왔다.
         6월 4일 한화전에서 [[조동찬]] 대신 3루 대수비로 출장해 7회 말 [[송창식(야구선수)|송창식]]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쳤다.
         그러나 조동찬이 ~~유리몸답게~~ 2일 만에 부상으로 빠지며 다시 주전 자리를 차지했지만 [[아롬 발디리스]]와 [[구자욱]]이 차례대로 복귀하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7월 22일 선발로 내정된 [[아놀드 레온]]이 복귀하면서 대신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8월 19일 전날 얼굴에 공을 맞아 시즌 아웃된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9월 10일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대신 [[이성규]]가 등록됐다. 10월 3일 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조동찬]]을 대신해 1군에 올라왔다.
         2군에서 시즌을 시작했다가 4월 26일 [[나성용]],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과 함께 1군에 올라왔다.
         2군에 간 [[다린 러프]]를 대신해 1루수로 나와, 4월 27일 KIA전에서 5타수 4안타 2타점 2득점으로 팀은 패배했지만 입단 후 처음으로 1경기 4안타를 기록했다. 그러나 28일 SK전에서는 안타 없이 삼진만 2개를 당했고, 이후 [[조동찬]]이 1루수로 나오면서 백업으로 밀려났다. [[다린 러프]]의 복귀를 앞두고 5월 1일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과 함께 1군에서 제외됐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까지 3주 가량 결장했다가 6월 4일 복귀했다.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됐고, 현역에서 은퇴했다. 이유는 팔꿈치 부상이라고 한다. 그를 진료했던 의사는 야구는커녕 일상 생활을 어떻게 했냐고 할 만큼 팔꿈치 통증이 심했다고 한다. 재능이 부족하면 피나는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걸 보여준 안타까운 케이스.[* 현역 시절 코칭스태프가 쉬면서 하라고 말릴 정도로 훈련을 열심히 했었다고 한다.]
          * [[강민호]]와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때 친구로, 김정혁이 고교 시절 1년 유급하는 바람에 동기는 아니다. 고교 때의 유급으로 1살 어린 [[배영섭]]과 대학 동기가 되었다. 또한 김정혁도 [[배영섭]] 못지 않게 타격폼이 특이하다. 그래서 [[삼성 라이온즈 갤러리|삼갤]]에서는 [[사무라이]]라고 불린다.
          * [[사자사랑방|모 카페]]에서는 [[장성우|아이돌]] [[갈매기 마당|취급을 받고 있다]]. ~~사사돌~~ 이 카페의 운영자는 단지 김정혁을 1군에 올리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류중일]] 감독을 상대로 입에 차마 담기 힘든 수위의 욕설을 수 차례 올렸을 정도. 자세한 건 항목 참고. 이후 2016년과 2017년에 출장 기회를 받아 활약할 때만 난리치고 이후 좋지 않은 선구안으로 붕붕거리며 부진하면 입을 닫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85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권희동 . . . . 2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분류:1990년 출생]] [[분류:개신교 신자]] [[분류:타자]] [[분류:포수]]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상무 피닉스 야구단/전역]]
         ||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2014~2015) || → || '''권희동(2016)''' || → || [[최성영]](2017) ||
         || '''학력''' || 경주동천초 - 경주중 - [[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 - [[경남대학교|경남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전체 86번]]([[NC 다이노스|NC]])[* [[http://youtu.be/uvuodHYib-8|XTM 워너비 담벼락토크]]에서 출연했을 때, 4라운드까지 지명이 안되자 친구한테 '군대 말뚝 박을까?'하고 말했다고 한다.(...) [[임용수]]가 그때 심정이 암담했겠다고 위로하니 돌아온 대답이 ''''중계방송 끝나고 그냥 잤어요''''(...) 그런데 자는 도중에 전화로 9라운드 지명소식을 들었을 때 '''"아 진짜?"하고 다시 잤다고 한다'''(...) 인터뷰했던 임용수는 포복절도.] ||
         || '''군 복무''' || [[상무 피닉스 야구단]](2015~2016) ||
         팀 내에 똑딱이 좌타자는 많고 우타거포 스타일의 타자가 [[이호준]]을 제외하면 없었기 때문에 입단하고 나서 바로 팀의 전지훈련에 합류해서 훈련을 뛰게 되었다. 그리고 확실히 거포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데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 9회말 동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하고, WBC 대만 대표팀과의 연습경기에서도 3점 홈런을 기록하는 등 확실히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 타순도 어느새 5번까지 상승했다. 더불어 원래 김경문 감독은 1루수인 [[조영훈]], [[조평호]]를 번갈아 쓰기 위해 둘 중 한명은 좌익수로 출장시킬 생각도 있었지만 권희동이 활약하자 좌익수를 권희동으로 박았다.
         2014년 초반에는 백업으로 시작하게 되었으나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의 어깨 부상과 부진으로 5월달부터 좌익수 주전으로 출장하였다. 김종호가 돌아온 뒤에는 좌투수 선발 시 주전 출장중.
         시즌 최종 성적은 101경기 출장 221타수 63안타 0.285 7홈런 36타점 39득점을 기록했다. 13 시즌에 비해 홈런 갯수는 줄었으나 이는 이종욱의 영입으로 주전에서 백업으로 밀려나 많이 출장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오히려 13 시즌에 지적받았던 선구안이나 타격 면에서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정규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해 합격해 15시즌과 16시즌을 퓨쳐스리그에서 보내게 되었으며 팬들도 크게 성장하여 차기 NC 다이노스의 클린업 트리오를 맡아주길 바라는 상황. 그런데 2015년 2월 24일 NC 다이노스의 연습 경기에서 권희동이 등장했다. 어찌 된 상황인지는 이후 위키러의 [[수정바람]]
         4번타자로 출전해 4타수 1안타 2삼진(!!) 을 기록했다 !!! 솔로홈런을 친 LG의 4번타자 [[루이스 히메네스]]에 반해 [[김경문]] 감독의 완벽한 선수기용 실패가 되어버릴 뻔 했지만 다행히 9회말 무사 1루 상황에서 안타를 뽑아내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10월 22일 플레이오프 2차전 7번타자로 선발출장하여 3타수 무안타의 성적으로 경기중 [[김준완]]과 교체됐다. 22일 기준 타율은 1할4푼3리. 타격이 좋아보인다는 이유로 2경기 연속 선발 기용한 [[김경문]] 감독의 예상과 달리 최악의 부진을 계속해서 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역 당일 기아와의 경기 반짝 활약 이후로 계속 기용되어 모든 NC 팬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근데 이건 팀 타선이 다 부진했던 상황이라 본인만의 잘못은 아니다.~~
         시즌 초부터 [[김경문]] 감독이 리빌딩을 공언하면서 베테랑인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김종호(야구선수)|김종호]]를 대신하여 주전 좌익수로 나섰다. 그 결과 팀 내 야수 중 가장 많은 141경기에 나서 타출장 .286/.371/.458 135안타 19홈런 86타점 wRC+ 111.3 sWAR 2.43을 기록하면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 경남대 야구부의 김용위 감독은 권희동이 대학 시절에 선수와 목회자의 길에서 방황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저 야구를 하기 싫은 마음에 둘러댄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 집안에서 [[http://www.ncdinos.com/ncboard/storyview?seq=2346&board_id=story|자랐다고 한다.]]
          * 대신 2014년부터 [[한화 이글스]] 상대로 강했는데 2014년에는 0.413의 타율과 0.739의 장타율을 기록했을 정도. 역시 풀타임으로 처음 뛴 2017년에는 타율이 떨어졌지만 5홈런 19타점으로 본인의 팀 상대 최다 홈런&타점을 한화 상대로 올렸다. 특히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청주 야구장]]에서는 5할대의 타율로 당시 NC가 한화와의 시리즈 스윕을 하는 데 있어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 2015 ||<-13> 군 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
  • 김성민 (1994년) . . . . 2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1라운드([[SK 와이번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4월 2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kt 위즈|kt]]전 구원
         [[대구옥산초등학교]]와 [[경복중학교]]를 거쳐 [[대구상원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제66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 선수권대회|2011년 청룡기]]에서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그는 3승, 평균자책점 0을 기록하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고, 대회 MVP에 선정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239733 청룡기 MVP 김성민, "류현진 같은 선수 되고 싶다"], 《OSEN》, 2011년 8월 1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고교야구 아시아 시리즈 대표에 선정되었고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선수로도 거론됐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8&aid=0002694959 성탄절, 고교야구아시아시리즈와 함께...일본·대만과 격돌], 《머니투데이》, 2011년 12월 21일.</ref> 이러한 활약을 기반으로 국외 스카우트들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고 [[2012년]] [[1월 31일]] 계약금 55만 달러를 받고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리그 계약을 체결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5489936 고교 2학년 선수, 미국프로야구 입단 논란], 《연합뉴스》, 2012년 1월 31일.</ref>
         이 과정에서 엄청난 논란이 발생하였는데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KBO (야구)|KBO]]에 신분조회를 요청하지 않아 [[KBO (야구)|KBO]]에서도 그의 계약을 몰랐다. 왜냐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계약은 금지였기 때문이었다. 2001년 7월에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서에는 메이저 리그 구단이 선수를 영입할 때는 신분 조회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선수와의 접촉도 불가능했다. 이러한 비난 속에서 [[일구회]]는 [[2월 2일]]에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행동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였고,<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3523 일구회, MLB 무분별 스카우트 규탄 성명], 《이데일리》, 2012년 2월 2일.</ref> [[2월 8일]]에는 [[대한야구협회]]에서 상벌위원회를 열고 그에게 무기한 자격 정지 처분이라는 중징계를 내렸고 이어 [[2월 9일]]에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스카우트의 경기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96&aid=0000007832 야구협회, MLB 볼티모어 입단 김성민 무기한 자격정지 중징계], 《스포츠월드》, 2012년 2월 8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8&aid=0002557063 대한야구협회, 볼티모어 스카우트 출입금지 조치], 《이데일리》, 2012년 2월 9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볼티모어의 단장인 [[댄 듀켓]]은 그와의 계약이 문제가 없다고 항변하였고 그도 인터뷰를 통해 '본인의 인생을 건 선택'이라고 언급하며 실력으로 모든 걸 이겨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268235 볼티모어 단장 "김성민 계약 뭐가 문제냐?"], 《조이뉴스24》, 2012년 2월 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wbaseball/news/read.nhn?oid=382&aid=0000031009 <nowiki>[단독인터뷰]</nowiki> 미국 진출 논란 김성민 “내 인생을 건 선택”],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9일.</ref>
         이후 [[KBO (야구)|KBO]]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측에 공식적인 항의 서신을 보내자 [[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도 이러한 규정 위반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였고 [[2월 15일]]에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 사무국에서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벌금 징계를 부과하였고 그와의 계약을 30일 간 잠정적으로 승인하지 않겠다고 밝혔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382&aid=0000031426 美볼티모어 부사장 “김성민 계약 파문 공식 사과”], 《스포츠동아》, 2012년 2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12&aid=0002272362 MLB 사무국, 김성민 영입 볼티모어에 벌금 징계], 《해럴드POP》, 2012년 2월 16일.</ref> 이러한 과정에서 그의 계약은 미루어졌고 결국 [[6월 12일]]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그와의 계약 불발을 보도하면서 [[7월 7일]]에 공식적인 계약 포기를 선언함에 따라 그는 국제 미아가 되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76&aid=0002196271 볼티모어, 김성민 계약 위해 MLB 승인 기다려], 《스포츠조선》, 2012년 3월 2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64872 '스카우트 파동' 김성민,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재계약 실패], 《OSEN》, 2012년 6월 13일.</ref><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377999 댄 듀켓, “김성민과 계약하고 싶지 않다”], 《OSEN》, 2012년 7월 8일.</ref> 결국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불가능해진 그는 2013년 초에 일본의 [[후쿠오카 경제대학]]에 입학하였다. <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214&aid=0000227125 고교야구 유망주 김성민 일본 대학 입학 왜?], 《MBC》, 2013년 1월 11일.</ref>
         [[2014년]] [[2월 26일]] [[대한야구협회]]가 그에 대한 자격 정지를 해제함에 따라 차후 국내에서의 선수 활동이 가능해졌다.<ref>[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14&aid=0003103089 KBA, ‘선수등록 규정 위반’ 김성민 자격정지 징계 해제], 《파이낸셜뉴스》, 2014년 2월 26일.</ref>
         2016년에 대학교 4학년 때 [[KBO (야구)|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를 앞두고 [[8월 2일]]에 실시한 트라이 아웃에 참여하였다. 트라이 아웃에서 좋지 않은 몸 상태에도 불구하고 [[SK 와이번스]]에 2차 1라운드 전체 6순위라는 높은 순위에 지명되었고 1억 3,000만원의 계약금을 받고 입단하였다.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SK 와이번스 선수]]
  • 유병수 . . . . 21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2010-2011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6 {{0}}{{0}}(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2011년]] [[1월 18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홍익대학교를 휴학한 유병수는 [[K리그 2009|2009 K리그]] 신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에 지명되며 프로리그에 데뷔했다. 시즌 시작전, [[인천 유나이티드 FC|인천 유나이티드]]는 창단멤버인 [[방승환]]을 팔게 되는데, 이는 주 공격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인 선수의 이적이므로 팬들의 걱정을 야기시켰으나 오히려 대표이사인 안종복 사장은 "신인 유병수가 그의 자리를 메꿔 줄거라 의심치 않는다" 라는 발언으로 유병수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었다. 또한 인천의 새 감독 [[일리야 페트코비치]] 역시 앞으로 인천을 대표하는 선수로 클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그는 개막전에서 데뷔골을 성공시키고 무회전 프리킥을 선보이는 등 인상적인 활약을 펼쳤다.<ref>{{웹 인용|url=http://www.newsis.com/article/view.htm?cID=&ar_id=NISX20090308_0001583942 |제목='유병수 데뷔골' 인천, 부산에 1-0 승리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뉴시스}}</ref> [[2009년]] [[11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볼턴 원더러스 FC|볼턴 원더러스]]가 유병수의 영입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가 볼턴 뉴스를 통해 보도되었다.<ref>{{뉴스 인용|제목=Wanderers line up another raid on South Korea |url=http://www.theboltonnews.co.uk/sport/4734025.Wanderers_line_up_another_raid_on_South_Korea/ |출판사=The Bolton News |저자=Marc Iles |날짜=2009년 11월 12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그러나 유병수는 사실무근이라며 기사에 반박했다.<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7817 |제목=유병수 "볼턴行? 금시초문, 오직 인천 우승이 목표"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K리그 2009|2009 시즌]]이 끝날 때까지 [[김영후]]와 [[K리그 신인선수상|신인왕]] 대결을 펼쳐 많은 주목을 받았다.<ref>{{웹 인용|url=http://sports.khan.co.kr/news/sk_index.html?cat=view&art_id=200910122224013&sec_id=520101&pt=nv |제목=‘유병수 vs 김영후’ K리그 신인왕 경쟁 후끈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칸}}</ref> 결국 김영후가 간발의 차로 신인왕의 자리에 올랐지만<ref>{{웹 인용|url=http://xportsnews.hankyung.com/?ac=article_view&entry_id=108762 |제목=김영후, K-리거가 뽑은 2009년 '최고 신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엑스포츠뉴스}}</ref> 유병수는 프로 데뷔 첫 시즌만에 자신의 이름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는데 성공하였다.
         [[K리그 2011|2011 시즌]]에는 3월 한 달까지 골이 없었지만 유병수는 4월 달이 되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 했다.<ref>{{뉴스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11033015114813§ion_code=10&key=&field= |제목=유병수, “잔인한 4월? 내겐 기분 좋은 4월 될 것이다” |출판사=스포탈코리아 |날짜=2011-03-30}}</ref> 얼마후 곧바로 4라운드 [[경남 FC|경남]]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렸고,<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4030100032850001980&ServiceDate=20110403 |제목='뜨거운 감자' 유병수, K-리그 첫 골에도 감독들 의견은 분분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이건 |날짜=2011-04-03}}</ref> 다음 라운드 [[포항 스틸러스]]와의 경기에서 연속 골을 터뜨렸다.<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90104 |제목='유병수 극적 동점골' 인천, 포항과 2-2 |출판사=OSEN |날짜=2011-04-09}}</ref> 2011년 5월 발목 골절로 2주 간 출전하지 못하게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chosun.com/news/ntype2.htm?id=201105090100072070005718&ServiceDate=20110508 |제목=인천 유병수, 발목 피로골절로 2주 아웃 |출판사=스포츠조선 |날짜=2011-05-08}}</ref> 예상과는 다르게 유병수는 2달 동안 출전하지 못하였고, 2011년 6월 25일 [[FC 서울|서울]]과의 원정 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렀다.<ref>{{뉴스 인용|제목=유병수, FC서울전서 2개월 여만에 1군 복귀 |url=http://sports.media.daum.net/soccer/news/k_league/breaking/view.html?cateid=1171&newsid=20110625200613306&p=SpoChosun |출판사=스포츠조선 |저자=김진회 |날짜=2011년 6월 25일| 확인날짜=2011년 6월 25일}}</ref>
         [[K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병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에의 승선이 거론되었다. 국가대표팀 감독 [[허정무]]도 그에 대해 관심을 숨기지 않았으며, 마침내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3연전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었다.<ref>{{웹 인용|url=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5211806415&code=980201 |제목=신인 유병수, 허정무호에 ‘깜짝 승선’|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경향뉴스}}</ref> 그리고 [[2009년]] [[6월 3일]]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과의 친선 평가전에 후반 교체 출전하여 A매치에 데뷔하였지만<ref>{{웹 인용|url=http://www.sportalkorea.com/news/view.php?gisa_uniq=20090604122105§ion_code=10&key=%C0%AF%BA%B4%BC%F6&field=gisa_title&search_key=y |제목=A매치 데뷔 유병수, UAE전 승리 위한 '비밀병기'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탈코리아}}</ref> 오만전이 A매치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삭제되었다.<ref>{{웹 인용|url=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world/world/2009/0804/20090804101020201000000_7288524317.html |제목=6월 허정무호 오만전, FIFA A매치서 제외 |확인날짜=2010-08-15 |출판사=스포츠서울}}</ref> 이후 대표팀과 인연이 없다가 [[10월 4일]], [[조광래]] 감독이 [[10월 12일]] 열릴 한일전을 앞두고 유병수를 발탁하면서 다시 기회를 잡게 되었고<ref>{{웹 인용|url=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010041004362234&ext=na |제목=한일전 명단 발표…유병수-신형민 대표팀 복귀 |확인날짜=2010-10-04 |출판사=마이데일리}}</ref> 경기가 끝나기 9분 전에 교체 투입되며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언남고등학교 동문]][[분류:수서중학교 동문]][[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둔촌중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알힐랄 (리야드)의 축구 선수]][[분류:FC 로스토프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러시아 프리미어리그의 축구 선수]][[분류:2011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러시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사우디아라비아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김포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 득점상 수상자]][[분류:사우디아라비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러시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사우디 프로리그의 축구 선수]]
  • 이명주 (축구선수) . . . . 21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2011-2012 <br/> 2013-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br/>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2 {{0}}{{0}}(0) <br/> {{0}}17 {{0}}{{0}}(1)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2017년]] [[12월 12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2012년]] [[4월 8일]] [[성남 FC|성남 일화]]와의 경기에 출전하며 데뷔전을 치른 이명주는 이 경기에서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데뷔 경기에서 강한 임팩트를 남겼다. 시즌 초 [[상주 상무 축구단|상무]]에 입대했던 [[김재성 (축구 선수)|김재성]]의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떠오른 이명주는 신인임에도 침착하고 센스 넘치는 패스 플레이와 공격적인 플레이 등으로 [[황선홍]] 감독의 눈에 들어 비교적 빨리 주전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12년]] [[6월 23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후반 38분 중거리슛으로 결승골이자 본인의 K리그 데뷔골을 터뜨렸다.
         알아인 FC와 계약만료후 군 문제로 국내 복귀를 추진중이었다. 많은 팀들에서 오퍼가 왔으나 최종적으로 친정팀인 포항스틸러스와 황선홍 감독의 FC 서울이 경쟁 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kfootball/news/read.nhn?oid=452&aid=0000000664 [서호정의 킥오프] FC서울은 어떻게 이명주를 잡았나?]</ref> 2017년 6월 19일 [[FC 서울]]로의 이적이 공식 발표 되었으며 계약기간은 6개월이다.
         == 국가대표팀 경력 ==
         [[2013년]] [[6월 11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과의 [[2014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경기에서 선발 출장하며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국가대표팀]] 데뷔전을 가졌다. 데뷔전에서 MOM(Man Of the Match)에 선정되었다.<ref>{{뉴스 인용 |제목='겁없는 데뷔전' 이명주, 대담한 활약 눈부셨다|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111&article_id=0000336377 |출판사=조이뉴스24 |date={{날짜한글화|2013-06-11}} }}</ref>
         [[홍명보]] 감독 하의 대표팀에서도 초반 꾸준히 승선했으나 [[2014년 FIFA 월드컵]] 최종 명단에는 탈락하였다. [[2014년]] [[9월 5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베네수엘라 축구 국가대표팀|베네수엘라]]와의 친선경기에서 선발 출장하여 0-1로 뒤지고 있던 전반 33분 각도가 없는 상황에서 감아차기를 시도하여 A매치 데뷔골을 터뜨렸다. 이어 후반 17분 상대 진영에서 수비의 공을 가로채 곧바로 크로스를 올려 이동국의 쐐기골에 기여를 했다.<ref>{{뉴스 인용 |제목=이명주, 우리가 바라던 공격형 MF 모습 보였다 |url=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1020 |출판사=베스트일레븐 |date={{날짜한글화|2014-09-05}} }}</ref>
         * [http://www.kfa.or.kr/record/playeramatch.asp?Page=1&Query=Gender%3DM%26Name%3D%EC%9D%B4%EB%AA%85%EC%A3%BC 이명주 국가대표팀 기록 - 대한축구협회]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아랍에미리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알아인 FC의 축구 선수]][[분류:FC 서울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2015년 AFC 아시안컵 참가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아산 무궁화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 영플레이어상 수상자]][[분류:K리그1 베스트 11 수상자]][[분류: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박기혁 . . . . 2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2라운드([[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0년]]
         * [[2008년]] [[KBO (야구)|KBO]] 골든 글러브 (유격수)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동메달|[[2006년 아시안 게임|2006 도하]]|[[야구]]}}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입단하였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서 활동했다. [[2008년]] 시즌 113경기에 출장해 2할대 타율, 1홈런, 36타점, 47득점, 16도루로 데뷔 이후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박계원]] 이후 14년 만에 [[롯데 자이언츠]]에 [[유격수]] 부문 [[한국 프로 야구 골든 글러브 상|골든 글러브 상]]을 안겼다.<ref>[http://osen.freechal.com/news/view.asp?code=G0812110172 박기혁, 데뷔 첫 황금장갑 수상] 《Osen》, 2008년 12월 11일</ref> [[2006년 아시안 게임|도하 아시안 게임]]에서는 동메달에 그쳤고, [[2008년 하계 올림픽 야구|베이징 올림픽]]에도 출전하지 못했다. 2009년에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에 참가하여 [[박진만]]을 대신해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였으나 병역 특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시범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본격적인 시즌 개막 이후 무릎 부상과 경기력 저하로 [[강정호]]와 [[손시헌]]에게 밀려 야심차게 노렸던 목표인 [[2010년 아시안 게임|광저우 아시안 게임]] 엔트리 진입에 실패하였다. 시즌 종료 후 입대를 1주 앞두고 음주운전으로 물의를 일으켜 결국 [[2010년]]을 쓸쓸히 마무리하고 그 해 [[11월 15일]]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여 [[2012년]] 소집 해제하였다. [[2013년]]에 복귀한 뒤 [[문규현 (야구 선수)|문규현]]을 밀어내고 주전으로 자리잡으려 했으나 부상으로 인해 결국 프로 2년차인 [[신본기]]에 밀리고 말았다.
         ==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활약 ==
         * 2008년 [[KBO (야구)|KBO]] 골든 글러브 유격수 부문
         {{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KBO 골든글러브 수상자]][[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송창현 . . . . 20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top1=한화 이글스/선수목록,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 포항대해초 - 매송중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 - [[제주국제대학교|제주국제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신인드래프트 3라운드]] ([[롯데 자이언츠|롯데]]) ||
         ||<:> '''군 복무''' || [[상무 야구단]] (2017~2018) ||
         [[야탑고등학교 야구부|야탑고]]를 거쳐 제주국제대로 진학한다.
         대학에서의 통산성적은 31경기 나와 5승 13패 148이닝 투구 141피안타(4피홈런) 74'''[[볼넷]]''' 29'''[[몸에 맞는 볼]]''' 94K 20'''[[폭투]] ''' 3'''[[보크]]''' [[평균자책점]] '''3.34'''~~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를 기록한다. 이 시기에 제주도에서 야인생활을 보내고 있던 [[김응용]]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2013년/신인드래프트|2013년 드래프트]]에서 3라운드 27순위로 [[롯데 자이언츠]]의 지명을 받았으나, 2012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응용]] 감독이 [[한화 이글스]]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자신이 야인 시절 직접 점찍어 두었던 송창현을 곧바로 트레이드로 데려왔다. 이 때 트레이드로 롯데로 넘어간 선수가 다름 아닌 '''[[장성호]]'''였기에, 졸지에 화제의 신인으로 급부상한다. 물론 좋은 의미가 아니라(…).
         분명 노쇠화가 진행되고는 있다고 하나, '''최연소 2,000안타'''를 달성한 장성호의 가치가 상위픽도 아닌 신인 한 명분밖에 안되냐는 논란으로 화제가 되었다. [[김응용]] 감독이 이 트레이드에 확신을 보였으니 일단은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쨌든 [[장성호]]와 1:1로 트레이드 할만큼 [[김응용|코끼리 감독]]의 기대를 받고 전지훈련 명단에 들어갔으나, 이후 드러나는 모습은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자체 청백전을 제외하고 2월 21일 기준 연습경기에 나와 2이닝 동안 12실점, 볼넷 5개, 사구 1개, 폭투 1개, 삼진 1개를 기록하는 등 최악의 투구 내용을 보였다. 한화팬들로서는 미치기 딱 좋을 수준이었다. 이후 2군에서도 방어율 7점대의 성적을 찍으면서 한화 팬들이 [[김응용|코감독]]을 씹을 때나 쓰는 안주거리화가 되나 했는데 1군 콜업 이후 엄청난 성장세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신체조건 하나는 [[김응용|코감독]]이 그렇게도 좋아하는 좌완 떡대다. 키 181cm에 100kg의 건장한 체격에 아마시절에도 큰 부상 이야기는 없는게 내구성도 괜찮아보인다. 특히 멘탈이 아주 좋은 편이라 맞는 걸 두려워하지않고 정면 승부를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이지만 의외로 피안타율이 높지 않다.
         데뷔 초에는 속구와 슬라이더 두 개의 구종만 사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시즌 후반에 체인지업과 커브를 장착한 것으로 보아 구질 습득도 빠른 편인듯 하다.[* 체인지업은 [[송진우(야구)|송진우]], 커브는 [[정민철]] 혹은 [[이대진]] 코치의 작품일 가능성이 크다.][* 한화 이글스의 팟캐스트 방송 이글스캔들에서 본인이 밝힌 바로는 체인지업은 송진우 코치가 그립만 가르쳐준 것을 실전에서 사용했더니 통했다고 한다.]
         |||| --코감독이 송창현을 선택한 진짜 이유-- ||
          * 여담이지만 [[선동열|김응용 감독의 수제자이자, 0점대 방어율 투수]]와 상당히 닮았다. 트레이드 당시에도 뭐가뭔지 모르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송창현을 선택한 진짜 이유'''라는 우스개 소리로 돌아다니는 짤. ~~얼굴은 선동렬인데 제구는 [[김정수(1962)|김정수]]...는 무리인가~~
         || 2017 ||<|2><:><-16> [[상무 피닉스 야구단]] 복무 ||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89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좌완 투수]] [[분류:좌투좌타]]
  • 전태일 . . . . 20회 일치
         [[1969년]] [[6월]] [[청계천]] 공장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운동 조직 [[바보회]]를 결성하고, 다니던 교회와 [[엠마누엘 수도원]] 등에서 잡역부로 일하던 중 다시 [[왕성사]]의 재단사로 [[청계천]]으로 돌아와 노동운동을 주도했다. 그는 [[동대문구]]청과 [[서울특별시]]의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을 찾아가 열악하고 위험한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했으나 묵살당했고, [[박정희]] [[대한민국의 대통령|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냈으나 전달되지 못했다. [[1970년]] [[10월]]에는 본격적으로 근로조건 시위를 주도하였다. [[11월]] [[근로기준법]] 화형식과 함께 [[평화시장]] 입구에서 온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라이터로 분신 자살하였다. 그의 죽음을 계기로 [[11월 27일]] [[청계피복노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노동 운동]]이 재확산되었다.
         사건 당시 그는 친구 김개남(가명)에게 자기 몸에 성냥 불을 그어 달라고 했고<ref>김정환, 《역사의 희망과 희망의 역사: 근・현대편》 (푸른숲, 1998) 272페이지</ref>, 익명의 친구는 그의 몸에 불을 붙였다. 온 몸에 불이 붙은채 [[평화시장 (서울)|평화시장]]을 뛰었지만 그는 방치되었다. 병원에 도착한 뒤에도 [[주사]] 비용이 필요하여 근로감독관의 보증이 필요하다 했지만, 근로감독관은 보증을 거부했고, 다시 옮겨진 성모병원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이유로 그를 3~4시간 방치하였다.
         그는 여러가지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었다. 친구들을 규합하는 어려움, 주변의 냉소와 비야냥거림, 노동청과 근로감독관, 언론들의 기만극, 생계를 책임져주기를 바라는 가족들의 간절한 바람 속에 서있었다.<ref>《녹색평론 78호 (2004년 9, 10월호)》 (녹색평론, 2004) 59페이지</ref> 일부 미싱사와 봉제 노동자들은 그가 죽은 뒤에도 "자기 하나 죽는다고 뭐가 해결되느냐<ref name="ganaess"/>"라고 비판하였다. 이 당시에 어느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현실의 조롱과 냉소가 너무나도 잔혹하고 괴로웠다" 라고 썼다.<ref>조영래, 《전태일평전》 (돌베개, 2001) 183페이지</ref>
         그는 밤이 새도록 [[근로기준법]] 조문을 찾아 암기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노동자 불이익에 저항하였다. 그는 [[동대문구청]]을 찾아가 열악한 환경에 대해 호소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근로기준법]]상의 감독권 행사를 요청하기 위해 시청 근로감독관실을 찾아갔지만, 근로감독관은 평화 시장의 참혹한 얘기에 관심 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노동청]]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ref name="chungg">한국정치연구회 정치사분과, 《한국 현대사 이야기 주머니, 2권》 (녹두, 1993) 265페이지</ref> 가뜩이나 어려운 조건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던 전태일에게 그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노동이나 근로 기준법조차 사업주들의 편이라는 현실은 그를 한동안 허탈 상태로 몰아 넣었다.<ref name="chungg"/> 그는 청계천 일대의 노동 실태를 직접 조사, 설문하여 이를 토대로 [[근로기준법]] 준수를 요구하는 청원서를 [[노동청]]에 냈으나 돌아온 답변은 경멸과 비웃음 뿐이었다. 처음에 약간 말투가 어눌했던 그는 부랑자로 몰리거나, [[노동청]] 공무원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의 노동자 권리 청원은 언론들도 외면했고, [[경향신문]] 등에만 간략하게 보도되었다.
         {{인용문2|존경하시는 대통령 각하 옥체 안녕하시옵니까? 저는 제품(의류) 계통에 종사하는 재단사입니다. 각하께선 저들의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혁명 후 오늘날까지 저들은 각하께서 이루신 모든 실제를 높이 존경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길이길이 존경할 겁니다. 삼선개헌에 관하여 저들이 알지 못하는 참으로 깊은 희생을 각하께선 마침내 행하심을 머리 숙여 은미 합니다. 끝까지 인내와 현명하신 용기는 또 한번 밝아오는 대한민국의 무거운 십자가를 국민들은 존경과 신뢰로 각하께 드릴 것입니다.<br><br>...(이하 중략)...<br><br>저의 좁은 생각 끝에 이런 사실을 고치기 위하여 보호기관인 노동청과 시청 내에 있는 근로감독관을 찾아가 구두로써 감독을 요구했습니다. 노동청에서 실태조사도 왔었습니다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1개월에 첫 주와 삼 주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 버립니다. 일반 공무원의 평균 근무시간 일주 45시간에 비해 15세의 어린 시다공들은 일주 98시간의 고된 작업에 시달립니다. 또한 평균 20세의 숙련 여공들은 6년 전후의 경력자로써 대부분이 햇빛을 보지 못한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br><br>응당 기준법에 의하여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에서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평화시장주식회사가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의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림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백 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전부가 건강하기 때문입니까?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하루 속히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약한 여공들을 보호하십시오. 최소한 당사들의 건강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정도로 만족할 순진한 동심들입니다. 각하께선 국부이십니다. 곧 저희들의 아버님이십니다. 소자된 도리로써 아픈 곳을 알려 드립니다. 소자의 아픈 곳을 고쳐 주십시오. 아픈 곳을 알리지도 않고 아버님을 원망한다면 도리에 틀린 일입니다.<br><br>저희들의 요구는 1일 14시간의 작업시간을 단축하십시오.<br>1일 10시간 - 12시간으로, 1개월 휴일 2일을 일요일마다 휴일로 쉬기를 희망합니다.<br>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하여 주십시오.<br>시다공의 수당 현 70원 내지 100원을 50%이상 인상하십시오.<br><br>절대로 무리한 요구가 아님을 맹세합니다.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요구입니다. 기업주 측에서도 충분히 지킬 수 있는 사항입니다.<ref>권태억, 《근현대 한국 탐사》 (역사비평사, 2007) 398~400페이지</ref>}}
         쓰러진 그는 병원으로 실려갔으며 이 소식을 듣고 병원에 온 어머니 이소선에게 전태일은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을 어머니가 대신 이뤄 주세요"라는 유언을 남기고<ref>〈이소선:아, 우리들의 어머니!〉, 《이야기 여성사 1》 163~4p, 여성신문사, 2000</ref> 쓰러졌다.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응급치료를 받은 전태일은 온몸이 굳어서 펴지지가 않았다. 전태일의 어머니는 추워서 떨고 있는 아들에게 앞치마를 벗어 덮어주고 의사에게 갔다. 1만 5천 원짜리 주사 두 대면 우선 화기는 가시게 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어머니는 훗날 집을 팔아서라도 돈을 갚을 터이니 그 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애원하자 의사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러면 근로감독관에게 가서 보증을 받아오라고 했다.<ref name="chock289">조영래, 《전태일 평전:어느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 (돌베개, 1991) 289페이지</ref> 이때 평화시장 담당 [[서울시청]] 근로감독관 한 사람이 전태일을 따라 병원에까지 와 있었다. 그러나 근로감독관은 "내가 무엇 때문에 보증을 서요?" 하고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
         어머니 이소선이 다시 의사에게로 가서 매달리자 의사는 고개를 흔들며, "그 약이 지금 여기에는 없으니 성모병원으로 옮기도록 하라"고 했다. 이때까지 전태일은 간단한 응급치료 외엔 서너 시간을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ref name="chock289"/> 명동 성모병원으로 전태일을 옮기는 앰블런스가 오자, 이때 근로감독관이 다시 나타나 전태일 등과 함께 타고 병원을 떠났다. 차 안에서 전태일은 근로감독관이 어머니와 하는 소릴 듣고 나서, "사람이 그럴 수가 있습니까? 감사가 끝났다고 그렇게 배신할 수가 있소? 내가 죽어서라도 기준법이 준수되나 안되나 지켜볼 것이오" 라고 마음 속으로 분개하였다.<ref name="chock289"/>
         * [[근로감독권]]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1970년 죽음]][[분류:정선 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반공주의자]][[분류:전태일]][[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자살한 사람]][[분류:분신 자살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창원시/인물 . . . . 20회 일치
         * [[김민식(야구선수)|김민식]] - 마산회원구
         * [[김시훈(야구선수)|김시훈]] - 마산회원구
         * [[김창혁(야구선수)|김창혁]] - 마산회원구
         * [[김창희(야구)|김창희]] - 마산회원구
         * [[김헌곤(야구선수)|김헌곤]] - 마산회원구
         * [[박영태(야구코치)|박영태]] - 마산합포구
         * [[박상혁(야구선수)|박상혁]] - 마산회원구
         * [[박정준(야구코치)|박정준]] - 마산회원구
         * [[박성준(야구선수)|박성준]] - 성산구
         * [[변진수(야구선수)|변진수]] - 성산구
         * [[박영완(야구선수)|박영완]] - 진해구
         * [[신명철(야구선수)|신명철]] - 성산구
         * [[유두열(야구선수)|유두열]] - 마산합포구
         * [[이동학(야구선수)|이동학]] - 마산회원구
         * [[이승재(야구선수)|이승재]] - 마산회원구
         * [[이상백(야구선수)|이상백]] - 성산구
         * [[임지섭(야구선수)|임지섭]] - 성산구
         * [[조정훈(야구선수)|조정훈]] - 마산회원구
         * [[장원삼(야구선수)|장원삼]] - 성산구
         * [[최재원(야구선수)|최재원]] - 마산합포구
  • 김재한(축구) . . . . 19회 일치
         [[분류:1947년 출생]] [[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대한민국의 축구감독]]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축구감독/목록/대한민국)]
         || 감독 커리어 || [[한국주택은행]] 감독 (1980~1989) ||
         경북 김천 출신의 김재한은 어려서부터 신체 조건이 좋았을 뿐 아니라 운동도 좋아해서 축구를 비롯한 여러 종목을 섭렵했다고 한다. 야구, 배구, 육상의 높이뛰기 등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다양한 종목의 대회 출장을 하던 김재한은 대구고 시절 야구 선수로 진로를 잡았다고 한다. 당시 삼성 라이온즈의 초대 감독이던 서영무가 대구고의 감독이었다고 한다. 2학년 말에 대구고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고3에는 축구로 진로를 틀고 성광고로 전학을 갔다고 한다. 그러나 대구는 축구로는 딱히 좋은 지역이 아니어서 고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당대 유스의 팀인 제일모직에서 대구로 전지훈련을 왔다가 김재한의 피지컬을 높이 봤는지 제일모직 코치였던 안종수에 의해 연습생 신분으로 입단한다. 거기서 1년 가량 연습생 생활을 했으나 그라운드에서 뛰지 못하던 김재한은, 마침 건국대 장경환 감독의 눈에 띄어 건국대에 입학하게 된다.
         제일모직에 돌아갔으나 제일모직 축구팀은 김재한이 돌아온 후 2년만에 해체한다. 이에 주택은행으로 적을 옮기게 되어 주택은행이 4관왕을 차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 이 활약을 바탕으로 25살인 1972년에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김재한은 [[이회택]], [[박이천]], [[차범근]], [[김진국]], [[이차만]], [[허정무]] 등과 공격수로서 함께 호흡을 맞추며 1979년까지 활약한다. 실제로 1972년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지역에 주어진 단 한 장의 월드컵 진출 티켓을 놓고 벌인 3번의 혈투를 벌였던 당시 호주 국가대표팀 감독과 2007년에 대면할 일이 생겼는데, 기억나는 것은 김재한과 차범근 뿐이었다고 한다.[* 립서비스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35년이나 지난 후에 회고하는 것인 만큼 상당히 진솔할 수 있다. 립서비스를 감안하더라도 그만큼 부담스러웠다는 뜻으로 생각하면 적당할 듯하다.]
         A매치 57경기 출장 33골 득점인데 경기당 평균 득점률이 0.58로 대한민국 A매치 득점랭킹 순위권에서는 최고의 득점률을 보여줬다. 현재 정식 국가대표 경기로 인정되지 않는 경기까지[* 70년대에는 외국 유명 클럽팀과 국가대표팀이 경기하거나 외국의 국가대표 일부 선발팀과 경기하는 일이 종종 있었으며 역으로 한국이 일부를 선발하기도 했다. 이런 일은 90년대까지 이어진다.] 포함하면 51골을 득점했다고 한다.
         현역 은퇴 이후 주택은행 축구단 코치로 지도자를 시작하여 이후 감독으로 1989년까지 팀을 이끌었다. 이후 주택은행 영업부 부장으로 부임하여 본격적인 은행업무를 보았고, 2005년 싸카스포츠로 이직해 부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2007년부터 사장에 올랐다. 같은해 대한축구협회 상근 부회장에 선임되면서 축구 행정가로 들어오게 되었다. 행정인으로서도 상당한 자질이 있다는 평이다.
         주로 190cm가 넘는 키를 활용하여 포스트 플레이에 능했다.[* 김재한의 은퇴 이후 국가대표에 피지컬이 좋은 장신 공격수가 등장하면 "포스트 김재한"으로 불리기도 했다. 과거 [[우성용]]이 그랬고 현재는 [[김신욱]]이 그 계보를 잇는 중이다.][* 국가대표와 주택은행의 감독을 하던 민병대의 영향을 받아 에우제비우와 짝을 이뤘던 포르투갈의 장신 스트라이커 호세 아우구스토 토레스의 플레이를 본받으려 많이 노력했다고 한다. 포스트 플레이를 통해 주위 선수들에게 공을 떨궈주는 움직임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차범근과 나누던 사담에 의하면 헤딩은 김재한이 낫지만 기술이나 움직임은 김신욱이 나은 듯하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당대 대표선수들 중 농구선수들까지 능가하는 최장신인데 점프력까지 나쁘지 않아 높이로는 아시아에 적수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 아시아에 속해서 겨루던 호주나 이스라엘에서는 비슷한 신장의 적수들이 있었지만 김재한 본인은 그들을 점프력에서 능가했다고 한다. 또한 공의 낙하지점 찾는 것에도 자신이 있었다고 한다. 등지는 플레이와 등진 상태에서 돌아서면서 슛을 때리는 것도 자신 있었다고.
         부인으로는 전직 국가대표 농구선수인 재일대표 출신 조영순을 맞이했다. 조영순은 원래 일본에서 일본명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일본으로의 귀화를 거부한 후 일본 농구계에서 퇴출당하고 한국 국가대표팀 주장을 역임하던 선수였다. 태릉에서 친분을 쌓은 후 일본에서 펼쳐진 한일정기전을 대패한 김재한을 마침 일본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던 조영순이 위로해 주다가 사귀게 되었다고 한다.
  • 용덕한 . . . . 1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2차 8라운드([[두산 베어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4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6년]] [[10월 9일]] <br />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kt 위즈|kt]]전
         * [[상무 야구단]] (2007년 ~ 2008년)
         '''용덕한'''(龍德韓<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727 |날짜=2009-03-10 }}</ref>, [[1981년]] [[4월 9일]] ~ )은 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백업 [[포수]]이자, 현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D팀 배터리코치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고]] 2학년이던 [[1998년]], 제52회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서 투런 홈런을 쳐 내면서 팀이 5년만에 전국대회 우승을 하는 데 공헌하였다. 3학년이던 [[1999년]]에도 제54회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공·수에 걸쳐 맹활약을 하며 팀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2000년]] [[동아대학교]]에 입학했으며, 3학년이던 [[2002년]], [[이탈리아]] [[메시나]]에서 열린 제 1회 세계 대학야구선수권대회를 위한 국가대표 선발 명단에 [[고려대학교]] 재학 중이었던 [[이택근]]과 함께 [[포수]]로서 이름을 올리며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다.
         ===[[상무 야구단]] 시절===
         2008년에 복귀했다. [[2009년]] 시즌에 [[최승환]]의 부상으로 인해 79경기를 출장한 것이 최다 출장한 기록이 되었다. [[2010년]] 포스트 시즌에서 주전 포수 [[양의지]]를 대신한 특급 백업 요원으로 자리매김하였고, 상대적으로 경험이 적었던 [[양의지]] 대신 노련한 모습을 선보이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ref>[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0100601032233169006 준비된 백업 용덕한 준PO 시리즈 MVP로] 문화일보</ref> 그러나 [[2011년]] [[5월 27일]] 잠실 한화전에서 낫아웃 상황에서 파울이라고 항의하다가 [[오선진]]이 3루까지 뛰는 상황을 자초하여, 이후 2군행을 통보받았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5280001 낫아웃에 3루까지...어떻게 된 건가?] - OSEN</ref> 이는 [[1997년]] [[8월 23일]] 대구에서 열렸던 [[삼성 라이온즈|삼성]]과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과의 연속 경기 1차전의 낫아웃 해프닝 이후 낫아웃 상황의 착오가 발생한 사건이었다(이 사건의 원인을 제공한 포수 [[김영진 (야구 선수)|김영진]]은 이후 [[한화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0065870 김영진의 ‘희대의 해프닝’ 낫아웃 오판] - OSEN</ref>
         [[양의지]]에 이어 [[김재환 (야구 선수)|김재환]], [[최재훈 (야구 선수)|최재훈]] 등 신진 포수들에게 밀려 [[2012년]] [[6월 17일]] [[롯데 자이언츠]] [[투수]] [[김명성 (1988년)|김명성]]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었다. 이는 [[장성우]]의 [[경찰 야구단]] 입대에 따른 [[강민호]]의 백업 포수가 필요하였던 [[롯데 자이언츠|롯데]] 측의 요청으로 성사되었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367321 포수 물색하던 롯데, 용덕한 결정한 이유는?] - OSEN</ref> [[2010년]] 포스트 시즌에 이어서 [[2012년]] 포스트 시즌에도 맹활약을 보여 롯데가 13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서 승리를 거뒀다. 주전 포수인 [[강민호]]가 준PO 1차전에서 손등 부상으로 2차전부터 주전 포수로 출전하였고, 2차전 1:1 동점 상황에 9회에 상대 [[투수]] [[홍상삼]]을 상대로 역전 솔로 홈런을 쳐내며 결승 홈런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후 인터뷰에서는 "친정 팀이건 뭐건 간에 내가 속해 있는 팀이 이기는 게 먼저다. 나는 롯데 선수고 친정 팀이란 건 아무 의미가 없다."라는 말을 하며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게 되었다.
         [[2014년]] [[11월 28일]] [[kt 위즈|kt]]의 신생팀 특별지명을 받아 [[kt 위즈]]로 이적했다. [[2015년]] [[5월 6일]]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5회초 1사 만루 송창식을 상대로 시즌 첫 홈런, 생애 첫 [[만루홈런]]을 기록하였다.
         ====[[2015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
         ===야구선수 은퇴 후===
  • 이상백 (1904년) . . . . 19회 일치
         [[1924년]] 일본의 [[일본 대학농구연맹]]을 결성하고 [[와세다 대학]] 농구팀 대표로 [[일본 대학농구연맹]]에 참여하였으며, 일본 대학농구연맹 농구부 주장으로 [[미국]]에 원정 경기에 출전하여 여러 번 우승을 거두기도 했다. 그밖에 축구, 야구에도 주전 선수로 실력을 보여주었다. [[1927년]]에 [[와세다 대학]] 문학부 사회철학과를 졸업했다. 그 뒤 모교인 [[와세다 대학]] 동양사상연구소 연구원을 지냈다.
         [[일제 강점기]]인 [[1932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을 비롯,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대회의 대표로 참석한 경력이 인정되어, [[1948년]] 런던올림픽, [[1952년]] 헬싱키 올림픽,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 파견되었으며, 그후 매번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한민국]]측 대표선수단 총감독, 단장, 아시아 경기 대회 대표 선수단 단장 등으로서 여러 번 선수단을 이끌고 해외에 원정하기도 했다. [[1960년]] 로마 올림픽 등의 선수단장으로 파견되었다.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역사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농구 선수]][[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수필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건국동맹]][[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학자]][[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
         [[분류:여행 작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교육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IOC 위원]][[분류:이병도]][[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여운형]][[분류:김규식]][[분류:장건상]][[분류:박중양]][[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와세다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신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유지태 . . . . 18회 일치
         |직업 = [[배우]],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br />[[연극|연극 제작자]], [[모델 (직업)|모델]]
         '''유지태'''([[1976년]] [[4월 13일]] ~ )는 [[대한민국]]의 [[배우]], [[영화 감독]]·[[영화 각본|각본가]], [[연극]] 감독·연출·제작자이다.
         [[대구광역시|대구]] 출생인 그는 1998년 영화《[[바이 준]]》으로 데뷔하였다. 1999년작 《[[주유소 습격사건]]》, 2000년작 《[[동감]]》을 통해서 주목 받기 시작했고, [[허진호]] 감독의 2001년작 《[[봄날은 간다]]》를 통해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박찬욱]] 감독의 2003년작 《[[올드보이]]》에서 악역을 맡아 열연하였다.<ref name="goldfish">MBC TV《[[황금어장]]》내의 〈무릎 팍 도사〉. [http://www.imbc.com/broad/tv/ent/goldfish/vod/?kind=image&progCode=1000794100219100000&pagesize=5&pagenum=1&cornerFlag=0&ContentTypeID=1&ProgramGroupID=0 2010년 11월 13일 수요일 방송].</ref>
         2003년 [[단편 영화]]《자전거 소년》를 통해 [[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해 부산아시아 단편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음으로써 영화 감독으로 재능을 발휘했다. 2005년《장님은 무슨 꿈을 꿀까요?》, 2008년《나도 모르게》, 2009년《초대》의 단편 영화를 발표했고, 네 번째 단편 영화《초대》는 2009년 7월, 제5회 인디판다 국제 단편 영화제와 제8회 제주 영화제에 초청을 받았다.<ref>{{뉴스 인용|url=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유지태, 네 번째 작품 제주영화제 출품|성=|이름=스포츠월드 황인성 기자|날짜=2009-08-19|출판사=세계일보|확인날짜=2010-04-17}}</ref><ref>{{뉴스 인용|url=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0907300038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EntCulture/Article.asp?aid=20090819001036&subctg1=15&subctg2=00|제목=감독 유지태, 인디판다 국제단편영화제 4연속 초대|성=|이름=OSEN 조경이 기자|날짜=2009-07-30|출판사=스포츠 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OSEN|확인날짜=2010-04-17}}</ref>
         ;감독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강릉 유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가톨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 동문]][[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
  • 이승현 (1985년 7월) . . . . 18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2005 <br> 2006-2007 <br> 2009-2011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br>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br>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8 {{0}}{{0}}(0) <br> {{0}}{{0}}8 {{0}}{{0}}(1) <br> {{0}}{{0}}4 {{0}}{{0}}(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2011년]] [[6월 4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 축구 국가대표팀|파라과이]]와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였다.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5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반야월초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축구 윙어]]
  • 이영욱 (1980년) . . . . 1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9년 2차 8라운드]]([[쌍방울 레이더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5년]] [[4월 16일]]<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3년]] [[9월 28일]]<br />[[문학야구장|문학]] 대 [[KIA 타이거즈|KIA]]전 구원
         * [[덕수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년 ~ 2017년)
         '''감독 경력'''
         *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 야구감독 (2018년 ~ 현재)
         '''이영욱'''(李永旭, [[1980년]] [[8월 13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현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감독이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14년부터 [[덕수고등학교]] 야구부의 코치를 맡았고 2018년부터 경북 [[진성중학교 (경북)|진성중학교]]의 야구감독으로 활동한다.
         그가 데뷔 첫 승을 거둔 경기는 [[2005년]] [[5월 29일]]의 [[두산 베어스|두산]]전인데, 첫 승을 따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1회말에 선발 [[헤수스 산체스]]가 1/3이닝 5실점으로 부진하자 1회부터 그가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되었고 3회말에 상대 타자 [[장원진]]에게 몸에 맞는 볼을 던졌다. 이에 [[장원진]]이 그를 구타하면서 양 팀 간의 벤치 클리어링이 일어났고, 4회초 공격에서 1:5로 뒤지던 [[SK 와이번스]]는 무려 6득점하면서 그에게 프로 데뷔 첫 승을 안겨줬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011178 SK 조범현 감독, "두산 장원진이 우리를 뭉치게 만들었다"] - 조이뉴스24</ref>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야구 메달리스트]]
  • 임기영 . . . . 1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2라운드]]([[한화 이글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10월 1일]]<br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 [[상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2017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야구]]}}
         '''임기영'''(林起映<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4월 16일]] ~ )은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투수]]이다.
         2012년에 입단하였다. 2014 시즌 후 [[송은범]]의 FA 보상 선수로 지명되어 [[KIA 타이거즈]]로 이적하였다. [[상무 야구단]] 제대 후 합류할 예정이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417696 KIA, FA 보상선수로 투수 임기영 지명] - 엑스포츠 뉴스</ref>
         ==[[상무 야구단]] 시절==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정진호(1956) . . . . 18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초-[[경상중학교|경상중]]-[[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연세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3년/신인드래프트|1983년 1차 지명]] ||
         || '''지도자''' || [[태평양 돌핀스]] 수비코치 (1991~1995) [br] [[현대 유니콘스]] 1군 수석코치 (1996~2006) [br] [[LG 트윈스]] 1군 수석코치 (2007~2009) [br] [[연세대학교]] 감독 (2011~2012) ||
         [[삼성 라이온즈]]와 [[청보 핀토스]], [[태평양 돌핀스]]에서 활동했던 야구선수. 그리고 범죄자. '''~~[[양승호]], [[이광은]]~~과 같은 입시비리의 대표주자'''. 현역 시절에는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고 주로 백업으로 활동하다[* [[1985년]]에는 부상으로 결장한 [[오대석]] 대신 2루수 [[김성래]]와 플래툰으로 유격수를 맡았지만(만약 김성래가 유격수를 맡으면 2루수는 [[배대웅]]이 대신했다.) 다음 해인 [[1986년]] [[4월 19일]] [[이승엽 야구장|대구]] [[빙그레 이글스|빙그레]]전에서 5회말 대타로 나섰다가 손문곤이 던진 공에 오른쪽 엄지손가락 부상을 당해 결국 그 해 6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으며 [[유격수]] 자리는 부상에서 돌아온 오대석과 김성래가 번갈아 맡았다.] 청보로 이적한 다음 해인 1987년 주전 2루수를 맡았지만 그 이후 하락세를 걸어오다가 1990년 은퇴했다.
         은퇴 후에 태평양 수비코치를 시작으로, 1996년부터 2006년까지 [[현대 유니콘스]] 수석코치를 맡았다. [[김재박]] 현대 감독이 LG로 부임하면서 오랜 기간 현대의 수석코치를 맡았던 정진호도 현대 차기 감독 후보로 거론되었으나, 김재박을 따라 [[LG 트윈스]]로 갔다. LG에서도 수석코치로 있다가 2009년 말 김재박을 이어 [[박종훈(1959)|박종훈]]이 신임 감독이 되면서 정진호도 LG에서 나왔다. 2010년 7월, [[이광은]]을 이어 연세대 야구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연세대학교]] 야구부는 2015년에도 또 다시 입시비리 사건에 휘말려 감독이 출국금지를 당했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야구감독]][[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56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삼성 라이온즈]]
  • 최경환 (야구인) . . . . 1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1995년]] 2차 5순위([[LG 트윈스]])<br />[[200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0년]] 1차 지명([[LG 트윈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0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9년]] [[10월 24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SK 와이번스|SK]]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은메달|[[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1993 버펄로]]|[[야구]]}}
         '''최경환'''(崔景煥, [[1972년]] [[5월 12일]]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외야수]], [[지명타자]]이자, 현재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2군 타격코치이다. [[대한민국]] 야구 선수 중 야수 포지션에 있는 선수 중 최초로 [[미국]]으로 진출하였다.<ref>[http://www.dailian.co.kr/news/news_view.htm?id=109423 "허슬" 최경환…포기할 수 없는 도전] - 데일리안</ref>
         서울 출생이나, 초등학교 시절 잠시 살았었던 포항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
         [[1992년]] [[경희대학교]] 2학년 때 국가대표팀으로 뽑혀 한·미선수권 참가차 [[미국]]으로 갔고 에인절스의 극동 담당 스카우트의 눈에 보이면서 [[미국]]으로 진출하게 되었다. [[1995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LA 에인절스]] 산하 [[마이너 리그 베이스볼|마이너 리그]] 팀에 입단하여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51&aid=0000001816 최경환-아버님께 유종의 미 선사할 것!] - 민기자닷컴</ref>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2년]] [[LG 트윈스]]에서 방출된 후, [[두산 베어스]]의 감독이던 [[김인식 (1947년)|김인식]]의 눈에 띄어 입단했다. 그 후 팀의 3번타자로 주로 출장했으며, [[2004년]] 몸을 던지는 수비와 영양가 있는 타격, 서글서글한 매너로 [[두산 베어스]]의 [[2004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플레이오프]] 진출에 기여했다.<ref>{{뉴스 인용 |저자= 현윤경|제목='허슬 플레이어' 최경환, 두산 상승세 앞장|url=http://sports.news.naver.com/kbo/news/read.nhn?oid=001&aid=0000993745 |뉴스=연합뉴스|출판사= |위치= |날짜= 2005-05-04 |확인날짜= 2016-06-26}}</ref>
         ==야구선수 은퇴 후==
         2009년 [[KIA 타이거즈]]의 타격 코치로 선임되었고<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38&article_id=0002037043 |제목=최경환, 타격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저자=최경호|날짜=2009-11-06|확인날짜=2009-11-06|출판사=한국일보}}</ref> 2011 시즌 종료 후 [[SK 와이번스|SK]]로 옮겼다가, [[2013년]] 시즌 후 [[NC 다이노스]]의 N팀 타격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www.nspna.com/news/?mode=view&newsid=73382 NC 다이노스, 최경환 코치 계약] - NSP통신</ref>
         {{199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 강원도 . . . . 17회 일치
         산과 눈(雪)이 많은 지리적 여건 상 동계 스포츠의 메카로 볼 수 있겠지만, 야외에서 치르는 하계 스포츠의 경우에는 불모지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인구도 적은 데다 야외 스포츠를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다른 지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특히 [[야구]]는 심각한 불모지에 가깝다.[* [[제주특별자치도|제주도]] 만큼이나 강원도 출신 유명 야구선수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그 증거. [[원주고등학교 야구부|원주고]] 출신의 [[안경현]], 프로야구 최다 대타홈런 1위(20)개를 가지고 있는 강릉고 출신의 [[이재주]]가 그나마 제일 유명하고 [[설악고등학교 야구부|속초상고/설악고]] 출신의 [[조영훈]]이나 [[양훈]] 정도가 최근 들어서 그나마 이름값을 높인 강원도 출신 야구선수들이다. 최근에는 속초에서 초·중학교를 나온 [[김재환(야구선수)|김재환]]과 [[김기태(1987)|김기태]]가 이름을 내고 있다. 참고로 [[김재환(야구선수)|김재환]]과 [[김기태(1987)|김기태]]는 나란히 [[인천광역시]]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축구]]는 [[강릉 정기전]]이라는 전통의 더비 경기가 있을 정도로 영동지역에서 인기가 매우 높다. 그리고 [[강릉 정기전]]의 열기는 훗날 [[강원 FC]]의 창단으로 연결됐다.
         2016년 현재 강원도 내 지방자치단체를 연고지로 삼고 있는 스포츠 팀으로는 [[K리그]]의 [[강원 FC]][* 메인 연고지는 [[강릉시]]이며 가끔 [[춘천시|춘천]]과 [[원주종합운동장|원주]]는 물론 [[알펜시아 리조트|평창]]에서도 홈경기를 치른다.]와 [[한국프로농구]]의 [[원주 DB 프로미]] 등이 있다. [[KBO 리그]]의 경우 과거 [[삼청태현|인천광역시를 제1연고지로 삼았던 팀들]]의 광역연고권에 강원도가 포함된 적이 있고 [[수원 케이티 위즈 파크|수원야구장]]이 세워지기 전인 1980년대 초·중반에는 [[삼청태현|삼미, 청보, 태평양]]의 홈경기가 춘천야구장에서 분산 개최된 적도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가 1982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치른 공식 홈경기 장소도 [[숭의야구장|인천]]이 아닌 춘천이다. 물론 이 때는 [[숭의야구장]]이 공사 중이어서 춘천에서 경기를 연 것이다. 이 때 야구 경기가 열렸던 춘천야구장은 철거되었고 [[의암 야구장]]이 그 대체 성격으로 완공되었다.] 현재는 [[한화 이글스]]와 [[삼성 라이온즈]]가 각각 영서지역 고등학교(강원고, 원주고)와 영동지역 고등학교(설악고, 강릉고)들을 대상으로 신인 1차 지명권을 갖고 있지만 홈경기 개최 권한과 신인 지명권 관할 지역은 엄연히 별개의 사안이다. [[WKBL]]에서는 [[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은행 농구단]]이 오랫동안 춘천 연고팀으로 있었지만 2016~2017 시즌부터 돌연 [[아산시]]로 연고지를 옮기면서 강원도 연고의 농구팀은 [[원주 DB 프로미]]만이 남게 됐다.
         [[분류:대한민국의 행정구역]][[분류:대한민국의 광역자치단체]][[분류:강원도]]
  • 김명신 (야구선수) . . . . 17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4월 1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구원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2015년 타이중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2017년]]
         [[2017년]]에 입단하였다. 2차 1라운드에 지명된 [[박치국]]과 스프링캠프에 참가하였으며, 신인 투수가 캠프에 참가한 것은 5년 만이다. [[박치국]], [[함덕주]]와 5선발 경쟁을 하였으나, [[함덕주]]가 5선발로 낙점되었다. 그래서 불펜으로 나와 배짱투로 신인답지 않은 투구를 펼쳤다. [[4월 15일]]에 데뷔 첫 선발 등판을 하였다. [[4월 25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김민성 (1988년)|김민성]]이 친 타구가 그의 안면을 강타하여 안면 광대뼈가 골절되면서 선발진에서 하차하였다.<ref>[http://www.e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49187 두산베어스 김명신, 넥센히어로즈 김민성 타구에 '부상'… 야구팬 "빨리 완쾌되길"] -이뉴스투데이</ref>
         * 2016년 전국 대학 왕중왕 야구 대회 최우수 선수상
         * 2016년 전국 대학 야구 춘계 리그전 최우수 선수상
         * 2015년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상
         * 2015년 전국 대학 야구 추계 리그전 수훈상
         * 2012년 [[고교야구]] 광역 리그(경상권) 우수 투수상
         {{2015년 하계 유니버시아드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5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 선수 명단}}
         {{토막글|야구인}}
  • 신화용 . . . . 17회 일치
         포항제철동초등학교 4학년때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축구로 전향하여 포철중-포철공고까지 유스 테크트리를 탔으나 골키퍼였음에도 작은 키와 실력 성장 정체가 문제가 되어 프로입단에 실패하게 된다.[* 졸업 당시 179cm였다고 한다.] 그러던 와중에 포항 원 클럽 맨이었던 최상국 감독이 청주대로 신화용을 부르게 되고 신화용은 청주대로 가게 된다. 하지만 당시 청주대 축구부는 프로 입단,대학 입학 경쟁에서 밀린 선수들이나 가는 곳이었고 선수들의 의욕도 없었다. 게다가 1학년때 허리 디스크 부상을 당하면서 축구를 그만둘뻔 하기까지 했다.[* 이때 디스크 부상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게 된다.] 신화용이 2학년이 되자 청주대 감독이 유인권 감독으로 바뀌었고 유인권 감독의 지도하에 성장했다. 이때 포항의 백업 골키퍼였던 조준호가 이적하면서 팀에 키퍼가 부족해지자 포항은 신화용에게 입단 제의를 했고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이어진 활약상으로 2013 K리그 3라운드 수원과의 경기에서 선방쇼를 보여준 끝에 3라운드 MVP로 뽑혔다. 수상 소감 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2012 시즌 후 FA로 풀리는 과정에서 포항과 있었던 연봉 협상[* 이 때 [[황진성]]과 더불어 연봉협상에 제일 난항을 겪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ACL 선수등록 하루 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며 아슬아슬하게 팀에 남게 되었다.]의 뒷 이야기도 풀어놨는데 포항의 모기업인 포스코가 경영악화로 신화용에 걸맞는 연봉을 못 주는 상황에서 일본 클럽이 2배에 가까운 연봉을 제시했지만, 포항 유스 출신으로서 포항과 포항팬들에 대한 애정과 [[황선홍]]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에 남는 것을 결정했다고 한다. ~~포스코 경영진들 보고 있나?~~ ~~경영정상화 되면 두고봅시다.~~ 이때 인터뷰에서 한 정확한 발언은 "감독님이 첫 번째 이유다. 전지훈련 도중 떠난다는 말을 못하겠더라. 감독님과 두 번 다시 안 볼 사이도 아니다. 그리고 나를 믿어준 동료들도 있었다. 고향이고 팬들도 마음에 걸렸다. 남아야할 이유가 더 많았다. 떠날 이유는 돈 뿐이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241&article_id=0002124687&date=20130319&page=2|보러가기]]
         사실 후반기의 포항 경기는 '''어떻게든 득점->신화용 선방쇼''' 구도라서 2015년 FA로 다시 풀리는 신화용이 포항을 떠날까봐 팬들은 걱정했다. 하지만 황선홍감독의 인터뷰를 보면 이미 [[김태수(축구선수)|김태수]]와 함께 재계약이 완료된 상태라고 한다.[* 신화용 본인도 인터뷰에서 "지난 2년간 연봉협상으로 힘들었다. 하지만 올해는 홀가분하게 출발하고싶다."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FA로 풀린 것을 보면 아직 세부사항을 조율중인 것으로 보이지만, 서브 키퍼인 김다솔이 '''"신화용의 재계약이 확실해지면 자유롭게 이적할 수 있다."''' 계약조건으로 [[대전 시티즌]] 이적을 확정하면서 사실상 신화용도 포항과 제계약 했음을 시사했다. '''그리고 드디어 재계약 완료기사가 떴다!!!''' 포항팬들은 신규영입들보다 더 반가워 하고 있다. 기존 선수들 중에서 대체 불가능한 인물인지라 2014 시즌에 신화용이 결장한 경기 승률이 바닥이라는 것이 모든걸 이야기 해주고 있다.
         그리고 시즌이 시작하자 감독은 바뀌었고 [[손준호]]가 시즌아웃을 당하자 미드필더진이 무너졌고 수비진에는 과부하가 걸리다 보니 감독은 그냥 3백에 수비위주 전술을 썼다 그래서'''신화용에게는 지옥같은 시즌이 펼쳐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점률은 5월 현재 0.89로 작년과 별 차이가 없다는게 함정...~~15시즌 초반에도 지옥이었으니까~~] 게다가 15시즌 말미에 당한 부상여파가 남았는지 16시즌 들어서는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못하는 날이 늘어나고 있는데, 그 틈을 비집고 후배인 [[김진영(축구선수)|김진영]]이 무서운 선방을 보이며 신화용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이는 부상으로 신화용이 경기에 못 나올 경우 한정이며 컨디션이 좋을때는 여전히 신화용이 No.1이다. 그리고 ACL, FA컵에서 조기 탈락하며 리그에만 집중하면 되는지라 부상만 아니라면 신화용이 시즌 내내 포항의 뒷문을 책임질 것 같았으나...
         특히 신화용은 자신의 성적이 좋았던 시즌에도 포항과의 의리를 지키려고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이해해 '''연봉을 스스로 깎고 포항에 남았는데,''' 정작 16시즌 팀 성적과 신화용의 개인 성적이 하락하자 바로 신화용을 시장에 내논사실을 알게 된 신화용은 배신감을 느끼며 결국 포항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되었다. 이후 사정을 알게 된 [[최순호]]가 급하게 구단에 강력요청하여 신화용을 잡기 위해 다시 협상을 하게 되나[* 사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것이 감독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미 프런트에서 자기들 마음대로 팀의 레전드급 선수를 팔겠다는 계획을 독단적으로 내렸다는 것이다. 2010년대 이후 포스코의 낙하산 사장에 휘둘리는 포항 프런트가 얼마나 막장으로 전락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 이미 신화용의 마음은 포항을 떠났고 결국 신화용은 새팀으로 이적했다. 포항은 이적료+'''[[노동건]] 임대'''를 하는 형식으로 신화용을 내줬다. 노동건이 아직 리그 정상급 기량은 아니지만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축구|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군면제를 받은 20대 골키퍼라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수원 프런트가 '과연 군필 골키퍼를 임대 후 이적 조건으로 포항에 줬을까?' 를 생각해본다면 즉전감 키퍼를 받고 후보 키퍼를 빌려줘 경험치도 먹이려는 [[호구]]딜일 가능성이 높다.
         부상복귀후 좋은 모습을 보이다가 9월 20일 제주 상대로 웃긴 실수로 해 팀이 패배했다. 이를 지켜보던 서정원 감독과 이운재 코치의 표정이 압권. 하지만 바로 극복해 9월 23일 [[인천 유나이티드|인천]]과의 경기에서 [[한석종]]의 페널티킥을 막아냈지만 세컨볼 상황에서 하창래에게 골을 먹고 말았다.
         그리고 그의 인생 최악의 경기인 2015 K리그 클래식 홈 개막전 울산과의 경기를 슈틸리케 감독이 보도진 몰래 [[포항 스틸야드]]에 암행정찰을 왔다. --왜 잘 할 때는 안 오고-- 이 날 모습을 생각한다면 국대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지게 되었다. 이로 인해 신화용 >>>>>> 정성룡을 외치던 K리그 팬들을 입 다물게 한 반면에, 오히려 K리그까들로부터 '''정성룡이랑 뭐가 다르냐, 정성룡보다 더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받고 있는 중. 기량이 제대로 폭발한 이후로 실수가 상당히 줄어든 키퍼인데 역대급 실수를 엄청나게 보여주면서[* 그것도 공중파 전국 생중계였다. [[KBS]]가 올 시즌부터 K리그 클래식을 전격 중계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아니, 왜 잘할 때는 중계를 안 해주고-- 참고로 KBS의 K리그 클래식 전격 중계는 [[이영표]]가 해설위원이 되면서 내건 조건으로 KBS는 이를 받아들였다라고만 서술하면 이영표 해설위원 혼자서 다 한 거 같게 느껴지는데 사실 정확하게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에서 따낸 계약 조건이라고 보는게 정확하다. 이영표 해설위원이 아무것도 안한 건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프로축구연맹>>>이영표의 기여도 차이가 있는 일이다.] 엄청 평가가 떨어졌다. 다만 이 경기를 관람한 슈틸리케 감독은 "축구에서는 언제든 실수가 나올 수 있다.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실수였고, 선수들은 이런 실수가 나오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a_match&ctg=news&mod=read&office_id=343&article_id=0000047475|관련기사 1]],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_league&ctg=news&mod=read&office_id=108&article_id=0002396186|관련기사 2]]
         김진현이 2015 시즌 중반 부상으로 아웃되면서 기회가 오나 싶었지만 이번엔 역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권순태]]에게 기회가 돌아가며 뽑히지 못했다. 슈틸리케 감독이 골키퍼 3명 중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해줄 한 명을 제외하면 젊은 선수 위주로 선발하고, 한 살 아래 권순태도 나이 때문에 김승규, 김진현에게 밀리는 상황이라 신화용의 대표팀 발탁은 요원해보인다. ~~무슨 지옥같은 스페인 국대 골키퍼 경쟁인줄~~[* 김승규, 김진현, 정성룡에 권순태와 이범영. 올림픽 대표팀에서 기대받고 있는 구성윤과 김동준, 이창근에 청대 출신 골키퍼 조현우(구성윤은 2015년 동아시안컵 때 백업으로나마 성인 대표팀에 뽑혔고 김동준은 예비 명단에 들었던 바 있다. 조현우도 예비명단에는 올랐었다.)까지 포함하면 유래없는 골키퍼 풍년이다. 게다가 이 선수들 2016년 기준으로 전부 한창 나이다. 거기에 리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중인 이호승과 윤보상, 가장 포텐이 기대가 되는 [[김로만]]과 전종혁 등등 K리그 역사상 최대의 인재풀이 가동되어 있다.] 하지만 ACL 우라와전을 비롯하여 슈틸리케 감독이 꾸준히 포항 경기를 찾아오고 있는 것을 보면 [[손준호]]와 더불어 국대 발탁 희망이 아주 없지는 않아 보인다. ~~그렇다고 조금이라도 있다고는 말 못한다.~~
         [[분류:1983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분류:수원 삼성 블루윙즈/현역]]
  • 이정호 (1982년) . . . . 17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프로 입단 연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200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1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단체)|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4월 6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한화 이글스|한화]] 전 [[구원 투수|구원]] <br /> (4이닝 4피안타 1피볼넷 2탈삼진 1세이브)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10년 한국프로야구|2010년]] [[5월 14일]] <br /> [[목동야구장|목동]]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구원 투수|구원]] <br /> (3이닝 1홀드)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0년 ~ 2011년)
         *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5년 ~ 현재)
         '''이정호'''(李正鎬<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2년]] [[4월 27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자, 현재는 [[대구고등학교]]의 투수코치이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 시절 에이스로 활동하여 기대를 모은 [[투수]]였다. [[2001년]] [[삼성 라이온즈]]에 그 당시로는 파격적인 계약금 5억 3,000만원을 받고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그러나 프로 적응에 실패해 고향 팀에서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고, 부상까지 겹쳐서 [[2004년]]까지 19경기에 등판해 1승 1세이브, 평균자책 5.55에 그쳤다. 설상가상으로 [[2004년]]에는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어 그 해 9월에 시즌 아웃되었다.<ref>[http://news.sportsseoul.com/read/baseball/926815.htm 프로야구, 역대 1순위 지명 선수 실패 사례는?] - 스포츠서울</ref>
         소집 해제 이후 바뀐 팀에 복귀했다. [[2008년]] [[8월 26일]] [[목동 야구장]]에서 친정 팀과 맞붙었을 때 [[마일영]]의 뒤를 이어 등판, 1군에 복귀했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0808271130302225&ext=na '잊혀졌던 유망주' 이정호의 반가운 복귀] - 마이데일리</ref> 이 날은 [[삼성 라이온즈]] 투수 [[이상목]]이 100승을 거둔 날이기도 했다. 복귀 후 주로 불펜으로 활동했다. 2010년에도 부상으로 4경기에만 등판하여 1홀드만 기록했다. 기회를 잡지 못하게 되자 시즌 후 해외 진출에 도전하겠다고 선언, 구단에 임의탈퇴 공시를 요청하여 현재는 [[넥센 히어로즈]]에서 임의탈퇴된 상태이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11270006 '해외도전' 이정호, "추신수에 자극받은 것 아니다"] - OSEN</ref>
         이후 잠시 모교인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생활을 이어가다가, [[2011년]] 말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의 프런트로 입사하였다. 프런트로 꾸준히 활동하던 중 [[2014년]] [[9월 11일]] 구단주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KBO에 의해 구단 해체를 선언한 후, 그 날 프런트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12월 16일]] [[한화 이글스]]의 3군 투수코치로 부임받았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548544&date=20141216&page=1 '비운의 천재' 이정호, 한화 코치로 제2의 야구인생 개척] - 마이데일리 2014년 12월 16일 확인.</ref> 하지만 2015 시즌 후 사임하고 [[대구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자리를 옮겼다.<ref>[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380&aid=0000000943 그 신인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1> 고졸 최고 대우, 삼성 이정호] - 이영미 칼럼</ref>
         {{2000년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 김민수 (1991년) . . . . 1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4년]] [[3월 30일]]<br>[[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상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은메달|[[2013년 동아시아 경기 대회|2013 톈진]]|[[야구]]}}
         '''김민수'''(金珉秀<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91년]] [[3월 2일]] ~ )는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다.
         [[영남대학교]]를 졸업하고 [[2014년]] [[한화 이글스]]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상무 야구단]] 시절==
         [[상무 야구단]] 입대를 앞두고 [[2014년]] [[12월 5일]] [[권혁]]이 FA를 통해 이적하며 그가 보상선수로 지명되어 이적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11&article_id=0000415691 삼성, FA 권혁 보상선수로 포수 김민수 선택] - 엑스포츠뉴스</ref> [[상무 야구단]] 전역 후 합류하였다.
         {{토막글|야구인}}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김지훈 (영화감독) . . . . 16회 일치
         | 직업 =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각본가]]
         | 활동기간 = 1998년 ~ 현재 (감독)
         | 수상 = 제5회 [[맥스무비]] <br>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
         '''김지훈'''([[1971년]] [[7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자 [[영화 각본|각본가]]이다.
         1998년 단편영화 《온실》로 제2회 [[세계 필름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며, 제46회 [[독립영화제]]에서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이후 《[[목포는 항구다]]》, 《[[화려한 휴가]]》를 제작하였다. [[5.18]]을 다룬 《[[화려한 휴가]]》는 [[전라도]] 사투리 연구에 많은 공을 들였고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다.<ref>[http://entertain.naver.com/read?oid=022&aid=0000227432 김지훈 감독 "대구출신이라 3년 간 전라도 사투리 연구"] 세계일보. 2007년 05월 17일</ref> [[2011년]] [[8월]] 개봉한 한국 최초 3D 블록버스터인 《[[7광구]]》를 제작하였다. <ref>{{뉴스 인용|제목 = 김지훈: 영화정보-씨네21|url =http://www.cine21.com/Movies/Mov_Person/person_info.php?id=6724|출판사 = 씨네21|확인날짜=2011-05-19}}</ref>
         * 《질주》 - 조감독 (1999년)
         * 2007년 제3회 프리미어 라이징 스타 어워즈 감독
         * 2007년 제1회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 감독
         * 2008년 제5회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상 《[[화려한 휴가]]》
         * 2013년 제22회 금계백화영화제 최우수외국감독
         {{맥스무비 최고의 영화상 최고의 감독}}
         {{토막글|영화 감독}}
         [[분류:김지훈 감독 영화|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우동균 . . . . 1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8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8년]] [[6월 14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7년]] [[6월 11일]] <br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 [[경찰 야구단]] (2010년 ~ 2011년)
         |대륙간컵 (야구) = 2010 대만
         '''우동균'''(禹東均, [[1989년]] [[12월 3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일본 독립 야구 [[가가와 올리브 가이너즈]]의 [[외야수]]였다.(5월 1일 퇴단하였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2008년]] 연고 팀 [[삼성 라이온즈|삼성]]의 1차 지명을 받아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입단했다. 신인시절 당시 2군 감독이었던 [[장효조]]의 총애를 받아 팬들로 부터 많은 관심을 받기 시작하였다.<ref>[http://www.imaeil.com/sub_news/sub_news_view.php?news_id=22202&yy=2008 아버지 꿈 이룬 우동균] - 매일신문</ref>
         ===[[경찰 야구단]] 시절===
         ==일본 독립야구 시절==
         {{2007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경일대학교 동문]][[분류:단양 우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이수진(치어리더) . . . . 16회 일치
          * 상위 문서 : [[야구 관련 인물(KBO)]], [[치어리더]]
         '''원조 야구장 [[김연정|3대]] [[박기량(치어리더)|여신]] [[이수진(치어리더)|막내.]]이자 치어리더계 유연성 끝판왕.'''[* 현재 활동중인 치어리더 중 이수진만큼 유연한 사람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연성이 좋다.]
         프로야구 2013 시즌 중반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치어리더팀인 블루팅커스에 합류해서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프로배구 2013-14 시즌부터 2016-17 시즌까지 [[화성 IBK기업은행 알토스]]에서도 치어리더 활동을 했다. 보통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김연정]] 등과 함께 손꼽히는 치어리더.
         2014년 야구 매니지먼트 게임인, [[프로야구매니저]]에서 2주 가량 진행한 '가장 예쁜 한국프로야구 치어리더' 설문조사에서 박기량, 김연정, [[강윤이]]에 이어 '''4위'''에 이름을 올렸다.[* 총 7,682명이 설문에 응했으며, '''1위'''인 박기량은 2,518명(32.78%), '''2위'''인 김연정은 1,925명(25.06%), '''3위'''인 강윤이는 1,075명(13.9%).] 해가 바뀌닌 2015년 [[프로야구매니저]]에서 7월 1일부터 10일까지 진행한 '2015 프로야구 대표 여신 치어리더는?'라는 설문조사에서 박기량[* 2013년, 2014년에 이어 3연패 달성], 김연정에 이어 '''3위'''에 뽑혔다.[* '''1위'''인 박기량은 33.70%, '''2위'''인 김연정은 27.10% 득표][* 참고로, '''4위'''는 [[KIA 타이거즈]]의 엄지, '''5위'''는 [[한화 이글스]]의 임수연, '''6위'''는 [[LG 트윈스]]의 이애수.]
         야구장 응원 [[직캠]] 영상이 많이 올라오는 것으로도 유명하다.[[https://youtu.be/qqLCgWlgP3c|동영상 링크1]][[https://youtu.be/K0T3QgfeD0o|동영상 링크2]]
         [[한국프로야구/2014년 포스트시즌]]을 맞아 [[XTM]]의 [[베이스볼 워너B]]에서 제작한 치어리더 배틀 영상에 출연했다. 동영상 링크는 [[https://youtu.be/30M67wdL7Fw|여기]]. 당시 [[삼성 라이온즈]]는 한국시리즈에서 [[넥센 히어로즈]]와 경기를 했는데, 각 팀 치어리더들이 나와서 댄스 배틀을 펼치는 방식이었다. 이수진은 넥센 치어리더 임경미와 대결을 했다. 여기서 자신의 키만큼 발차기를 하고 다리 찢기를 하는, 놀라운 유연성을 선보였다.
         2014년 12월 6일에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치어리더 특집편[* 타이틀은 '야구여신 최강전'][* [[삼성 라이온즈]], [[NC 다이노스]], [[기아 타이거즈]], [[한화 이글스]]의 치어리더들만 출연.]에서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대표 3인[* [[이연주(치어리더)|이연주]], 이수진, 장혜원.] 중 한 명으로 출연하여, '셰어 로이드의 Swagger Jagger, [[트랜스픽션]]의 Get Show, [[크레용팝]]의 어이(Uh-ee)'에 맞추어 치어리딩을 선보였다.[* 치어리더 네 팀의 단체곡은 '[[타카피]]의 치고 달려라 2014', [[현아(가수)|현아]]의 '빨개요', [[갓세븐]]의 '하지하지마'.]
          * 9월 22일자 기사 (“야구장서 써먹기 딱!” 치어리더 이수진에게 배우는 응원 동작 3) [[http://samsungtomorrow.com/4YC3i|기사 링크]]
          * 9월 29일자 기사 ('야구장 여신'의 변함없는 인기 비결은? 삼성 라이온즈 치어리더 이수진과의 데이트) [[http://samsungtomorrow.com/8Tm1q|기사 링크]]
         보통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 [[김연정]]과 함께 야구장 3대 여신으로 불린다. 방송과 매스컴으로 유명해진 2명과 달리 이수진은 대구 아재들의 인기가 대중들에게 확산된 케이스이다.
          * 삼성 라이온즈의 팬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구사하다보니 [[한화 이글스]]의 [[김연정]], [[롯데 자이언츠]]의 [[박기량(치어리더)|박기량]]과 더불어 야구장을 대표하는 치어리더로 불린다. 그리고 [[1992년|92년]]생으로 가장 어리다. 그리고 [[2015년]], 마침내 위에 서술했던 대로 인기투표에서 3위를 차지하며 인기를 입증했다. 오오 이수진 오오.
          * [[이승엽]]을 가장 좋아한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야구장에서 이승엽을 보며 응원을 했다고.
  • 고유민 . . . . 15회 일치
         이 대회의 활약으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현대건설 감독이 주목하게 되고 1라운드에서 지명된다. 이때 배구팬들은 키 큰 [[황윤정]][* 기업은행 센터였으나 현재 실업 수원시청 소속.]이나 리시브 되는 최지유[* 기업은행에 2라운드 지명되었으나 메디컬 테스트에서 탈락했다.]나 뽑지, 리시브를 프로에서 배워야할 선수를 왜 1라운드에서 뽑을 필요가 있는가? 라며 황현주 전 감독을 깠다.
         지명한 [[황현주(배구)|황현주]] 전 감독은 최대한 많은 경기를 출장시켜주려고 레프트-라이트-원포인트 블로커 등으로 이러지러 포지션을 변경해가며 팀의 상황에 맞추어 기용했다. 이런 방침을 따른 결과 그해 지명된 신인들 중에서는 신인왕을 탔던 도로공사의 [[고예림]] 다음으로 많은 세트를 소화했다. 시즌 중반까지 고예림의 출장보다 출장경기 수가 더 많았지만, 고예림이 시즌 후반 자리를 잡고 좋은 활약을 선보이면서 신인왕 경쟁에서 리타이어 되고 말았다.
         교체선수로 시즌을 시작했다. 2014년 10월 30일 시즌 두번째 경기에 시즌 첫 출장을 했다. [[황연주]]의 공격성공률이 떨어지자 교체로 3,4,5세트를 뛰고 4득점을 하면서 64.29%의 리시브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풀세트 승리에 기여, 기분좋게 시즌을 시작했다. 이후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의 전위에서 원포인트 블로커로 교체되거나 [[황연주]]가 부진할때 간간히 교체되어 나왔다. 다만 전자의 역할은 선배 [[한유미]]가 주로 맡게 되었고 후자의 역할은 코칭스테프가 황연주를 교체하는 것에 별로 마뜩치 않아 했기 때문에[* 경기가 완전히 기울어버린 때에도 코트에 황연주를 남겨놓을때가 많았다. --차라리 폴리를 뺀다는 마음가짐--] 출장시간이 점점 뜸해졌다. --그것보다는 보통 지는 경기에 교체출장하는데 리시브 범실, 공격범실로 감독 화돋구고 나가는 때가 많았다.-- 19경기, 39세트 출장 13득점 공격성공률 28.26% 리시브 성공률 22.5%을 기록했다. 좋게말하면 작년과 비슷한 기록을 냈고 나쁘게 말하면 성장세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볼수 있었다. --그러나 더 웃긴건 [[고예림|전 시즌 신인왕]]은 폭망했고 나머지들도 그닥이었다.--
         이렇게 시즌이 허무하게 끝나나 했는데 플레이오프 1차전 1세트 0득점을 기록하며 극도에 부진에 빠진 황연주[* 사실 황연주 팬들 사이에서도 마지막 몇경기는 빼는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올정도로 점프력이나 스윙스피드가 완연히 떨어졌었다. 코칭스태프는 그녀의 경험을 믿었으나...]를 대신해 2세트 부터 선발출장해 --리시브는 역시나 였지만-- 팀 분위기를 바꿔놓았었다. 7득점을 하며 감독이 "예상치도 못하게 아주 훌륭한 활약을 했다. 몸상태를 봐서 2차전에 출전시킬 것"이라고 언급할 만큼 인상적이었지만 무너져가는 팀을 구할수는 없었다.
         2차전에도 1세트를 제외하고 2세트 부터 선발출장을 하여 괜찮은 리시브 성공률을 보였지만 공격에서는 --폴리 몰빵 상태여서-- 큰 활약이 없었다. 다만 교체되어 나온 세트에 팀 분위기가 반전되었다는 점은 고무적이었다. 게다가 이날 경기에서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 앞에서 까다로운 서브를 '''갑자기''' 구사해 경기를 반전시킬 뻔 했으나 팀은 3-1로 패배. --팬들은 이럴거면 스타팅으로 넣지 왜 세트 헌납질 하냐고 감독을 깠다.--
         시즌 대회 전 [[http://sports.donga.com/3/all/20150708/72365102/3| 프리뷰 기사]]에서 현대건설은 '부상병동'이라고 일컬어지며 제 실력 발휘가 어려울 것이라 예상되었다.[* 레프트 포지션만 따져도 작년 주전 레프트 [[김주하]]는 2015년 4월 발목 수술후 재활 중, 재작년 주전 레프트 정미선은 작년 컵대회 때 당한 복합십자인대 부상으로 작년 시즌을 통으로 쉰 후에 재활 중, 베테랑 한유미는 컵대회 직전까지 출전을 장담하기 힘들 정도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고유민도 왼쪽 무릎이 좋지 않아 재활 중이었다. 라이트 포지션인 [[황연주]]도 고질적인 무릎은 물론이고 허벅지 근육 파열로 제 컨디션이 아니었다. 세터 [[이다영]]도 허리 부상의 여파에서 막 벗어난 상태였다.] 도로공사와의 경기 직전 라인업[* 센터: 양효진-김세영 라이트: 황연주 세터: 염혜선 레프트: 고유민-정미선 리베로: 김연견.]이 발표되자 배구갤러리, 경기중계댓글 할 거 없이 '''"도대체 팀 상황이 얼마나 막장이면 작년에 잘 보이지도 않던 애 둘을 스타팅으로 넣냐"'''며 비웃음과 조롱이 넘쳐났고 현대건설 팬들은 [[김천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도공]]의 새 감독 [[이호(배구선수)|이호]]의 첫 승리 상대가 될 생각에 답답해했다.
         도로공사 감독 이호는 주포로 예상 되었던 황연주와 양효진(김세영)의 공격을 임명옥[* 전 인삼공사 주전 리베로. 국가대표 리베로 김해란과의 1:1 트레이드로 데려왔다.]을 앞세워 그런대로 방어[* 황연주-공격점유율 30.29% 성공률 27.91%, 양효진- 공격점유율 17.61% 성공률 32%]했지만 계산밖이었던 고유민의 공격에는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1세트에서는 블로커가 아얘 붙지 않거나 있어도 하나만 있는 상태가 많았다.] 이날 공격점유율 20.42% (팀내 2위), 성공률 '''41.38%'(팀내 1위)''', 13득점(팀내 2위), 서브에이스 1개--근데 2개 날렸다--,[* 그것도 리시브의 달인이라고 평가 받는 도공 리베로 임명옥을 상대로 기록하였다.] 9디그를 기록하며 자신의 기량향상을 제대로 선보였다. 황연주가 아직 제 컨디션이 아니고 컵대회 초반 양효진이 감을 못잡은 상태에서 현대건설의 주요한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낮고 빠르게 세터가 쏘아주는 C토스를 바탕으로 힘으로 몰아붙이거나 블로커가 붙었을 경우 피해서 코트 이곳 저곳 꽂아 넣는 정확성에 다시 봤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만 리시브 성공률 9%는 옥의 티.
         결승전에서도 선발 출장하였으나 기업은행의 높은 블로킹과 까다로운 서브에 고전하며 교체되었다가 팀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던 5세트 6-7상황에서 다시 등장했다. 이때 블로킹득점과 절묘한 앵글샷으로 연속 3공격득점을 하면서 10-7까지 벌려놓았으나[* 재밌는 점은 이때 기업은횅 이정철 감독은 9-7상황까지는 기업은행 선수들에게 화를 내다가 10-7이 되자 잠깐 벙쩌서 선수를 가리키며 '쟤 뭐지?'하는 표정을 지었다. --국가대표도 아주 꿈은 아니다.-- --꿈 깨고 내년 U23 국가대표에는 나갈수 있을듯--] 이후 부진하던 [[박정아(배구선수)|박정아]]가 폭발하고 공격이 블록당했으며[* 5세트 이정철 감독은 고유민의 담당 블로커로 박정아(188cm)를 세워두는 초강수를 뒀다.], [[이정철]] 감독의 적시 비디오 판독이 나오면서 그대로 기업은행 기세에 팀이 밀리며 패배하게 되었다. 기록은 8득점, 공격점유율 14.36%, 성공율 25%, 디그 9, 블록 1, --리시브성공률 0%을 빼면 쓰나-- --그날은 꽝--.
         고질적인 문제를 이겨내지 못해서 시즌 후반엔 내내 닭장에 있었고, 2016년 3월 13일 흥국생명과의 플레이 오프 2차전에서 [[한유미]]와 [[정미선(배구선수)|정미선]]이 수비라인이 동시에 붕괴되는 초유의 사태에 양철호 감독이 2세트부터 선발 출장을 시키는 강수를 뒀고 4세트엔 여지없이 붕괴되어 한유미와 교체되었지만, 그런대로 근근히 3세트까지 버텨서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특]][[대전 KGC인삼공사|정]]팀들에 강한 면모를 유감없이 보였다. 정시영의 공격을 블로킹하여 포스트 시즌 첫 득점을 기록하였다. 챔피언 결정전에 교체멤버로 분류되었으나 2차전에 교체출장으로 생애 첫 챔피언 결정전에 무리없이 출장했고, 3차전 마지막 세트에 출장하면서 팀의 우승에 한몫 거들었다.
         시즌 최종 기록은 150 공격 시도/50 성공으로, 공격 성공률 33.33%. 157 리시브 시도/57 성공, 9실패로 리시브 성공률 30.57%. 세트당 디그 1.01, 세트당 세트 0.09를 기록했다.비슷한 롤이었던 박슬기가 은퇴 직전 시즌인 5년차에 달성한 공격 성공률-리시브 성공률 30%를 일단 프로 3년차에 달성하긴 했다. 은근한 노력가로 첫 시즌에 비한다면 경기력 자체는 점차 개선되어[* 수준이하의 서브, 수준 이하의 리시브, 수준 이하의 공격력으로 故황현주 감독에게는 배구선수가 공을 무서워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극딜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는 양철호 감독이 배구선수가 볼 미팅도 제대로 못하면 어디에다 쓰냐고 까였다. 다행히도 3번째 시즌엔 그렇게 욕먹지는 않았다.] 컵대회 때는 날라다니다가 시즌만 되면 수비에서 무너져 내리며 지워지는 패턴을 보였다. 터질 듯하면서 안 터지고 있어서 한국인 레프트 한자리에 고통스러워 하는 현대건설 팬들의 애증의 대상이 되었다.
         1월 4일 4라운드 첫 경기였던 계양체육관 흥국생명 전에서 범실을 너무 많이 해서[* 팀 범실 19개 중에 무려 '''12개'''가 모두 고유민의 범실이었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2위에 까지 올랐다. 그런데 양철호 감독은 한유미가 빠진 자리에 고유민을 꽤나 오랫동안 기용했다. 심지어 반등의 기회가 될 수 있는 3세트 22:22에서 지고있다가 팀의 추격조라 할 수 있는 [[김주하(배구선수)|김주하]]와 [[이다영]]을 다시 고유민과 [[염혜선]]으로 교체하며 결국 자멸했다.
  • 김세윤 (1999년) . . . . 15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2016<br>2018-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br>[[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3 {{0}}(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2017년]] [[12월 26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무산중학교]]를 거쳐 2015년 [[대전 시티즌]]의 유스 산하 학교인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축구부|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인 김세윤은 2016년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어 카타르 3개국 친선대회에 출전, 카타르와 말리와의 경기에 출전했으며, 이후 이스라엘 4개국 친선대회에 대표팀에도 승선해 세르비아전에 출전했다.
         * [http://www.kfa.or.kr/record/playeramatch.asp?Page=1&Query=Gender%3DM%26Name%3D%EA%B9%80%EC%84%B8%EC%9C%A4 김세윤 국가대표팀 기록 - 대한축구협회]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무산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배천석 . . . . 15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2006-2007<br />2008-2009<br />2012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br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br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 {{0}}16 {{0}}{{0}}(9)<br />{{0}}{{0}}1 {{0}}{{0}}(1)<br /> {{0}}{{0}}4 {{0}}{{0}}(2)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포항제철동초등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비셀 고베의 축구 선수]][[분류:부산 아이파크의 축구 선수]][[분류:전남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이천 시민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J1리그의 축구 선수]][[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경석 (배구인) . . . . 15회 일치
         | 국가대표팀 연도 =
         | 국가대표팀 =
         | 감독직 역임팀 = [[경기대학교]] 감독<br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손해보험]] 감독
         '''이경석'''(李京錫, [[1961년]] [[3월 8일]] ~ )은 [[대한민국]]의 전 배구 선수이자 감독이다. [[고려증권 배구단|고려증권]]의 세터 출신이다. [[1994년]]부터 [[2011년]]까지 모교 [[경기대학교]]에서 감독을 했으며, 2011-12시즌 [[김상우 (배구인)|김상우]] 감독이 경질된 후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LIG]]의 감독에 부임했다. [[2012년]]에는 KOVO컵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LIG의 KOVO 주관 대회 첫 우승을 안겼다. 그러나 2012-13시즌 성적이 부진하여 시즌 도중 경질당했다. <ref>{{뉴스 인용
         | 제목 = LIG손해보험, 이경석 감독 경질
         현재는 KOVO 경기감독관이다.
         |직책 = [[구미 LIG손해보험 그레이터스]] 감독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배구 감독]][[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배구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아시안 게임 배구 참가 선수]]
  • 김상엽 (야구인) . . . . 1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9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9년]] [[4월 8일]]<br />[[사직야구장|사직]]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0년]]
         * [[1993년]] [[KBO (야구)|KBO]] 탈삼진왕
         * [[영남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2년 ~ 2010년)
         '''김상엽'''(金相燁, [[1970년]] [[5월 11일]] ~ ) 은 전 [[KBO 리그]] [[LG 트윈스]]의 [[투수]]이자, 현재 [[KBO 리그]] [[NC 다이노스]]의 재활군 투수코치이다. 부상 이전 촉망받던 고졸 강속구 투수였다. 최고구속 150km대에 근접한 강속구를 뿌렸으며, 당시에는 희귀한 낙차 큰 파워 커브로 타자들을 상대했다. 1990년대에는 당시 보기 드물게 야구 선수로서 [[삼성물산]]의 패션 사업부인 [[삼성물산|에스에스패션]]의 신사복 빌트모아 TV CF에 출연하였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1999년]] 12월 [[삼성 라이온즈]]가 [[LG 트윈스]] [[포수]] [[김동수 (야구인)|김동수]]를 FA로 영입하면서 보상 선수로 [[LG 트윈스]]로 이적하였으나 부상이 지속되어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고 2경기 동안 6.2이닝, 2패만 기록한 후 [[2001년]]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78승 56패,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현역으로 활동할 때 홀수 해에 성적이 좋고 짝수 해에는 성적이 부진한 징크스가 있었다.
         ==야구선수 은퇴 후==
         은퇴 후 [[삼성 라이온즈]]의 마무리 투수 출신 [[영남대학교]] [[권영호]] 감독의 제안으로 [[영남대학교]] 야구부의 투수코치로 활동했으며 [[2011년]] [[투수]] [[박찬호]]의 주선으로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다.<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world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0&article_id=0000000077 오릭스 김상엽 코치 “박찬호야말로 진정한 위너다”] - 이영미 칼럼</ref> 연수 후 [[NC 다이노스]]의 투수코치로 선임되었다.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KBO 탈삼진상 수상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상훈 (1971년생 우완 투수) . . . . 1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0년]] 고졸우선지명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0년]] [[5월 19일]] <br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대 LG 전 (DH2)<br />1이닝 6타자 2피안타 1피홈런 0볼넷 0탈삼진 2실점 1자책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4년]] [[7월 8일]]<br />[[마산야구장|마산]] 대 두산 전<br />1이닝 3타자 1피안타 0피홈런 0볼넷 0탈삼진 0실점 0자책점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14년 ~ 2016년)
         '''이상훈'''(李相勳, [[1971년]] [[3월 21일]] ~ )은 [[KBO 리그]]에서 뛰었던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1990년 고졸우선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에 지명되어 주로 중간 계투로 뛰었다. 1999년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 기한에 포수 [[진갑용]]을 상대로 현금 4억원과 함께 [[두산 베어스]]로 트레이드 되었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001&aid=0004408061|제목=프로야구,진갑용-이상훈+4억 트레이드|날짜=1999-07-31|출판사=연합뉴스}}</ref> 2002년에 70경기 동안 133.2이닝을 소화하며 4승 10패 2세이브 6홀드와 93탈삼진 평균자책점 3.91의 커리어하이를 기록하였지만 2003년 기량 하락으로 방출되었다. 이후 2004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하였지만 단 2경기 출장에 그치고 시즌 후 은퇴하였다.
         은퇴 이후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신동주 (야구인)|신동주]]와 함께 스크린골프장을 개업하여 티칭 프로로 활동하였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로 활동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0078459|제목=전 프로야구 선수 신동주, 스크린 골프장 오픈|날짜=2007-06-28|출판사=OSEN}}</ref> 2017년에는 삼성에서 함께 뛰었던 [[전병호 (야구인)|전병호]]와 함께 피칭 아카데미를 개설하였다.<ref>{{뉴스 인용|url=https://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016&aid=0001187340|제목=전병호-이상훈, 피칭 아카데미 개설...'길잡이 되어주고 싶다'|날짜=2017-01-21|출판사=헤럴드경제}}</ref>
         {{토막글|야구인}}
  • 이선희 . . . . 14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1980년대 가수]][[분류:199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싱어송라이터]][[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198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새한국당]][[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계명문화대학교 교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기업인]][[분류:한산 이씨]][[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중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일본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타이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
  • 이성민 (야구선수) . . . . 1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특별우선지명([[NC 다이노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2일]] <br />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구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6년]]
         대구중학교, [[경북고등학교]]를 거쳐서 [[영남대학교]]에 진학하였다. [[영남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 직구 스피드가 147 km/h에 이르고 변화구 제구도 수준급이어서 스카우트 사이에서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 이전 부터 대졸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2012년]] [[8월 20일]]에 열린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윤형배 (1994년)|윤형배]]와 함께 특별 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ref>[http://news.hankooki.com/lpage/sports/201208/h20120820204711111960.htm "4할 승률 위하여" 발톱 드러낸 NC] - 한국일보</ref> [[2012년]] [[12월 5일]]에 열린 2012 [[야구인의 밤]]에서 우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ref>[http://star.fnnews.com/news/index.html?no=149144 '야구인의 밤' 영남대 이성민, 우수 선수상 수상 ] - 스타N뉴스</ref> [[대한민국의 대학 야구 대회|대학리그]] 4년 동안 17승 15패, 252 1/3이닝, 222탈삼진, 89볼넷,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였다.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특별우선지명을 받아 [[NC 다이노스]]에 입단하며 즉시 전력감 [[투수]]로 주목받았으나, 기대와 달리 시즌 초에는 별로 좋지 않았다. [[2013년]] [[4월 2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개막전에서 선발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하여 7회에 구원 등판하였으나 [[박종윤 (1982년)|박종윤]]에게 2점 홈런을 허용해 구단 첫 패전 [[투수]]가 됐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30402/54154104/1 ‘제 9구단’ NC, 1군 데뷔전에서 롯데에 영봉패] - 스포츠동아</ref> 이후 필승계투로 활동하였으나 기대에는 못 미치는 부진한 투구와 팔꿈치 통증까지 겹쳐 잠시 C팀(2군)에 내려가기도 했으며, 자신감을 되찾은 후 [[7월 14일]] 올스타 휴식기를 맞아 [[이재학 (야구 선수)|이재학]]을 대신해 1군에 등록된다.
         [[7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구원 등판해 1 2/3이닝 무실점 호투로 프로 데뷔 첫 승을 기록하였다. [[애덤 윌크|아담]]이 선발진에서 부진하고 부상과 팀 내 융화 문제까지 겹쳐 C팀 강등 후 [[트위터]]에 불만을 표시하자, [[김경문]] 감독은 [[애덤 윌크|아담]]을 대신해 그를 선발진에 넣었고 [[애덤 윌크|아담]]을 퇴출했다. [[2013년]] [[8월 31일]] [[KIA 타이거즈|KIA]]전에서 첫 선발승을 거두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0496 ‘1피안타’ NC 이성민, 선발 데뷔전에서 깜짝 승리] - 마이데일리</ref>
         * [[2012년]] 2012 [[야구인의 밤]] 우수선수상(대학)
  • 이현우 (가수) . . . . 14회 일치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8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미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참가자]][[분류:미국의 개신교도]][[분류:파슨스 디자인 스쿨 동문]][[분류:경원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한국계 미국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이라크 전쟁 반전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임현준 . . . . 1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1년]] [[4월 2일]] <br />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KIA 타이거즈|KIA]]전 구원
         * [[상무 야구단]] (2011년 ~ 2013년)
         |야구 월드컵 = [[2011년]] 파나마
         '''임현준'''(林玄埈, [[1988년]] [[12월 21일]] ~ )은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KBO (야구)|KBO]]에서 정말 희귀한 좌완 언더핸드 투수이다.
         [[대구고등학교]] 시절에는 [[1루수]]로 주로 활동했지만 제28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 당시 선수가 부족하여 깜짝 선발로 등판하였다. 경기에서 6⅓이닝을 4안타 무실점으로 막으며 [[북일고등학교]]를 상대로 승리하여 모교의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 [[경성대학교]] 진학하여 윤영환 감독으로부터 체계적인 [[투수]] 수업을 받은 뒤 입학하자마자 당시 4학년이었던 [[고창성]]과 함께 [[경성대학교]]의 간판 [[투수]]로 떠올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213906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삼성 새내기 좌완 임현준 "선동열 감독께 눈도장 받고 왔어요"] 《조이뉴스》 2010년 12월 5일</ref>
         [[2011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1년]] [[삼성 라이온즈]]의 4라운드 지명을 받아 입단했고, [[2011년]] [[4월 2일]] [[KIA 타이거즈|KIA]]와의 개막전에서 데뷔 첫 구원 등판하여 첫 구원 승을 기록하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104020266 '채태인 역전 만루포' 삼성 첫 승…KIA, 개막전 7연패] 《OSEN》</ref>
         ==[[상무 야구단]] 시절==
         [[2011년]] [[4월 16일]] [[두산 베어스|두산]]전에서 8회 초 타석에 들어선 [[정수빈]]이 기습 [[번트]]를 시도하고 그가 1루 베이스를 커버하려고 가는 순간 갑자기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에 정전이 발생하며 순식간에 모든 조명들이 꺼지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되었고, 결국 서스펜디드 게임이 선언되어 다음 날([[4월 17일]]) [[정수빈]] 타석부터 경기가 재개됐다.<ref>[http://www.mydaily.co.kr/news/read.html?newsid=201104180307382224&ext=na 대구구장 정전 사태는 민폐의 결정판] 《마이데일리》 2011년 4월 18일</ref><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6&aid=0002099786 '정전 등판' 임현준, "선발 등판하는 느낌"] 《스포츠조선》 2011년 4월 17일</ref>
         {{2011년 야구 월드컵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정성룡(야구선수) . . . . 14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84년/신인드래프트|1984년 삼성 라이온즈 1차 지명]] ||
         || [[박영진(야구)|박영진]](1982~1983) || → || '''정성룡(1984)''' || → || [[이해창(1953)|이해창]](1985~1986) ||
         [[삼성 라이온즈]]와 [[해태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야구선수. ~~골키퍼 [[정성룡]]과 이름이 같다.[* '''한자까지''' 똑같다., 심지어 출신고교도 같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재학 시절 김성범[* 1982년 [[이영민 타격상]] 수상자.], [[류명선]], 염창무, [[정윤수]], 최해명 등의 동기들과 팀의 첫 전국대회 진출을 이끌었지만 전국대회에서 준우승만 3번 하는 데 그쳤다. 이들 중 정성룡은 '''제2의 [[장효조]]'''라 불릴 정도로 타격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면서 당시 매서운 타격으로 정평난 포철공고 타선의 선두에 있었다. 이 때문에 고교 졸업 후 삼성에 1차 지명되어, 바로 프로에 입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고졸신인 3인''' 중 한 명이 되었다.[* 다른 두 명은 해태의 [[문희수]]와 롯데의 [[조용호]]. 84년 이들이 지명되기 전까지 신인드래프트에서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가 지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쟁쟁한 선배들이 자리 잡은 상태였기에 결국 백업이나 2군[* 당시 [[KBO 퓨처스리그|2군 리그]]가 있기 전이었지만 삼성에서는 이미 2군을 운용하고 있었다.]을 전전해야 했다. [[장효조]]가 1989년 롯데로 이적한 후 그의 10번을 물려받을 정도로 여전히 기대받는 유망주였으나, 그동안 정성룡은 오랜 2군 생활 속에 제2의 장효조가 아닌 제2의 [[정동진]]이라 불릴 정도로 살이 쪘다.
         1992년 시즌 종료 뒤 ~~왼손 유망주라면 사족을 못쓰는 [[김응용|코감독]]에 의해~~ [[해태 타이거즈]]로 트레이드되었는데, 그해 해태가 삼성에게 완봉을 당한 경기가 있었는데 그경기에서 연타석 홈런을 쳤기 때문인 것이 유력하다. 즉 그 시즌 홈런 3개중 2개를 코감독 앞에서 그것도 연타석으로 쳤으니 [[인생경기]]를 한 셈.[* 다음 해에 김성래와 양준혁이 괴물활약을 한 것을 보면.. 프로생활을 3년이나 연장하고 한국시리즈 우승반지도 꼈으니 영광이라고 할 수 있다.] 1993~1995년까지 해태의 몇 안되는 좌타자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원조 10번이었던 [[장효조]]에 대한 올드 삼빠들의 대한 그리움과 그 이후 10번을 단 [[양준혁]]의 인기에 의해 지금은 거의 잊혀지게 되었다. 그리고 해태에서 10번을 물려받은 선수는 당시 신인이였던 [[장성호]]였지만 1년만에 1번으로 갈아탔다. 공교롭게도 그 이후 10번을 단 선수가 [[최훈재]] 그리고 [[양준혁]].
         김응용 감독은 정성룡의 스윙을 보고 "저 스윙으로 3할을 못 치는 건 말이 안 된다."며 큰 기대를 했으며, 1993년 시즌에는 해태 타선의 몇 안 되는 좌타자로서 원포인트 대타나 지명타자로 쏠쏠한 활약을 하여 해태의 우승에 공헌했다. 이 해 타율은 0.246이고 홈런은 10개. 타율은 별로였지만 전반기에는 규정타석만 채우면 [[양준혁]]과 [[강기웅]] 등을 위협할정도로 3할1~2푼 수준을 유지했으나 후반기에서 까먹은 것. 홈런을 심심찮게 터뜨렸으며[* 1993년이 126경기 체제에서는 가장 적은 18명의 두자릿수 홈런 타자를 배출했다.]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한방이 많았다. 프로 데뷔 후 최다 출장인 107경기에 출장했다. 그리하여 당시 지명타자 골든글러브도 유력했으나 [[김기태(1969)|김기태]]의 지명도에 밀려[* 팀 성적은 물론이거니와 김기태 본인의 성적이 별로였던 점을 감안하면..] 타지 못했다.
         모교 포철공고에서 감독으로 있었고, 2004년 10월부터 1년간 강릉고 감독을 맡았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4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좌투좌타]] [[분류:해태 타이거즈]]
  • 정호용 . . . . 14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내무부 장관]][[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육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민주정의당]][[분류:박정희]][[분류:노태우]][[분류:김영삼]][[분류:하나회]][[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고급부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육군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
  • 김경식 (희극인) . . . . 13회 일치
         * [[MBC]] 《[[만화열전 - 공포의 외인구단]]》 - 마동탁 / 야구해설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9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SM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서울특별시/인물 . . . . 13회 일치
         * [[강동호(야구선수)|강동호]] - 양천구
         * [[김태원(야구선수)|김태원]] - 종로구
         * [[박민우(야구선수)|박민우]] - 마포구
         * [[소이현(야구선수)|소이현]] - 은평구
         * [[유지현(야구선수)|유지현]] - 구로구
         * [[이용호(야구)|이용호]] - 구로구
         * [[이재영(야구선수)|이재영]] - 서초구
         * [[이영하(야구선수)|이영하]] - 양천구
         * [[이병훈(야구)|이병훈]] - 영등포구
         * [[이종욱(야구선수)|이종욱]] - 중랑구
         * [[조성환(야구)|조성환]] - 도봉구
         * [[최재훈(야구선수)|최재훈]] - 강서구(서울)
         * [[추재현(야구선수)|추재현]] - 성동구
  • 이민아 (축구선수) . . . . 13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 2008 <br /> 2010 <br /> 2012-
         |국가대표팀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17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17]] <br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U-20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br /> {{국기그림|대한민국}} [[대한민국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 {{0}}{{0}}4 {{0}}{{0}}(0) <br /> {{0}}{{0}}7 {{0}}{{0}}(0) <br /> {{0}}17 {{0}}{{0}}(2)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 2015년 8월 8일
         |감독 연도 =
         |감독 클럽 =
         === 국가대표팀 ===
         * [http://www.kfa.or.kr/archive/player_history.php?search_val=%EC%9D%B4%EB%AF%BC%EC%95%84 국가대표팀 경기 기록]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축구 선수]][[분류:인천 현대제철 레드엔젤스의 축구 선수]][[분류:WK리그의 축구 선수]]
         [[분류:축구 미드필더]][[분류:포항여자전자고등학교 동문]][[분류:영진전문대학 동문]][[분류:대구상인초등학교 동문]][[분류:상원중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해외 진출 축구 선수]][[분류:일본의 외국인 축구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축구 참가 선수]]
  • 이장훈(배우) . . . . 13회 일치
         * [[JTBC]] 《[[으라차차 와이키키]]》 영화감독 역 (특별출연)
         * 《나에게오라》 (조연) -김영빈 감독
         * 《보스상륙작전》 (주조연’작두’역) –김성덕 감독
         * 《아무도모르른다》 (주인공) -이계벽 감독
         * 《[[아랑 (영화)|아랑]]》 (형사2 역) -안상훈 감독
         * 《가족연애사》 (주조연’벤처사업가’) -김성덕 감독
         * 《[[우아한 세계]]》 (주조연’용석’역) –한재림 감독
         * 《첫날밤》 (주인공) -강철규 감독
         * 《[[물고기 (영화)|물고기]]》 (주인공 전혁 역) -박홍민 감독
         * 《[[조선미녀 삼총사]]》 (조연’모석두’역) -박제현 감독
         [[분류:197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진동한 . . . . 1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61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고려대]] ||
         || 지도자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업고등학교]] 감독 (2014~2016년)[br] [[저니맨 외인구단]] 감독 (2017년)||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언더핸드 투수로 [[양일환]] - '''[[이태일]] - [[박충식]]'''으로 이어지는 삼성의 잠수함 투수 중 하나.
         1986년 한국시리즈 1차전 광주경기 때 3회에 구원투수로 등판하여 7회말까지 잘 막고 덕아웃으로 들어오다가 해태팬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고 교체되었다. 큰 부상은 아니었지만 투수는 [[김시진]]으로 교체되었고 이후 김시진이 불을 지르며 역전패했다. 한창 잘 던지고 있던 선수가 예기치 않은 부상으로 교체되고 경기마저 패하자 [[대구아재|삼성팬]]들은 분노했다. 그리고 3차전 대구경기에서도 삼성이 역전패를 당하자 분노한 삼성 팬들은 경기 후 해태 구단버스에 불을 질러 분풀이를 한 것. 이 구단버스 방화사건은 프로야구 관중 난동 사건하면 늘 언급이 되며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은퇴 후 쌍방울에서 스카우트로 있었다. 구미 도산초등학교 코치를 거쳐 도산초 감독으로 재직하다가 2014년에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감독으로 선임되어 3년간 지도를 하였다. 이후 2018년에 포항 대해초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 추창민 . . . . 13회 일치
         | 사진설명 = '광해' 추창민 감독 "'피에타' 이정진 노력, 놀랍다"
         | 직업 = [[영화 감독]]
         | 수상 = 2013년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추창민'''(1966년 ~ )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가]]이다.
         * [[2012년]] 제49회 [[대종상]] 감독상 《[[광해, 왕이 된 남자]]》
         * [[2013년]] 제49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 《[[광해, 왕이 된 남자]]》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
         {{대종상 감독}}
         {{토막글|영화 감독}}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편집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대학교 동문]]
  • 박근영 (야구인) . . . . 1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18순위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7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7년]]
         '''박근영'''(朴根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3년]] [[8월 2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포수]]이자, 현 [[KBO 리그]] 소속 [[심판 (스포츠)|심판]]이다.
         [[1996년]]에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 라이온즈]]의 2차 18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지만 고작 1군 3경기에 그쳐 거의 2군에서만 머무르다가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1998년]]부터 심판으로 활동 중이다.
         [[2013년]] [[6월 15일]] [[넥센 히어로즈]] 대 [[LG 트윈스]] 경기에선 5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아웃이 되어야 하는데 세이프로 판정하여 해당 타석을 포함하여 넥센이 8실점을 하는 사건이 일어나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 야구 위원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그를 2군 심판으로 강등하였다.
         [[2013년]] [[9월 12일]] [[두산 베어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에서도 [[손시헌]]의 내야안타 타구를 아웃으로 판정하였다. 3루 깊숙한 타구를 [[최정 (야구 선수)|최정]]이 잡아서 송구하였으나 송구가 빗나가면서 1루수 박정권의 발이 베이스에서 떨어졌다. 내야안타가 될 상황이었지만 1루심 박근영은 아웃을 선언하며 또다시 오심을 일으켰다. KBO는 그를 또다시 2군으로 강등하였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7&article_id=0002374984&redirect=true</ref>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심판]] [[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야구 심판]]
  • 박재현 (야구인) . . . . 1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6년]] 2차 4순위([[쌍방울 레이더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 [[경상중학교]] 야구부 코치 (1997년 ~ 2000년)
         * [[경북고등학교]] 야구부 코치 (2001년 ~ 2004년)
         * [[계명대학교]] 야구부 코치 (2005년 ~ 2013년)
         '''박재현'''(朴宰賢<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74년]] [[2월 8일]] ~ )은 전 [[한국 실업 야구]] [[현대 유니콘스|현대 피닉스]]의 [[내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1루 주루코치이다.
         ==야구선수 은퇴 후==
         [[경상중학교]], [[경북고등학교]], [[계명대학교]] 등 야구부 코치를 거쳐 [[kt 위즈]], [[삼성 라이온즈]]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다.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백상원 . . . . 1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0년]] 4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27일]] <br />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KIA 타이거즈|KIA]]전
         * [[상무 야구단]] (2011년 ~ 2012년)
         |야구 월드컵 = [[2011년]] 파나마
         ==[[상무 야구단]] 시절==
         시즌 후 곧바로 [[상무 야구단]]에 입대하여<ref>조이 뉴스 24 - 2010년 10월 26일 기사 [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523983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퓨처스 남부 리그 수위 타자 백상원, 삼성 내야의 미래"]</ref> 복무를 마치고 [[2012년]]에 제대했다.
         [[2013년]] [[4월 27일]] [[KIA 타이거즈|KIA]]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1군에 등록되어 그 날 경기에서 대수비로 출전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군에서 안타를 기록하지 못해 2군에 계속 머물러 있다가, [[김상수 (1990년)|김상수]]의 부상으로 다시 1군에 올라와 [[2013년]] [[10월 3일]] [[롯데 자이언츠|롯데]]전에서 [[김성배 (야구 선수)|김성배]]를 상대로 데뷔 첫 안타와 타점을 올렸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629325 '백상원을 아시나요' 삼성의 화수분 야구는 계속 된다] - OSEN</ref>
         {{2011년 야구 월드컵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수원 백씨]][[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송정현 . . . . 12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2008
         |국가대표팀=[[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2 {{0}}(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2009년]] [[1월 1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2008년]] [[10월 11일]] [[우즈베키스탄 축구 국가대표팀|우즈베키스탄]]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에 데뷔하여, 역대 최고령 [[A매치]] 데뷔 순위 4위에 올랐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2/soccer/general/2008/1012/20081012101020300000000_6108091842.html 허정무호 12경기 연속 무패…송정현 역대 최고령 데뷔 4위 ]</ref>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경북 드래곤즈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울산 현대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아주대학교 동문]][[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유승진 (필드하키 선수) . . . . 12회 일치
         |직업 = 하키 선수.감독
         고교 시대부터 한국 대표 선수로 활약,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우승에 공헌했다. [[1988년 하계 올림픽|1988년 하계 서울 올림픽]](10위), [[1996년 하계 올림픽|1996년 하계 애틀란다 올림픽]](5위)에서도 한국 대표로 출전했다. 1991년부터 남자하키 일본 리그 '表示灯'(현재의 나고야 프레이터(NAGOYA FRATER)) 선수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이 팀 감독에 취임했다.1996년에 일본 [[주쿄대학교]] 대학원 졸업을 하였고, 1996~2001년 일본 남자 하키 대표팀 코치, 2006~2007년 [[덴리 대학]] 여자 하키부 감독, 2006~2008년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수석코치로 활약했다. 2008년부터 여자 하키 일본 리그의 '코카콜라 웨스트' 감독을 맡았다. 2011년에는 같은해 현재 아시아 10명 밖에 없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코치 면허를 취득 했으며 2016년에는 [국제 하키 연맹] 공인 Coach Educator 자격과 함께 [아시아 하키연맹] 코칭 판넬에서 코치를 위한 코치 강습을 담당하고 있다. 2012년 10월 일본 여자 하키 대표팀 감독으로 임명됐다. 2016년부터 경상북도 체육회 여자하키팀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하키 선수]][[분류:대한민국의 하키 감독]][[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유열 (가수) . . . . 12회 일치
         |직업 = [[가수]] <br /> [[작사가]] <br /> [[뮤지컬 배우]] <br /> [[뮤지컬]] [[제작자|감독]] <br /> [[음반]] [[음악 프로듀서|프로듀서]]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학가요제 출신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뮤지컬 감독]][[분류:1986년 데뷔]][[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음악가]]
  • 이인 . . . . 12회 일치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19세기 한국 사람]][[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유학자]][[분류:유교 신자]][[분류:일제 강점기의 대학 교수]][[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조선어학회 사건]][[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국민당 (1948년) 당원]][[분류:한국독립당]][[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이승만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이승만| ]][[분류:메이지 대학 동문]][[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허건엽 . . . . 12회 일치
         || '''학력''' || 도산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2차 4라운드 전체 34순위]] ([[SK 와이번스]])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시절 65회 [[청룡기]]에서 [[순천 효천고등학교 야구부|효천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둔 적이 있다. 또, 63회 황금사자기에서 임찬규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적도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에서 SK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2014년]] 2군에 2점대 후반이라는 준수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1군에 콜업되지 않아 [[안치용(야구선수)|안치용]]처럼 "불교 등의 기독교를 제외한 다른 종교를 믿는 것은 아닌가" 하는 소리가 나왔고, 여기서 나온 별명이 '''[[석가모니|허가모니]]''', '''[[이슬람|허슬람]]'''~~허슬두가 아니다!~~ 이 있다. 다만 2군 기록 기준 30이닝을 던져 삼진(18개)보다 볼넷(22개)가 많은 점이 흠.
         그리고 2014 시즌 종료 이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지원했으며 11월 20일 최종 합격했다.
         이후 6월 15일 [[이홍구(야구선수)|이홍구]]와 함께 1군에서 말소됐고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에 등록되지 못했다.
         || 2015 ||<-13><|2>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93년 출생]][[분류:투수]][[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분류:상무 피닉스 야구단/전역]]
  • 황연석 . . . . 12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1995
         |국가대표팀=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국가대표팀 출장수(골)={{0}}{{0}}3 {{0}}(0)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감독 연도=2010-2012<br>2012-2014<br>2015<br>2016-2017<br>2018-
         |감독 클럽=[[청구고등학교]] (코치)<br />[[해성중학교]]<br />[[용남중학교]]<br>[[신갈고등학교]] (코치)<br>[[대전 시티즌]] (2군 코치)
         [[청구고등학교]] 코치를 거쳐 [[해성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현재 [[용남중학교]]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감독]][[분류:197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성남 FC의 축구 선수]][[분류:인천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고양 KB국민은행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서울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축구 공격수]][[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전 시티즌의 코칭스태프]]
  • 고아성 . . . . 11회 일치
         고아성은 6살 때인 1997년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 외환카드 광고 아역 모델로 연예계 데뷔했다.<ref>{{뉴스 인용 |제목 ='자체발광' 고아성 "은호원으로 희로애락 다 펼쳐…시즌2 희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01&aid=0009268211|출판사 =연합뉴스 |저자 =이정현|날짜 = 2017-05-16|확인날짜 =2017-09-07}}</ref> 이후 그는 2004년 어린이 드라마 《[[울라불라 블루짱]]》의 타이틀롤을 맡아 배우로서 정식 데뷔했다. 2006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2006년 영화)|괴물]]》에서 박강두([[송강호]])의 딸 역을 연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의 연기는 평단의 호평을 받아 대한민국영화연기대상 영스타상,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 [[디렉터스 컷 시상식]] 올해의 신인연기자상을 수상하였다.
         ! 감독
         | 제59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 초청작
         | 나도 영화 감독이다 2
         | 5부작<ref>{{뉴스 인용 |제목 =‘나도 영화 감독이다2’ 박성웅-고아성, 영화 제작자로 변신..열정 가득 |url =http://entertain.naver.com/read?oid=015&aid=0003478303|출판사 =한국경제 |저자 =고승아|날짜 = 2015-11-16|확인날짜 =2017-09-07}}</ref>
         | 게스트 (야구르지롱 돌직구 야구소녀)
         | 촬영감독들이 뽑은 여자인기상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김승대 . . . . 11회 일치
         ||<#ed0000> '''{{{#ffff00 청소년대표}}}'''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2경기) [br]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3]] (8경기 4골) ||
         '''하지만''' 이명주가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하고 아시안 게임 승선까지 불투명해지면서, 월드컵 브레이크 동안 중동의 [[알 아인]]으로 이적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이명주의 킬패스를 받으며 라인 브레이킹을 일삼던 김승대는 이명주 대신 중원을 지키게 된 김재성과 호흡이 맞지 않으며 득점력이 폭망했고, 결국 [[황선홍]] 감독은 이런 저런 수를 모두 써보다 결국 이명주의 빈자리를 채우지 못한 중앙 미드필더 복구가 우선이라는 생각에 김승대를 중미로 내리고 만다. 이명주가 나간 자리에 카타르에 임대로 보냈던 신진호가 복귀했으면 이명주의 역할을 그대로 맡기면서 김승대의 득점력을 보존할 수도 있었겠지만, ~~만악의 근원~~ 포항 프런트답게 미적지근하게 신진호와 협상하다 결국 신진호는 카타르의 다른 클럽으로 임대 연장보내 버렸다.
         시즌 종료 후 [[박태하]] 감독이 이끄는 중국 2부 리그 우승팀이자 2016년 [[중국 슈퍼 리그]]로 승격하는 [[옌볜 푸더]]로 이적설이 나왔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news&mod=read&office_id=468&article_id=0000086796|관련 기사]] ~~[[동열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명주도 없고, 승대도 없고]]~~ 그리고 결국 이적료 20억+@를 포항에 안겨주고 연변으로 이적했다. 포항으로서는 아쉽지만 포스코의 지원금이 또다시 삭감되어 70억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도, 김승대가 안겨준 이적료 덕분에 나머지 FA인 [[신화용]], [[황지수]], [[손준호]]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현대판 [[심청전|심청이]]~~
         이렇게 6월까지는 옌볜에서 선발에서 제외되는 등, 여러 문제점을 보였고, 서포터즈와 지역 언론은 김승대를 교체하라는 여론이 빗발쳤으나, 박태하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용병교체는 없다"며, 김승대는 시간을 더 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감독의 기대에 부응함인지, 김승대는 7월부터는 어느정도 활약을 하고 있다. 7월 9일 [[상하이 선화]]전에서 한골을 터트렸고, 7월 16일, [[최용수]]가 지휘하는 [[장쑤 쑤닝]]전에서 1골 1어시스트를 기록, 옌볜이 3:0으로 승리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또한 7월 23일에는 [[광저우 푸리]]전에서도 [[윤빛가람]]과 함께 대활약, 3-1 승리를 이끌었다. 이로서 팀은 3연승, 김승대는 3게임 연속골을 넣었다. 이 세팀은 모두 상위스플릿에 있는 강팀들로서, 옌볜은 10위 밖의 하위권에서 일약 8위 안으로 뛰어 올라 중위권으로 발돋움 했고, 김승대의 위상도 높아졌다.
         그리고 아시안 게임의 활약으로 인해 슈틸리케 감독에게 낙점받아 10월 파라과이, 코스타리카전 명단에 포함되기에 이른다. 그것도 [[이동국]]과 함께 2명밖에 없는 최전방 공격수 자리에 뽑혔다. 단, 파라과이전에서는 [[조영철]]이 톱으로 나오고, 교체도 이동국이 투입되면서 국대 데뷔전은 조금 미뤄졌다.~~그리고 결국 코스타리카전도 출전 못했다~~
         2015년 8월 동아시아컵 엔트리에 들었다. 이미 슈틸리케 감독에게 눈도장을 받은 [[이정협]], [[이용재(축구선수)|이용재]]에 이어서 대표팀에서 한동안 멀어졌던 김신욱까지 다시 뽑힌지라 공격수로는 뽑히지 못했고 미드필더로 선발되었다.
         2015년 8월 2일 중국전에서 선제 득점을 기록했다. 유럽파를 차출하지 못해 [[기성용]]이 빠진 상태에서 미드필러 라인을 어떻게 꾸릴 것인지 우려가 많았으나, 슈틸리케 감독은 뜻밖에도 원톱 이정협 밑에 김승대 [[이종호(축구선수)|이종호]] [[권창훈]] [[이재성(1992)|이재성]] 등 드리블러가 아닌 공간 침투와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배치하며 4-5-1과 4-3-3을 자유롭게 오가는 전형을 선보였다. 경기 초반에는 손발이 잘 맞지 않아 답답한 모습을 보였으나 차츰 이들의 연계가 맞물리기 시작하면서 중국 미드필더들은 속수무책, 글자 그대로 능욕을 당했다.
         [[김병수(축구인)|김병수]]감독에 의하면 [[http://sportalkorea.mt.co.kr/news/view_interview.php?gisa_uniq=2014052613515581|고등학교 때 측면에서 뛰었는데 대학교에서 가운데로 이동을 시켰다.]] 희한하게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데 가운데에서 프리롤을 주면 뭔가를 만들어낸다고... 순간 스피드가 좋으며 체력도 굉장히 좋아서 지구력으로는 대한민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정도라는 평가를 했다.
         [[분류:1991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옌볜 푸더/은퇴, 이적]] [[분류:포항 스틸러스/현역]]
  • 김양 (1953년) . . . . 1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안동 김씨 (구)]][[분류:김구 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국가보훈처장]][[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김대중]][[분류:문국현]][[분류:창조한국당]][[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국방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
  • 김윤동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4라운드]]([[KIA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7월 23일]]<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 [[상무 야구단]] (2014년 ~ 2015년)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2017년]]
         ==[[상무 야구단]] 시절==
         * 투구폼은 좋으나 특유의 새가슴기질을 고치치 않는 한 야구로 성공하기 힘들듯 한 예로 기아의 김희걸과 비슷한 유형임
         {{2017년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안동 김씨 (신)]][[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류명선(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계명대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쌍방울 레이더스에서 활동했다. 선발과 마무리를 오가며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까지 삼성 투수진을 지켰던 투수.
         계명대 재학 중인 1988 신인지명 때 삼성에 1차 지명을 받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 참가 때문에 대학 졸업 후 실업팀인 [[세일통상 야구단]]에 입단해 1989년에 삼성에 입단했다.
         프로 첫해인 1989년 4월 12일에는 첫 완투승을, 5월 24일에는 첫 완봉승을 거두는 등 14승 8패 1세이브의 성적을 기록하며 당시 [[김시진]]의 이적으로 자칫 약화될 수도 있었던 삼성 투수진을 [[김성길]]과 함께 같이 지켰다. 타격 2위를 차지한 강기웅과 함께 그해 삼성의 대표적인 유력 신인이었지만, 신인왕은 19승을 거두며 맹활약한 [[태평양 돌핀스]]의 [[박정현(야구선수)|박정현]]이 차지했다. 이듬해 [[이태일]]이 입단하며, 김성길 등과 함께 1990년대 초 삼성 선발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물론 이 시기에는 [[김상엽]]도 있었지만 1990년을 제외하면 기대 이하의 성적이었다.] 입단 동기였던 [[정윤수]]가 1990년 선발과 중무리를 오가며 혹사 당한 끝에 1991년 이후에는 위력이 크게 저하된 것을, 생각하면 내구성도 좋았던 편.
         1992년부터 점점 성적이 하락해 갔는데, 때마침 1993년에 등장한 [[박충식]] - [[김태한]] - [[김상엽]] - [[성준(야구선수)|성준]]으로 이어지는 삼성 선발진이 모두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그의 빈자리를 채워 나갔다. [[1993년 한국시리즈]]에서는 구원투수로 나와서 혼자 2패를 당해 당시 삼성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류명선에게는 불행 중 다행히도, 이들 2패는 광주와 잠실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것이었다. 만약 홈인 대구에서 패한 것이었다면, 더욱 큰 봉변을 당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특히 잠실에서 벌어진 6차전에서는 해태 김성한에게 역전 홈런을 맞았고, 이후 시리즈 전체의 판도가 해태에 기울어지면서 더욱 뼈아픈 장면이 되었다.
         이후 부진을 면치 못하다 결국 1995년 5월 [[김현욱(야구)|김현욱]]과 같이 쌍방울로 트레이드되었다.(류명선+김현욱↔[[최한림]]+윤혁) 쌍방울에서도 재기에 실패해 1996년 은퇴했다.
         은퇴 후 2004년 말 모교인 계명대 코치로 부임해, 2011년 감독으로 승격되었다. 참고로 류명선은 계명대 야구부 1기 출신.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65년 출생]][[분류:우완 투수]][[분류:우투우타]]
  • 류영수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 [[원광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0년 ~ 2013년)
         '''감독 경력'''
         * [[마산용마고등학교|마산상업고등학교]] 야구감독 (1979년 ~ 1982년)
         * [[MBC 청룡]] 2군 감독 (1988년)
         *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1991년)
         * [[현대 유니콘스]] 2군 감독 (1999년 ~ 2004년)
         {{토막글|야구인}}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고흥 류씨]]
  • 박세웅(1996) . . . . 11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삼성 라이온즈/선수단]]
         ||<:> '''학력''' || 대해초 - 포항중 -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2차 4라운드]] ([[SK 와이번스|SK]]) ||
         || [[김강석]](2014) || → || '''박세웅(2015)''' || → || [[이현석(야구선수)|이현석]](2016) ||
         || [[이승현(야구선수)|이승현]](2017) || → || '''박세웅(2018)''' || → || 현역 ||
         한 해 선배인 [[황영국]]과 동기인 [[주권(야구선수)|주권]]과 함께 2013년 [[청주고등학교 야구부|청주고]]의 돌풍을 주도하면서 맹활약했다. 비록 창단 40년만에 처음으로 전국 대회 결승에 오른 청주고의 돌풍은 협회장기와 전국체전 준우승으로 끝나며 아쉽게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당시 2학년이던 주권과 박세웅이 원투펀치를 이룰 청주고는 2014년 강력한 고교야구의 패권자로 꼽혔다. 그런데 주권은 기대대로 잘 했지만, 정작 박세웅이 썩 빼어낸 모습을 보이지는 못하면서 청주고의 돌풍은 아쉽게 2013년 한 해의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동명이인인 전 [[NC 다이노스]]의 [[포수]] [[박세웅(1993)|박세웅]]과는 [[청주고등학교 야구부]] 선후배 사이이다. 다만 3년 터울이기 때문에 같이 고교 생활을 한적은 없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96년 출생]][[분류:투수]][[분류:좌완 투수]][[분류:좌투좌타]]
  • 손전 . . . . 11회 일치
         |직업 = 연극배우 <br /> 영화배우 <br /> 연극연출가 <br /> 영화감독 <br /> 영화제작자
         '''손전'''(孫全, [[1910년]] [[1월 27일]] ~ [[1999년]] [[9월 8일]], 본명: '''손병철''', 孫秉喆)은 [[대한민국]]의 [[남자]] [[배우]], [[제작자]], [[영화감독|감독]]이다. 손전, 손일포, 한일호 등의 예명을 사용하였다. [[1925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대구공립농업학교]]를 졸업했으며, [[1930년]] [[니혼 대학]] 경제학과를 중퇴했다. 총 1천 5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였다.
         {{토막글|한국 배우|영화 감독}}
         [[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 배우]][[분류:1932년 데뷔]][[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제작자]][[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10년 태어남]][[분류:1999년 죽음]][[분류:밀양 손씨]][[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
  • 신동주(야구) . . . . 11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삼성 라이온즈]]와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전 야구 선수. 등번호는 37번(삼성) - 25번(해태) - 37번(KIA) - 40번(삼성, 2004) - 24번(삼성, 2005, 트레이드 전) - 52번(KIA, 2005) - 37번(KIA, 2006). [[마해영]]이 삼성으로 오기 전 [[이승엽]]-[[양준혁]]과 클린업을 구축하여 상대의 투수에게 공포를 선사하던 장본인. 그래서 [[임창용]]도 신동주가 해태로 이적하고 나서야 원래 등번호인 37번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삼성에서 상당한 활약을 하던 선수 치고는 항목이 엄청 짧다.~~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5번타자. ~~더불어 롯데 왕자의 난 덕에 기업인 동명이인에게 밀린 [[안습]]의 사나이~~
         1991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해 1992년에 데뷔했으며, [[백인천]] 감독의 휘하에 삼성의 중심 타선으로 자리잡았다. 롯데의 [[8888577]]의 암흑기였던 [[백인천]]이었으나 젊은 시절의 [[백인천]]은 1990년 LG의 우승을 이끌었는데다 삼성 감독으로서 [[최익성]], 신동주, [[이승엽]]의 타격 실력을 대폭 향상시킨 장본인이다. 1997년에는 도루 2개가 모자라 20-20을 달성하지 못했으나 21홈런에 .326에 .581의 장타율로 타율-장타율에서 [[이종범]]과 맞먹는 스탯을 자랑했다.[* 한편으로는 아쉬운 해였다. 이 해 외야 부문 [[KBO 골든글러브]]는 [[양준혁]], [[박재홍(야구)|박재홍]], [[이병규]]가 탔는데, [[양준혁]], 박재홍이야 압도적인 실력이니 그렇다 쳐도 [[이병규]]와 비교해서는 타율, 홈런 등에서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했음에도 골든글러브에서 떨어지며 결국 골든글러브는 인기투표임을 인증했다. ~~[[이병규]]도 2011년에 똑같이 당한 게 함정~~~~이병규는 그 해 신인왕인데 신인한테 인기에서 밀렸다고?~~] 게다가 그해 준플레이오프에서는 2개의 홈런을 쏘아올렸는데 1차전 전주경기에서는 결승홈런이었고 2차전 대구에서도 0:3에서 추격하는 홈런을 올렸다.[* 물론 그 준플레이오프는 선수생명의 마지막 불꽃을 태운 [[김상엽]]에게 mvp가 돌아갔다.] 1999년에는 .278 22홈런 26도루로 20-20을 달성하기도 하였다. 이 때 [[KBO 리그]] 역사상 전후무후한 기록을 세웠는데 이것은 1이닝 3도루이다.
         1999년 6월 24일 대구에서 벌어진 LG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 2회말 볼넷으로 출루한 뒤 2,3루 도루와 홈 스틸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대기록을 작성했다. 게다가 그의 이미지는 찬스에 강하며 '만루홈런의 사나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도 그럴것이 삼성에서 뛰었던 2000년까지 6개의 만루 아치를 그렸으며 그것은 [[김기태(1969)|김기태]](당시까지 8개)에 이은 2번째 기록이며 당시 한참 홈런을 많이 때리던~~먹튀의 [[흑역사]]로 상징되던~~ [[홍현우]](5개)보다도 많은 수치였다.[* 2000년 당시까지를 기준으로 [[김기태(1969)|김기태]]는 227홈런, [[홍현우]]는 173홈런을 때려냈다. 신동주의 홈런수는 82개에 불과했다. 그가 얼마나 만루에 강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러나 [[김기태(1969)|김기태]]와 [[마해영]] 등 거포영입에 혈안을 기울이던 삼성프런트의 정책에 따라 장타력이 그들에비해 어정쩡(?)한[* 물론 당시로 따져도 평균이상의 호쾌한 타구를 날리던 그였다.] 장타력을 가진 선수로 각인되어 [[김응용]] 감독 부임 직후 2001년 초 [[강영식]]과의 트레이드로 [[해태 타이거즈]]로 이적하여 해태-KIA에서도 주전 외야수로 뛰다가 2003년 시즌 후 KIA로 이적한 FA [[마해영]]의 보상선수로 친정팀인 삼성에 복귀했다. 2005년 시즌 중 최용호와의 트레이드로 다시 KIA로 오고 이듬해인 2006년 시즌 중 [[웨이버 공시]]되어 은퇴했다.
         2017년, [[김한수]] 타격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면서 단독으로 1군 타격코치를 맡았으나,[* 2011년 류중일 감독 부임 이후 삼성에는 줄곧 1군에 2명의 타격코치를 뒀다.] 삼성 라이온즈가 '''02 롯데''', '''13 한화''' 수준의 막장 경기력을 4월 내내 보여 주자 수비코치 [[이윤효]]와 묶여서 3군으로 강등되었다. 대신 [[김종훈(1972)|김종훈]]이 1군 타격코치로 올라왔으며, [[박진만]]도 수비코치로 왔다. 그리고 [[강기웅]]이 3군에서 2군으로 이동했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72년 출생]] [[분류:타자]] [[분류:외야수]] [[분류:우투우타]]
  • 에릭 (가수) . . . . 11회 일치
         [[분류:신화의 일원]][[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신화컴퍼니 소속]][[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이병규 (1983년)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6년]] [[7월 7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5년]] 일본
         '''이병규'''(李柄奎<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759 |날짜=2009-03-10 }}</ref>, [[1983년]] [[10월 9일]] ~ )는 [[KBO 리그]] [[롯데 자이언츠]]의 [[외야수]], [[내야수]], [[지명타자]]이다.
         [[2010년]] [[박종훈 (1959년)|박종훈]]이 감독으로 부임한 후 [[오지환]]과 함께 많은 기회를 잡아 103경기에 출장하여 12홈런, 3할대 타율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4160031 '작뱅' 이병규, 경기력으로 내뿜은 진가] - OSEN</ref> 입단 당시 [[1루수]]였으나 [[2010년]]부터 [[외야수]]를 겸했다.
         [[2012년]]부터 다시 본업인 [[1루수]]로 [[최동수 (야구인)|최동수]]와 번갈아가며 출장했고, [[2012년]] 시즌 후 10월 무릎 수술을 받고 재활했다. [[넥센 히어로즈]]전에 특히 강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2013년]] 2012년 10월에 무릎 수술 후 2013년에는 초반에 복귀하지 못하고 2군에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후반기에 복귀하였다.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2014년]] [[LG 트윈스]] 감독이 [[양상문]]으로 바뀌면서 세대 교체의 대표적인 케이스로 꼽혔는데 그가 팀이 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올라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었다. 116경기에 출전하여 360타수 110안타, 16홈런, 87타점, 3할대 타율로 커리어하이를 기록했다. 2014년부터 팀의 4번 타자를 주로 맡았다. 특유의 중장거리포와 깔끔한 스윙을 갖고 있어서 타격에서의 재능이 뛰어났다.
         [[2016년]]에는 작년의 성적 부진을 이유로 연봉이 1억 5,600만원으로 감소했지만 2016년에도 당시 감독이었던 [[양상문]]의 믿음으로 [[LG 트윈스]]의 4번 타자 자리를 맡았다.<ref>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9&aid=0003291199 ‘이병규 끝내기타’ LG, 한화에 재역전승...개막 2연승 질주 ] - OSEN</ref>
         [[LG 트윈스]] 시절 [[이병규 (1974년)|이병규]]와 구별짓기 위해 '작은'이라는 뜻의 '작뱅', [[김기태 (1969년)|김기태]]가 [[LG 트윈스]] 감독이었을 때 '작뱅'이라는 별명이 위축된다고 '빅뱅'이라고 불렸다.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롯뱅'이라고 불린다.
  • 이상목 (야구선수)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0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0년]] [[6월 11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LG 트윈스|LG]]전 구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8년]] [[10월 4일]] <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대표적인 [[포크볼]] 투수이며 [[1990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였지만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해 [[1993년]] 시즌 중에 [[포수]] [[박선일]]을 상대로 [[빙그레 이글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빙그레에 이적한 후 선발 투수로 자리매김하였고 시속 140km대의 직구와 낙차 큰 [[포크볼]]로 많은 승수를 얻었으며 [[1999년]] [[한화 이글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멤버로 활동했다. [[2003년]]에 15승 7패를 기록하여 한화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보낸 후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였다. 그러나 [[2006년]]을 제외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해 [[2007년]]에 방출되었으며 [[선동열]]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08년]]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로 복귀했다.
         [[정경훈 (야구인)|정경훈]]의 소개로 현재는 [[서울특별시]]에서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사회인 야구도 병행 중이다.<ref>[http://sports.donga.com/3/all/20120215/44075265/3 이상목 “다시 잡은 야구공…마구, 마구 던졌죠] - 동아일보</ref>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빙그레 이글스 선수]][[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한국 프로 야구 100승 클럽]][[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이상오 . . . . 11회 일치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69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
         [[분류:일제 강점기의 스포츠 평론가]][[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구]][[분류:한국독립당]][[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과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역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호세이 대학 동문]]
  • 이상호 (1989년)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4월 2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대주자
         * [[상무 야구단]] (2015년 ~ 2016년)
         [[10월 9일]]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삼성 라이온즈|삼성]]전에서 [[차우찬]]을 상대로 솔로 홈런을 기록하며 데뷔 첫 홈런을 기록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09977238 NC 이상호, 차우찬에게서 데뷔 첫 홈런] - OSEN</ref>
         ====[[2014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준플레이오프]]====
         ==[[상무 야구단]] 시절==
         [[12월 22일]] [[상무 야구단]]에 [[김희원 (야구 선수)|김희원]], [[권희동]]과 함께 2015년에 입대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7257485 상무 야구단, 이용찬 등 17명 합격자 발표 ] - 연합뉴스</ref>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강릉영동대학교 동문]][[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최충연 . . . . 11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1차 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8월 25일]] <br />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KIA 타이거즈|KIA]]전 선발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금메달|[[2018년 아시안 게임|2018년 자카르타-팔렘방]]|[[야구]]}}
         * 제 27회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국가대표
         * 제 43회 봉황대기 전국 고교 야구 대회 최우수 선수
         {{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야구 참가 선수]]
  • 하이큐/267화 . . . . 11회 일치
          * 사루카와의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은 코즈메가 쓰러지는 모습에 주목했다. 자신의 가르침이, 스승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가르침이 실현되는 순간이었다. 그가 현역 선수였던 시절 네코마타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연습 후 늘어선 선수들 앞에서 네코마타 감독은 자신의 경기론을 펼쳤다. 한 번 셧다운을 먹여주는 것보다 다섯 번의 원터치가, 열 번의 압박이 더 낫다. 한 번 완벽한 A패스를 구현하는 것 보다 반드시 올리는 다섯 번의 B패스[* 세터 정위치에서 1, 2m 이내로 보내는 패스], 열 번의 C패스[* 1st템포 공격이 어려운 리시브]가 훨씬 낫다. 상대가 강할 수록 시합 전체의 흐름을 보는 눈이 중요하다. 하나같이 지금의 시시오 감독이 있게 한 가르침이었다. 그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한 줄로 요약됐다.
          시시오 감독이 쌓은 수수학 100개는 생각보다 일찍 살아나고 있었다. 코즈메는 야마모토의 부축으로 일어나며 스스로 꼴사납다고 투덜거렸다. 아직 2세트일 뿐이라며. 다행히 별다른 부상은 없었고 손이 살짝 까진 정도였다. 옆에서 불평을 들은 쿠로오가 대꾸했다.
          * "후카타니"의 서브. 사루카와 측은 이 여세를 몰아갈 생각이었다. 그러나 서브가 좌측으로 너무 빠지면서 아웃라인을 벗어났다. 네코마의 득점. 아슬아슬한 고비에서 한숨 돌린 네코마. 하지만 안심하긴 일렀다. 여전히 흐름은 사루카와 측에 있었고 이번 세트를 확실하게 받아갈 작정이었다. 다시 이어지는 공방. 사루카와어ㅢ "시라미네"가 때린 스파이크가 블록을 뚫는다. 후방에서 야쿠가 정면에서 받는다. 높이 뜨는 공. 시시오 감독은 그 순간에 무슨 불안을 느낀 걸까? 문득 서두르지 말라고 당부했다.
          코즈메를 거쳐 쿠로오의 스파이크. 시시오 감독의 불안과 달리 사루카와는 빈틈이 없었다. "와쿠라"의 블록에 원터치로 걸린다. "카나자와"와 "후카타니"가 차례로 살려서 다시 떠오른 공. 좌측에서 "시라미네"가 뛰어오른다. 카이, 쿠로오과 블록을 뛰었지만 우측에 치우친 탓에 중앙이 텅 비었다. 놓치지 않고 그 위치로 밀어넣는 시라미네. 후쿠나가가 눈치 빠르게 달려나왔지만 리시브가 불안정했다. 짧고 흔들거리게 떠오르는 공.
          * 매치 포인트 직전에서 동점. 주장 시라미네는 이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동료들을 돌아보며 상대가 자신들에게 익숙해졌지만 "완벽하진 않다"는 말로 독려했다. 선수들은 한결같이 동의했다. 다만 코트 밖의 시시오 감독은 조금 달랐다. 뭔가가 석연치 않다. 분명 불안요소가 있다. 그게 뭔지 정확하게 짚을 수가 없을 뿐. 이런 상태에서 플레이가 재개됐다. 야마모토의 2회차 서브. 네트에 걸리며 실점. 서브권이 다시 사루카와에 돌아왔다. "와쿠치"의 서브. 느리고 앞쪽에 떨어지는 서브였다. 야쿠가 있는 위치였다. 무난하게 받을 수 있는 공이었지만, 실수가 생겼다. 어중간하게 흘리는 리시브. 다이쇼는 이 어이없는 실책이라 쓴소릴 했지만 눈을 의심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했다. 시시오 감독도, 상황을 낙관하던 시라미네도 같은 걸 보았다. 들었다는 표현이 좀 더 정확했다. 마치 친절하게 안내하는 코즈메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불안요소의 정체. 코즈메는 세트업을 위해 네트의 우중간으로 이동하는 것 같았다. 쿠로오가 뒤따라오며 뛸 준비를 했다. 하지만 시라미네는 위화감을 느꼈다. 시시오감독 보다 조금 늦게. 아군의 블록이 쿠로오를 따라 중앙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네코마의 좌측이 넓게 열렸고 그 뒤에서 후쿠나가가 뛰어나오는게 보였다. 함정. 블록을 중앙으로 끌어당기기 위한 연막작전. 그 리시브도 계산이었을까?
  • 함중아 . . . . 11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사이키델릭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록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피아노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키보드 연주자]][[분류:김현식]][[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197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명지전문대학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홍콩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스코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오스트레일리아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홍서범 . . . . 11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8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비디오 자키]][[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남양 홍씨 (당홍)]]
  • 김대륙 . . . . 10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롯데 자이언츠/선수단, top2=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대해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동아대학교|동아대]] ||
         롯데 자이언츠 소속의 야구선수.
         시즌 후 상무 야구단에 [[김준태(야구선수)|김준태]]와 함께 지원했지만 최종 합격한 김준태와 달리 최종 합격자 명단에 들지 못했다.
          * 잘 생겼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6/11/2015061103946.html|#언론은 벌써 롯데의 아이돌 취급]] ~~그래서 벌써 얼빠들이 많이 생겼다~~ 이 때문에 본인도 고민이 많은 듯.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112&article_id=0002712527&redirect=false|롯데 김대륙, "외모 아닌 야구로 보여주고 싶다"]] 롯데 팬들은 [[김원중(야구선수)|김원중]]과 함께 묶어 팀 외모 투탑으로 인정해주지만 생긴 만큼 야구를 했더라면(…)이라고 평가한다.
         [각주][[분류:1992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김태한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2년 한국프로야구|1992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3년 한국프로야구|2003년]] [[6월 20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 전 [[구원 투수|구원]]
         [[199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2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으며, [[삼성 라이온즈]]의 좌완 [[투수]] 중 드물게 [[1993년]] ~ [[1994년]] 2년 연속 10승대를 기록하였다.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911691 야구의 추억, 여든 네 번째] 93년 각별한 울림을 줬던 이름, 김태한
         * [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itcherDetail1.aspx?pcode=92401 김태한] - [[KBO (야구)|KBO]]
  • 김현정 (1979년) . . . . 10회 일치
         * 2000년 《[[해변으로 가다]]》 남경 역 쿠엔필름 (김인수 감독)
         * 2004년 《[[마지막 늑대]]》두미 역/ 제네시스 필름 (구자홍 감독)
         * 2004년 《경복궁》 /여자 역/ (권지연 감독)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배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김천시 출신]]
  • 문호근 . . . . 10회 일치
         | 소속 = 前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
         [[1967년]] [[피아노 연주자|피아니스트]] 첫 데뷔를 한 그는 이후 피아니스트 활동을 접고 1970년대 이래 각종 오페라를 연출하였으며, 진보적인 예술인단체인 민예총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이후 [[1997년]]부터 [[예술의 전당|서울 예술의 전당]] 공연예술감독관으로 재직하던 중, [[2001년]] [[5월 17일]] 56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ref>{{뉴스 인용|성1=연합뉴스 |제목=오페라 연출가 문호근씨 타계 |url=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9000000/2001/05/009000000200105171428773.html |날짜=2001-05-17 |확인날짜=2018-09-05 |뉴스=한겨레신문}}</ref>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고전 피아노 연주자]][[분류:1967년 데뷔]][[분류:오페라 연출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
         [[분류:심장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남평 문씨]][[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음악대학 동문]][[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독일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뮌헨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연극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문익환]][[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박근혜 . . . . 10회 일치
         정수장학회 이사장을 겸임하였을 때의 섭외비 탈루 의혹도 제기되었다. '수억 원의 섭외비에 대한 세금을 탈세하였다는 보도가 나오자<ref name="chung01"/> 그는 "매년 감독 관청에 보고했으나 세금 의무가 있는지 몰랐다. 법이 바뀌어 소득세를 내야 했으나 실무진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누락되었다. 퇴직금을 중간 정산해 납부하였다.<ref name="chung01"/>"고 해명했다. 98년 국회의원 당선 이후 그는 [[정수장학회]]의 이사장 및 비상근 이사를 역임하기도 하였다.<ref name="chung01"/> 그러나 이때 급여를 받아 횡령이라는 주장이 나왔다.<ref name="chung01"/> 그는 "출근을 안 한 게 아니라 일주일에 2, 3번 가서 결재하였고, 행사가 있으면 가는 등 이사장 일을 다 하였다. 횡령은 동의할 수 없다.<ref name="chung01"/>'고 해명하였고, 법원은 이에 대한 조사 결과, 박근혜의 손을 들어주었다.
         [[분류:박근혜]][[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분류:탄핵 절차가 진행된 공직자]][[분류:서강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후보]][[분류: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후보]][[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6공화국]][[분류:박근혜 정부]][[분류:박정희]][[분류:박성빈 가]][[분류:고령 박씨]][[분류:여자 대통령]][[분류:친박]][[분류:국가원수의 자녀]][[분류:보스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한민국의 무신론자]]
  • 박종윤 (1993년)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2라운드]] ([[넥센 히어로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6월 21일]] <br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7년]] [[6월 2일]] <br /> [[고척스카이돔|고척]]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 [[상무 야구단]] (2014년 ~ 2015년)
         '''박종윤'''(朴鐘允<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3년]] [[2월 9일]] ~ )은 전 [[KBO 리그]]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이다.
         ==[[상무 야구단]] 시절==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상무 야구단 선수]]
  • 박태호 (야구인)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은퇴 이후 모교인 [[대구고등학교]] 감독과 청소년 야구 국가대표팀을 거쳐 현재 [[영남대학교]] 감독을 맡고 있다.
         {{2009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토막글|야구인}}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야구 감독]][[분류:롯데 자이언츠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안영준 . . . . 10회 일치
         삼광초-용산중-경복고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저학년 시절부터 실전에 투입되어 활약하였다. 3학년 시절에는 팀의 주축선수로 활약하였으며, 4학년 시절에는 주장인 [[허훈]]과 팀의 챔피언결정전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허재]]감독의 아들이자 [[허웅]]의 동생인 주장 [[허훈]]에 가려져있긴 하지만, 묵묵히 자기 할 일을 다하는 선수이다.
         드래프티 동기인 허훈과 양홍석도 소속팀 kt에서 활약 중이고 안영준은 팀 성적에서, 허훈은 개인 성적에서 상대방보다 앞서 있었기에 신인왕에 어느 선수가 적합한지 여러 의견이 오가는 중 뜬금없이 3월 9일 [[유재학]] 감독이 기자들의 신인왕 관련 질문에“자질만 놓고 보면 양홍석이 안영준보다 훨씬 낫다”, “양홍석은 국가대표가 될 수 있지만, 안영준은 지금처럼 하면 국가대표에 뽑히기 힘들다. 가지고 있는 기본 자질이 다르다”라고 평가한 보도가 나왔다. [[http://www.basketkorea.com/news/articleView.html?idxno=178063|기사]] 유재학 감독이 국가대표 선발 주무 부처라고 할 수 있는 농구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순 있겠지만 동시에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두고 경쟁하던 팀의 감독이니만큼 언론에 대고 한 본 발언이 적절한지에 대해선 설왕설래가 있었다.
         기사가 나온 하루 뒤인 3월 10일 모비스전에서 보란 듯이 인유어페이스덩크를 성공시키고 DB전에서는 20득점을 올리면서 팀의 승리를 견인했다. 유재학 감독의 발언이 자극이 된 듯 하다.
         전주 KCC와의 4강 플레이오프에서도 상대팀의 에이스인 에밋을 잘 수비하면서도 필요한 순간에 외곽슛을 성공시키며 활약했다. 1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야투율 100%), 2차전 3점 2개 포함 10득점, 3차전 13득점 4리바운드, 최준용이 부상으로 결장해 활약이 절실했던 4차전에서도 파울트러블로 고생하면서도 3점 3개 포함 16득점 6리바운드로 펄펄 날며 이번에는 팀을 챔피언 결정전으로 올려놓았다. 4차전 4쿼터에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은 옥에 티. 신인답지 않게 터프한 상황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3점을 던지는 모습에 문경은 감독에게 강심장이라는 찬사를 들었다.
         SK나이츠가 18년만에 우승하면서 신인왕+챔피언결정전 우승에 성공한 역대 6번째 선수가 되었다. 소속팀이 워낙 오랫동안 무관으로 고생했던지라 너는 축복받은 선수다라고 선배들이 말하는 듯. 안영준 본인도 대학 우승 이후 곧바로 프로에서 우승하는 행운을 누리게 되었다. SK 나이츠 국내 선수들 중에서 챔피언결정전 평균출장시간이 28.1분으로 팀내 최장출장시간을 기록했다. 첫 시즌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대활약. 신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면서 성장시키는 스타일의 문경은 감독 체제하에서 발전이 기대되는 선수다.
         좋은 피지컬 능력을 이용한 돌파, 적극적인 수비가담, 그리고 리바운드에 강점이 있다. 이 부분은 프로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야투 기복이 존재하며 대학 4학년 기준 3점슛 성공률은 26.19%(22/84) 로 다소 떨어졌다. 드래프트 전 평가는 외곽 능력이 조금 떨어지는 슬래셔에 가깝다는 평가였고, 프로에서는 대학무대에서의 활약을 이어갈 수 있을지 의문부호가 많이 존재했다. 하지만 프로 진출 후 문경은 감독에게 슈팅폼 수정을 받은 후 3점슛 정확도가 매우 상승한 케이스이다. 팀 선배 [[최부경]]과 함께 경기 2시간 전부터 슈팅연습을 할 정도로 노력을 보인 끝에 데뷔시즌부터 본인의 약점이였던 3점슛을 크게 개선시켰다.
          * [[서울 SK 나이츠]]에서 지명을 한다면 1년 선배인 [[최준용(농구선수)|최준용]]과 만날 가능성이 높다. [[서울 SK 나이츠]] 감독인 [[문경은]]이 "[[허훈]], [[양홍석(농구선수)|양홍석]], [[유현준(농구선수)|유현준]]은 어차피 앞에서 뽑힐 것이고, 우리 순번에서는 [[안영준]]과 [[김국찬]]이 남아있을 것 같은데 우리 팀에는 [[김국찬]]보다 [[안영준]]이 더 어울린다"고 애기하였다. 왜냐하면 슈가를 뽑아봤자 변기훈과 화이트와 롤이 겹치는데다, SK의 백업 포워드가 [[김우겸]], [[함준후]] 정도라는 걸 감안한다면 포워드인 안영준을 뽑는 것이 선수풀의 유지를 위해서는 더 좋다는 시각. 그리고 이 예상처럼 문경은 감독은 안영준을 뽑았고, 김국찬은 다음 순위로 KCC로 갔다.
  • 이광훈 (축구선수) . . . . 10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2011-2013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0}}11 {{0}}(2)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2013년]] [[8월 10일]]
         |감독 연도=
         |감독 클럽=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축구 공격수]][[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수원 FC의 축구 선수]][[분류:강릉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청주 시티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K3리그의 축구 선수]][[분류:포항제철중학교 동문]][[분류:포항제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FIFA U-20 월드컵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이상민 (야구선수)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7라운드]]([[NC 다이노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6월 15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 [[경찰 야구단]] (2016년 ~ 2017년)
         [[동의대학교]] 3학년 때인 [[2011년]]에 [[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 호투하여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전체 60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퓨처스리그 15경기에 등판해 5홀드, 평균자책점 0으로 가능성을 인정받았으며, [[2013년]] [[6월 15일]]에 1군에 올라왔다. 이 날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여 0.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109&article_id=0002556327 '아기공룡' 이상민의 성공적인 1군 데뷔전] - OSEN</ref>
         ==[[경찰 야구단]] 시절==
         {{토막글|야구인}}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이상훈 (1987년)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4라운드([[한화 이글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0년]] [[7월 13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대타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6년]] [[10월 6일]]<br>[[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KIA 타이거즈|KIA]]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2009년 삿포로
         '''이상훈'''(李相勳<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7년]] [[5월 4일]] ~ )은 전 [[KBO 리그]] [[kt 위즈]]의 [[외야수]]이자,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전력분석원이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0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토막글|야구인}}
  • 이시형 (1934년) . . . . 10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심리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신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차의과학대학교 교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서울사이버대학교 교수]][[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원광디지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전상렬 . . . . 10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1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92년]] [[9월 4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05년]]
         '''전상렬''' (全商烈, [[1972년]] [[6월 12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로, 현재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2군 작전·주루코치다.
         [[대구상원고등학교|대구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2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1997년]] 삼성에서 방출된 뒤 [[한화 이글스]]로 옮겼고, 한화 시절부터 조금씩 존재감을 알렸다. [[1999년]]에 [[투수]] [[김경원 (야구인)|김경원]]을 상대로 [[내야수]] [[홍원기 (야구인)|홍원기]]와 함께 [[두산 베어스]]에 트레이드되었다. 늘 백업으로 뛰었지만 발이 빨라 [[2004년]]에는 [[도루]] 8위를 기록했으며, [[2005년]]에는 [[2004년]] 병역비리 사건으로 주축들이 대거 빠지게 되어 최하위를 예상하였던 두산의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6년]]에는 FA 계약으로 2년에 총 4억원에 계약을 맺었다.<ref>{{뉴스 인용|url=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109&aid=0000024857&|저자=박선양|출판사=OSEN|제목='늦깎이 스타' 전상렬, 두산과 2년 4억원에 FA 계약|날짜=2006-01-15}}</ref> [[2009년]]을 마지막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ref>[http://sportsworldi.segye.com/Articles/Sports/BaseBall/Article.asp?aid=20091029005501&subctg1=05&subctg2=00 두산, 이승학·정원석 등 방출] - 세계일보</ref> 보기보다 조숙한 얼굴로 '할매'라는 별명이 있어서,<ref>[http://joynews.inews24.com/php/news_view.php?g_menu=702120&g_serial=391182 최고참 전상렬, "은퇴는 사절, 불혹까지 뛴다"] - 조이뉴스24</ref> 김인식 감독이 "대타 할매" 라고 심판에게 대타 기용 사인을 전달할 때 심판들이 바로 그를 대타로 낸다고 알아차릴 정도였다.<ref>[http://osen.mt.co.kr/news/view.html?gid=G1009190045 '신할매' 정수빈, 이틀 연속 불 뿜은 본능] - OSEN</ref>
         ==야구선수 은퇴 후==
  • 하이큐/268화 . . . . 10회 일치
          * 작전은 성공하고 사루카와 진영은 혼란에 빠지지만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금방 선수들을 다잡으며 쉽게 주도권을 내주지 않는다.
          표적이 된 코즈메는 "비책이 떠올라 전혀 안 피곤하게 이기고 싶다"는 택도 없는 말을 했다. [[쿠로오 테츠로]]와 야마모토가 "멍청한 소리"라고 입을 모았다.[[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이 좀 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상대가 끈기와 인내를 무기로 나온다면 이쪽도 그렇게 나가야 한다는 것. 정공법. 주장의 견해도 같았다.
          네코마타 감독은 이 정도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자신이 오랜동안 가르쳐온 원칙이 실현되고 있었다. 그렇기에 코즈메가 내놓은 또다른 책략은 그의 가르침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사루카와의 블록은 기만한 [[카이 노부유키]]의 스파이크. 2세트 들어 두 번째 동점을 허용한 사루카와가 술렁인다. 방금 전 플레이는 얼마나 많은 것을 암시하는가? "의도적으로 흔들린 리시브"라면 무엇을 의미하는가? 처음부터 블록을 유인하고 있던 건가? 그것이 맞다면 대체 언제부터? 의문이 꼬리를 문다. 물론 우연일 수도 있다. 괜한 짐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선 생각해야 할 건 추격을 떨쳐내는 것. 이 세트를 가져가고 역전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깨어진 그릇을 되돌릴 수 없듯 흔들린 확신은 되돌릴 수 없었다. 대체 언제부터? 끈질긴 물음표. 적을 조종하고 있다고 믿었기에 적에게 조종 당하고 있다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그런 선수들의 머릿속을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는 정확히 읽고 있었다.
          여기서 사루카와의 두 번째 TO. 네코마타 감독이 보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 시시오 감독에겐 상황을 타개할 만한 명쾌한 해답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그런건 처음부터 필요가 없었다.
          그는 주위를 환기시켰다. 사루카와의 전략은 잘 먹혀들고 있다. 코즈메가 진이 빠진 지경이 된건 변함없다. 상대는 전통의 강호 네코마. 어려운 적인게 확실하지만 비등한 상황을 이끌어냈다. 그는 이 객관적인 사실들을 새삼 강조하며 선수들을 다잡았다. 이대로 조금만 더 밀어붙이자, 시시오 감독의 정론이 먹혀들었다. 다시 안정을 되찾아가는 사루카와 진영을 곁눈질하며, 코즈메는 매우 성가셔했다.
          * 시합재개. 돌아온 사루카와 선수들은 "시합이 길어질 수록 힘든 건 네코마 쪽"이란 대전제를 확실히 되새긴 상태였다. 코즈메가 굳이 이 시점에 "흔들었"던 건 모두가 사루카와의 공격에 익숙해지는 시점, 그리고 사루카와가 승리를 목전에 두고 성급해지는 시점을 동시에 노린 것이었다. 이 기세를 몰아 그대로 연속 득점하는 걸로 게임을 끝낼 생각이었는데, 시시오 감독이 그렇게 두지 않았다.
          양측 벤치에서는 해볼 수 있는게 별로 없었다. 시시오 감독은 사태를 관망하며 끝까지 자신의 책략과 선수들을 믿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단지 타마유키에게 워밍업을 시키며 교체할 시기를 고르고 있을 뿐이다.
  • 구명환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4년]] 4차 5라운드([[두산 베어스]])
         * [[KBO (야구)|KBO]] 심판위원(2011`~ '''현재''')
         2003년 두산 베어스에 입단하였다. 선수 당시 등번호는 44번이었다. 2011년 4월부터 한국야구위원회 심판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8년 4월 19일 [[수원야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즈]]-[[kt 위즈]]전에서 주심을 맡았을 때 경기 중 일부 타자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을 나타냈고, 판정을 비판하는 여론이 있었다.<ref>{{뉴스 인용|제목=4월 19일 비교적 정확했던 구명환 심판…어떻게 `괴물`이 됐나|url=http://sports.mk.co.kr/view.php?year=2018&no=265344|날짜=2018-04-26|출판사=매일경제|확인날짜=2018-04-30}}</ref>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분류:구씨]][[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한민국야구 심판]][[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내당초등학교 동문]]
  • 김승관 . . . . 9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옥산초-경복중-[[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고]] ||
         || '''지도자''' || [[대구상원고등학교 야구부|대구상원고등학교]] 코치 [br] 롯데 자이언츠 3군 타격코치 (2015~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17) [br]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17~ ) ||
         [[삼성 라이온즈]]에 오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에게 따라다니던 딱지는 [[2군 본즈|2군 홈런왕]]이었다. 그럼에도 본인이 좋아해 온 팀이자 고향 팀에 몸담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2004년 7월 12일 투수 [[노장진]]과 함께 외야수 [[김대익]], 투수 [[박석진]]을 상대로 [[롯데 자이언츠]]에 [[트레이드]]되고 말았다. 2006년 7월 16일에는 친정 팀 삼성을 상대로 [[투수]] [[임동규(야구)|임동규]]에게 선제 결승 쓰리런 홈런을 작렬시키며 롯데의 스코어 14:0의 대승을 이끌기도 했다.
         은퇴 후 [[박영진(야구)|박영진]] 감독의 부름을 받아 모교인 [[대구 상원고등학교 야구부|상원고등학교]]의 타격코치로 부임했으며, 잠시 투수코치를 겸하기도 했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북구(대구) 출신 인물]][[분류:1976년 출생]][[분류:타자]][[분류:내야수]][[분류:우투우타]]
  • 박진영 (야구선수)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8년]] 5차 3라운드([[KIA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8년]] [[4월 22일]]<br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넥센 히어로즈|히어로즈]]전
         |대륙간컵 (야구) = 2006 대만
         '''박진영'''(朴晋永<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5년]] [[3월 27일]] ~ )은 [[KBO 리그]] 전 [[고양 원더스]]의 [[내야수]]이다.
         2008년 2차 3순위로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였다. 2008년 포스트시즌 탈락 이후 후반 신예들을 주로 기용한다는 [[조범현]] KIA 감독의 방침에 의해 9월부터 김종국과 함께 주로 2루수로 기용되어, 26타수 8안타 0.308 타율를 기록하였다.<ref>[http://www.koreabaseball.com/record/player.asp?player_id=78606 박진영 기록 페이지, 한국야구위원회]</ref>. 상무에서 퓨처스리그 등 2군 리그에서 주로 활약하다 2012년 시즌 이후 팀에서 방출당한다.
         {{2003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 박화랑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2009년 [[제4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준우승을 비롯 [[제31회 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대붕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 [[제90회 전국체육대회|제90회 전국체전]] 우승을 이끌며 우수 투수상 등의 개인 상 수상 및 청소년 대표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11&aid=0000180568 홍희정의 아웃사이더 '청대' 출신 박화랑, 와신상담 끝에 삼성 '신고선수' 출발!] 《조이뉴스》 2010년 3월 9일</ref>
         {{2009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토막글|야구인}}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
  • 송주훈 . . . . 9회 일치
         || '''포지션''' || [[센터백]][* 본래 [[풀백]]이었으나 故 [[이광종]] 감독의 요청을 받고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
         2010년 [[나이키]] U-16 친선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태극 마크를 달았으며, 2012년 [[발렌시아]] U-20 친선 대회 때 故 [[이광종]] 감독의 부름을 받은 후 꾸준히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려왔다. 2013년 [[FIFA U-20 월드컵]]에서도 골을 넣는 등 맹활약을 했고, 이광종 감독이 건강 문제로 하차한 후 출범한 [[신태용]] 감독 체제에서도 주장을 역임하는 등 중용되었으며, 2015년 [[킹스컵]], [[2016 AFC U-23 축구 선수권 대회]] 등의 대회에서도 꾸준히 주전 센터백으로 발탁되어 [[뿌뿌뿡|팀의 수비를 책임졌다.]] 올림픽 직전까지 있던 4개국 초청 대회에도 참가하는 등 대표팀의 주장을 맡으며 팀을 잘 이끌었으나, 올림픽 직전 입은 발가락 부상으로 올림픽 최종 명단에서 하차하게 되었다. 그의 대체자로는 [[김민태]] 선수가 발탁되었다.
         한편 성인 대표팀 경험은 없었는데, 前 감독이었던 [[울리 슈틸리케]] 감독이 [[센터백]]으로 [[김기희]], [[김영권]], [[김주영(1988)|김주영]], [[장현수]] 등의 [[중국 슈퍼 리그]] 소속 선수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인지 [[J리그]]에서 뛰는 송주훈은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실제로 같이 J리그에서 뛰는 센터백 [[김민혁(1992년 2월)|김민혁]]이 몇 차례 성인 대표팀에 선발되긴 했으나 실전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슈틸리케가 떠난 후에 새로 출범한 [[신태용호]] 체제에서 커리어 최초로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http://m.sportsseoul.com/news/read/554778?refer=facebook|#]] 이후 [[신태용]]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U-23 대표팀에서도 중용했던 송주훈이 올림픽 직전의 부상으로 안타깝게 대표팀 승선에 실패한 것에 대한 보상 겸, 성인 대표팀에서의 기량도 확인해볼 목적으로 이번 대표팀에 선발했다고 한다. [[https://www.facebook.com/KoreaFootballTeam/photos/pcb.10155941753318836/10155941751838836/?type=3&theater|#]] 그리고 10월 1일 모로코와의 경기에서 대표팀이 대패를 당하게 되는데 첫번째 실점이 되는 수비에 기여하는둥 데뷔전임을 감안해도 아쉬운 수비 실력으로 신태용 감독 눈 밖에 나게 되고 다음번 대표팀 승선에는 실패하게 된다.
         [[분류:1994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미토 홀리호크/은퇴, 이적]]
  • 이민호(1969) . . . . 9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영남대학교|영남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1993년/신인드래프트|1993년]] 2차 3순위 지명 ||
         前 빙그레, 한화, 쌍방울, SK의 야구 선수.
         1993년 빙그레 이글스의 2차 3순위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993년에는 [[강석천]]의 백업으로 뛰다가 1994년 [[강석천]]의 부진을 기회삼아 암울했던 1994년 한화 타선에 [[박지상]]과 더불어 힘을 실어 주었다. 이 때가 커리어 하이로 0.299의 타율과 14홈런 36타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1995년 [[방위병]] 복무로 홈 경기 밖에 뛰지 못했으며, 그 이후 주춤하다가 1998년 주전 3루수가 됐으나 1998년 시즌 후 [[동봉철]]과 함께 투수 [[임창식]]을 상대로 [[쌍방울 레이더스]]로 트레이드됐다. 쌍방울이 해체되고 2000년 [[SK 와이번스]]에 이적하고 1시즌을 뛴 후 은퇴했다. 이후에는 인천에서 유소년 야구 팀을 지도하고 있다고 전해졌다.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팀으로 발탁되어 2위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당시 멤버 중 한명이 [[박정태]].
         쌍방울로 트레이드된 무렵에는 버거씨병을 앓았는데 하필이면 발 쪽에 걸려서...... [[김성근]] 감독에게 특별히 양해를 구해 가면서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내야수]] [[분류:우투우타]] [[분류:1969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열희 (1924년) . . . . 9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참전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치과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외과 의사]] <!--[[구강 성형외과]] 의사-->[[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군의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서울대학교 치과대학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갑학교 동문]][[분류:육군기계화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영수 (야구인)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0년]] 2차 4라운드([[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5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0년]]
         * [[상무 야구단]] 타격코치 (2014년 ~ 2017년)
         '''이영수'''(李永守<ref>한국야구위원회, 2009 가이드북</ref>, [[1981년]] [[5월 9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자, 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이다.
         ==야구선수 은퇴 후==
         [[상무 야구단]]에서 타격코치로 활동하다가 2018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타격코치로 활동했다.
         {{토막글|야구인}}
  • 조현근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2005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5년]] [[4월 22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전
         * [[경찰 야구단]] (2010년 ~ 2011년)
         '''조현근'''(趙賢根<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5년]] [[11월 21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 [[경찰 야구단]] 시절 ==
         [[2009년]] [[12월 17일]] [[경찰 야구단]]에 입대<ref>[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009770 우규민-연경흠-우동균 등 24명 경찰청 입대] - 스포츠조선</ref> 하여 [[2011년]]에 제대했다.
         [[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평양 조씨]][[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하이큐/210화 . . . . 9회 일치
          * 우카이 감독도 잠깐 온다는 말이 있었지만 몸상태가 또 나빠져서 다시 입원해 무산.
          * 시라토리자와 학원에서는 와시죠 감독이 "평소엔 적이지만 여기서는 아니다."라며 선수들에게 서로 훔칠 수 있는 것은 훔치며 서로 키우도록 하라는 훈시를 내린다.
          * 훈련이 스파이크로 넘어가는데, 히나타는 반사적으로 그쪽으로 향하다 와시죠 감독의 제지를 받는다.
          * 그런데 와시죠 감독은 다른 볼보이보다도 히나타를 더 엄하게 꾸짖는다.
          *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이 히나타를 남겨놓은걸 가지고 화제로 삼는다.
          *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되는데, 훈련에 앞서 전일본 남자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는 "일본, 높이와 파워에 무너지다는 말은 옛날 얘기"라고 잘라 말한다.
          * 감독 사무실에선 또 히나타를 가지고 말이 나오는데 와시죠 감독은 "무대뽀인 젊은이를 싫어하는건 아니다"라며 의외의 말을 한다.
          * 와시죠 감독은 볼보이라고 못박으면서도 히나타에게만 엄하게 대하는 등 의식하고 있다.
  • 하이큐/239화 . . . . 9회 일치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원래 핀치 서버란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고 히메카와에겐 "무엇보다 큰 아군"이 있으니 힘내라 조언한다.
          *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거의 도박이나 다름없는 심정으로 핀치 히터를 기용한다. 그것도 실전 경험이 전혀 없고 공식전 첫 데뷔인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 하지만 [[카라스노 고교]]의 비슷한 포지션인 [[야마구치 타다시]]나 [[키노시타 히사시]]가 보기엔 지나치게 긴장했다.
          * 오오사도 감독도 재등판하는 히메카와에게 조언을 한다. 원래 핀치 서버는 "로우 리스크 하이 리턴"이다. 적어도 츠바키하라에겐 핀치 서버가 실패해도 탓할 녀석이 없다. 고작 1점 잃었을 뿐이니 되찾아오면 그만.
          경기는 테라도마리의 스파이크로 츠바키하라가 1점 차로 바싹 따라붙는다. 오오사도 감독은 또다시 히메카와의 서브엔 "가장 큰 아군"이 있지 않냐고 격려한다.
          히메카와는 조금 긴장을 누그러뜨리고 코트로 돌아간다. 하지만 오오사도 감독 자신은 터무니없는 조언을 했다고 여기고 있다. "멋진 장면을 따내봐라"니, 그런 큰 무대에서, 이런 긴박한 상황에 투입돼서 실패한다면 그걸 용서하지 않을 사람은 팀원이 아니다.
          오오사도 감독은 자신의 조언으로 히메카와가 "자기자신"을 다시 신용할 수 있을지 어떨지 확신이 없는 것 같다.
          일반적인 서브와 달리 강력한 파워도 반응하기 어려운 스피드도 없다. 그저 높이 올라갔다 떨어질 뿐인 서브. 하지만 이 점이 오오사도 감독의 노림수였다.
          오오사도 감독은 이게 의외로 먹힌다며 웃는다. 천장 서브는 배구 역사 초기에 등장했지만 현대엔 사장된 기술이다. 딱히 장점이 없기 때문인데, 반대로 이것이 허를 찌르는 수단이 된다. 현대에는 잘 쓰지 않는다는건, 이 서브를 "익숙하게 받는 사람"도 별로 없다는 의미. 게다가 이 체육관이라는 낯선 환경까지 합쳐지면 좀처럼 쉽게 대처하기 어려운 공격이 된다. 따라서 이 1회전에서 히메카와를 기용한건 단순한 도박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 히메카와는 오오사도 감독이 말한 "가장 큰 아군"이 뭔지 깨닫는다. 바로 이 체육관의 드넓은 천장. 이제 그에게서 긴장하는 기색은 찾아볼 수 없다.
  • 하이큐/247화 . . . . 9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지난 10월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하며 지도자로서 자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이야기 중 "쓰레기장 결전"이 나왔는데 우카이 코치는 "효도하려고 하는게 아니라 우리 애들을 위해서 한다"고 말해서 우카이 감독을 만족시킨다.
          * 지난 10월. [[카라스노 고교]]가 봄고 미야기현 대표로 결정된 직후의 일이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간만에 본가에서 할아버지 [[우카이 잇케]] 감독과 술자리를 가지고 있었다. 우카이 코치는 할아버지에게 "내가 쓰레기장 결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고 웃는다. 그 말을 들은 잇케 감독은 자신이 배구부를 맡고 얼마 되지 않던 시절을 회상한다. 잇케 감독은 그때 자신을 "남을 가르치는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고 표현한다. 그 시절의 그는 선수에게 "나랑 똑같은 것" 내지는 "내가 하려다 못했던 것들"만을 시키고 있었다고 말한다. 어느날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잇케 감독은 "그게 어려운 것"이라며 웃지만 잠시 생각에 잠기다. 그러다 우카이 코치는 "그런 점에선 잘하고 있다"고 칭찬하지만 "배구를 못했어서 그런가 보다"하고 놀린다. 잇케 감독은 농담처럼 가볍게 얘기했지만 지도자가 자기 욕심으로 선수에게 목표를 강요해선 안 된다는, 진중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그러니 그냥 편히 기대하라고 말하는 우카이 코치. 잇케 감독은 손자가 자기 충고를 잘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흡족한 미소를 짓는다.
          * 그리고 봄고 1일차가 끝난 밤. 2회전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우카이 코치는 잠시 집에 연락해서 할아버지의 상태를 확인한다. 사실 그는 할아버지가 현장에서 쓰레기장 결전을 봐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건강이 나빠진 잇케 감독은 도저히 도쿄까지 올 상태가 아니었다. 우카이 코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가올 2회전 대책에 골몰한다.
  • 하이큐/266화 . . . . 9회 일치
          * 네코마의 감독 [[네코마타 야스후미]]는 [[시시오 아리타카]]감독와 사루카와 공고를 칭찬하나, 꼭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라 자신하는데.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아리타카]] 감독은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인 만큼 그의 전술을 손바닥 보듯 꿰고 있었다. 네코마타 감독은 수비를 중시하는 타입이었고 그런만큼 일반적으론 가장 포텐셜이 높은 선수를 쓰기 마련인 세터 자리에 "그렇지 않은" 선수를 기용하는 일도 있었다. 지금 코즈메처럼. 네코마타 감독이 보는 세터의 절대조건은 두뇌와 센스. 그건 팀의 수비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정면승부에서 그걸 무너뜨리기는 쉽지 않지만, 조금씩 깎아내리는건 가능했다. 강고한 수비라도 조금씩 스트레스를 주고 흔드는 걸로 세터의 연약한 얼굴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다. 그 이론을 입증하듯 2세트 중반에 이르러 사루카와는 최초로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전략은 네코마의 벤치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절묘하게 꺼려지는 곳만 공략한다, 전력을 다하면 넣을 수 있는 곳에도 절묘하게 절제하며 시합을 이어간다, 그걸 꾸준히 시도하는 이유는 명백했다. 언뜻 듣기엔 비겁한 전술 같지만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같은 전술을 가지고도 막상 코트에 서면 "화이트 보드에 그리는 것처럼" 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네코마타 감독은 누구보다 그걸 잘 알았다.
          네코마타 감독은 반대진영의 제자와 그가 길러낸 제자들을 흐뭇하게 바라봤다. 그 제자들이 자신의 방침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었지만 그에게 위기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 황성관 . . . . 9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프로 입단 연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삼성 라이온즈]])
         |드래프트 순위 = [[1997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7년]] 1차 지명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단체)|KBO]] / [[1997년 한국프로야구|1997년]]
         |마지막 경기 = [[KBO (단체)|KBO]] / [[2001년 한국프로야구|2001년]] [[10월 3일]] <br/>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 전
         {{토막글|야구인}}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구재서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구재서'''(具載書<ref>프로야구 金始眞(김시진) 6연승…올2완봉승, 동아일보, 1985년 5월 2일자.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5050200209209012&edtNo=2&printCount=1&publishDate=1985-05-02&officeId=00020&pageNo=9&printNo=19562&publishType=00020</ref>, [[1963년]] [[8월 15일]] ~ )는 전 [[KBO 리그]]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외야수이다.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함에 따라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원년 멤버로서 [[OB 베어스]]에서 같이 활동하였던 전 야구선수 이자 [[NC 다이노스]]의 2군 수비 코치 [[구천서]]는 그의 쌍둥이 형이다.
         == 프로야구 시절 ==
         [[신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82년]]에 [[OB 베어스]]에 입단, 원년 멤버로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외야수였으며, 발이 빨라 주로 대주자로 출장하였다. 그 후 [[1989년]]까지 활동하다가 은퇴한다.<ref>'최정-최항 형제' SK 한솥밥, 야구계 한팀 형제 선수는?, 스포츠서울, 2011년 8월 26일자,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73&aid=0002080576</ref>
         {{토막글|야구인}}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김광석 . . . . 8회 일치
         [[분류:김광석]][[분류:1964년 태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포크 록 음악가]]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하모니카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통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의문사한 사람]]
  • 김대진 (야구인)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2차 1순위 ([[삼미 슈퍼스타즈]])
         '''감독 경력'''
         *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06년 ~ 2009년)
         * [[KIA 타이거즈]] 2군 감독 (2010년 ~ 2011년)
         {{토막글|야구인}}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좌익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미 슈퍼스타즈 선수]][[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삼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동한 (1919년) . . . . 8회 일치
         [[분류:1919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대한민국 해군 중령]][[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함세웅]][[분류:신민당]][[분류:대한민국의 군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문화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구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
  • 김동호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4월 1일]] <br />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김동호'''(金東昊<ref> 한국야구위원회, 2015 가이드북 </ref>, [[1985년]] [[9월 10일]] ~ )는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다.
         ==한국 프로야구 시절==
         ==한국 독립야구 시절==
         ==한국 프로야구 복귀==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화 이글스 선수]][[분류:고양 원더스 선수]]
  • 김보름 . . . . 8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4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메달리스트]][[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1년 동계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201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스피드스케이팅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문성초등학교 동문]][[분류:성화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김상희 (가수) . . . . 8회 일치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경주 최씨]]
  • 김성주 (기업인) . . . . 8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적십자사 대표]][[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런던 정치경제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박]][[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여성 기업인]][[분류:애머스트 대학교 동문]]
  • 김소희 (쇼트트랙 선수) . . . . 8회 일치
         김소희는 [[2003년]] 말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되어 그 해 [[중화인민공화국|중국]]에서 열린 1, 2차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대표팀이 종합 우승을 거두는 데 기여하였다. 그러나 [[2004년]] [[11월 3일]]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최은경]], [[여수연]], [[변천사]], [[허희빈]], [[강윤미 (쇼트트랙 선수)|강윤미]], [[진선유]] 등 여자대표팀 선수 6명이 사생활 간섭<ref>{{뉴스 인용|제목 = "죽도록 두들겨 맞고…" 여자 쇼트트랙 '폭력의 얼음판' | url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ports_general&ctg=news&mod=read&office_id=020&article_id=0000269734 | 출판사 = 동아일보 | 저자 = 김성규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상습적 구타<ref>{{뉴스 인용 | 제목 = 여자 쇼트트랙 구타 쇼크 "매일 무차별적으로 맞았다"- 국제대회장서도 되풀이 | url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0000/2004/11/006000000200411101828268.html | 출판사 = 한겨레 | 저자 = 성연철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등 코치의 강압적인 지도 방식에 불만을 품고 [[태릉선수촌]]을 무단 이탈했다가 대한빙상연맹의 설득으로 하루 만에 복귀했다. 연맹 측은 [[11월 11일]] 상습구타 사건에 연루된 코치진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했고, 7명의 부회장단도 총 사퇴했다.<ref>{{뉴스 인용 | 제목 = `선수 매질`파문..빙상聯 부회장단 사퇴 | url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1&aid=0000088254 | 출판사 = 문화일보 | 저자 = 이준호 | 쪽 = | 날짜 = 2004-11-11 | 확인날짜 = 2014-02-16 }}</ref> 이후 연맹은 여자대표팀을 선수촌에서 퇴촌시켰으며, 11월 말 열린 3, 4차 월드컵 대회 출전도 정지시켰다.<ref>{{뉴스 인용 | 제목 =여자 쇼트트랙 새 사령탑 선임 | url =http://sports.hankooki.com/lpage/moresports/200411/sp2004111522171658130.htm | 출판사 = 스포츠한국 | 저자 = 허재원 | 쪽 = | 날짜 = 2004-11-15 | 확인날짜 = 2014-02-17 }}</ref> 이 사건 이후 현장 지도에는 나서지 않고 연구원으로만 활동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4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0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배재준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 2라운드([[LG 트윈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4월 26일]]<br>[[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잠실]]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구원
         [[대구상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1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3년]]에 2라운드로 지명받아 입단했다. [[2018년]] [[4월 26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구원 등판하며 데뷔 첫 경기를 치렀고, 경기에서 0이닝 1실점(비자책)을 기록하였다.
         {{토막글|야구인}}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배씨]]
  • 배지환 (야구선수)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배지환'''([[1999년]] [[7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자,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메이저 리그]]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내야수]]이다. 여자친구가 폭행혐의로 고소하여 비판을 얻는 등 논란이 되고 있다.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에도 참가하여 주전 유격수를 맡아 팀이 준우승 하는데 큰 활약을 하였다.
         [[201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 참가 한 시간 전에 미국 진출 때문에 지명받지 않았다. 이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300,000달러에 계약하였고, 교육리그에도 참가하였다. 그러나 [[애틀랜타 브레이브스]]가 2014년에 불법 계약을 한 것이 드러나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ref>[http://osen.mt.co.kr/article/G1110781032 배지환 계약 파기 FA행… 애틀랜타 MLB 징계 확정] - OSEN</ref> 게다가 이면계약을 한것이 드러나 계약이 파기되었다. 이후 [[육성선수]] 신분을 인정해달라는 가처분 소송을 냈으나 [[KBO (야구)|KBO]]측에서는 강경대응할 것이라고 선포하였다.
         ==미국 프로야구 시절==
         [[분류:199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피츠버그 파이리츠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
  • 양일환 . . . . 8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3순위([[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3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89년]]
         '''감독 경력'''
         *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대행 (2011년)
         '''양일환'''(梁日煥, [[1961년]] [[6월 10일]] ~ )은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투수]]이자,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2군 투수코치이다. [[1990년]]부터 잠깐의 휴식기였던 [[1999년]] ~ [[2000년]]과 [[2009년]]을 제외하고 단 한 번의 팀 이동 없이 [[삼성 라이온즈]]에서 [[투수]]코치로 재임 중이다. [[2011년]] 시즌 중 암으로 입원하여 시즌을 마감한 [[장효조]] 2군 감독을 대신해 후반기 [[한국 야구 퓨처스리그|퓨처스 리그]]를 이끌었다.
  • 의성군 . . . . 8회 일치
         국내 컬링계는 현재 [[경기도]]와 [[경상북도]]가 양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경기도(의정부)는 엘리트 체육, 경북(의성)은 생활 체육 기반이라는 점도 대비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경북의 실업팀은 남녀에 믹스더블까지 있는 반면, 경기도의 실업팀은 여자팀만 있지만.]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 선수들도 마땅히 연습할 시설이 없어 '''의성에서 훈련한 뒤에 의성에서 경기를 치를 정도'''였다. 2018년 [[의정부컬링훈련장]]이 완공됐고 그에 앞서 [[진천선수촌]] 컬링장도 완공됐지만[* 다만 진천은 국가대표팀의 훈련용으로 사용된다.], 이미 의성의 [[경북컬링훈련원]]은 [[카자흐스탄]]이나 [[몽골]] 등 비교적 컬링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대표팀이 찾아와 훈련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컬링장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도 의성에선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622423&cid=51938&categoryId=54649|의성 마늘배 전국 컬링 대회]]'''를 주기적으로 열어 컬링 보급에 힘쓰고 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남녀, 믹스더블 대표팀 모두 [[경북체육회 컬링팀]] 선수들이 선발됐고, 특히 여자팀의 선수들 중 중 네 명[* [[김은정(컬링)|김은정]], [[김영미]], [[김선영(컬링)|김선영]], [[김경애]]]이 의성 출신의 선수들이며, 모두 같은 학교 출신[* 의성여중-의성여고]에 '''학교 방과후 활동으로 컬링을 시작한''' 만화 같은 이야기와 준결승에서 일본을 꺾고 은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자세한 사항은 [[김은정(컬링)]] 항목 참조.] 이 뿐만 아니라 2014년 소치 올림픽 당시 국가대표팀이었던 [[경기도청 컬링팀|경기도청]]의 [[이슬비(컬링)|이슬비]] 선수도 의성여고 출신이다. 이로써 2회 연속 올림픽 컬링 대표선수들을 길러낸 도시가 되었다.
          * [[김성래]] : 야구코치, 전 야구선수
          * [[김용달]] : 야구 관련 인물
          * [[이범호]] : 야구선수
          * [[조범현]] : 야구감독
  • 이갑성 . . . . 8회 일치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1981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한국의 약학자]][[분류:한국의 약사]][[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종교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의학자]][[분류:일제 강점기의 약사]][[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관련자]][[분류:건국훈장 대통령장 수훈자]][[분류:민족대표 33인]][[분류:대한민국 임시 정부]][[분류:한국의 군정기]]
         [[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이갑성|*]][[분류:허정숙]][[분류:김규식]][[분류:윤치호]][[분류:윤치영]][[분류:경성경신고등보통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명예박사학위 동문]][[분류:자유당]][[분류:한국독립당]][[분류:민주공화당 (대한민국)]][[분류:경주 이씨]][[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
  • 이규환 (영화감독) . . . . 8회 일치
         '''이규환'''(李圭煥, <small>일본식 이름: </small>岩本圭煥, [[1904년]] [[2월 18일]] ~ [[1982년]])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영화감독]]이다.
         피신 생활 중에 영화감독이 될 것을 결심하고 [[1922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영화 공부를 했다. [[1928년]] 경에는 [[상하이 시|상하이]]로 가서 1년 정도 머물렀다. 이 곳에서 [[전창근 (영화 감독)|전창근]]과 [[이경손]]을 만나 교류했다.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교토 시]]의 [[신코키네마]]에서 조감독으로 일했다.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82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감독]][[분류:일제 강점기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이만섭 . . . . 8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최규하 정부]][[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분류:김영삼 정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대중 정부]][[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한국국민당 (1981년) 당원]][[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국민신당]][[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윤치영]][[분류:김종필]][[분류:동아일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15년 죽음]][[분류:합천 이씨]]
  • 이사강 . . . . 8회 일치
         '''이사강'''([[1980년]] [[10월 7일]] ~ )은 [[대한민국]]의 [[뮤직비디오]] 감독이자, CF 감독이다. 생산 회사 [[쟈니브로스|ZANYBROS (쟈니브로스)]] 소속이다. 2002년 단편 영화 《스푸트니크》 촬영으로 참여.
         == 뮤직비디오 (감독) ==
         {{토막글|영화 감독}}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뮤직 비디오 감독]][[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장우석 . . . . 8회 일치
         | 직업 = [[영화 감독]]
         '''장우석'''(張祐碩, [[1977년]] [[1월 9일]] ~ )<ref>[http://gs343.blog.me/106555039 "차별 · 편견 없는 세상 35mm 앵글에 담아요"], 《대구신문》스크랩 내용, 2008.9.9.</ref>은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미디어공작소°노림(www.facebook.com/norim)에서 공작원(film maker)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4월 23일 '[[세계 책의 날]]' 문을 연, 대구 최초의 '복합문화공간 헌책방' 물레책방(www.mulae.net)<ref>[http://www.atjob.co.kr/servlet/bbs.CBbsSe?hid_seq=3481&template=t_bbs_atjob_09 "헌책방, 돌고 도는 사람 세상"], 《앳잡》, 2014.4.21.</ref>의 대표이기도 하다.
         [[2002년]] 지금은 사라진 [[독립영화]]제작단체 '제7예술'을 통해 알게 된 이동린 감독([[독립영화]]제작소 '네오드라마 픽처스')이 연출한 단편영화 《북회귀선》(2002)에서는 녹음(보)을, 《나의 메멘토》(2003)에서는 조연출과 조연을 각각 맡았다.
         [[2003년]] 단편영화 《네 골통이 어디로 가긴》을 통해 [[영화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故 이재형 선생 가시는 길》(2005), 《이상(異像)한 사람들》(2008) 등 몇 편의 독립영화를 [[대구광역시]]에서 만들었다.
         [[2004년]] 대구 평화영화제를 시작으로 대구 5.18영화제, 앞산달빛 마을영화제, [[영남대학교]] 북한영화제 등 여러 지역 영화제에서 프로그래머를 지냈다.<ref>[http://www.yeongnam.com/mnews/newsview.do?mode=newsView&newskey=20150515.010350815480001 장우석 독립영화 감독·물레책방 대표, 10월항쟁·위안부 할머니 관련 다큐 제작], 《영남일보》, 2015.5.15.</ref>
         [[2003년]] 《OST-BOX》에 <영화 《[[하얀 비요일]]》 OST 리뷰>를, [[2006년]] 《[[녹색평론]]》 87호(2006년 3~4월)에 <4.3 항쟁, 변방, 끝나지 않은 세월><ref>[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15922 김경률 감독 추모전 대구에서 열린다], 《제주의소리》, 2006.3.24.</ref>을 각각 기고한 이후 《[[오마이뉴스]]》, 《[[대구신문]]》, 《이삭》 등 여러 매체에 지역과 문화에 관한 글을 써왔으며,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영남일보]]》에 [[영화]]칼럼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ref>[http://www.yeongnam.com/ynsearch/search.jsp?searchWord=장우석의+전영잡감 <장우석의 電影雜感(전영잡감)> 연재 읽기], 《영남일보》, 2014.3.14~현재.</ref>을 연재하고 있다.
         [[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영진고등학교 동문]][[분류:청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효신초등학교 동문]]
  • 최한경 . . . . 8회 일치
         ||<:> '''학력''' || 대해초-포항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 ||
         전 야구선수. [[삼성 라이온즈]]와 [[LG 트윈스]]에서 활동했다. 1993년 삼성이 한국시리즈 준우승 이후로 침체기였던 때에 홀연히 등장했다 사라진 비운의 투수. 별명은 '그라운드의 흑곰', '제2의 [[김상엽|만딩고]]'. 특히 만딩고라는 별명을 가졌던 팀 선배 [[김상엽]]과는 까무잡잡했던 얼굴과 속구를 던지던 것 때문에 많이 매치가 되곤 했었다.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시절에는 투타 만능에 빠른 공으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으며 [[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항제철고]] 졸업 후인 1993년 삼성에 입단했다. 입단 첫 해에 12경기에 나와 2.87의 평균자책을 기록했으나 그리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150km대를 던지는 투수는 [[선동열]]하고 [[박동희(야구선수)|박동희]] 정도로 많지 않았던 상황에서, 쌩 고졸신인이 평균 150km의 공을 던진다는 것은 일약 센세이션에 가까웠다. 마무리 활동 당시 삼성전 중계 방송에서는 최한경까지만 가면 삼성이 이길 수 있다는 말이 자주 나오곤 했는데, 이는 그가 94년 한정 당대 최고의 마무리였음을 입증한다. 공은 가볍다는 소리를 들었을지언정 속도만큼은 엄청났고, 이 때문에 94년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오히려 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것 때문에 5회부터 등판하고, 선발로도 나오는 등 아직 몸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고졸신인에게는 가혹할만치 엄청난 혹사를 당했다.
         은퇴 후 LG 트레이너로 있다가 [[대전고등학교 야구부|대전고]], [[홍익대학교|홍익대]] 코치를 거쳐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야구 팀인 장쑤 호프스타스의 감독, 광동 레오파드의 코치로 있다가 현재는 귀국해 고향 포항에서 스포츠센터를 운영 중이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요원 . . . . 8회 일치
          * 야구 배트 - "안정된 스윙은 항상 정답이 되는 법"
          * 자신의 성에 모병 감독 활동을 통해 유닛 모집 가격을 내림
          군사 행정 시 능력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장교 스킬 요구. 이 요원의 성공확률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명사수, 훈련교관 스킬 요구. 군대 교란 시 능력 +1, 결투 시 능력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부대 훈련 시 능력 +1, 게이샤에 의해 매혹될 확률 -25%, 암살 당할 확률 -10%, 자기 방어 시 적 요원을 죽일 확률 +15%
          훈련교관, 병참장교 스킬 요구. 군사 행정 시 능력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부대 훈련 시 능력 +1, 이 요원이 배속된 군대에 있는 모든 부대의 유지비 -15%, 모든 외국 베테랑의 행동스킬 비용 -5%, 해군 화력지원의 재충전 시간 -40초
          모병 감독 시 능력 +1
          모병 감독 시 능력 +1
  • 하이큐/255화 . . . . 8회 일치
          * 경기를 보러 왔던 전일본 남자 대표팀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카게야마 외에도 괴짜 속공을 올려줄 사람이 있다"는게 히나타에게 나쁠거 없다고 본다.
          * 그리고 이번 경기는 전일본 남자 대표팀의 감독 "히바리다 후키" 감독도 관람 중이다. [[하이큐/210화|카게야마의 전일본 유스 합숙]]에서도 감독 역할을 맡기도 했던 인물이다. 동행한 코치가 카라스노의 10번, 히나타를 거명하며 "키는 작지만 득점율이 높다."고 평한다. 하지만 유일무이한 필살기가 카피 당해서 풀이 죽은거 같다고 말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의 견해는 조금 달랐다. 지금까지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는 별다른 평가를 받은 적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 카게야마하고만 선수생활을 할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괴짜 속공을 아츠무도 올릴 수 있다는게 증명됨으로써, 반대로 말하면 히나타는 카게야마 없이도 그 속공이 가능하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코치는 그럴 정도는 아니지 않냐고 반박하는데, 히바리다 감독은 또다른 증거도 가지고 있었다.
          엄청난 얼굴로 아츠무를 노려보는 히나타. 히바리다 감독은 히나타가 마음에 든 건지 "쟤가 그 카게야마의 파트너"라며 웃음을 터뜨린다.
  • 홍준표(야구선수) . . . . 8회 일치
         [[분류:1991년 출생]][[분류:내야수]][[분류:우투좌타]][[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include(틀:상위 문서2, top1=야구 관련 인물(KBO), top2=SK 와이번스/선수단)]
         ||<:> '''출신학교''' || 구미도산초 - 구미중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 - [[한민학교]] - [[우석대]]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 9라운드 87순위]] ([[SK 와이번스]]) ||
         '''[[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 출신 최후의 프로 선수'''[* 2009년 해체 당시 홍준표가 재학 중이었고 홍준표 외에 구미전자공고 출신 야구선수는 현재 [[KBO 리그]]에 없다.]
         [[한국프로야구/2015년/신인드래프트|2015년 신인드래프트]]에서 9라운드에 [[SK 와이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입단했다. 2015년 입대하여 군복무를 마쳤다.
  • 김경애(배우) . . . . 7회 일치
         * 2006년 《[[맨발의 기봉이]]》 - 야구장 할머니 역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수성구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김재엽 . . . . 7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김준 (배우) . . . . 7회 일치
         | [[천하무적 토요일]] - [[천하무적 야구단]]
         {{천하무적 야구단}}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호루라기 연극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김지훈(1993) . . . . 7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초-경포중-[[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
         ||<:> '''프로입단''' || [[한국프로야구/2012년/신인드래프트|2012년 드래프트 3라운드]]([[삼성 라이온즈|삼성]]) ||
         [[울산공업고등학교 야구부|울산공고]] 역사상 처음으로 드래프트 지명을 받은 선수로서, 178cm에 75kg의 투수로서 왜소한 체격에도 불구하고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최고 구속 148km, 평균 구속 140km 중반대의 공을 던지면서 상위 지명이 예상되었으나 예상 외로 3라운드까지 밀렸다. 투타 양면에 재능을 보여 2011년 아시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는 내야수로 선발됐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93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 김효진 (배우) . . . . 7회 일치
         </ref> 2003년 개봉 된 사극 영화 《[[천년호]]》에서 '자운비' 역으로 스크린 데뷔했다. 이후 김효진은 이지적인 외모와 독특한 분위기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차근차근 필모그래피를 쌓아왔다. 2012년에는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주체적인 여성 윤나미 역을 통해 재조명받았고, 세계적인 권위를 지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칸레드카펫을 밟았다.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
  • 박수일 (축구선수) . . . . 7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감독 연도=
         |감독 클럽=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내셔널리그의 축구 선수]][[분류:광주대학교 동문]][[분류:김해시청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백일섭 . . . . 7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3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창극 배우]][[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영화인]]
  • 부산광역시/인물 . . . . 7회 일치
         * [[강병철(야구인)|강병철]] - 강서구(부산)
         * [[김용철(야구)|김용철]] - 중구(부산)
         * [[박성호(야구선수)|박성호]] - 동래구
         * [[박근홍(야구선수)|박근홍]] - 부산진구
         * [[이용훈(야구)|이용훈]] - 영도구
         * [[이정민(야구선수)|이정민]] - 영도구
         * [[정현(야구선수)|정현]] - 수영구
  • 브이원 . . . . 7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성은채 . . . . 7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구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손담비 . . . . 7회 일치
         [[분류:손담비]][[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밀양 손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키이스트 소속]][[분류:골든디스크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본상 수상 음악가]][[분류: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Mnet 엠카운트다운 1위 수상자]][[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신은정 . . . . 7회 일치
         {{다른 사람|[[신은정 (영화 감독)|배우|영화 감독]]}}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9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안병근 . . . . 7회 일치
         |사진설명 = 안병근 감독 "유도회장님, 金 2개 약속 못지켜 죄송합니다"
         , 현재는 전문적 유도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다.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용인대학교 동문]][[분류:대구중앙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
  • 윤민수 (가수) . . . . 7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나는 가수다에 출연한 가수]][[분류:파평 윤씨]][[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음악 프로듀서]][[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이동수 (축구선수) . . . . 7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감독 연도=
         |감독 클럽=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전 시티즌의 축구 선수]][[분류:제주 유나이티드 FC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2의 축구 선수]][[분류:K리그1의 축구 선수]][[분류: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대륜중학교 동문]][[분류:가톨릭관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상무(만화가) . . . . 7회 일치
         1946년 김천 출신으로 1963년 고교 재학시절, 대구 [[영남일보]]의 어린이 지면에 주 1회 네칸 만화를 연재한 것을 계기로 이듬해 상경, [[박기준]] 화백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1965년 월간 "여학생"의 "[[로미오와 줄리엣|노미호와 주리혜]]"로 데뷔하였다. 이상무라는 예명도 이때 얻었다. 이후 70~80년대에는 축구, 야구 등의 스포츠 만화를 주로 연재했고, 1980년대 성인 만화 잡지가 탄생하자 성인만화를 적극적으로 시도하기도 했다. 1990년대에는 골프만화를 연달아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가 유명해 진 계기는 바로 스포츠만화였다. 특히 1970년대 [[고교야구]]붐을 탄 야구만화에서 그는 독보적이었다. 1980년대 [[이현세]]가 나오기 전까지 그는 야구만화의 독보적 일인자였다. 하지만 야구만화만 거의 그리던 허영만이나 이현세랑 달리 [[축구]]도 좋아해서인지 독고탁이 나오는 축구만화도 제법 여럿 그렸다. 그가 창조한 캐릭터 [[독고탁]]은 그의 이름보다도 더 유명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그야말로 [[허영만]]을 콩라인으로 만든 만화가였다. 허영만 스스로도 자신이 늘 편집장에게 이상무 씨에게 밀려요라는 말을 지겹게 들어서 타도 이상무! 라고 그림을 그렸더니만 나중에는 이현세가 나와서 또 2인자 신세더라며 두 이씨(물론 보시다시피 이상무는 필명)에게 진다고 한탄했다고...
         화풍은 매우 깔끔하지만 데뷔 시기를 보면 알수 있듯 조금 평면적이다. 간략한 선에 스크린톤이나 펜선을 많이 사용하지 않아 화면이 밝은 편. 당시 야구만화들이 다 그렇듯이 마구나 지옥훈련이 자주 등장한다. 그래도 거인의 별처럼 황당무계한 설정이나 마구는 아니다.
          * 태양을 향해 던져라[* 위의 “울지 않는 소년”의 에니메이션 버전, 그러나 “울지 않는 소년”이 축구를 소재로 한 반면 “태양을 향해 던져라”는 야구로 설정되었다]
  • 이상화(1980) . . . . 7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1980년 출생]] [[분류:투수]] [[분류:우완 투수]] [[분류:우투우타]]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송주초-포항중-[[경주고등학교 야구부|경주고]]-경성대 ||
         ||<:> '''프로입단''' ||[[한국프로야구/2004년/신인드래프트|2004년 KIA 타이거즈 2차 4순위 지명]] ||
         2004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 구속은 140km 초중반 정도로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 구사 능력이 좋다고 평가되었다. 2006년 무려 121이닝을 소화하며 투수진의 한 축을 담당했으나[* 45경기 121이닝 5승 6패에 평균자책점은 3.87을 기록.], 이 때의 혹사 여파로 인해서인지 이후로는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당시 [[서정환]]감독시절의 혹사로 [[한기주]], [[신용운]] 등만 거론되지만 어찌보면 이 둘보다도 더 심하게 굴려졌다. 2007년 시즌 종료 후 [[상무 피닉스 야구단]]에 입대하였고, 2009년 시즌이 끝나면서 제대하였다. 하지만 혹사의 여파로 인한 부상으로 전혀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2011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 이희성 (1988년) . . . . 7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1년]] 3차 4라운드([[넥센 히어로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7월 25일]] <br /> [[잠실야구장|잠실]]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구원
         [[고양 원더스]]로 옮겨 [[김성근 (야구인)|김성근]] 감독의 손을 거쳤다.
         {{2010년 세계 대학 야구 선수권 대회 대한민국 선수 명단}}
  • 장남석 . . . . 7회 일치
         |국가대표팀 연도=
         |국가대표팀=
         |국가대표팀 출장수(골)=
         |국가대표팀 최신 업데이트 날짜=
         |감독 연도=
         |감독 클럽=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축구 선수]][[분류:대구 FC의 축구 선수]][[분류:상주 상무 축구단의 축구 선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
  • 차일목 . . . . 7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9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99년]] 2차 5라운드([[해태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3년]] [[4월 6일]] <br /> [[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7년]] [[8월 13일]] <br /> [[고척스카이돔|고척]]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야구선수 은퇴 후==
         {{토막글|야구인}}
  • 최세창 . . . . 7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합동참모의장]][[분류:대한민국의 국방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반란자]][[분류:하나회]][[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주 최씨]][[분류:육군사관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장]][[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반역죄 기결수]]
  • 최은경 (쇼트트랙 선수) . . . . 7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용지초등학교 동문]][[분류:목일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3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한받 . . . . 7회 일치
         [[대구광역시|대구]] [[파동 (대구)|파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한진식이다. 청소년 시절 본래 영화감독을 꿈꾸었으나, 집안의 반대로 좌절하고서 [[경북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하였다.<ref name="tam">{{서적 인용 |author= 한받 |제목= 탐욕소년표류기|꺾쇠표= 예 |publisher= 텍스트|year= 2010|id= {{ISBN|978-89-94159-03-4}}}}</ref>
         그러면서 영화감독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여러 독립영화제에 작품을 출품하고 '대구 비디오 영상축제'를 주최하기도 하였지만, 1999년 무렵 상경하여 영화계에 작품을 소개하려다 절망하고는 영화감독의 꿈을 접게 되었다. 그러다 학교 선배들과 벤처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곧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 중국으로 탈출하였다가 누나의 편지를 받고 다시 귀국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로써 잠시 생활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에는 한받과 [[회기동 단편선|단편선]] 등이 출연한, 2009년 당시 두리반 강제 철거 반대 농성과 자립음악생산조합 음악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파티51'(감독 정용택)이 개봉하였다.<ref>{{뉴스 인용|제목=칼국수집 두리반 지키기, 그들이 하면 저항도 경쾌|url=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2062130|출판사=오마이스타|저자=강성국 기자|날짜=2014-12-12}}</ref><ref>{{뉴스 인용|제목=한받-단편선 '두 사람만으로 꽉 차는 존재감' - 영화 '파티51' 언론시사회|url=http://tvdaily.asiae.co.kr/read.php3?aid=1417426740809270017|출판사=티브이데일리|저자=권영민 기자|날짜=2014-12-01}}</ref>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인디 밴드]][[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곽결호 . . . . 6회 일치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 육군 군인]][[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환경부 장관]][[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대학원 동문]]
  • 권재진 . . . . 6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안동 권씨]][[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분류:LS그룹]]
  • 김경준(축구선수) . . . . 6회 일치
         [[박주영]]이 졸업한 반야월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백암중학교를 거쳐서, 축구 명문 [[신갈고등학교]]를 거쳐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이끄는 영남대로 진학했다.
         반야월초등학교 시절에 수비수를 맡았었다. 그러나 가끔 공격수를 보기도 했는데, 백암중학교에 진학했을 때, 고 조남의 감독이 포지션을 물어보자 공격수라고 대답했고, 공격수를 맡게 되었다. 다만, 1~2학년은 경기 출전보다는 체격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두었고, 키가 20cm나 성장했다고 한다. 3학년이 되어서 경기를 출전했고, 18골을 기록했다.
         신갈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처음 진학한 학교는 백암고등학교였다. 하지만, 입학 후 1년만에 팀이 해체되었고, 용인축구센터를 떠나기 싫었던 김경준은 신갈고등학교로 전학갔다. 김상진 감독 덕분에 일찍 적응했다고 한다. 신갈고 시절에는 [[http://www.footballjournal.co.kr/news/articleView.html?idxno=831|4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는 등, 신갈고 [[루이스 수아레스(우루과이)|수아레즈]]라고 불리었다. 3경기 7골을 득점하는 등 엄청난 골 결정력을 선보였으며, 고교 무대에서 주목받는 스트라이커였다. 결국 9경기 연속 골 기록을 세웠고, 14골을 넣었다. 이 때,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이 김경준을 보고 갔었고, 결국 김경준은 영남대로 진학하게 된다.
         영남대학교 시절 처음에는 조금 자만했던 듯 하다. 수비수는 수비를, 공격수는 공격을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속한 팀은 [[영남대]]였다. 포항의 패스 축구를 영남대에 이식한 [[김병수(축구인)|김병수]] 감독은 김경준에게 포인트를 집어주며 포지션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어주었다. 또한, 부족했던 피지컬을 채우기 위해서 팀메이트 전상오와 함께 훈련하며, 대학 1년을 보내었다. 이당시 [[영남대]]는 2015 전국춘계대학축구연맹전 준우승을 시작으로, U리그 권역 우승을 차지했다.
         [[분류:1996년 출생]] [[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대구 FC/은퇴, 이적]][[분류:FC 안양/현역]]
  • 김보민 . . . . 6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회]][[분류:대한민국의영화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미술평론가]][[분류:프랫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자기]][[분류:대한민국의미술가]][[분류:설치미술가]][[분류:대한민국의음악평론가]][[분류:순흥 김씨]][[분류:대한민국의 시사평론가]]
  • 김상훈 (1990년)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4라운드([[두산 베어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두산 베어스]]의 4라운드(전체 26위)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김옥이 . . . . 6회 일치
         [[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일중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군 장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김씨]][[분류:대한민국 육군 대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여성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대구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친이]][[분류:친박]]
  • 김형철 (가수) . . . . 6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200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김현식]][[분류:유재하]][[분류:신해철]][[분류:김성재]][[분류:이승환]][[분류:김광석]][[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85년 데뷔]][[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 레이디 제인 (가수) . . . . 6회 일치
         * [[KBS1]]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 - 스포츠 대작전 (야구편)》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
  • 맥스 페인/줄거리 . . . . 6회 일치
         맥스는 보일러실에서 의자에 묶인채로 죽은 남자와 그 옆에 버려진 피묻은 야구방망이를 발견한다. 그 옆에는 만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가 실린 신문지가 놓여져 있었다.
          * 마피아들의 암호는 "존 우"인데, 이는 맥스 페인에 영향을 준 홍콩의 영화감독 [[오우삼]]의 영어 이름이다.
         남자는 자신을 "방망이" 프랭키 나이아가라라고 소개했다. 그의 이름을 들은 맥스는 잘 울어서 나이아가라냐고 프랭키를 도발해보지만 머리를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맞을 뿐이었다. 맥스를 두들겨 팬 프랭키는 잠시 바에 가서 시원한거나 마신후 시작하자며 맥스를 남기고 가버린다. 프랭키가 가자 맥스는 의자를 부숴 포박에서 풀려난다. 그러고는 프랭키가 놓고간 야구방망이를 집어든다. 맥스는 무기를 찾아내 다시 무장하기 시작한다. 그러던 와중 프랭키에게 죽은 사람들의 시체가 하수구에 버려져 있는 것도 목격한다.
         맥스가 바에 들어갔을 때, 프랭키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맥스는 그를 야구방망이로 패죽이려고 하자, 프랭키는 양손에 잉그램을 들고 저항한다. 하지만 그는 맥스에 의해 죽게된다.
         맥스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의 토사물 위에 식은땀을 흘리며 엎어져 있었다. 자신이 정신을 잃기 전 들었던 말을 떠올린 맥스는 뉴욕 바깥에 위치한 "콜드 스틸"이라는 공장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많은 트럭들이 오가고 있었다. 맥스는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 베레타 한 정만 가지고 콜드스틸 지붕 위 채광창을 통해 잠입한다.
  • 문창진 . . . . 6회 일치
         이후 부상과 [[피지컬]] 문제로 고생하다가 [[신태용호]]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각을 보였다. 슈틸리케 감독이 8월 동아시아 대회에 젊은선수들과 올림픽 대표 위주로 선발하겠다고 밝혀 선발이 유력해 보였지만, 부상 때문에[* 올대의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갈비뼈 부상을 입고 귀국했다.] 예비 엔트리에도 들어가지 못했다. 수원 소년가장 [[권창훈|빵훈이]]가 슈틸리케호에서 날아다니는 걸 생각하면 [[김승대|소속팀]] [[신화용|선배들처럼]] [[손준호|벌써부터]] [[이명주|국대 운이 안 좋다.]]
         하지만 이후 [[신태용]]이 이끄는 2016 리우올림픽 대표로 뽑혔고, 올림픽 예선을 겸한 AFC u-23 대회 조별예선 1차전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팀 동료가 될 뻔 했던~~[[황희찬]]과 함께 맹활약하며 2골을 집어넣으며 팀의 2:1 승리를 이끌었다. 이후 황희찬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전력이 약한 대표팀을 끌다시피 하고 있으며, 8강전에서는 황희찬이 후반 초반 부상으로 실려나가자 사실상 혼자 캐리쇼(...)를 벌이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1골을 넣어 1:0 승리에 일조했을 뿐만 아니라, 공수 모두가 붕괴된 후반전 사실상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가 되어 공격 수비 모두 ~~싸질러놓은 X들을 치우느라~~ 문창진 혼자서 책임지다시피 했다. ~~그렇게 [[이명주]] 3호기가 되는거야~~] 4강전에서는 2:1로 앞선 후반 추가시간에 승부의 쐐기를 박는 골을 작렬시켰는데, 골이 터지는 순간 경기는 그대로 끝나며 대한민국은 세계 최초 8연속 올림픽 축구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후반 중반까지 혼자서 공격진과 수비진을 연결하며 개인기를 통한 탈압박 후 연결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다 김현 투입 후 롱볼전술로 팀의 전술이 변경됨에 따라 공격진으로 올라갔으나~~센터백과의 몸싸움에서 밀리며~~ 큰 성과를 거두진 못했다.[* 이는 신태용 감독의 전술변화에 의한 것으로, 상대적으로 제공권 장악력과 포스트 플레이가 가능한 [[김현(축구선수)|김현]]~~뭐라고?~~을 투입하면서 수비진에서 한번에 공격진으로 연결하는 전술변화에 의한 면이 크다. 하지만 피지컬이 약점인 문창진마저 최전방으로 내몰면서 결국 공격과 수비의 가교 역할을 하던 문창진마저 공격을 [[강요받고 있는 거다!|강요받으면서]] 팀 밸런스가 붕괴하고 만다. 여기에 대회 내내 사실상 박스 투 박스 미드필더로 굴려진 문창진의 체력이 후반에 바닥나버린 건 덤.] ~~[[도하 참사(축구)|그리고...]]~~
         리우 올림픽 본선에서 볼을 소유하고 있을때나 소유하지 않고 있을때나 한결같이 한심한 플레이를 보이면서 보는이들의 탄식을 자아내는중이다. 피지전은 4-3-3에서 중앙 미드필더에 가깝게 뛰었기에 본 포지션이 아니라는 쉴드는 쳐줄수 있지만 PK를 날려먹었고(...), 독일전에서는 독일선수들의 피지컬에 완벽하게 밀려버리며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여러차례 좋은 기회를 날려먹었다. 결국 멕시코전은 결장했고 8강 온두라스전에서 선발 출전했으나 역시 이번에도 어정쩡한 플레이와 흐름을 끊는 백패스와 탐욕을 일삼다 팀을 좌초시키고 말았다.[* 다만 이 경기는 문창진 혼자만의 책임이라기도 보기 힘든게, 사실상 황희찬 혼자서 멱살을 잡고 가는 경기였고 ~~소몰이~~ 손흥민, 풀백 수비 모두 삽질을 일삼다가 결국 역습 한 방에 팀이 털려버렸다.] 결국 포항 소속으로 경기할때 보이는 문제점인 기복있는 플레이와 피지컬 적인 한계, 탐욕, PK 미스 등(...)이 정작 본선 무대에서 골고루 터져버리며 그동안 국대 팬들에게만큼은 까이지 않았던 문창진이었으나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안티가 늘어나게 되고 말았다.이상하게 연령대 대표팀 에서는 40경기 23골을 넣을 만큼 에이스고 클럽에서의 활약도 준수하지만 이상하게 국가대표팀에는 한 번도 차출 된 적이 없다. 동기인 진성욱 김동준, 이창민, 권창훈 그리고 2살 아래인 황희찬이 차출된 적이 있는 만큼 문창진에게는 안타까운 부분.
         국가대표팀과 올림픽에 나가는 U-23팀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타공인 동년배 에이스이자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평가받는 문창진이지만 잦은 부상 때문에 선발되지 못할까봐 걱정한 것. 그 [[황선홍]] 감독조차 대표팀에 너무 마음이 많이 가 있다고 염려할 정도였으니... 거기에 혹시나 나이 때문에 올림픽에 나가지 못할까봐 날짜 단위로 계산까지 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http://sports.news.naver.com/amatch/news/read.nhn?oid=111&aid=0000447007|[이성필의 NOW 도하]생일 날짜까지 계산했던 문창진의 대반전]]
         [[분류:1993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 [[분류:강원 FC/현역]]
  • 박남현 . . . . 6회 일치
          | 직업 = [[배우]] & [[무예|무술감독]]
         '''박남현'''([[1966년]]~)은 [[대한민국]]의 [[배우]] 겸 [[무예|무술감독]]이다.<ref>[http://people.search.naver.com/search.naver?where=nexearch&query=%EB%B0%95%EB%82%A8%ED%98%84&sm=tab_etc&ie=utf8&key=PeopleService&os=105489 박남현-네이버인물정보]</ref>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무술가]][[분류:포항시 출신]]
  • 박승욱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3라운드]]([[SK 와이번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6월 28일]] <br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대타
         '''박승욱'''(朴承昱<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2년]] [[12월 4일]] ~ )은 [[KBO 리그]] [[SK 와이번스]]의 [[내야수]]이다.
         {{토막글|야구인}}
  • 박신우 (영화감독) . . . . 6회 일치
         | 직업 = [[영화감독]]
         '''박신우'''는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가 재학시절 연출한 단편 〈금붕어〉로 제 9회 부산국제영화제 선재펀드상을 수상했고, 영상원 재학시절 만든 단편 〈미성년자 관람불가〉로 제4회 미장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수상하며 충무로의 주목을 받았다. 연극영화 감독데뷔작은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의 《[[백야행 (영화)|백야행]]》이다.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홍익대학교 동문]][[분류:한국예술종합학교 동문]]
  • 박현진 (음악가) . . . . 6회 일치
         * 《[[롯데:LG 야구 시구]]》(2017.5.21) - 시구&클리닝타임공연
         [[분류:200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래퍼]][[분류:K팝 스타 참가자]][[분류: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배성룡 . . . . 6회 일치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64년 죽음]][[분류:청도군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분류:대한민국의 경제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
         [[분류:대한민국의 사회민주주의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
  • 백승민 (야구선수)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10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6월 21일]]<br>[[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대구]] 대 [[SK 와이번스|SK]]전
         {{토막글|야구인}}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중견수]][[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수원 백씨]]
  • 서용주 . . . . 6회 일치
         [include(틀:상위 문서, top1=야구 관련 인물(KBO))]
         || '''출신학교''' || 대해초-포철중-[[포항제철고등학교 야구부|포철공고]]-[[동의대]] ||
         동의대의 주장이자 4번타자였지만 프로지명을 받는 해인 4학년에 [[회장기 전국대학야구 춘계리그]] 이후 39타수 1안타라는 최악의 ~~대삽질~~부진을 보이면서 결국 프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KIA 타이거즈]]의 제의로 [[육성선수]]로 입단할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 타격이 폭발, 드래프트 이후 치러진 제67회 [[전국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4경기, 17타수 9안타(1홈런), 7타점의 맹활약을 펼쳐 팀의 우승에 기여하였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분류:타자]][[분류:외야수]][[분류:우투우타]]
  • 성현아 . . . . 6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마약범]][[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김천시 출신]]
  • 송남헌 . . . . 6회 일치
         [[분류:1914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사]][[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한국의 통일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김규식]]
  • 신수항 (배우) . . . . 6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200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
  • 안상미 . . . . 6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199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해설자]][[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1999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1996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
  • 오은석 . . . . 6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펜싱 선수]][[분류:올림픽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동의대학교 동문]][[분류:오성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동메달리스트]]
  • 이예린 (1974년) . . . . 6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1994년 데뷔]][[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이주호 (1961년) . . . . 6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전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코넬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분류:이명박 정부의 국무위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이태현(씨름) . . . . 6회 일치
         그러나 2006년 한국씨름연맹[* 흔히 (프로)씨름을 관장하는 단체가 대한씨름협회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잘못됐다. 쉽게 말하자면, 야구로 치면 대한씨름협회는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한국씨름연맹은 [[한국야구위원회]]와 같은 위치의 단체들이다.]의 막장 행정, 세력간 정치다툼으로 흑화가 되고 [[최홍만]]이 [[K-1]]에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자, 이태현은 소속팀 현대삼호중공업과 2012년까지 맺었던 계약을 파기하며 [[종합격투기]]에 뛰어든다.[* 이 때 소속 팀인 현대삼호중공업이 이태현에게 계약파기에 대한 소송을 걸었다가 취하했을 정도로 이태현은 종합격투기 진출 선언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았었다.] 이태현은 국내 복귀 후 인터뷰에서 "그저 관중이 있는 곳에서 시합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는데, 종합격투기의 화려한 조명과 관중들의 환호, 매스컴의 관심 등을 보면서 엄청난 유혹에 시달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결국 이태현은 종합격투기를 떠나고 초등학교 때 은사인 [[구미시]]청 김종화 감독의 권유로 씨름판에 복귀했다. 복귀 후 다시 씨름판에 잘 적응하며 백두장사 2회를 더 기록, 자신이 가지고 있는 백두장사 최다 기록을 20회로 경신했다.
         2011년 2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그리고 동년 3월에 모교인 [[용인대학교]] 격기학과의 씨름전공 교수로 정식 임용된 후 씨름 팀 감독으로 재직 중에 있으며, 이와 함께 [[2014년]] 부터 [[한국방송공사|KBS]]에서 씨름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돌스타 육상 선수권대회|아육대]]에도 출연해 여자 씨름 해설을 했으며, 출전자들을 지도해 주기도 했다.
         [[분류:씨름 선수]][[분류:종합격투기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76년 출생]]
  • 이희근 (1929년) . . . . 6회 일치
         [[분류:192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장]][[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군참모총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공군사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미주리 종합군사학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방공포병학교 동문]][[분류:공군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공군참모대학교 동문]][[분류: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분류:국방대학원 동문]][[분류:전두환]][[분류:백선엽]][[분류:박정희]][[분류:정일권]][[분류:노태우]][[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심대평]][[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장문규 . . . . 6회 일치
         * 《[[특별근로감독관 조장풍]]》 (2019년, MBC)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
  • 장우혁 . . . . 6회 일치
         [[분류:H.O.T.의 일원]][[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78년 태어남]][[분류:199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힙합댄서]][[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
  • 장윤정 (미스코리아) . . . . 6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7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진]][[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
  • 정상교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1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1년]] 5라운드([[KIA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1년]] [[8월 10일]]<br>[[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LG 트윈스|LG]]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2012년]] [[5월 6일]]<br>[[광주무등경기장 야구장|광주]] 대 [[넥센 히어로즈|넥센]]전
  • 정인숙 (1945년) . . . . 6회 일치
         [[1962년]] 신명여고 졸업 후 [[1964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이후 [[명지대학교]] 사범대학에 입학했으나 학업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는 가는둥 마는둥 하다가 중퇴하였다. 뛰어난 미모로 [[미스코리아]] 대회에 나가려고 했으나 가족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ref name="han01">[http://news.hankooki.com/lpage/people/200807/h2008070802511484800.htm <nowiki>[</nowiki>정홍택의 지금은 말할 수 있다<nowiki>]</nowiki> <16>정인숙 사건과 나] 한국일보 2008년 07월 08일자</ref> 아버지의 실직과 대학 낙방은 그의 방황을 부추겼다. 영화배우가 되고 싶은 꿈에 영화감독을 만났으나 1년만에 헤어지고, 임신한 아이는 낙태하였다. 이후 요정에 들어가 요정업에 종사하게 된다.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1970년 죽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화기에 죽은 사람]][[분류:테러 피해자]][[분류:범죄 피해자]][[분류:대한민국 사람]]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 제3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4공화국]][[분류:정일권]][[분류:박정희]]
  • 조무근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5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5년]] 2차 6라운드([[kt 위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5년]] [[5월 2일]] <br /> [[수원야구장|수원]] 대 [[NC 다이노스|NC]]전 구원
         {{메달 스포츠|남자 [[야구]]}}
         {{토막글|야구인}}
  • 주다영 . . . . 6회 일치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하이큐/265화 . . . . 6회 일치
          * 사루카와의 감독 [[시시오 오리타카]]는 [[네코마타 야스후미]]의 제자 출신으로 1세트를 버리더라도 장기전으로 유도하는 작전을 구사한다.
          * 중계진은 수비전으로 전개되는 경기 양상을 양팀 감독에게서 찾았다. 사루카와의 [[시시오 오리타카]]는 젊은 감독이었다. 그는 네코마의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제자 출신이었다. 사제간이라 닮은 플레이를 펼치는 걸까? 중계진의 분석이 맞는 지는 몰라도 경기 양상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 경기가 네코마의 우위건만 네코마타 감독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리고 경기를 보던 다이쇼도 못마땅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 다이쇼가 정확한 통찰을 내렸다. 네코마는 2점 리드를 지키며 22 대 20점. 1세트 후반까지 몰고왔다. 겉보기에는 네코마가 안정적으로 기세를 올려가는 걸로 보였지만 시시오 감독의 복심에 따르면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작은 희생에 불과했다. 설사 그때문에 1세트를 내주더라도 아깝지 않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작전 목적은 적 세터에게 부하를 거는 것. 그가 본 코즈메는 멘탈이 무너지진 않더라도 피지컬 쪽은 무너지는 쪽이었다. 지치면 표가 나는 타입. 경기가 풀세트로 가게 되더라도 좋았다. 오히려 그 쪽이 유리하기도 하다.
  • 한길로 (영화감독) . . . . 6회 일치
         | 직업 = [[영화 감독]]
         '''한길로'''(洪尙秀, [[1977년]] [[10월 27일]] ~)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다.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영화 각본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승규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3년]] 1차 5순위([[삼성 라이온즈]])
         '''홍승규'''(洪勝奎<ref>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42800209205003&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4-28&officeId=00020&pageNo=5&printNo=20174&publishType=00020 "라이온즈 1번타자 자리놓고 張泰洙·洪勝奎 각축"] 동아일보. 1987년 4월 28일.</ref>, [[1960년]] [[6월 20일]] ~ )는 전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현재는 대구MBC의 라디오 야구 중계 해설가로 활동 중이다.
         {{토막글|야구인}}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KBO 리그 우익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대구상업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남양 홍씨 (당홍)]][[분류:대한민국야구 해설자]]
  • 황경태 . . . . 6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두산 베어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7월 19일]]<br>[[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1루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
  • 강세정 . . . . 5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아이돌 가수]][[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경기대학교 동문]][[분류:200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
  • 강원래 . . . . 5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199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테크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래퍼]][[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김성재]][[분류:나사렛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장애인]][[분류:지체 장애인]][[분류:장애인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강정길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5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5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1차 1순위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권 양도로 [[이강돈]]과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주 포지션은 [[1루수]]였고, 정교한 타격을 선보이는 중거리형 타자였다. [[이정훈 (1963년)|이정훈]], [[이강돈]] 선수와 함께 [[한화 이글스|빙그레 이글스]] 타선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ref>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109&aid=0001995565 강정길, "삼성만 만나면 펄펄 날았다"] 《Osen》, 2008년 12월 10일</ref> [[2008년]]부터 [[2013년]]까지 모교인 [[경북고등학교]] 야구감독을 지냈다.
         {{토막글|야구인}}
  • 고성국 . . . . 5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학원 강사]]
  • 권영진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8년]] [[7월 5일]] <br />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한화 이글스|한화]]전
         * [[경찰 야구단]] (2010년 ~ 2011년)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분류:안동 권씨]][[분류:경찰 야구단 선수]]
  • 권영해 (1888년) . . . . 5회 일치
         [[분류:1888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안동 권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한국독립당]][[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목회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김동재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3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3년]] 1차 1순위([[삼성 라이온즈]])
         {{토막글|야구인}}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삼성 라이온즈 선수]][[분류:MBC 청룡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김수학 (법조인) . . . . 5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일엽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98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98년]] 고졸우선지명([[삼성 라이온즈]])
         '''김일엽'''(金一燁<ref>{{서적 인용 |저자=[[KBO (야구)|KBO]] |제목=한국 프로야구 기록대백과 |판=제4판 |쪽=321 |날짜=2009-03-10 }}</ref>, [[1979년]] [[11월 15일]] ~ )은 [[KBO 리그]] 전 [[롯데 자이언츠]], [[한화 이글스]]의 투수이다.
         {{토막글|야구인}}
  • 김태훈 (1987년)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대한민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3차 6라운드([[KIA 타이거즈]])
         [[200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06년]] 4차 7라운드([[SK 와이번스]])
         '''김태훈'''(金太勳<ref> 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 </ref>, [[1987년]] [[9월 28일]] ~ )은 [[KBO 리그]] 전 [[KIA 타이거즈]]의 [[포수]]이다.
         {{토막글|야구인}}
  • 김현민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김현민'''(金賢敏<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92년]] [[4월 12일]] ~ )은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선수이다.
         {{토막글|야구인}}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두산 베어스 선수]][[분류:제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
  • 도균 . . . . 5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문성주 . . . . 5회 일치
         [[경북고등학교 야구부|경북고]]와 [[강릉영동대학교|강릉영동대]]를 졸업하고 [[KBO 리그/2018년/신인드래프트|KBO리그 2018년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해 2차 10라운드에서 [[LG 트윈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엠엘비파크]]의 2군 경기 목격담에 의하면 10라운드 지명임에도 불구하고 퓨처스에서 1번타자 중견수로 선발출장 중이라고 했다. 성적도 시즌 초반이지만 3할 이상의 고타율에 홈런도 3개나 쳤다. 하위라운더 지명자이지만 의외로 잠재력이 있는 듯했다. [[류중일]] 감독도 인터뷰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 [[LG트윈스]] 2군 감독인 [[송구홍]]의 아들 송찬오의 대학 선배라고 한다.
         [[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 [[분류:1997년 출생]] [[분류:좌투좌타]] [[분류:외야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미래소년 코난 . . . . 5회 일치
         SF [[애니메이션]]. 감독은 [[미야자키 하야오]]. 미야자키 하야오의 첫 감독 작품이다. NHK에서는 처음 방영한 셀 애니메이션. 화수는 총 26화. 1978년 방송.
         일단 기본적 줄거리의 토대, 등장인물의 이름 등의 공통점은 있으나 해당 소설과 미래소년 코난은 차이점이 있다. 극중 인물들의 역할과 비중이라던가. 주인공 코난은 나이대가 달라진데다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인 발가락 힘이 애니메이션에서 생긴 것이다. 이는 감독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대폭 수정했기 때문인데 소설을 읽어본 미야자키는 이 애니메이션의 주시청자가 될 아이들에게 소설 내용을 그대로 내보내는 것에 꺼렸다고 한다. 그래서 인물 설정과 줄거리의 대폭 수정을 조건으로 감독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그래도 소설에 나왔던 것들이 애니메이션에서도 나온 것을 보면 아무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 <[[미래소년 코난II 타이가 어드벤처]](未来少年コナンII タイガアドベンチャー)>라는 것이 있다. 감독은 미래소년 코난의 연출, 콘티에 참여했던 하야카와 케이지. 1999년에 방영했으며 화수는 24화. 내용은 초자력병기 등의 일부 단어는 공통되나 그외에는 미래소년 코난과 아무런 관계 없다.
  • 박성환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프로 입단 연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10차 10라운드 (전체 100순위)([[두산 베어스]])
         {{토막글|야구인}}
         [[분류:199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월배초등학교 동문]] [[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박홍 (신부) . . . . 5회 일치
         [[분류:194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총장]][[분류: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반공주의자]][[분류:서강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분류:예수회]]
  • 부산광역시 . . . . 5회 일치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5/5a/Busan_Sajik_Stadium_20080706.JPG/120px-Busan_Sajik_Stadium_20080706.JPG|[[사직야구장]]
         사직야구
         [[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부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1949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분류:대한민국의 옛 임시 수도]][[분류:아시안 게임 개최 도시]]
  • 서동민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6라운드]]([[SK 와이번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SK 와이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달성 서씨]]
  • 서상일 . . . . 5회 일치
         [[분류:1885년 태어남]][[분류:1962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조선의 사회 운동가]]
         [[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대한민국 제1공화국]][[분류:대한민국 제2공화국]][[분류:호헌동지회]][[분류:윤보선]][[분류:윤치호]][[분류:조봉암]][[분류:장택상]][[분류:민주당 (대한민국)]][[분류:진보당 (대한민국) 정치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 서씨]][[분류:간 질환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호창 (1967년) . . . . 5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7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친문]][[분류:문재인]][[분류:박원순]][[분류:안철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196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시사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정치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법률학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여산 송씨]]
  • 식극의 소마/177화 . . . . 5회 일치
          * 감독관은 에리나 덕분에 요행을 얻은 거라고 폄하하지만 에리나는 직접 나서 "이들은 당신에게 질 요리인이 아니다"라고 반박한다.
          * 엔도 감독관은 허세일 뿐이라고 잘라 말하지만 각 시험장 마다 반역자들이 남아 면을 만들고 있다는 보고를 받는다.
          * 당황했던 감독관은 차츰 진정하며 "단지 면을 만드는 것 뿐이라면 의미가 없다. 만족할 만한 맛을 내야 한다"며 여유를 보인다.
          * 소마를 필두로 개성적인 고세츠 우동이 속속 제출되고 감독관도 인정하지 않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 엔도 감독관은 에리나의 리더쉽과 카리스마를 잔다르크게 비유하며 패배를 인정한다.
  • 실업팀 . . . . 5회 일치
         [[야구]], [[축구]], [[농구]], [[배구]]에서는 [[프로 스포츠]]화가 진행되기 전 까지 기업 실업팀 실업리그가 '최상위 리그'로서 명성을 누렸다. 야구와 축구는 1980년대 프로가 출범하기 전 까지, 농구와 배구는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프로가 시작되기 이전까지가 실업리그의 전성기로 평가받는다. 이러한 종목에서 프로 리그 출범 이후로 많은 실업팀 선수가 프로선수로 전환했다. 축구의 경우는 [[중공업]], [[조선]], [[석유화학]] 등 제조업 팀이 많이 있었으나 실질적으로 한국축구를 이끌어 나간 중심은 금융팀이 금융단 축구를 박정희의 비호 아래 육성하면서 본격적인 세미프로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야구는 한 때 실업리그가 존폐 상태에 놓일 정도로 쇠퇴했으나 2010년대에는 [[프로야구]] 붐을 타고 아마추어 야구단이 새롭게 설립되면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농구, 배구는 실업팀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태이다.
  • 영덕군 . . . . 5회 일치
          * [[류중일]] : 전 [[삼성 라이온즈]] 감독, 전 야구선수. 강구면 출신.
          * [[신태용]]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전(前) 축구선수. 영해면 출신.
  • 영천시 . . . . 5회 일치
         참고로 야구단은 연고지가 [[대구광역시]]인 [[삼성라이온즈]]를 대부분 응원하는 편이다.
          * [[김진욱(야구)|김진욱]] : 현 [[kt wiz]] 프로야구 감독.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천시]]
  • 유인영 . . . . 5회 일치
         | 단편영화 감독, 출연
         | 단편영화 감독
         | 단편영화감독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04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
  • 이계순 (1927년) . . . . 5회 일치
         [[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영문학자]][[분류:대한민국의 여성주의자]][[분류:여자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정무제2장관]][[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덕진 (가수) . . . . 5회 일치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데뷔]][[분류:하이원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수상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총신대학교 동문]]
  • 이동훈 (1996년)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2라운드([[한화 이글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7월 10일]]<br />[[한밭종합운동장 야구장|대전]]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대주자
         [[2016년]]에 입단하였다. [[2017년]] [[5월 5일]] [[kt 위즈|KT]]전에서 [[배제성]]을 상대로 데뷔 첫 안타를 기록하였다.<ref>[http://www.spotvnews.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953 프로 첫 안타 한화 이동훈 "이제야 웃네요"] - 스포티비뉴스</ref> [[2018년]] [[8월 9일]] [[넥센 히어로즈|넥센]]전에서 [[신재영 (야구 선수)|신재영]]을 상대로 데뷔 첫 홈런을 기록하였다.<ref>[http://www.sportsseoul.com/news/read/668077 한화 이동훈, 데뷔 첫 홈런 신고] - 스포츠서울</ref>
  • 이승현(농구선수) . . . . 5회 일치
         초등학교 5학년 무렵 95Kg이나 나간 몸무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유도를 시작했는데, 유도를 하면서 오히려 살이 더 찌는 바람에(...) 농구로 전업을 해서 농구 선수가 되었다.[* 이때 유도를 계속 하고싶었지만 농구로 전향하라는 제의를 받았고, 만약 결승에서 이기면 유도를 계속 할 수 있다는 조건을 걸었다. 그러나 이승현은 이 결승전에서 패배했다.] 농구를 하면서 살을 30Kg을 뺐고, 키가 크면서 중학 무대와 고교 무대 모두에서 최고급 [[파워 포워드|4번]]-[[센터(농구)|5번]]을 맡는 선수로 성장했다. 고교 최고의 센터로 불린 이승현을 두고 대학팀 간 경쟁이 붙었고, 거의 연세대로 진로가 확정이 되는 듯 싶던 이승현은 고려대학교 이민형 감독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해 결국 고려대로 진학하게 되었고, 1학년 부터 주전 자리[* 이전에 1학년부터 [[파워 포워드]]였다고 서술되어 있었는데, [[이종현(농구선수)|이종현]]의 입학 이전인 1,2학년 시절에는 [[센터(농구)|센터]]를 맡았었고, 이종현 입학 이후 파워 포워드로 전향하게 된다. 2011~2012년 고려대의 주전 파워 포워드는 [[정희재]]였다. 이승현은 센터 시절에도 입학과 동시에 [[장재석]], 김종규를 제치고 리바운드상을 수상하는 등 적어도 대학농구 내에서는 수위급 [[센터(농구)|5번]]의 면모를 보였다.]를 차지하면서 맹활약하기 시작했다.
         4년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종현과 함께 트윈타워를 형성하며 고려대학교 농구부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으로, 고려대의 2013년 농구대잔치, MBC배, 프로-아마 최강전, [[한국대학농구리그]] 챔피언 결정전 우승과 2014년 MBC배, 아시아-퍼시픽 대학농구 챌린지, 대학농구리그 정규리그 전승 및 챔피언 결정전 우승을 달성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이런 활약으로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농구 예비 엔트리에도 진입하였으며 [[유재학]] 감독이 높게 평가하는 것을 볼 때 발탁 가능성도 적지 않았지만, 결국 최종 엔트리 진입에는 실패했다.
         한편 이승현이 프로에 와서는 대학시절의 파괴력 넘치던 인사이드 플레이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오히려 공격시 슈터가 아니냐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외곽 플레이의 비중을 늘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승현은 현재 오리온스에서 공격시 외곽과 인사이드의 조합을 1:1정도로 가져가며 [[파워 포워드|4번]]보다는 3.5번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있다. 팬들이 기대했던 파괴력 있는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팀에서 궂은일을 하고 외곽에서 필요할때 3점슛을 넣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플레이에 대한 팬들의 변명으로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 외에는 포지션의 엄격한 구별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추일승]] 감독에 의해 그렇게 플레이하도록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라는 추측이 제기되기도 한다.
         2016-17 시즌에도 평소 자신의 역할대로 박스아웃, 도움수비, 몸싸움, 포스트업 등 공수의 핵심으로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시즌에 비해 외곽슛이 확연히 떨어진 모습을 보이고 있어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공격이 뻑뻑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런 문제점을 파악하고 있는지, 추일승 감독은 매경기 30분 약간 안되는 정도로 출전시간을 조절해주고 있다.
         추일승 감독이 이번 시즌이 끝나고 군입대를 시키겠다고 했다. 생각보다 발목의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시즌에도 혹사시키느니 선수생명의 장기화하여 리빌딩 후 다시 대권을 노리겠다는 입장인듯하다. 4월 19일 상무에 최종 합격했다.
  • 이영희 (1936년) . . . . 5회 일치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신여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이장영 . . . . 5회 일치
         '''이장영'''(李長榮, [[1955년]] [[1월 15일]] ~ , [[대구]])은 [[대한민국]]의 [[경제학자]]이자,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을 역임한 경제부처 공직자이다.
         *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 금융감독원 부원장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지우 (야구선수)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4년 2차 3라운드]]([[NC 다이노스]])
         율하초등학교를 경복중학교를 거쳐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경북고등학교]] 시절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하여 1학년 때부터 주전 좌익수로 활약하며 좋은 타격성적을 보여주었다. 고교 통산 58경기 타율 0.357 출루율 0.441 장타율 0.464 74안타 1홈런 48타점 25볼넷 21삼진을 기록하였다. [[2013년]] [[8월 26일]]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선수 지명회의]]에서 NC 다이노스에 2차 3라운드 26순위로 지명되었다.<ref>[http://www.ncdinos.com/board/story/view?articleId=7421 왼손 거포의 계보를 이어갈 NC 이지우] - NC 다이노스</ref>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복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이지찬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8라운드]]([[kt 위즈]])
         * [[경찰 야구단]] (2016년 ~ 2017년)
         ==[[경찰 야구단]] 시절==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T 위즈 선수]][[분류:경찰 야구단 선수]][[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이현 (1983년) . . . . 5회 일치
         [[분류:빅히트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R&B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10년대 가수]][[분류:200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
  • 정링컨 . . . . 5회 일치
         [[분류:200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미국 사람|램버트, 링컨]][[분류:21세기 터키 사람|람베르트, 파울]][[분류:미국의 남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어린이 배우]][[분류:한양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미국의 침례교도]][[분류:미국계 터키인]][[분류:한국계 터키인]][[분류:미국계 한국인]][[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캐나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터키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뉴질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브루나이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침례교도]]
  • 정정아 . . . . 5회 일치
         [[분류:197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95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포항시 출신]][[분류:세종대학교 대학원 동문]]
  • 정형돈 . . . . 5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1994년 데뷔]][[분류:MBC 방송연예대상 대상 수상자]][[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학력 위조 의혹 피해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김천시 출신]][[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래 정씨]][[분류:FNC 엔터테인먼트 소속]]
  • 조청희 . . . . 5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2011.6 ~ 2011.8 :몽골야구협회 유소년 야구팀 수석 코치 / [[한화 이글스]] 트레이닝 코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조씨]]
  • 진선유 . . . . 5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광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여양 진씨]][[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창원시 . . . . 5회 일치
         마산 지역에서는 시 명칭, 청사 소재지, 야구장 등 어느 하나도 얻지 못했다는 박탈감과 소외감이 고조되어 분리 운동이 벌어지기도 했으며, 마산합포구 국회의원이 국회에 마산 분리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제대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다시 논의할 가망도 없어 사실상 무산된 상태.[[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3547176&ctg=1213|#]]
          * [[무학(기업)|무학소주]] : 진짜 [[마산야구장]]에서 보면 지역특산물 같아 보인다.(...) [[마산아재]] 문서를 참조. 구 마산시 시절에는 9경 5미라고 해서 나름 밀던 컨셉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일제시대 현재의 두월동 인근에 있었던 시미즈 양조장의 명맥을 계승한다.
         프로스포츠 구단으로는 야구의 [[NC 다이노스]], 농구의 [[창원 LG 세이커스]], 축구의 [[경남FC]]가 있다. 경남FC는 엄밀히 따지면 창원만의 연고 구단은 아니지만 주경기장으로 [[창원축구센터]]를 사용한다. 기타 자세한 내용은 [[창원시/스포츠]] 항목 참조.
          * [[마산 야구장]]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남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남도의 행정구역]][[분류:창원시]]
  • 최항석 . . . . 5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1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오산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하이큐/209화 . . . . 5회 일치
          * 전화로 감독 우카이에게 호통을 듣고 타케다 고문에게 한 소리를 듣는다.
          * 시라토리자와 배구부 감독 "와시죠 탄지"
          * 와시죠 감독은 히나타에게 "카게야마란 세타가 없는 너한텐 가치를 못 느끼겠다"고 폭언을 한다.
          * 와시죠 감독과의 미묘한 신경전.
         - 와시죠 감독. 냉정하지만 지금의 히나타에겐 가장 적절한 평가.
  • 하이큐/259화 . . . . 5회 일치
          * 예상을 뛰어넘은 카라스노의 선전. [[히바리다 후키]] 감독은 싸움의 구도를 "더 높은 차원에 도전하는 새내기"라고 표현했다. 하긴 강호 이나리자키도 어디까지나 도전자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오늘은 카라스노 라는도전자를 맞아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특히 카라스노에 대해선 정보량이 적긴 하지만 계속 새로운걸 시도한다는 걸 알겠다고 말한다. 이런 점은 [[우카이 케이신]]코치가 의도이기도 했다. 그런 시도들을 계속 던지는 것으로 경기의 균형을 잡고 있으며, 멈추게 되면 판도가 단숨에 기울 거라는 걸 안다.
          히바리다 감독은 그런 통찰을 보여준 후 어쩌면 진짜 대결은 그런 승부수들이 다 떨어진 뒤부터일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 이나리자키의 감독 [[쿠로스 노리무네]]. 가족관계가 심란해 보이는 41세다. 그는 선수들이 자꾸 10번, 히나타에게 정신 팔자 탐탁지 않아한다. TO 중에도 선수들이 10번의 움직임에 지나치게 연연했다. 쿠로스 감독은 "10번에 정신 팔리기 시작하면 카라스노에 먹힌다"고 지적한다. 그는 히나타를 개에 비유하며 "개한테도 무시가 제일 잘 먹힌다"고 주장했다. 이 개에 비유하는 버릇은 이미 유명한지 선수들은 "또 개에 비유한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마도 가족 중 그나마 친한게 개인 모양이다.
          어찌됐든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쿠로스 감독은 임기응변할 때와 우직하게 밀고 갈 때를 구분하라는 말로 TO를 종료한다.
  • 한보배 . . . . 5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0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어린이 배우]][[분류:청주 한씨]][[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AFC 회원 랭킹 . . . . 4회 일치
         기본적으로 회원순위를 산정할 때는 해당 회원이 운영하는 클럽과 리그에서 거둔 "클럽 점수"와 국가대표팀이 거둔 "국가대표팀 점수"(=National Team points, 이하 국대 점수)를 구해 이 둘을 합산하는 방식으로 한다. 클럽 점수와 국대 점수를 합산하면 최대 100점을 부여받을 수 있다. 2016년 기준, 클럽과 국대간의 가중치는 7:3으로 클럽 점수는 70점 만점에 국대 점수는 30점 만점으로 책정되어 있다.
         == 국가대표팀 점수 ==
         [[UEFA 계수]]와는 달리 국가대표팀의 성과를 클럽의 성과와 연결한다는 점에서 AFC의 기본적인 시각이 드러나 있다. 클럽이나 국대나 어차피 종국에는 협회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것이므로 이 둘을 분리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 말하자면 "협회국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측정하여 하나의 지표로 통합"하겠다는 점에서 UEFA 계수와는 차별되는 대표적인 특징이다.
  • 강성호 (1966년) . . . . 4회 일치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강씨]][[분류:대구중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사회과학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고도현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3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3년 7라운드]] ([[롯데 자이언츠]])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3년]] [[10월 1일]] <br /> [[사직야구장|사직]] 대 [[LG트윈스|LG]]전
  • 곽희성 . . . . 4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12년 데뷔]][[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구본욱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토막글|야구인}}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구성윤 . . . . 4회 일치
         [[대한민국]]의 [[축구선수]]로 포지션은 [[골키퍼]]. [[강현무]], [[김동준(축구선수)|김동준]], [[이창근]], [[이태희(1995)|이태희]] 등과 함께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미래를 책임질 골키퍼들 중에 1명이다.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2015~2016) ====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2015~ ) ====
         [[분류:1994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세레소 오사카/은퇴, 이적]] [[분류: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현역]]
  • 구자춘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장관]][[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 구천서 (야구인)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구천서는 1981년 대통령배 실업 연맹전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받았다. 이후 쌍둥이 동생 [[구재서]]와 함께 1981년부터 상업은행에서 활약했다. [[1982년]] 한국 프로 야구가 출범하면서 [[두산 베어스|OB 베어스]]의 원년 멤버로 동생과 함께 참가하여 활동하였다.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내야수였다.
         {{토막글|야구인}}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KBO 리그 2루수]][[분류:KBO 리그 3루수]][[분류:KBO 리그 유격수]][[분류:KBO 리그 지명 타자]][[분류:OB 베어스 선수]][[분류:신일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옥산초등학교 동문]][[분류:능성 구씨]][[분류:대한민국의 쌍둥이]][[분류:쌍둥이 스포츠인]]
  • 김건우 (1990년)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토막글|야구인}}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
  • 김대환 (법조인) . . . . 4회 일치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민교 (가수)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건국대학교 동문]][[분류:1967년 태어남]][[분류:1989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작사가]][[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민수 (1983년) . . . . 4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8년 데뷔]][[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예술대학 연극과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민아 (아나운서) . . . . 4회 일치
         * [[2010년]] : [[MBC]] 《[[야구 읽어주는 남자]]》
         * 2011년 토크 토크 야구 ({{ISBN|9788966210060}})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스포츠 아나운서]]
  • 김성곤 (1913년) . . . . 4회 일치
         [[분류:1913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김해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한민국의 제6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7대 국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제8대 국회의원]]
  • 김성민 (1991년) . . . . 4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199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수원대학교 동문]]
  • 김성윤 (1991년)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4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4년]] 2차 3라운드([[kt 위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토막글|야구}}
  • 김연수(작가) . . . . 4회 일치
          * [[홍상수]] [[감독]]의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다. 잘 나가는 영화 감독 역할. [[홍상수]] 감독을 예술가로서 존경한다고 밝힌바 있다. 정작 주변에서는 [[홍상수]]감독 영화에 나오는 남자가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왜 나갔냐며 핀잔을 줬다고 한다.
  • 김용준 (1904년) . . . . 4회 일치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6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수필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화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미술 평론가]][[분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학 교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종덕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8년]] [[9월 7일]]<br>[[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KIA 타이거즈|KIA]]전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넥센 히어로즈 선수]]
  • 김태욱 (가수) . . . . 4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9년 태어남]][[분류:1991년 데뷔]][[분류:인하공업전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팝 록 가수]][[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태희 . . . . 4회 일치
         김태희는 이후 [[대구 도시철도|도시철도]]에서 광고대행사 [[디자이너]]를 우연히 만나 2000년 "화이트" 광고를 찍으면서 연예계에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웹 인용|url= http://movie.naver.com/movie/bi/pi/basic.nhn?code=31893|제목=네이버 영화 김태희|웹사이트=[[네이버]]| 확인날짜=2011-01-20}}</ref><ref name="일요시사">{{웹 인용|url=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제목=<이색설문> 연예인 별별랭킹 베스트|웹사이트=일요시사|저자=최현경|날짜=2013-11-12|확인날짜=2014-02-25|보존url=https://web.archive.org/web/20140228224215/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5954#|보존날짜=2014-02-28|깨진링크=예}}</ref> 광고 촬영 이후 여러 곳에서 모델 제의가 들어왔고 그녀가 출신이라는 점 때문에 더 화제가 되었다.<ref name="MBC">{{에피소드 인용|제목=[MBC 스페셜] 태희의 재발견|url=http://www.imbc.com/broad/tv/culture/mbcspecial/commingsoon/1792451_27375.html|네트워크=[[MBC]]|날짜=2011년 4월 1일|회=516}}</ref> 2001년 영화 《[[선물 (영화)|선물]]》에서 중등 정연 역을 맡으며 스크린에 첫 데뷔했다.<ref name="네이버"/> 당시 [[영화 감독]] [[오기환]]은 잡지 표지모델로 섰던 김태희를 보고 테스트도 안 해도되니 그냥 데려 오라고 말했다.<ref name="MBC"/> 이후 대학생활의 숙원이었던 어학연수를 가기 전 홍두현 감독의 독립영화 《[[신도시인]]》 출연을 제안받아 출연했고 2002년 개봉했다.<ref name="씨네21"/> 같은 해 경험삼아 [[SBS 시트콤]] 《[[레츠고 (시트콤)|레츠고]]》에 출연했으나, 2개월만에 종영되고 배우의 길에 대한 고민을 했다.<ref name="MBC"/>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S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 수상자]][[분류:KBS 연기대상 여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 김형렬 (1959년) . . . . 4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영선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노재헌 . . . . 4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육군 소위]][[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강남대학교 교수]][[분류:수원대학교 교수]][[분류:불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감리교도]][[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조지타운 대학교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노태우 가]][[분류:교하 노씨]]
  • 맥스 페인 . . . . 4회 일치
          * 야구방망이
          Frankie "The Bat" Niagara. 펀치넬로 패밀리의 구성원. 모나가 먹인 약탄 위스키에 기절한 맥스를 의자에 묶어놓고 야구방망이로 두들겨 팼다. 펀치넬로 패밀리에 손해를 입힌 맥스를 개처럼 죽이라는 명령에 따른 것. 잠시 휴식시간을 가지러 바에 간 사이 탈출한 맥스에 의해 죽는다. 사용하는 무기는 듀얼 잉그램.
          Captain Baseballbat-boy. 신문에 연재되는 만화. 야구방망이를 사용하는 캡틴 베이스볼배트 보이가 주인공이다. 야구방망이에 맞아 죽은 피해자 옆 신문에서 첫 등장.
  • 문병권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8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1988년]] 2차 1순위 ([[MBC 청룡]])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8년]] [[월 일]] <br /> 구장 대 [[상대 팀]]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3년]] [[월 일]] <br /> 구장 대 [[상대 팀]]
  • 문호월 . . . . 4회 일치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49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휘문중학교 동문]][[분류:휘문고등학교 동문]][[분류:1927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일제 강점기의 바이올린 연주자]][[분류:병사한 사람]][[분류:의문사한 사람]][[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박부남 (1931년) . . . . 4회 일치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내과 의사]][[분류:소아청소년과 의사‎]][[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중양]]
  • 박정근 (법조인)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판사]]
         [[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박현정 (배우) . . . . 4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배장원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배장원'''(裵章元<ref>한국야구위원회, 2013 가이드북</ref>, [[1990년]] [[5월 17일]] ~ ) 은 전 [[KBO 리그]] [[KIA 타이거즈]]의 [[외야수]]이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KIA 타이거즈 선수]][[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서영택 . . . . 4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달성 서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장]][[분류:대한민국의 건설부 장관]][[분류:노태우 정부의 국무위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하버드 로스쿨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대한민국의 세무사]]
  • 서정돈 . . . . 4회 일치
         [[분류:194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총장]][[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
  • 서정제 . . . . 4회 일치
         [[분류:194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서현진 (방송인) . . . . 4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무용가]][[분류:미스코리아 선]][[분류:미스 월드 참가자]][[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라디오 진행자]][[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서울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서호진 . . . . 4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신목중학교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6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
  • 손광업 . . . . 4회 일치
         [[분류:197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손형준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2년 10라운드]] ([[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10월 3일]] <br /> [[대구시민운동장|대구]] 대 [[두산 베어스|두산]]전 대타
         '''손형준'''(孫亨埈<ref>한국야구위원회, 2012 가이드북</ref>, [[1989년]] [[7월 1일]] ~ )은 [[KBO 리그]] 전 [[삼성 라이온즈]]의 [[외야수]]이다.
  • 송지효 . . . . 4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비디오 자키]][[분류:2001년 데뷔]][[분류:영양 천씨]]
  • 식극의 소마/176화 . . . . 4회 일치
          * 2회전 감독관 엔도.
          * 감독관은 본색을 드러내며 "부족한 재료를 채우는게 시험"이라고 주장한다.
          * 이들이 출발하고 나서 엔도는 전화를 받는데, 1회전 감독관 히로이에게 온 전화.
          * 이들의 당혹을 보고 미소짓는 엔도 감독
  • 신민아 . . . . 4회 일치
         한 때 CF쪽에서는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유독 [[영화]]와는 인연이 없는지,--드라마라고 아닌건 아닌데..-- 아니면 작품을 선택하는 안목이 낮은건지 출연한 작품 중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말아먹었다'''. 그 덕분에 ''''한국 영화사 최고의 [[핵잠수함]]'''', ''''[[충무로]]의 흥행 [[부도]] [[수표]]''''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데[* 의외로 이름난 드라마작가나 유명 [[영화 감독]]들과 작품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CF나 영화에 캐스팅되고 있어서 '[[스폰서]]가 빵빵하다', '[[언론플레이]]에 능하다'라는 의견도 다수 가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 공히 '히트작이 없음'에도, 'CF에 있어서는 가히 도배'를 하고 있는건 미스테리다. 흥행 관련해서는 비슷한 내용이 [[봉태규]] 항목에도 똑같이 존재한다. 2010년대 들어서는 남배우로 봉태규보다 ~~새로 떠오르는 국밥배우~~ ~~흥행전선 먹구름~~[[김강우]]와 더 많이 비교되는 것 같다. 다만 김강우의 경우 2017년부터 시작해서 조금씩 살아난다는 차이점이 있다.
          * 13년 조선족 감독인 [[장률]]의 신작 [[경주(영화)|경주]]에 캐스팅 되었다. 이미 [[엄태웅]]과 [[윤진서]] 뿐만이 아니라 비전문배우에게도 명연기를 끌어낸 감독인지라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었는데, 2014년 인디 영화급으로 소규모 개봉을 해서 흥행에는 재미를 못 봤지만 연기는 호평을 들었다.
         ||<table align=center><#FF8200>'''{{{#white 연도}}}'''||<#FF9100>'''{{{#white 제목}}}'''||<#FFA500>'''{{{#white 활동}}}'''||<#FF9100>'''{{{#white 배역}}}'''||<#FF9100>'''{{{#white 감독}}}'''||<#FF9100>'''{{{#white 관객수}}}'''||<#FF9100>'''{{{#white 흥행}}}'''||
  • 안내상 . . . . 4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순흥 안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동문]][[분류:1990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새정치국민회의]][[분류:개신교도 이탈자]][[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
  • 오석락 . . . . 4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독교인]][[분류:김천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2014년 죽음]]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유재호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0년]] 1차 7라운드([[LG 트윈스]])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외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강릉 유씨]]
  • 윤다영(영화배우) . . . . 4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2009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
  • 윤문영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6라운드]] ([[NC 다이노스]])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NC 다이노스 선수]][[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
  • 윤식 . . . . 4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파평 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하와이 대학교 동문]][[분류:베일러 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
  • 윤진솔 . . . . 4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조선대학교 동문]][[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윤찬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윤찬수'''는 [[KBO 리그]] 전 [[LG 트윈스]]의 선수이다. [[2009년]] 4분기 [[상무 야구단]]에 합격하여 2년간 병역의무를 이행한 후 원 소속팀인 [[LG 트윈스]]로 복귀하였고 [[2011년]] 가을 방출되었다. [[2012년]] [[5월 26일]] 새벽 [[국군체육부대]] 소속 시절 친분을 쌓은 승부조작의 장본인이자 전 프로 축구 선수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함께 [[서울특별시|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빌라 주차장에서 귀가하던 부녀자를 납치한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재 윤찬수는 공범인 [[김동현 (1984년)|김동현]]과 [[국민참여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2013년]] [[1월 17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선고됐다. 같은 날 김동현도 징역 3년이 선고됐다.<ref>[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01&aid=0006045507 `특수강도' 前국가대표 축구선수 김동현 법정구속]</ref>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KBO 리그 투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경근 (유도선수) . . . . 4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
         [[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8년 하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유도 참가 선수]][[분류:1986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
  • 이기광 (법조인) . . . . 4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이나경(배우)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생년 미상]][[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미연 (배우) . . . . 4회 일치
         [[분류: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 수상자]][[분류:청룡영화상 수상자]][[분류:대종상 수상자]][[분류:춘사영화상 수상자]][[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광주 이씨]]
  • 이영훈 (경제학자) . . . . 4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식민지근대화론]][[분류:대한민국의 뉴라이트]]
  • 이윤열 . . . . 4회 일치
         |이전=[[박정석 (이스포츠 감독)|박정석]]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KT 롤스터의 선수]][[분류:위메이드 폭스의 선수]][[분류:Old Generations의 선수]][[분류:SK 게이밍의 선수]][[분류:테란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골든마우스 수상자]][[분류:MSL 우승자]][[분류:MSL 금배지 수상자]][[분류:로열로더]][[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구미시 출신]][[분류:인하대학교 동문]]
  • 이은혜 (레이싱모델) . . . . 4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라운드 걸]]
  • 이재율 (1993년)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6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6년]] 2차 4라운드([[NC 다이노스]])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6년]] [[4월 2일]]<br />[[마산종합운동장 야구장|마산]] 대 [[KIA 타이거즈|KIA]]전 대주자
  • 이종혁 (야구선수)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2017년]] 2차 2라운드([[kt 위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7년]] [[8월 12일]] <br /> [[문학야구장|문학]] 대 [[SK 와이번스|SK]]전 구원
  • 이헌일 . . . . 4회 일치
         [[분류:1917년 태어남]][[분류:1979년 죽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연희전문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육군 장교]][[분류:국방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분류:대한민국의 반일 감정]][[분류:대한민국의 반공주의자]][[분류:김구]][[분류:이범석 (1900년)]][[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광복군]][[분류:제2차 세계 대전 참전 군인]][[분류:한국독립당]][[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임혁주 . . . . 4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1975년 데뷔]]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
  • 임효준 . . . . 4회 일치
         [[분류:199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동메달리스트]][[분류:올림픽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18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오륜중학교 동문]][[분류:동북고등학교 동문]][[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
  • 장대환 . . . . 4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흥덕 장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매경 미디어 그룹]][[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로체스터 대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뉴욕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김대중 정부]][[분류:대한민국 공군 대위]][[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전호영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4라운드]] ([[LG 트윈스]])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KBO 리그 내야수]][[분류:대한민국야구 선수]][[분류:LG 트윈스 선수]][[분류:대구율하초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정선 전씨]]
  • 정경식 . . . . 4회 일치
         [[분류:고령군 출신]][[분류:193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 [[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
  • 정명환 . . . . 4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80년 데뷔]][[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
  • 정봉수(역사) . . . . 4회 일치
         정봉수(鄭奉守)는 1935년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 옥동마을에서 부유한 농가의 삼형제 중 막내로 태어났다. 증산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육상을 시작해 경상북도 내 크고 작은 육상 대회에 출전해 입상하고 시온중학교에 진학한 후 16세에 경상북도 단거리 육상 대표로 선발되었다. 1950년 육군에 입대해 육군 육상 대표가 되었고 3군 대항 체육 대회에서 우승하고 육군 육상부 감독, 3군 대항 체육 대회 총감독, 88올림픽 꿈나무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군대를 전역한 후 1987년 코오롱 마라톤 팀의 창단 감독으로 취임하였다. 선수들에게 소식(小食)과 풍부한 단백질 식단을 집중 공급하는 방안을 도입하고 과학적인 선수 관리로 1990년과 1992년에 김완기가 한국 신기록을 세우고, 1992년 황영조가 2시간 10분벽을 넘어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이봉주 선수와 김이용, 권은주를 발굴해 세계적인 마라토너로 키우면서 한국 마라톤을 육성, 발전시켜 세계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 정홍준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0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02년]] 6차 9라운드([[삼성 라이온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06년]] [[6월 11일]]<br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대구]] 대 [[현대 유니콘스|현대]]전
  • 하이큐/233화 . . . . 4회 일치
          *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전일본 유스 합숙이 시작되던 겨울 무렵부터 봄고 대비 훈련을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야마가타의 니시키야마 고교는 감독이 대학 선배라는 인연 덕에 성립. 니시고가 봄고에 갔을 때도 어떤 느낌이었는지 확인해봤다. 그 결과 우카이 코치가 걱정하는 의외의 난관은 "천장"과 "바닥". [[타케다 잇테츠]] 고문과 우카이 코치는 막판까지도 너무 높아진 천장, 감촉이 다른 코트 때문에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카라스노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있다. 특히 10번(히나타)에 대해서도 요주의 시킨다.
          오오사도 감독도 비슷하게 여기고 있다. 어차피 여기에 올라온 이상 각지의 강호를 꺾고 올라온 학교들이다. 그리고 봄고에선 그런 강자들도 또다른 강자에게 쓰러지며 "이 회장에 먹히는 쪽"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여긴다.
          그때 이와무로의 두 번째 서브. 타나카가 받아서 카게야마에게 연결한다. 카게야마는 히나타에게 세트를 올리는데 평소와 달리 타점을 한참 빗나간다. 공은 라인을 벗어나며 그대로 츠바키하라의 3연속 득점. 스코어가 0대 3으로 벌어진다. 오오사도 감독은 이대로 "삼켜라"고 되뇌인다.
  • 한혜령 . . . . 4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하키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하키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하키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성주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성주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하키 참가 선수]]
  • 허규옥 . . . . 4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첫 출장 = [[KBO (야구)|KBO]] / [[1982년]] [[4월 6일]] <br /> [[광주무등경기장|광주]] 대 [[해태 타이거즈|해태]]전
         |마지막 경기 = [[KBO (야구)|KBO]] / [[1992년]] [[9월 26일]] <br /> [[대구시민야구장|대구]] 대 [[롯데 자이언츠|롯데]]전
  • 허준영 . . . . 4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김해 허씨]][[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5급 국가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건국대학교 교수]][[분류:경찰대학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경찰청장]][[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홍준표]][[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
  • 허진(법조인) . . . . 4회 일치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김해 허씨]][[분류:196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현소환 . . . . 4회 일치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2018년 죽음]][[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대한민국 해병 중위]][[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종필]][[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정주영]][[분류:백선엽]][[분류:심대평]][[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
  • 홍아름 . . . . 4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뮤지컬 배우]]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6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황금촬영상 수상자]]
  • K리그 클래식/2016시즌 . . . . 3회 일치
          1. 만23세이하 선수의 출전의무규정이 강화되었다. 2015시즌은 대한민국 국적의 선수 중 U23선수가 교체명단을 포함하여 2명 이상이 포함되어야 교체카드를 3장 활용할 수 있었던 반면에 2016시즌부터는 여기에 더하여 1명 이상은 선발출전이 의무화되었다. 단, 해당 선수가 연령별 국가대표팀이나 성인국가대표팀에 호출되어 공백이 발생한 경우에는 호출된 인원만큼 규정을 완화하여 적용한다.[* 수원 삼성을 예로 들면, 2016년 기준 23세 이하 선수인 권창훈이 국가대표팀에 호출될 경우엔 교체선수 명단에 23세이하 선수를 하나만 둬도 교체카드를 모두 활용할 수 있으며, 여기에 추가로 1명이 더 차출되면 출전명단을 연령제한 없이 꾸릴 수 있다.]
  • 고수희 . . . . 3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진대학교 동문]]
  • 고원희 . . . . 3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11년 데뷔]][[분류:김천시 출신]][[분류:제주 고씨]]
  • 고준희 . . . . 3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2001년 데뷔]][[분류:YG 엔터테인먼트 소속]][[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곽상도 . . . . 3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현풍 곽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남산초등학교 동문]][[분류:심인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친박]]
  • 곽성문 . . . . 3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교육대학교 대구부설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선진통일당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현풍 곽씨]][[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김경태 (배우) . . . . 3회 일치
         [[분류:197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관용 . . . . 3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선산 김씨]][[분류:구미시 출신]][[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친박]][[분류: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 후보]]
  • 김기창 (법학자) . . . . 3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법학자]][[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저술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시카고 대학교 동문]][[분류: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표현의 자유 활동가]][[분류:대한민국의 활동가]]
  • 김대휘 . . . . 3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예안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동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법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선재 (아나운서) . . . . 3회 일치
         * [[SBS (대한민국의 방송사)|SBS]] 《프로야구 중계석》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SBS의 아나운서]][[분류:2015년 데뷔]]
  • 김성주(축구선수) . . . . 3회 일치
         [[포항시]]에서 축구를 시작해 [[포항제철중학교]]까지 진학했지만 [[포항제철고등학교]]로는 진학하지 못했고, 대신 [[동래고등학교]]를 거쳐서 [[숭실대학교]]로 진학하였다. 그리고 숭실대학교 재학중이던 당시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까지 발탁되었을 만큼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다.
         2015년 [[K리그 드래프트]]에 참가하였고, 신생팀 [[서울 이랜드 FC]]의 감독 [[마틴 레니]]가 우선 지명을 하며 [[서울 이랜드 FC]]로 이적했다.
         [[분류:1990년 출생]]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알비렉스 니가타/은퇴, 이적]] [[분류:서울 이랜드 FC/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울산 현대/은퇴, 이적]] [[분류:제주 유나이티드/현역]]
  • 김소희 (2000년) . . . . 3회 일치
         [[분류:200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운용 . . . . 3회 일치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한국 전쟁 참전 군인]][[분류:대한민국 육군 소령]][[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미국 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육군포병학교 동문]][[분류:육군공병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메리빌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잉글랜드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대한민국의 수감자]][[분류:IOC 위원]][[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동덕여자대학교 교수]][[분류:중앙대학교 교수]][[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단국대학교 교수][[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교수]][[분류:한양대학교 교수]][[분류:고려대학교 교수]][[분류:서울가톨릭대학교 교수]][[분류:한성대학교 교수]][[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이화여자대학교 교수]][[분류:숭실대학교 교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교수]][[분류:서일대학교 교수]][[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분류:경기대학교 교수]][[분류:세종대학교 교수]][[분류:국민대학교 교수]][[분류:태권도인]][[분류:신민주공화당]][[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스포츠영웅 명예의 전당 헌액자]]
  • 김이브 . . . . 3회 일치
          * 2016년 9월 08일, 인천 문학야구장에서 열리는 [[SK 와이번스]]와 [[넥센 히어로즈]]의 야구 경기 시작 전 [[양띵]]과 함께 [[시구]], [[시타]]를 했다. 이는 [[KBO 리그|프로야구]] 역사상 최초로 [[MCN]] 1인 크리에이터가 하는것이다.[[https://youtu.be/ipgtbnoyUrw|#]][[https://youtu.be/3qT33tpkxeU|##]]
  • 김정수 (1991년) . . . . 3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김정수'''(金廷洙,<ref>한국야구위원회, 2014 가이드북</ref>, [[1991년]] [[4월 5일]] ~ )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이다.
         {{토막글|야구인}}
  • 김정행 . . . . 3회 일치
          * 동명의 [[재일 한국-조선인]] 야구선수를 찾는다면 [[카나이 마사유키]] 문서 참고.
         은퇴 이후 유도 코치 겸 유도대학 [[교수]], 대한민국 [[국가대표]] 유도 [[감독]] 등을 역임하였다.
         [[분류:동명이인/ㄱ]][[분류: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43년 출생]]
  • 김종훈 (1952년) . . . . 3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외교관]][[분류:통상교섭본부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
         [[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한미자유무역협정]][[분류:SK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외이사]]
  • 김형기 (법조인) . . . . 3회 일치
         [[분류:193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김희정 (펜싱선수) . . . . 3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1996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2004년 하계 올림픽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펜싱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2년 아시안 게임 펜싱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혜여자중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목원대학교 동문]]
  • 남동훈 . . . . 3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근대5종 선수]][[분류:2008년 하계 올림픽 근대5종 참가 선수]]
         [[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근대5종 참가 선수]]
  • 노동기준감독서 . . . . 3회 일치
         노동기준감독감독관에게는 사법 경찰관으로서 권한이 있어서, 위법하다고 판단한 경우는 시정을 위하여 지도와 조사를 할 수 있고, 악성인 경우는 강제 수사나 체포를 할 수도 있다.
         어디까지나 명확한 노동법 위반에 대하여 움직이는 기관으로서, 노동기준법에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해도 명확하지 않으면 실효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또 노동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내용은 노동기준감독서의 관할이 아니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조건 이나 법적판단이 미묘한 문제에서는 [[상담]] 정도는 할 수 있어도 직접 개입하지 않는다.
  • 노행하 . . . . 3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김천시 출신]]
  • 도모세 . . . . 3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태어남]]
  • 류종원 . . . . 3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배우]][[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어린이 배우]][[분류:리라컴퓨터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류한수 . . . . 3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레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6년 하계 올림픽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세계 레슬링 선수권 대회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분류:아시안 게임 레슬링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2018년 아시안 게임 레슬링 참가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구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공업고등학교 동문]][[분류:경성대학교 동문]]
  • 마철준 . . . . 3회 일치
         2004 시즌을 앞두고 2004 K리그 자유선발에서 [[제주 유나이티드|부천 SK]]에 자유 계약으로 입단하여 프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입단 첫 시즌 수비형 [[미드필더]]와 [[센터백]], [[풀백]]을 가리지않고 주전 선수들의 백업용으로 활동하다 투쟁심과 꾸준한 경기 운영 능력 등을 [[정해성]] 감독에게 높이 평가받아 후에 부천 SK의 주전 수비수로 도약하는데 성공하였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붙박이 사이드 [[풀백]]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마철준은 안정적인 경기 운영 능력과 기복 없는 플레이로 오랜 시간 [[제주 유나이티드]]의 측면을 책임지다 2012년 32살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신인 및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 입지가 좁아지자,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하게 된다.
         결국 2013 시즌부터 [[K리그 챌린지]] 소속 팀인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09&aid=0002466585|광주 FC에 입단하였다.]] 오랜 선수 경험과 후배 선수들에게 귀감이 될거라 판단한 구단의 판단으로 '''플레잉 코치'''로 활동하게 되었으며, 2014년까지 준주전급 선수로 수비 지역에서 알짜 활약을 보였다. 2015년에는 본격적으로 선수로 출전보다는 코치 업무에 집중하였으며, 하위 스플릿 마지막 경기 [[대전 시티즌]]과의 홈 경기에서 [[남기일]] 감독의 배려로 [[http://sports.new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436&aid=0000019339|시즌 마지막 경기를 교체 출전으로 뛰고 최종적으로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분류:1980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전북 현대 모터스/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 박경석 (1960년) . . . . 3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지체 장애인]][[분류:밀양 박씨]]
  • 박동진 (1922년) . . . . 3회 일치
         [[분류:1922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국토통일원 장관]][[분류:박정희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최규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베트남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브라질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미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주오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민주정의당]][[분류:민주자유당 당원]][[분류:유엔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밀양 박씨]]
  • 박세직 . . . . 3회 일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1933년 출생]][[분류:2009년 사망]][[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
  • 박지훈 (야구선수) . . . . 3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2012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2012년 1라운드]] ([[KIA 타이거즈]])
         |첫 출장 = [[KBO (야구)|KBO]] / [[2012년]] [[4월 12일]]<br>[[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광주]] 대 [[삼성 라이온즈|삼성]]전 구원
  • 배영호 . . . . 3회 일치
         [[분류:1915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교토 대학 동문]][[분류:성주 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고등검찰청 검사장]][[분류:법원행정처장]][[분류:대한민국의 국회사무총장]][[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장관]]
  • 백기만 . . . . 3회 일치
         [[분류:1902년 태어남]][[분류:196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동아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작가]][[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
  • 보루토/3화 . . . . 3회 일치
          * 그런데 감독관들 사이에서 그런 보루토의 행동을 보고하는 녀석이 있다?
          * 이어지는 2회전 시험. 감독관은 텐텐이다.
          * 하지만 이번에도 감독관 중 하나가 "이번엔 그걸 썼다"며 누군가에게 보고하고 있는데...
  • 서정윤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성범죄자]][[분류:대한민국의 교사]]
  • 손철주 (1954년)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미술 평론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한민국의 출판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병구 . . . . 3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코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 10-10 클럽]][[분류:포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송진현 . . . . 3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은진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신종령 . . . . 3회 일치
         [[분류:개그콘서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대학교 동문]][[분류:2009년 데뷔]][[분류:1982년 태어남]]
  • 오병희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
  • 우의형 . . . . 3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단양 우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
  • 우찬양 . . . . 3회 일치
         ||<#ed0000> '''{{{#ffff00 청소년대표}}}'''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대한민국 U-20]] (2015~2017, 33경기) ||
         K리그 클래식 16라운드 제주전에서 최순호 감독이 대대적인 로테이션을 돌리면서 시즌 첫 선발출장을 했다. 팀 자체가 2군급 선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에 눈에 띌만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분류:1997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포항 스틸러스/현역]]
  • 윤덕주 (농구인) . . . . 3회 일치
         * [[1999년]] [[2월 11일]] [[대한농구협회]] 명예회장<ref>[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l&ctg=news&mod=read&office_id=001&article_id=0004425319 대한농구협회, 최희암감독 사면 복권]</ref>
         [[분류:1921년 태어남]][[분류:2005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농구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숙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병사한 사람]][[분류:FIBA 명예의 전당 헌액자]]
  • 윤덕홍 . . . . 3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부총리]][[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적자원부 장관]][[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노무현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구대학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동덕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윤진이 . . . . 3회 일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이경희 (1880년) . . . . 3회 일치
         [[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일제 강점기의 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사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장]][[분류:의열단]][[분류:신간회의 인물]][[분류:한국의 군정기]][[분류:윤치호]][[분류:안창호]][[분류:김구]][[분류:이회영]][[분류:김원봉]][[분류:허정숙]][[분류:조병옥]][[분류:이승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인천 이씨]]
  • 이동흡 . . . . 3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 재판관]][[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고성 이씨]]
  • 이성구 (1942년) . . . . 3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공산초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민주자유당의 정치인]][[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영천 이씨]][[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이소선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2011년 죽음]][[분류:전태일]][[분류:1929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
  • 이신학 . . . . 3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대구옥포초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이영세 (1947년) . . . . 3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이은수(육군)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대한민국의 여성 고위 공무원]][[분류:한국군/여군]][[분류:1965년 출생]]
  • 이인성 (화가) . . . . 3회 일치
         [[분류:1912년 태어남]][[분류:1950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사고사한 사람]]
  • 이제석 . . . . 3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광고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미술가]][[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협성중학교 동문]]
  • 이종혁 (배우)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 [[분류:대구농업마이스터고등학교 동문]][[분류:동도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1974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8년 데뷔]]
  • 이준승 . . . . 3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안동시 출신]][[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지방검찰청 검사장]][[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홍열 (바둑기사) . . . . 3회 일치
         아마추어 시절 [[1979년]] 13기 아마국수전에서 우승하여 [[1983년]]에 입단하였고, 2001년 8단을 거쳐 [[2005년]] 11월에 9단으로 승단하였다. [[2007년]]에 한국바둑리그 제일화재 감독, [[2009년]] KB국민은행 한국바둑리그 감독(신안 태평천일염)을 맡았다.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신중학교 (서울)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
  • 이효상 . . . . 3회 일치
         [[분류:1906년 태어남]][[분류:1989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대학 동문]][[분류:경북대학교]][[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영남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국회의장]][[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성산 이씨]]
  • 인교진 . . . . 3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2000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교동 인씨]][[분류:키이스트 소속]]
  • 인천광역시/인물 . . . . 3회 일치
         * [[김영준(야구선수)|김영준]] - 미추홀구
         * [[김진영(야구)|김진영]] - 옹진군(인천)
         * [[김홍집(야구)|김홍집]] - 중구(인천)
  • 전병조 . . . . 3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
  • 정광용 . . . . 3회 일치
         1958년 3월생. [[박사모]]의 회장을 맡고 있으나 2018년 현재 2심에서 집행유예를 받고 석방되었다. 박사모 회장이 되기 전의 이력은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러나 CF 감독을 했었고 2000년에 설립된 키스콤이라는 광고회사의 사장이었다는 것 정도만 알려져 있다.
         상사맨과 CF 감독으로 일했고, 한때 키스콤이라는 광고제작사를 경영하기도 했다. 2004년 3월 30일부터 정치인 [[박근혜]]를 지지하는 인터넷 카페 [[박사모]]를 개설해 운영해왔다.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1958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정성현 (배구선수) . . . . 3회 일치
         | 국가대표팀 연도 = <nowiki></nowiki>
         | 국가대표팀 = <nowiki></nowiki>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구 선수]][[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성지중학교 (부산) 동문]][[분류:성지고등학교 (부산) 동문]][[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진격의 거인/98화 . . . . 3회 일치
          * 파르코는 자신을 "크루거"라 밝힌 남자와 매일 만나고 있다. 파르코가 가비를 이길 일을 말하며 "크루거의 덕"이라 감사를 표한다. 하지만 크루거는 몇 번이나 편지 배달을 부탁한 자신이 감사할 일이라고 사양한다. 그는 가족으로부터 야구공과 글러브를 받았는데, 자신도 그걸로 "앞으로 나아가야겠다"고 다짐한다. 그때 의사가 다가오는 걸 보고 파르코는 자리를 뜨는데, 공교롭게도 그는 군의 진료의로 일하는 "예거"씨였다. 크루거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본다. 노인이 같이 앉아도 되겠냐 묻자 크루거가 허락하고 둘은 통성명을 한다. 크루거는 "크루거"라는 이름을 그대로 댄다. 노인은 크루거가 기억상실에 걸린 것이나, 파르코가 자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대화 상대를 찾아온 거란 말과는 달리, 파르코의 상세한 내력에 대해서 읊기 시작한다. 파르코의 숙부가 엘디아 복권파 조직의 간부였다 숙청 당한 것, 연좌를 당하고 살아남은 가족들은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했던 것. 콜트가 마레의 전사가 된 걸로 겨우 그라이스가에도 안정이 왔다는 설명 뒤에 아마 "짐승 거인"을 계승하는 문제 때문에 자신을 만나기 껄끄러울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가 이런 말을 한 진의는 이랬다.
          노인은 파르코와 크루거 사이의 거래도 알고 있었고 사실 크루거가 정상이라는 것도 눈치채고 있었다. 그러니 의심살 짓은 그만두고 어서 가족에게 돌아가라고 권하는데. 크루거는 떠보듯이 "혹시 가족일로 후회할 짓을 했냐"고 묻자, 그는 상처를 찔린 표정이 된다. 그가 바로 [[그리샤 예거]]의 아버지이자 지크의 할아버지. [[엘런 예거]]에게도 할아버지가 된다. 그는 한순간도 후회하지 않은 날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리샤가 여동생을 데리고 벽을 나서게 놔둔 일이나 아들에게 의사를 강요했던 일 등. 그 모든게 자신 탓이라고 자책하던 그는 마침내 오열하듯이 비명을 지른다. 그때 병원에서 진짜 의사가 달려나오는데, 사실 그도 이 병원의 환자였던 것이다. 크루거는 병실로 돌아가는 그를 바라보다가 가족에게서 받은 야구공을 허공 위로 던져 본다.
          역시나 그 정체는 엘런 예거. 파르코에겐 여전히 가족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명목으로 여러번 심부름을 시켰다. 개인적인 조언도 해준 모양인데 파르코는 그 덕분에 가비를 이겼다고 굉장히 고마워한다. 그런데 파르코와 만나는 자리에 야구공과 글러브를 가지고 나왔는데, 일단 가족에게서 받은 거라고 설명했다. 파르코가 돌아간 뒤에는 병원을 방문한 예거 박사와 만나는데, 첫눈에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는 모습을 보인다. 예거박사가 파르코에게 심부름 시키는 거나 사실 그가 멀쩡하다는 걸 간파하고 가족에게 돌아가라 권하자 "혹시 가족에게 후회할 짓을 했냐"고 떠본다. 예상대로 예거 박사는 과거의 트라우마를 늘어놓으며 오열하게 되고, 착잡한 표정이 된다.
  • 차장섭 . . . . 3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역사가]][[분류:대한민국의 사진가]][[분류:대한민국의 문학자]]
  • 창작:RECORD . . . . 3회 일치
         동아리 회장. 유일하게 다른 회원들과 동갑임에도 사실은 1년 꿇었다(…). 하지만 덕분에(?) 경험이 풍부해서인지 동아리 내에서는 감독을 맡고 있다. 집에 온갖 영화를 보관해 두고서 시간이 날 때마다 다른 회원들에게 같이 보자고 하는데, 그게 죄다 옛날 영화들이라 회원들은 대부분 기피한다. 그나마 구현익과는 취향이 맞기에 동성애 드립이 나올 정도로 잘 어울리는 편.
          * 오우성과 구현익은 각각 홍콩 영화 감독 오우삼, 미국 영화 감독 스탠리 큐브릭의 이름을 변형한 것이다. 나머지는 그냥(…) 임의로 만든 것.
  • 채호기 . . . . 3회 일치
         *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255/32/ 영화감독 이명세, 김학제, 채호기 세 사람 인터뷰]{{깨진 링크|url=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255/32/ }}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김수영 문학상 수상자]][[분류:현대시작품상 수상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전대학교 동문]][[분류:인천 채씨]][[분류:20세기 시인]][[분류:21세기 시인]]
  • 최민호(유도선수) . . . . 3회 일치
         [[2012 런던 올림픽]]이 끝난 후 2012년 9월에 유도 국가대표팀 코치로 선임됐으며, [[2013년]] 말에는 [[용인대학교]] 교수로 정식 임용됐다.
         [[분류:유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80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최상열 . . . . 3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최순달 . . . . 3회 일치
         [[분류:1931년 태어남]][[분류:2014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체신부 장관]][[분류:전두환 정부의 국무위원]][[분류:대한민국의 우주 개발]][[분류:우주 개발 선구자]][[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스탠퍼드 대학교 동문]][[분류: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웅 . . . . 3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1년 데뷔]][[분류:대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탁민제 . . . . 3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학자]][[분류:대한민국의 과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한국과학기술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텍사스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광산 탁씨]][[분류:항공우주공학자]]
  • 판타스틱 포(2015년 실사영화) . . . . 3회 일치
         영화도 영화인데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정보에 의하면 감독도, 폭스도 영 아니게 일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초기 각본이 공개되었는데 내용은 지금의 영화와 많이 다르다고 하며 이에 호의적인 반응도 있지만 저건 저거대로 좀 그렇다는 식의 반응도 있다. 더불어서 감독에 대한 부정적인 정보도 거짓말이거나 부풀려졌다는 추측도 있는 듯 한데 이에 관해 어떤 결론이 나오든 영화가 망했다는 현재의 사실은 바뀌지 않을 듯.
         이 영화의 실패로 서구에서는 어메이징 스파이더맨 2를 예시로 들며 이 기회에 판타스틱 포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돌아올 가능성이 생겼다며 전화위복으로 생각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될지는 일단 두고봐야 할 것이 먼저 어메이징 스파 시리즈가 샘 레이미 스파이더맨 시리즈보다 격이 떨어지고, 어메이징 스파2가 그렇게 되긴 했지만 스파이더맨의 MCU 참가는 그것만이 이유가 아닌데다 완전히 돌아왔다고 보기 뭐해서 이를 예시로 들어야 할지는 뭐하다. 결국 폭스는 판타스틱 포의 판권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속편도 내놓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며 감독은 교체하고 배우들은 그대로라 하는데 2015년판의 오명을 떨쳐내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듯 하다. 그러나 결국 이 속편은 무산되었다고 한다.(...)
  • 하이큐/213화 . . . . 3회 일치
          * 히나타는 와시죠 감독에게 여전히 홀대받지만 개의치 않고 나름대로 기술을 익혀나간다.
          * 와시죠 감독은 "부르지 않은 놈에겐 밥도 잠자리도 없다"며 히나타를 홀대한다.
          * 우카이 코치에게 전화로 뭘 먹는게 좋겠냐고 묻는데, 우카이 감독은 어떤 상황인지 금방 이해하고 적절한 조언을 해준다.
  • 하이큐/216화 . . . . 3회 일치
          * 저녁 식사 중인 코치들은 와시죠 감독의 심경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 카라스노에게 패한 이후 와시죠 감독은 육성방침에 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듯.
          * 감독 본인은 부정하고 있지만 히나타에게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한데, 특히 시합 당시 히나타가 활약하는걸 보고 분노가 아닌 무언가가 느껴졌다고 한다.
  • 하이큐/219화 . . . . 3회 일치
          * 미야기현 강화 합숙을 맡았던 와시죠 감독은 히나타를 두고 "체격 대신 주어진 것은 높이에 대한 굶주림"이란 뼈있는 말을 남긴다.
          * 뒷풀이로 밥집에 간 와시죠 감독과 코치진.
          * 듣고 있던 감독은 "높이 라는 것에 대한 굶주림"을 언급하며 의식하든 안 하든,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그건 절대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하이큐/236화 . . . . 3회 일치
          츠바키하라의 감독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뼈있는 한 마디로 분위기를 정돈한다.
          10번을 막을 궁리를 하는 거 자체가 카라스노의 페이스에 말리는 것. 꾹 참고 리드 블록으로 정석적으로 대응하며 상대를 압박하는 것이 해법이다. 오오사도 감독은 결국 어떻게 되던지 "줍고서 공격"하는 단순한 것이 배구라며 늘하던 대로 하라고 격려한다.
  • 하이큐/238화 . . . . 3회 일치
          * 점수가 세트 포인트에 이르자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핀치서버 [[히메카와 아오이]]를 투입하는데.
          점수는 20 대 18로 2점차. 여기서 츠바키하라가 두 번째 TO를 사용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적의 흐름을 끊고 자군 선수들을 격려하려고 하는데 TO에서도 선수들이 신경스는 건 마이너스 템포. 보고 반응은 할 수 있지만 아슬아슬하게 늦어버린다.
          카라스노가 승기를 잡는게 확연해지자 오오사도 감독도 고심한다. 그는 지금까지는 모습을 비춘 적이 없던 14번 선수에게 손짓을 하는데.
  • 허만하 . . . . 3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의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195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박용래 문학상 수상자]]
  • 허화평 . . . . 3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범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
  • 홍효의 . . . . 3회 일치
          * [[야구 관련 인물(KBO)]]
         || 학력 || 포항초-포항중-[[구미전자공업고등학교 야구부|구미전자공고]]-강릉영동대 ||
         대학 졸업 후 삼성에 신고선수로 입단했다. 2009 시즌 마무리훈련에도 참가해 [[선동열]] 감독이 칭찬했었지만, 막상 본 시즌에 들어가보니… 21경기 등판해 47⅓이닝 1승 3패 '''72사사구''' 38실점 평균자책 6.08을 기록했다.
  • 황선필(1939년) . . . . 3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자]][[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 제5공화국]]
  • 황정오 . . . . 3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유도 선수]][[분류:올림픽 유도 메달리스트]][[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분류:1984년 하계 올림픽 유도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강승현(모델) . . . . 2회 일치
          * 본래 [[리그베다 위키]] 시절에 [[강승현]] 문서로 들어가면 이 사람을 포함하여 3명의 동명이인으로 갈라지도록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쪽을 [[한화 이글스]][[강승현(야구선수)|에서 뛰고 있는 오빠뻘 되는 야구선수]][* 다만 문서 작성 당시는 [[롯데 자이언츠]] 소속이었다. ]가 생기며 뒤늦게 이 사람에 대한 문서가 작성되었다. 근데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https://ko.wikipedia.org/wiki/%EA%B0%95%EC%8A%B9%ED%98%84|강승현]]으로다가 들어오면 바로 이 사람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는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https://en.wikipedia.org/wiki/Kang_Seung-hyun|마찬가지]]. 아마도 세계적인 인지도 때문인 모양.
  • 강연재 . . . . 2회 일치
         [[분류:197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신명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시립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안철수]][[분류:홍준표]][[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정치인]][[분류:국민의당 당원]][[분류:자유한국당 당원]]
  • 강재형 (아나운서)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2년 태어남]][[분류:1987년 데뷔]][[분류:영동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 강중인 . . . . 2회 일치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대한민국의 사회주의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성제국대학 동문]][[분류:남조선로동당]][[분류:월북자]]
  • 경주시 . . . . 2회 일치
         |align="center"|영화감독 · 제작자
         [[분류:경주시 출신|경주 출신 인물]][[분류:경상북도의 도시]][[분류:1955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분류:한국의 옛 수도|서라벌]][[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구광본 . . . . 2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구본길 . . . . 2회 일치
         [[분류:펜싱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수성구 출신 인물]][[분류:1989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메달리스트]]
  • 권민경 . . . . 2회 일치
         [[분류:196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1986년 데뷔]][[분류:미스코리아 지역 대회 입상자]][[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달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명여자중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권성욱 . . . . 2회 일치
         '''권성욱'''([[1970년]] [[1월 20일]] ~ )은 대한민국의 케이블 방송국 [[KBS N 스포츠]]의 [[스포츠캐스터]]이자 현 KBS N 편성국장으로 [[야구]]중계를 격주 1회정도로 겸하고 있으며, [[농구]]중계도 담당했었다.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1998년]] [[2월]] [[부산광역시]]와 [[경상남도]]의 지역방송국인 PSB 부산방송(현재 [[KNN]])으로 입사하여 아나운서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주로 프로야구 중계를 많이 담당하였다. [[2001년]]부터는 스포츠 전문 케이블방송인 [[KBS N 스포츠]]로 소속을 옮겨 [[2013년]]까지 [[KBO 리그]], [[KBL 리그]] 농구 중계를 담당하였다. [[2011년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2011 대구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때는 일부 필드경기 및 시상식 장내해설을 맡은 바 있다. [[2014년]] 팀장으로 승진하면서 마이크를 내려놓았는데, 2015년 5월 2일과 10월 21일 2경기 마이크를 잡았으며, 2016년 4월 1일, [[KT 위즈]]와 [[SK 와이번스]]와의 경기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 권영준 (1952년) . . . . 2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영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동문]]
  • 권은희 (1959년) . . . . 2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원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남도초등학교 동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구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분류:바른정당의 정치인]][[분류:바른미래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국회의원]][[분류:안동 권씨]]
  • 기은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1983년 태어남]][[분류:2006년 데뷔]][[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백석대학교 동문]]
  • 길은혜 . . . . 2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1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김천시 출신]][[분류:해평 길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 김가을 (수영선수) . . . . 2회 일치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수영 선수]][[분류:자유형 선수]][[분류:2012년 하계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0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분류:2014년 아시안 게임 수영 참가 선수]]
  • 김근석 . . . . 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토막글|야구인}}
  • 김기섭 (1939년) . . . . 2회 일치
         [[분류:193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김녕 김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동문]][[분류:호텔 경영자]][[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김영삼]][[분류:김영삼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국가안전기획부 차장]][[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김남조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21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2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동문]][[분류:숙명여자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20세기 시인]]
  • 김단하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김대호(축구선수) . . . . 2회 일치
          [[분류:1988년 출생]][[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포항 스틸러스/은퇴, 이적]][[분류:경찰 축구단/전역]][[분류:수원 FC/현역]]
         처음에는 센터백이 주 포지션이었지만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해 2010시즌 5경기 출전에 그쳤으나 측면으로 위치를 옮긴 2011년 후반기부터 [[황선홍]] 감독의 눈에 띄기 시작, 24라운드 광주 FC와의 경기에서 5:1 승리에 기여하며 생애 처음으로 K리그 주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 김덕현 (변호사)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김민제 (프로게이머) . . . . 2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화승 OZ의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
  • 김상기 . . . . 2회 일치
         * [[김상기 (야구 선수)|김상기]]([[1961년]] ~ )는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이다.
  • 김상조 . . . . 2회 일치
         김상조 후보자의 아들이 하나금융투자와 BNP파리바은행의 인턴 채용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기사에 등장한 금융권 종사자는 김 후보자의 아들이 같은 인턴직에 지원한 사람들보다 대학교 시절 학점이 낮음에도 합격했다는 점이 '상식적이지 않다'고 하였고 익명의 금융관계자는 “금융감독당국 고위직 자제들이 방학을 이용해 유수의 금융사에 단기 인턴으로 경력을 쌓는 것은 금융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http://mlbpark.donga.com/mp/view.php?u=http%3A%2F%2Fnews.kmib.co.kr%2Farticle%2Fview.asp%3Farcid%3D0923757051%26code%3D11151100%26cp%3Dnv|관련기사]] 관련 의혹에 대하여 김 후보자 측은 "자녀 인턴십에는 관여한 바 없다"고 밝혔다.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경제학자]] [[분류:교수]] [[분류:문재인 정부/인사]][[분류:1962년 출생]]
  • 김상희 (1951년) . . . . 2회 일치
         [[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검사]][[분류:대한민국의 법무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성곤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분류:1913년 출생]] [[분류:1975년 사망]]
  • 김윤환 . . . . 2회 일치
          * 전직 [[한국프로야구]]선수 - 김윤환
         [[분류:동명이인/ㄱ]][[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언론인]][[분류:시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32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김재규 . . . . 2회 일치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26년 출생]][[분류:1980년 사망]]
  • 김재홍 (1958년) . . . . 2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중앙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준희 (1960년) . . . . 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토막글|야구인}}
  • 김진향 . . . . 2회 일치
         [[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노무현 정부]][[분류:북한학자]]
  • 김찬돈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능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필곤 . . . . 2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지방법원장]]
  • 김호근 . . . . 2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육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노현정 . . . . 2회 일치
         [[분류:197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프리랜서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대구광역시 . . . . 2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대구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대한민국의 옛 임시 수도]][[분류:1995년 설치]]
  • 대전광역시 . . . . 2회 일치
         [[분류:대전광역시 출신|대전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대한민국의 옛 임시 수도]][[분류:1995년 설치]][[분류:충청남도]]
  • 도광록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백제예술대학교 동문]][[분류:2014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
  • 도예종 . . . . 2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인혁당 사건]][[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교사]][[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강사]][[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
  • 독이 든 성배 . . . . 2회 일치
          * 대한민국 축구감독(…) 등 성공하면 엄청난 찬사를 받지만 실패하면 엄청난 욕설을 얻어먹는 자리에 주로 사용된다. 막장을 달리는 [[프로 스포츠]] 팀의 감독 자리에 오르는 것에도 이런 표현이 사용된다.
  • 라늬 . . . . 2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
  • 류원정 . . . . 2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림연예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6년 데뷔]][[분류:비디오 자키]][[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마재윤 . . . . 2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승부조작에 관여한 스포츠인]][[분류:아프리카TV BJ]][[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
  • 메시우마 . . . . 2회 일치
         기원은 2채널의 게시판 중 하나인 야구판으로 안티 요미우리 자이언츠 스레드에서 "거인(자이언츠)가 져서 오늘도 밥이 맛있다."는 발언이 나오는 것이 시작으로 한다. 2003년 부터 이 발언을 바탕으로 "거인이 지면 밥이 맛있다."는 제목의 스레드가 세워진 것을 계기로 하여, "메시우마"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되었다.
         2008년 부터는 프로 야구 이외의 다른 장르의 판에서도 타인의 불행에 대해서 자신이 기분 좋게 느끼는 것을 "메시우마 상태"라고 표현하게 된다.
  • 문석희 . . . . 2회 일치
         [[분류:198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세종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
  • 민룡 . . . . 2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경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2002년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참가 선수]]
  • 박경호 (1949년) . . . . 2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박상돈(정치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박소희 (만화가) . . . . 2회 일치
         [[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공주대학교 동문]]
  • 박연우 . . . . 2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박은수 (1956년) . . . . 2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변호사]][[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면천 박씨]][[분류:지체 장애인]]
  • 박진옥 . . . . 2회 일치
         [[경희대학교]] 대학교 졸업 후 2005 [[K리그]] 자유선발로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에 입단하였다. 당시 부천 SK의 [[정해성]] 감독은 박진옥 선수의 킥력과 수비 센스를 눈여겨보고, 로테이션 자원으로 요긴하게 사용하였으며 이후 [[제주 유나이티드]]의 수비 전술에서도 항상 중요 자원으로 분류되었으며 2005년에서 2012년까지 8년간 제주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였다.
         [[분류:1982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 [[분류:제주 유나이티드/은퇴, 이적]] [[분류:상무 축구단/전역]] [[분류:대전 시티즌/은퇴, 이적]] [[분류:광주 FC/은퇴, 이적]] [[분류:용인시청 축구단/은퇴, 이적]]
  • 박칠용 . . . . 2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1969년 데뷔]][[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분류:창극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교수]][[분류:조치원고등학교 동문]][[분류:연성대학교 동문]][[분류:한국방송통신대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동문]]
  • 박태준 (작곡가) . . . . 2회 일치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작곡가]][[분류:동요 작곡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여자대학교 교수]][[분류:유교 이탈자]][[분류:대한민국의 장로교도]][[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숭실대학교 동문]][[분류:투스큘럼 칼리지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밀양 박씨]]
  • 박홍우 . . . . 2회 일치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고등법원장]]
  • 백낙청 . . . . 2회 일치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연세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교수]][[분류:대한민국의 사회 운동가]][[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브라운 대학교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신민당]][[분류:평화민주당 (1987년)]][[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수원 백씨]]
  • 백진희 . . . . 2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2008년 데뷔]][[분류:부산광역시 출신]][[분류:수원 백씨]][[분류:백상예술대상 수상자]]
  • 베이식 (가수) . . . . 2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주 이씨]][[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힙합 가수]][[분류:2007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래퍼]][[분류:대한민국의 힙합 음악가]][[분류:지기 펠라즈 음악가]][[분류:2000년대 가수]][[분류:2010년대 가수]][[분류:한국어 가수]]
  • 서상기 (1946년) . . . . 2회 일치
         * [[2012년]] [[1월 16일]] : [[한국대학야구연맹]] 초대회장
         [[분류:194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칠성초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기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호서대학교 교수]][[분류:웨인 주립 대학교 동문‎]][[분류:드렉셀 대학교 동문]][[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달성 서씨]][[분류:대한민국의 개신교도]][[분류:친이]][[분류:친박]]
  • 서수민 . . . . 2회 일치
         물론 단발적으로 호응이 좋은 코너를 가지고 성공했다고 해도, 장기적으로 호응을 얻기 힘든 것을 지속적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시청자들이 질리게 만들었으니 매니악한 팬들만 질리게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없다. 다만 PD로서의 역량은 높지만 개그를 보는 눈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개그는 본디 "개그맨이 짜고 개그맨이 연기 하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개그를 선별하여 방송에 내보내는 개그 프로그램 감독으로서의 [[무능력한 상사|역량은 무능하다 보는게 일반적인 시선이다.]]
         가장 비판을 많이 받는 부분은 역시 미디어 노출이 너무 잦다는 점. 용감한 녀석들에서 매주 박성광이 그녀를 디스하면서 이름이 많이 알려졌는데 이게 딱히 재미있는 드립들도 아니었어서 많은 비판을 들었다. 대개 개콘 연출자의 이름은 연말 시상식에서 개그맨들이 수상소감으로 OOO감독님께 감사하다는 정도로 듣게 되는데 매주 들어야 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기에 나온 비판. 무한도전의 김태호, 1박 2일부터 지금까지의 나영석은 리얼 버라이어티의 특성상 얼굴이나 목소리가 공개되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서수민은 그 과정조차 부자연스러웠다.
  • 서영종 . . . . 2회 일치
         '''서영종'''([[1952년]] 12월 17일 ~ )은 기아자동차의 前 사장으로 프로야구단 [[KIA 타이거즈]]의 구단주 및 사장으로도 활동하였다.
         [[분류:195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서지훈 (1997년) . . . . 2회 일치
         [[분류:1997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6년 데뷔]]
  • 서태식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인회계사]][[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서훈 (1942년) . . . . 2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달성 서씨]][[분류:영남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육군보병학교 동문]][[분류:전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 육군 대위]][[분류:대한민국의 베트남 전쟁 참전 군인]][[분류:통일민주당 당원]][[분류:통일국민당 (대한민국)]][[분류:신한국당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국민당 (2000년) 당원]][[분류:자유민주연합의 정치인]]
  • 성세현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컬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
  • 세종특별자치시 . . . . 2회 일치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세종특별자치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2012년 설치]][[분류:노무현 정부]][[분류:이명박 정부]][[분류:대한민국의 계획 도시]]
  • 손지민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동문]][[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송언석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차관]]
  • 신동일 (언어학자)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언어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중앙대학교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어배너-섐페인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신웅 . . . . 2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분류:칠곡군 출신]][[분류:1985년 데뷔]]
  • 안종범 . . . . 2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순흥 안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위스콘신 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성균관대학교 교수]][[분류:박근혜 정부]][[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자유한국당 당원]][[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자]]
  • 야설록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만화 스토리 작가]][[분류:무협 작가]][[분류:대구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엉클 샘 . . . . 2회 일치
         기원은 미극 민담에 등장하는 브라더 조너선(Brother Jonathan)과 양키 두들을 합친 것이라 한다. 뉴욕의 샘(새뮤얼) 그라고 윌슨이라는 고기납품업자가 [[쇠고기]] [[통조림]]에 United States 라는 뜻으로 U.S. 라는 도장을 찍기 시작했던 것을 납품고기를 검사하던 부대 감독관이 U.S → Uncle Sam으로 알아서 엉클 샘이라는 캐릭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이와 반대로 납품업자가 자기 별명인 엉클 샘의 이니셜인 U.S.를 찍어 보낸 것을 감독관이 United States인 줄 알았다는 설도 있다.[* 이 엉클 샘에 대한 것은 [[먼나라 이웃나라]] 미국편에도 실린 이야기다.]
  • 연분홍 . . . . 2회 일치
         [[분류:199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예술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
  • 연초아 . . . . 2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수원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
  • 염재욱 . . . . 2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5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서울예술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 영주시 . . . . 2회 일치
          * 장재현 : 영화 [[검은 사제들]] 감독.
         [[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경상북도의 기초자치단체]][[분류:경상북도의 행정구역]][[분류:영주시]]
  • 예재형 . . . . 2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예술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06년 데뷔]][[분류:코미디빅리그]][[분류:의흥 예씨]][[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분류:코미디에 빠지다]]
  • 오경태 . . . . 2회 일치
         [[분류:195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심인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일리노이 대학교 동문]]
  • 오철환 . . . . 2회 일치
         [[분류:195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지방의회의원]]
  • 울산광역시 . . . . 2회 일치
         [[분류:울산광역시 출신|울산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1997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유재한 (1955년) . . . . 2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
  • 이덕건 . . . . 2회 일치
         처음 <[[유머 일번지]]>, <[[전국노래자랑]]>의 조연출을 시작으로, 드라마 <[[애정의 조건 (1987년 드라마)|애정의 조건]]>, <[[토지 (1987년 드라마)|토지]]>, <[[달빛가족]]>, <[[서울 뚝배기]]> 등에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1993년 [[KBS 드라마게임|드라마 게임]] <쌀>로 입봉하여 이후 <[[아름다운 유혹]]>, <[[별난여자 별난남자]]>, <[[미우나 고우나]]>, <[[바람 불어 좋은 날 (드라마)|바람 불어 좋은 날]]>, <[[사랑은 노래를 타고]]> 등 일일극 연출을 맡아 성공시키며 KBS 일일극의 상징인 감독으로 각인됐다.
         [[분류:대한민국의 연출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수창초등학교 동문]][[분류:경일중학교 (대구) 동문]][[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
  • 이명규(국회의원) . . . . 2회 일치
         [[분류:동명이인/ㅇ]][[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이병석(정치인) . . . . 2회 일치
         ||<-5><:> '''[[대한야구협회]] 역대 총재'''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52년 출생]]
  • 이병후 . . . . 2회 일치
         [[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판사]][[분류:대한민국의 대법관]]
  • 이상정 (1897년) . . . . 2회 일치
         [[분류:1897년 태어남]][[분류:1947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시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장교]][[분류:한국의 장군]][[분류:반일 감정]][[분류:김구]][[분류:염상섭]][[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육군 장군]][[분류:한국독립당]][[분류:일제 강점기의 화가]][[분류:자유 연애]][[분류:일제 강점기의 서예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저술가]][[분류:일제 강점기의 조각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도쿄 공업대학 동문]][[분류:도쿄 예술대학 동문]][[분류:히토쓰바시 대학 동문]][[분류:고쿠가쿠인 대학 동문]][[분류:유교 신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의 배우자]]
  • 이석훈 . . . . 2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대한민국의 영화감독, rd1=이석훈(영화 감독))]
  • 이선아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2009년 데뷔]][[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전의 이씨]]
  • 이원만(1904)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04년 출생]][[분류:1994년 사망]]
  • 이원석(1981년)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연극 배우]][[분류:동구(인천) 출신 인물]]
  • 이유리(배우) . . . . 2회 일치
         같은 해에 공포 영화 《분신사바》에서 '김인숙'역으로 출연했다. 촬영 당시 특수렌즈를 끼고 있어 앞이 보이지 않는 이유리에게 감독이 갯지렁이를 산낙지라고 속여 갯지렁이를 먹이고 이 사실을 뒤늦게 기사로 알게 되는 등 많은 고생을 하며 찍은 작품이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 데뷔초부터 활발하게 주조연으로 활동했기에 여러 작품에서 만난 인연이 깊은 배우들이 있다. 특히 [[이동욱]]이 대표적이다. 우선 학교 시리즈의 선후배 사이이며 《사랑은 이런거야》, 《러빙유》, 《부모님전상서》 총 세 작품을 함께 했다. 《사랑은 이런거야》에서는 이유리와 이동욱이 각각 재수생과 영화감독 지망생으로 나와 커플연기를 펼쳤는데 그로부터 1년 후, 《러빙유》에서 재회했다. 초반에 이동욱이 이유리를 좋아했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악녀본색을 내뿜는 이유리의 실체를 밝히는데 기여한다. 그 후 가장 마지막으로 만난 작품이 《부모님전상서》. 김수현 작가의 작품답게 대가족이 나오는 이 드라마에서 이동욱과 이유리는 4남매 중 각각 3호와 4호를 맡았다. 전작들보다 극중 상황이 더 나빠져 보기만 해도 으르렁거리는 현실 남매 연기를 보여주었다.
  • 이정명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영신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정무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41년 출생]]
  • 이정우 (1950년) . . . . 2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상과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주 이씨]]
  • 이정호 (독립운동가) . . . . 2회 일치
         [[분류:1913년 태어남]][[분류:1990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대한민국의 군인]]
  • 이종화 (1949년) . . . . 2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내성초등학교 (경북) 동문]][[분류:오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이준섭(군인,정치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이지우 (레이싱모델) . . . . 2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
  • 이철우(1955)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55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 인천광역시 . . . . 2회 일치
         [[분류:인천광역시 출신|인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1995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분류:아시안 게임 개최 도시]]
  • 임현주 . . . . 2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JTBC의 아나운서]][[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진행자]][[분류: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장철 (1967년) . . . . 2회 일치
         [[분류:196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중앙대학교 동문]]
  • 전수희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우석대학교 동문]][[분류:2011년 데뷔]][[분류:웃음을 찾는 사람들]][[분류:개그공화국]]
  • 전종화 . . . . 2회 일치
         {{야구 선수 정보
         |드래프트 순위 = [[1987년 한국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1987년]] 2차 2순위([[롯데 자이언츠]])
  • 전지수 . . . . 2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쇼트트랙 선수]][[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체육대학교 동문]][[분류:정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덕화중학교 동문]][[분류:대구파동초등학교 동문]][[분류: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메달리스트]][[분류:2007년 동계 아시안 게임 쇼트트랙 참가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아시안 게임 은메달리스트]]
  • 정구양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82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서강정보대학 동문]][[분류:2010년 데뷔]][[분류:개그공화국]]
  • 정무식(정치인)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정의동 . . . . 2회 일치
         [[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재호 (1930년) . . . . 2회 일치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동래 정씨]][[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정종원 . . . . 2회 일치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니혼 대학 동문]]
  • 정창영 (공무원) . . . . 2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공기관장]][[분류:대한민국의 감사원 사무총장]][[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정채진 . . . . 2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2008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산림청장]][[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검정고시 통과자]]
  • 정충원 . . . . 2회 일치
         [[분류:1896년 태어남]][[분류:197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니혼 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일 정씨]]
  • 정해창(정무직공무원)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지은성 (1991년) . . . . 2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배우]][[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2013년 데뷔]][[분류:싸이더스HQ 소속]]
  • 차재욱 . . . . 2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분류:연안 차씨]][[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
  • 찬미(AOA) . . . . 2회 일치
          * 컨셉이 라크로스로 정해진 후 국가대표팀에게 직접 지도를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때 뛰어난 운동 신경 덕분에 선수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찬미는 '이직할거야~'를 밀고 있다. (...)
          * [[넥센 히어로즈]]의 투수인 [[박주현(야구)|박주현]]과 생년월일이 똑같다.
  • 창작:좀비탈출/1-1 . . . . 2회 일치
         대문을 나선 순간 나의 냄새를 맡았는지, 골목길에 있던 좀비들이 모여오기 시작했다. 야구방망이로 제일 가까이 있던 놈의 골통을 후려 갈겨 쓰러뜨린 다음,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나는 채 10미터도 가지 못하고 한 다스도 넘는 좀비들에게 포위되었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이 튀어나온 거지? 야구방망이를 아무리 휘둘러도 중과부적이다. 이길 수 없다.
  • 창작:좀비탈출/학교 . . . . 2회 일치
         사태가 심상치 않은걸 눈치챈 가족들은 등교하지 않거나, 등교를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등교하는 학생들이 전체 학생의 고작 1/10 정도 밖에 되지 않게 되었는데도 교감은 열성적이었다. 심지어 선생들 까지도 학교에서 빠져나가게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았다. 교감은 "감독을 쉽게 하겠다."는 이유를 대며 마지막 야간자율학습 때는 딱 1개 교실에 등교한 모든 학생을 모아놓고 자신이 직접 감독을 했다.
  • 채현국 . . . . 2회 일치
         [[분류:193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학교법인인]][[분류:대한민국의 문화운동가]][[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최란(배우) . . . . 2회 일치
         [[고양 오리온 오리온스]]의 전신인 대구 오리온스 감독을 하던 이충희 전 감독에 대해 공홈에서 당시 오리온스의 엄청난 부진에 악플러들이 많았는데 며칠만에 최란에게 전원 고소당해서 처벌받은 실사례도 있었다. [[원주 DB 프로미]]의 전신인 원주 동부 프로미 공홈에서도 실명임에도 성적 부진에 성난 팬들이 이충희에 대한 악플을 남기다가 고소당한 사람들이 나왔고 이후 농구팬들은 최란이라면 벌벌 떨 수준이 되었다.(...)
  • 최병일 . . . . 2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대학 교수]][[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예일 대학교 동문]]
  • 최재만 . . . . 2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싱어송라이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동아방송예술대학교 동문]]
  • 최재혁 (음악가)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록 음악가]][[분류:인디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드럼 연주자]][[분류:197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외국어대학교 동문]][[분류:대일외국어고등학교 동문]]
  • 카라스노 고교 . . . . 2회 일치
         이후 카라스노의 전국 진출을 이끌었던 명장 우카이烏養 감독[* 성을 보면 알겠지만 까마귀(烏)를 기른다(養)는 뜻이다]이 은퇴하면서, 팀도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그리하여 본작의 두 주인공인 [[히나타 쇼요]]와 [[카게야마 토비오]]가 입학한 현재에 와서는, 잘해봐야 현내 베스트8, 특별히 약하지도 강하지도 않은 팀이 되어버렸다. 타교생들에게서는 '''무너진 강호, 날지 못하는 [[까마귀]]'''라는 촌스러운 [[별명]]으로 불린다.
         두 학교의 감독들 모두 은퇴하면서 네코마 고교와의 인연도 끊어졌으나, 작중에서 5년 만에 연습경기를 가졌다. 그리고 두 학교는 공식전에서 쓰레기장의 결전을 성사시키기로 결의한 상태.
  • 하이큐!! . . . . 2회 일치
         기존의 배구 만화들이 에이스 스파이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었던 반면, 하이큐!!는 세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배구에서는 흔히 하는 말로, '[[야구]]를 [[투수]] 놀음이라 한다면 [[배구]]는 세터 놀음' 이라 한다. 그만큼 배구에서 세터란 포지션이 중요하며, 이는 작중에서 [[코즈메 켄마]]가 '세터는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이 하는 포지션' 이란 대사로도 언급된다. 이처럼 현실 배구에서는 가장 중요한 포지션임에도 그 특성상 화려함은 떨어지는 포지션[* 아예 [[히나타 쇼요]]는 세터에 대해서 '수수하고 어려운 포지션'이라고 말한다.]이라, (시각 매체인) 만화에서 세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려면 작가의 역량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하이큐!!는 이 세터들을 중심으로 경기를 묘사한다. 그래서인지 작중 등장하는 세터들은 유독 [[사기캐]]와 [[먼치킨]]들이 많은데, 그 정점에 본작의 투탑 주인공 중 하나인 [[카게야마 토비오]]가 있다.
          * 애니메이션 2기와 극장판 모두 제작이 결정되었다!! [http://www.j-haikyu.com/project/index.html 공홈 부설 사이트]에 따르면 극장판은 1기 애니메이션의 총집합 편으로 제작될 예정이라고 한다. 2기 애니메이션과 극장판의 담당 제작사 및 감독은 1기 때와 같다.
  • 하이큐/224화 . . . . 2회 일치
          * 권두 컬러는 사토리가 나와서 "애니 3기 1화는 와카토시는 실은 30대 후반, 와시죠 감독과 우카이 감독의 게이트볼 승부, 히나타 공중부양 습득의 3부작"이란 개드립을 치고 들어간다.--귀중한 컬러로 뭐하는 짓이야--
  • 하이큐/240화 . . . . 2회 일치
          * [[히메카와 아오이]]의 천장 서브는 단 1점이지만 [[카라스노 고교]]가 주도하던 분위기를 휘어잡는다. 본인도 긴장을 완전히 떨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한때 이름을 날려도 올해는 1회전에서 떨어질지도 모르는게 전국대회, 그래서 그해 누가 이름을 남기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대로 히메카와는 정말로 의외의 선수인 셈이다.
          * 카라스노 진영에선 동점으로 따라잡히자 TO를 걸어서 견제한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천장서브에 대한 대처법을 신속하게 전달하지만 선수들이 얼마나 빨리 적응할지는 모르는 일이다. 중계석에선 우카이 코치를 소개하며 그의 할아버지이며 명장이었던 [[우카이 잇케츠]] 감독에 대해 언급한다. 얼굴만큼은 할아버지와 확실히 닮았다는 듯.
  • 하이큐/245화 . . . . 2회 일치
          * 이렇게 노닥거리는 동안 카모메다이 학원의 시합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팀원이 호시우미를 찾으러 온다. 팀원은 호시우미에게 시합 시간이 다 됐다며 감독에게 혼나게 생겼다고 핀잔을 준다. 원래 호시우미는 "근성 웃음 T셔츠"를 사러 왔던 건데 이건 히나타가 산 것과 같은 티셔츠. 호시우미는 끌려가면서 그 티셔츠를 사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며 지각 사유를 밝히지만 팀원은 그런건 어차피 호시우미 밖에 안 살 거라고 디스한다.
          * 그리고 카모메다이 학원의 시합 시작. 카라스노 고교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주의깊게 경기를 지켜본다. [[우카이 케이신]] 코치는 우카이 감독의 지인에게 붙들려서 아직도 이런저런 잔소리 듣는 중. 관중들 대부분은 눈에 띄게 키가 작은 호시우미에게 이목이 모인다. 히나타와 카게야마 역시 그의 활약에 집중한다. 카게야마는 전 일본 유스 직후 히나타에게 "정말 잘 뛰는 점프"에 대해서, 호시우미의 요령을 히나타에게 전달했던 적이 있다. 히나타가 그 점프의 주인공이 호시우미라는걸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의 점프가 범상치 않다는건 눈치 챈 것 같다.
  • 하이큐/252화 . . . . 2회 일치
          [[미야 아츠무]]는 벤치로 돌아가자마자 [[쿠로스 노리무네]] 감독에게 "첫 번째 서브가 미묘했다."고 쓴소릴 듣는다. 응원 때문에 집중이 안 됐던 거냐고 정곡을 찌른다. 속을 뻔히 아는 [[미야 오사무]]나 오지로가 뒤에서 히죽거린다.
          * 자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이번에도 리시브가 문제다. 딱 한 박자가 늦어서 헛리시브. 공이 그대로 떨어지나 싶었는데, 천운인지 어떤지 히나타의 발등을 때리고 솟아오른다. 완전히 들어갔다고 생각하던 카라스노 벤치에선 [[시미즈 키요코]]가 "발에 맞았다"고 말하면서 안도한다. 반대로 이나리자키에겐 선수부터 감독까지 "저게 뭐꼬!"라고 입을 모아 황당해한다.
  • 하이큐/262화 . . . . 2회 일치
          아즈마네의 서브. 중앙의 아카기에게. 무난하게 받아서 [[미야 아츠무]]에게 보낸다. 그리고 아츠무가 세트업, 그러나 실수다. 괴짜 속공을 노렸지만 [[미야 오사무]]의 위치보다 한참 앞으로 향하는 공. 이나리자키 벤치에서 "멍청아!"라는 일침이 튀어나온다. 그래도 오사무가 어떻게든 커버한다. 아슬아슬하게 네트를 넘겼다. 하지만 그 뿐이다. 카라스노에겐 완벽한 찬스볼. [[히바리다 후키]] 감독과 동행한 스텝은 상대의 세트 포인트에서 익숙하지도 않은 괴짜 속공을 또 시도했다는 점에 황당해한다. 히바리다 감독은 그저 웃음을 터뜨리며 "하고 싶은거 다 해라"라고 말했다.
  • 하준임 . . . . 2회 일치
         前 [[경북 김천 하이패스|한국도로공사]]의 센터. 2007년 1라운드 3순위로 지명되어 [[경북 김천 하이패스|도로공사 배구단]]에 입단했다. 당시에는 라이트로 입단했다가, [[어창선]] 감독의 부임 후 센터로 전환하였다.
         리그 3위 경쟁에서 밀린 이후 [[GS칼텍스 서울 KIXX|GS칼텍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박종익 감독대행은 하준임보다 오히려 2015 신인 드래프트 5순위로 입단한 장혜진에게 기회를 주면서 하준임의 주전경쟁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하지영 . . . . 2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희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일대학교 동문]][[분류:대구혜화여자고등학교 동문]]
  • 허준 (음악가)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하드 록 음악가]][[분류:대한민국의 기타 연주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영락고등학교 동문]]
  • 헤이즈 (가수) . . . . 2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4년 데뷔]][[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래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가수]][[분류:언프리티 랩스타 참가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CJ ENM 음악가]][[분류:Mnet 아시안 뮤직 어워드 수상 음악가]][[분류:무학초등학교 (경남) 동문]][[분류:마산제일여자중학교 동문]]
  • 황대봉 . . . . 2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황치열 . . . . 2회 일치
         [[분류:198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06년 데뷔]][[분류:구미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한국어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발라드 음악가]][[분류:KBS 뮤직뱅크 1위 수상자]][[분류:너의 목소리가 보여 참가자]]
  • Crusader Kings 2/궁정 . . . . 1회 일치
          * 건설 감독하기
  • K리그 관중 실 집계 정책 . . . . 1회 일치
         이런 이유로 연맹은 2012시즌부터 연맹의 경기감독관 뿐만 아니라 관중의 실 집계를 위한 검표관리자까지 각 경기장에 파견하게 되며, 이 검표관리자는 경기장 입장구역에서 검표를 수행하게 되며, 계수가 된 인원(시즌권 바코드 체크, 경기 표 바코드 체크 등이 완료된 인원들)만이 여기에 실 집계인원으로 잡히게 되었다.
  • K리그 승강 플레이오프/2015시즌 . . . . 1회 일치
         하지만 조덕제 감독이 구상한 반칙을 통한 흐름을 끊어주는 전략이 유효했고,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해 경기 종료 즈음하여 2골이 터지면서 수원의 승격이 확정된다.
  • K리그 클래식 . . . . 1회 일치
         정규 라운드에서 획득한 점수는 그대로 이양되고 "자신의 팀이 속한 스플릿의 경쟁자와 한번씩 대결"을 통해 상위 스플릿에선 우승과 차기 ACL 티켓을 두고 경쟁을 하게 되며, 하위 스플릿에서는 강등팀(꼴찌)과 승강 플레이오프로 갈 팀(꼴찌에서 [[홍진호|2등]])을 정하게 된다.[* 처음 도입되었던 2012시즌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걸 이해하지 못해 욕을 먹었던 적이 있었다. 스플릿 라운드에 돌입하게 되면 정규시즌의 기록이 다 사라지고 스플릿 라운드에서 얻은 기록만을 비교하여 우승팀을 가린다고 착각했던 것. 덕택에 [[샤다라빠]]가 신명나게 까댔다.]
  • Q.E.D. 증명종료 . . . . 1회 일치
         사람이 팍팍 죽어나가지도 않고[* 작가 인터뷰에 따르면 처음엔 페이지가 부족해서 그랬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좋아서 살인 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도 만들게 되었다고. 35권처럼 살인사건이 없는 에피소드로만 이루어진 경우도 있다.], 뭔가 성적인 소재가 사용되지도 않으며, 사건이 끝난 뒤에 깔끔하게 해결되는 편. 그러나 문헌 오염, 증명에 실패한 위상 수학자, 지쳐버린 작화감독, 환자와 의사로 비유하여 자신을 만드는 것은 자신이라는 등 씁쓸함과 여운을 남기는 해결도 상당히 많다. 해결추리 만화에 흔히 나오는 '불가능 트릭'도 그리 많지 않으며(가끔 나오기는 한다) 다음 권으로 사건의 답 등을 넘기는 경우도 없다.
  • 가석방 . . . . 1회 일치
         가석방은 형기가 종료되어 풀려나는 석방과는 다르다. 가석방 일에서 형기종료일까지 기간 동안은 관할경찰서나 보호관찰소의 보호와 감독을 받게 된다. 가석방자는 이 떄 준수사항을 위반하거나 범죄를 저지르면 가석방은 취소, 혹은 실효된다.--[[한군두|한감두]]-- 물론 남은 형기를 채워야 하며 당연히 저지른 범죄는 가석방 중에 저지른 것이므로 매우 질이 좋지 않게 본다.
  • 강대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동구(대구) 출신 인물]]
  • 강석경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강원 FC . . . . 1회 일치
         2008년 11월 10일에 창단한 구단으로 2009시즌부터 [[K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프로구단이다. 구단의 법인지배구조는 [[시민구단]]이고, 연고지는 도 전체를 포괄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야구의 사례와 빗대어 광역연고구단으로 보고 있다.[* 한국프로축구연맹에서는 딱히 광역연고와 도시연고를 구분하고 있지 않다. 연고지는 "구단과 협약을 맺은 지자체의 행정지역과 그 범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딱히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연고지 협약을 맺은 지역이 강원도 전체를 대표하는 강원도청이기 때문에 강원FC의 전체 이름은 "강원도민프로축구단"으로 정한 바 있다.
  • 경산시 . . . . 1회 일치
         * [[임도헌]] - 전직 배구선수이자 감독.
  • 곽승준 . . . . 1회 일치
         [[분류:경제학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방송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1960년 출생]]
  • 광주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박재홍(야구)|박재홍]] - 동구(광주)
  • 구본홍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194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능성 구씨]]
  • 구성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분류:기자]][[분류:1960년 출생]]
  • 그랜드 테프트 오토: 산 안드레아스/무기 . . . . 1회 일치
          * 야구방망이
  • 금춘수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안동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안동대학교 상과대학 동문]]
  • 김경식 (1960년) . . . . 1회 일치
         [[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토교통부 차관]][[분류:성광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구현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공군 ACE의 선수]][[분류:프라임 (e스포츠)의 선수]][[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김만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문순 (언론인)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김문오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문화방송의 직원]][[분류:대한민국의 기초지방자치단체장]][[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경상중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동문]][[분류:대구화원초등학교 동문]][[분류:달성군 출신 인물]]
  • 김문집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일본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일본인]]
  • 김민호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7년 데뷔]]
  • 김병윤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김병준 (희극인)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2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김병준(육상) . . . . 1회 일치
         [[분류:육상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인물]][[분류:1991년 출생]][[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김봉환(1921)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상훈 (1963년)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성광중학교 동문]][[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분류:살아있는 사람]]
  • 김새해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2009년 데뷔]]
  • 김성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숭실 . . . . 1회 일치
         [[분류:198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탁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용인대학교 동문]]
  • 김승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29년 출생]][[분류:2003년 사망]]
  • 김쌍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김우동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우중 . . . . 1회 일치
         [[분류:193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광산 김씨]][[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연세대학교 상경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축구협회 회장]][[분류:대우그룹]][[분류:레지옹 도뇌르 코망되르 훈장 수훈자]]
  • 김유현 . . . . 1회 일치
         [[분류:198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여자 배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일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이화여자대학교 동문]][[분류:2007년 데뷔]]
  • 김장섭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19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
  • 김재권 (철학자) . . . . 1회 일치
         [[분류:193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미국의 철학자]][[분류:대한민국의 철학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계 미국인]][[분류:미국의 저술가]][[분류:서울창경초등학교 동문]][[분류:서울경복중학교 동문]][[분류:경복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다트머스 대학교 동문]][[분류:프린스턴 대학교 동문]][[분류:20세기 철학자]][[분류:21세기 철학자]][[분류:심리철학자]][[분류:경암학술상 수상자]][[분류:스와스모어 칼리지 교수]][[분류:노터데임 대학교 교수]][[분류:미시간 대학교 교수]][[분류:브라운 대학교 교수]][[분류:존스 홉킨스 대학교 교수]][[분류:코넬 대학교 교수]]
  • 김정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출생]]
  • 김정호 (1949년) . . . . 1회 일치
         [[분류:194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농림부 차관]][[분류:서울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종호(1933)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준영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8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리그 우승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분류:저그 선수]][[분류:웅진 스타즈의 선수]]
  • 김초향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국악인]][[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83년 죽음]][[분류:판소리 명창]][[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김충섭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출생]][[분류:대한민국의 자치단체장]]
  • 김태룡(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김태우(god) . . . . 1회 일치
         [[분류:god]][[분류:한국 남가수]][[분류:대한민국의 남성 방송인]][[분류:프로듀서]][[분류: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역대 출연자]][[분류:라디오 스타의 역대 게스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81년 출생]][[분류:아이돌 막내]][[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1999년 데뷔]][[분류:히든 싱어 역대 출연자]]
  • 김태환(1943)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김현철(교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교수]][[분류:문재인 정부/인사]][[분류:1962년 출생]][[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김형태(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기자]]
  • 남상태 . . . . 1회 일치
         [[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
  • 남유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53년 출생]]
  • 남일해 . . . . 1회 일치
         [[분류:1938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중앙초등학교 동문]][[분류:대건중학교 동문]][[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
  • 담철곤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켄트외국인학교 동문]][[분류:조지 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오리온그룹]][[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중국계 한국인]]
  • 대전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김광림(야구)]] - 유성구
  • 데드맨 . . . . 1회 일치
         2000년대부터 영화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가 데드맨을 영화화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 로힝야 . . . . 1회 일치
         국제분쟁 전문 연구기관인 국제위기그룹(ICG)은, 2016년 학살을 촉발한 무장괴한의 경찰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가 사우디아라비아로 망명한 로힝야 족의 지휘로 이루어졌다고 분석했다. 초소 습격 사건의 배후로 분석된 '하라카 알-야킨'(Harakah al-Yaqin, 믿음의 운동)을 조사하여 미얀마 내외에서 활동하는 단체 회원 6명과 인터뷰하여,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에 있는 로힝야 망명 위원회가 이 단체를 감독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 류원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상북도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
  • 류지혜 (레이싱모델)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레이싱 모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리그컵(K리그) . . . . 1회 일치
         리그컵이 태생부터 이러다보니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포항 감독이었던 파리아스는 [http://sports.media.daum.net/sports/soccer/newsview?newsId=20090709095009910|격에 맞지 않는 지나친 경기일정]을 꼬집으며 제법 강도높은 비판을 했을 정도. 리그컵의 규정변천을 살펴보면 과유불급이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 마~앙 . . . . 1회 일치
         여기에서 「치~잉(웃음) / ち〜ん(笑)」이 나왔는데, 이는 본래 야구팀 한신 타이거즈를 뜻하는 멸칭이었다. 한신 타이거즈의 멸칭인 「한친(犯珍)」과 치-잉을 합쳐서 한신은 끝장났다는 의미로 만들어낸 것이다. 이 표현이 나온 것은 2008년으로 당시 시즌에서 한신이 10게임차 이상으로 선두를 달리다가 막판에 거인에 역전당했기 때문.
  • 맥스 페인 2: 맥스페인의 몰락 . . . . 1회 일치
          Captain Baseballbat Boy. 야구방망이를 무기로 쓰는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의 이야기. 캡틴 베이스볼배트보이는 인정 안하지만 애인으로 바이시클 헬멧 걸이 있으며, 맥스웰의 악마라는 적이 있다.
  • 문옥주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1996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인권 운동가]][[분류:일본군 위안부]]
  • 미이라(2017년 영화) . . . . 1회 일치
         [[유니버설 픽처스]]의 영화. [[다크 유니버스]]의 첫번째 영화이며 유니버설의 대표적인 클래식 몬스터 중 하나인 [[미이라(영화)|미이라]](Mummy)[* Mummy는 '투탕카멘의 저주'와 마찬가지로 서구인들의 환상이 빚어낸 존재로, 원래의 미이라와는 매우 거리가 멀다.]를 다룬다. 감독은 알렉스 커츠만.
  • 바닷마을 다이어리 . . . . 1회 일치
          * 감독 : [[코레에다 히로카즈]](是枝裕和)
  • 박강현 . . . . 1회 일치
         [[분류:198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뮤지컬 배우]][[분류:성균관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경석(1933)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시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33년 출생]]
  • 박경석(1937)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박기환(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박두을 . . . . 1회 일치
         [[분류:1907년 태어남]][[분류:2000년 죽음]][[분류:이병철]][[분류:삼성가]][[분류:순천 박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불교 신자]]
  • 박명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국회의원]][[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47년 출생]]
  • 박보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박성원 (소설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추계예술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교수]][[분류:계명대학교 교수]][[분류:동국대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박순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목사]]
  • 박승호(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57년 출생]]
  • 박승효 . . . . 1회 일치
         [[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최고 경영자]][[분류:SK그룹]][[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인태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교육과학대학 동문]]
  • 박재홍(1941)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박정수(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박종준 . . . . 1회 일치
         [[분류:경찰공무원]][[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박준홍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47년 출생]]
  • 박진석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삼성 갤럭시 (e스포츠)의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진성(시인) . . . . 1회 일치
         [[분류:시인]] [[분류:대한민국의 시인]] [[분류:1978년 출생]]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박창달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박현철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2010년 데뷔]][[분류:아이돌 가수]][[분류:대한민국의 댄스 음악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박희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방우정 (방송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방송인]][[분류:196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
  • 배기철(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배상면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201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달성 배씨]]
  • 백남억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법학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백대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바둑 기사]][[분류:충암고등학교 동문]][[분류:명지대학교 동문]][[분류:1978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백승주(정치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1961년 출생]]
  • 변현제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프로토스 선수]][[분류:SouL (e스포츠)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보루토/4화 . . . . 1회 일치
          * 감독관은 록 리. 5대 카게는 물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 봉화군 . . . . 1회 일치
         * [[김기덕 (1960년)|김기덕]] - 영화 감독
  • 샘 윗위키 . . . . 1회 일치
         가족으로는 [[아버지]]인 론 윗위키, [[어머니]]인 주디 윗위키, 애완견인 모조가 있다. [[트랜스포머(2007년 영화)|트랜스포머]]의 일로 미카엘라 베인즈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지만 [[트랜스포머 2: 패자의 역습]]과 [[트랜스포머 3]] 사이에 깨진 것 같다. 이는 미카엘라 베인즈를 연기했던 [[메간 폭스]]가 트랜스포머 영화 시리즈의 감독이었던 [[마이클 베이]]를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10620601007|히틀러 같다고 발언]]해 퇴출되었기 때문.
  • 서귀포시 . . . . 1회 일치
         [[분류:서귀포시 출신|서귀포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81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서병조 . . . . 1회 일치
         [[분류:1882년 태어남]][[분류:1952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 서씨]]
  • 서울특별시 . . . . 1회 일치
         [[분류:서울특별시 출신|서울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도시]][[분류:1949년 설치]][[분류:아시아에 위치한 수도]][[분류:하계 올림픽 개최 도시]][[분류:아시안 게임 개최 도시]]
  • 서울특별시장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
  • 소진은 . . . . 1회 일치
         [[분류:1892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경찰]][[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진주 소씨]]
  • 손병조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공무원]][[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상진 . . . . 1회 일치
         [[분류:1930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송아영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63년 출생]]
  • 송종익 . . . . 1회 일치
         [[분류:1887년 태어남]][[분류:1956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야로 송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송종호 (1956년) . . . . 1회 일치
         [[분류:195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중소기업청장]][[분류:옛 새누리당의 정치인]]
  • 시계태엽 오렌지(영화) . . . . 1회 일치
         감독은 스탠리 큐브릭.
  • 시카고 컵스 . . . . 1회 일치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팀. 시카고를 연고지로 한다.
  • 신동호 (아나운서)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92년 데뷔]][[분류:문화방송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대건고등학교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평산 신씨]]
  • 신현준(군인) . . . . 1회 일치
         [[분류:일본군/조선인]][[분류:제2차 세계 대전/군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전쟁/군인]][[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15년 출생]][[분류:2007년 사망]]
  • 신형철 . . . . 1회 일치
         [[분류:197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조선대학교 교수]][[분류:서울대학교 인문대학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심판 . . . . 1회 일치
         직접 경기를 뛰는 것은 아니지만, 경기 내내 선수와 함께 하면서 플레이의 흐름을 파악해야 하므로 상당한 고충을 겪는다. [[축구]] 같은 경우는 경기시간 내내 내내 공을 쫓아다니며 뛰어야 하고, [[야구]] 같은 경우에는 공이나 방망이에 타격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
  • 심학봉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아니키 . . . . 1회 일치
          * 야구계에서는 [[한신 타이거즈]]의 카네모토 토모아키(金本知憲)의 별명이다.
  • 아이유 . . . . 1회 일치
         | style="text-align:center;"| <ref>{{웹 인용|last=Kim|first=Ye-eun|url=https://entertain.naver.com/now/read?oid=311&aid=0001094885|title=[단독] 아이유, 이병헌 감독 차기작 '드림' 출연…박서준과 만난다|publisher=Naver|website=Xports News|accessdate=January 3, 2020}}</ref>
  • 아타리야 . . . . 1회 일치
          * [[야구]]에서 [[안타]]를 잘 치는 선수.
  • 안효민 . . . . 1회 일치
         [[분류:1986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양시영 (1944년)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양희승 (작가)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7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어쌔신 크리드 III/임무일람/주요임무 . . . . 1회 일치
         다음날 새벽, 코너는 수제 열쇠로 감방 문을 열려고 했지만 실패한다. 낮이되자 코너는 윔스를 찾아가 열쇠가 맞지 않는다고 따진다. 그러자 윔스는 그 열쇠는 교도소장의 진짜 열쇠와 바꿔치기 하는 용도라고 한다. 그냥 열쇠를 훔쳐가면 들키지만 열쇠를 바꿔채면 못 알아볼것이며, 열쇠를 사용하지도 않기 때문. 윔스는 교도소장에게 접근할 방법으로 싸움을 일으켜 교도소장이 감독하는 "구덩이"로 끌려가는 방법을 말한다. 한두명 쥐어패는 정도로는 간수들 여흥거리 밖에 안 되니 가능한 많이 때려눕혀야 한다고. 코너는 윔스의 말대로 다른 수감자들에게 시비를 걸어 7명의 죄수를 때려눕힌다. 이후 간수들이 진압봉으로 코너를 두들겨 패고는 "구덩이"에 처넣어버린다.
  • 여정남 . . . . 1회 일치
         [[분류:1945년 태어남]][[분류:197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사형된 사람]][[분류:사형 집행 후 무죄가 밝혀진 사람]][[분류:교수형된 사람]][[분류:인혁당 사건]][[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오경훈 . . . . 1회 일치
         [[분류:196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신암초등학교 동문]][[분류:영동중학교 (서울) 동문]][[분류:용문고등학교 (서울)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자유한국당의 정치인]]
  • 오국영 . . . . 1회 일치
         [[분류:1889년 태어남]][[분류:몰년 미상]][[분류:20세기 대한민국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오재희 . . . . 1회 일치
         [[분류:193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해주 오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컬럼비아 대학교 동문]][[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공사]][[분류:대한민국의 외무부 차관]][[분류:일본 주재 대한민국 대사]][[분류:파키스탄 주재 대한민국 대사]]
  • 오중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우현(배우) . . . . 1회 일치
          * 헤드 (2011) - 박씨 역[* 여담이지만 감독 조운은 우현의 처남이다. 또한 아내와 동반출연인데 드디어 부부로 나왔다.]
  • 울산광역시/인물 . . . . 1회 일치
         * [[정주현(야구선수)|정주현]] - 남구(울산)
  • 유승옥 . . . . 1회 일치
         [[분류:미스코리아 출신 방송인]][[분류:대한민국의 여성 방송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90년 출생]]
  • 유한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1949년 출생]][[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육홍균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윤석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한의사]][[분류:195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대구종로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대구)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지체 장애인]]
  • 윤천주 . . . . 1회 일치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분류:교수]][[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정치학자]]
  • 이갑상 . . . . 1회 일치
         [[분류:1924년 태어남]][[분류:2017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 이강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경찰공무원]][[분류:1962년 출생]]
  • 이강철 (1947년) . . . . 1회 일치
         [[분류:194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분류:대구서부초등학교 동문]][[분류:대구중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관섭 (1961년)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산업통상자원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경영대학 동문]][[분류:하버드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광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문학 평론가]][[분류:서울예술대학교 교수]][[분류:196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현대문학상 수상자]][[분류:팔봉비평문학상 수상자]][[분류:대산문학상 수상자]]
  • 이국철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 이근직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이기백(군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31년 출생]]
  • 이기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37년 출생]][[분류:2016년 사망]]
  • 이동찬(기업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 [[분류:1922년 출생]] [[분류:2014년 사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동춘 . . . . 1회 일치
         [[분류:1963년 태어남]][[분류:1995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권투 선수]][[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기 중 사망한 권투 선수]]
  • 이명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5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홍익대학교 동문]]
  • 이미라 . . . . 1회 일치
         [[분류:196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만화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민헌 . . . . 1회 일치
         [[분류:1944년 태어남]][[분류:2012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제14대 국회의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영남대학교 동문‎]]
  • 이민호(1987) . . . . 1회 일치
         [include(틀:다른 뜻1, other1=NC 다이노스의 투수, rd1=이민호(야구선수))]
  • 이산하(시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 [[분류:1960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상휘 . . . . 1회 일치
         [[분류:교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1963년 출생]]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선미 (소설가) . . . . 1회 일치
         [[분류:197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소설가]][[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선민 (1988년) . . . . 1회 일치
         [[분류:1988년 태어남]][[분류:구미시 출신]][[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숭실대학교 동문]]
  • 이설주 . . . . 1회 일치
         [[분류:1908년 태어남]][[분류:2001년 죽음]][[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
  • 이시영 (1882년) . . . . 1회 일치
         [[분류:1882년 태어남]][[분류:1919년 죽음]][[분류:옥사한 사람]][[분류:병사한 사람]][[분류:조선 사람]][[분류:일제 강점기의 교육인]][[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경주 이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원형(1951)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이장우 (1871년) . . . . 1회 일치
         [[분류:1871년 태어남]][[분류:1944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군인]][[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전환 . . . . 1회 일치
         [[분류:196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국세청 차장]][[분류:청구고등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동문]][[분류:워싱턴 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이종희 (1942년) . . . . 1회 일치
         [[분류:1942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기업인]][[분류:자유민주연합 당원]][[분류:홍익대학교 교수]][[분류:대구상원고등학교 동문]][[분류:단국대학교 동문]][[분류: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동문]][[분류:서경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경주 이씨]]
  • 이중환(법조인) . . . . 1회 일치
         [[분류:박근혜-최순실 게이트/관련 인물 및 단체]][[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분류:1959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이채영(fromis_9) . . . . 1회 일치
          * 초등학교 때 육상을 했었다. 종목은 오래달리기. 달리기 외에도 [[축구]], [[야구]]를 좋아한다. ~~하긴 포항에서 [[삼성 라이온즈|두]] [[포항 스틸러스|팀]]이 경기를 하니~~
  • 이철희(1964)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64년 출생]]
  • 이판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이호준 (프로게이머)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e스포츠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II 프로게이머]][[분류:테란 선수]][[분류:이스트로의 선수]][[분류:온게임넷 스파키즈의 선수]][[분류:CJ 엔투스의 선수]][[분류:Team SCV Life의 선수]][[분류:이블 지니어스의 선수]][[분류: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 이홍기(군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 이홍우(1959)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사회운동가]] [[분류:정의당 소속]]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분류:1959년 출생]][[분류:민주노동당 출신]]
  • 임대윤 . . . . 1회 일치
         [[분류:1957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울진 임씨]][[분류: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설중학교 동문]][[분류:대구초등학교 (대구) 동문]][[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영남대학교 동문]][[분류:서울대학교 대학원 동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1년)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1995년) 당원]][[분류:한나라당의 정치인]][[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분류:대한민국의 지방자치단체장]]
  • 임은정(법조인)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임인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분류:1954년 출생]]
  • 장범준 . . . . 1회 일치
         [[분류:버스커 버스커]][[분류:1989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상명대학교 동문]][[분류:슈퍼스타K 참가자]][[분류:장씨]]
  • 장세용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1953년 출생]] [[분류:구미시 출신 인물]]
  • 장혁주 . . . . 1회 일치
         [[분류:1905년 태어남]][[분류:1998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일제 강점기의 문학 평론가]][[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한국계 일본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재일 한국인]]
  • 전가의 보도 . . . . 1회 일치
         [[야구]] 분야에서는 [[투수]]가 자신있게 사용하는 [[변화구]]에 대하여 전가의 보도라는 말을 사용한다.
  • 전순옥 . . . . 1회 일치
         [[분류:195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노동 운동가]][[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11년)의 정치인]][[분류:더불어민주당의 정치인]]
  • 정승화(육군)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29년 출생]][[분류:2002년 사망]]
  • 정영삼 . . . . 1회 일치
         [[분류:198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농구 선수]][[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대성초등학교 동문]][[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건국대학교 동문]]
  • 정운용 . . . . 1회 일치
         [[분류:1904년 태어남]][[분류:1963년 죽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일제 강점기의 금융인]][[분류:대한민국의 금융인]]
  • 정장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정재학 (1856년) . . . . 1회 일치
         [[분류:1856년 태어남]][[분류:1940년 죽음]][[분류:대한제국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관료]][[분류:일제 강점기의 기업인]][[분류:조선총독부 중추원 간부]][[분류:친일파 708인 명단 수록자]][[분류:친일인명사전 수록자]][[분류:대한민국 정부 발표 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정재호 (1964년) . . . . 1회 일치
         [[분류:196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새천년민주당 당원]][[분류:열린우리당 당원]][[분류:노무현]][[분류:대통합민주신당 당원]][[분류:민주당 (대한민국, 2008년) 당원]][[분류:더불어민주당 당원]][[분류:달성고등학교 동문]][[분류:경운중학교 (대구) 동문]][[분류:대구본리초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별정직공무원]]
  • 제주시 . . . . 1회 일치
         [[분류:제주시 출신|제주시 출신 인물]][[분류:제주특별자치도의 도시]][[분류:1955년 설치]][[분류:2006년 폐지]][[분류:2006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조소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각본가]][[분류:1956년 태어남]][[분류:2006년 죽음]][[분류:간암으로 죽은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 조재윤 (체조선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체조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91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대구체육고등학교 동문]][[분류:한양대학교 동문]]
  • 조환길 . . . . 1회 일치
         [[분류:195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천주교 대구대교구장]][[분류: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 대주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구고등학교 동문]][[분류:광주가톨릭대학교 동문]][[분류:창녕 조씨]]
  • 조훈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희극인]][[분류:2016년 데뷔]][[분류:한신대학교 동문]]
  • 주장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언론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57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지증왕 . . . . 1회 일치
         [[509년]]에는 시사(市肆, 혹은 [[시전]])를 관리 감독하는 관청인 [[동시전]](東市典)을 설치하였다.<ref>{{서적 인용 |제목= [[삼국사기]] | 저자= [[김부식]] |연도= 1145 |장= [[:s:삼국사기/권04/지증 마립간|본기 권4 지증 마립간]] |인용문= 十年 春正月 置京都東市(10년(509) 봄 정월에 서울에 동시(東市)를 설치하였다. )}}</ref> 이리하여 무역과 상인들의 거래를 단속, 통제하였다.
  • 진종채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군인]]
  • 진헌식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
  • 창작:좀비탈출/1 . . . . 1회 일치
         마당 한쪽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알루미늄]] [[야구방망이]]를 [[무기]]로 들었다. 이런 걸로 좀비를 쓰러뜨릴 수 있을지 의문스럽지만.
  • 창작:좀비탈출/2-1 . . . . 1회 일치
         나는 작게 중얼거리면서 야구방망이를 옆집 아저씨 좀비를 향하여 휘둘렀다.
  • 창작:좀비탈출/2-1-1 . . . . 1회 일치
         나는 아줌마 좀비를 향하여 야구방망이를 휘둘렀다. 아저씨 좀비보다 체격이 작고, 줄이 목에 걸려 있어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조금 쉽게 처치할 수 있었다.
  • 창작:좀비탈출/2-1-3 . . . . 1회 일치
         나는 이를 악 물고 야구방망이를 내리쳐서 처치했다.
  • 창작:좀비탈출/요새편/1-1 . . . . 1회 일치
         생각할 수 있는건 많다. 당구대, 야구방망이, 삽, 곡괭이, 죽창 등등. 좀비 영화의 주인공들이 그토록 쉽게 줍는 물건이 내게는 하나도 없다. 나는 배란다 문을 닫아놓고 거실에 주저 앉았다. 어느덧 정오가 다가오고 있었다. 마당은 태풍의 한 가운데처럼 한산했다. 담 하나를 사이에 놓고 여전히 녀석들이 돌아다니고 있지만 조금 시끄러운 행인들이라고 생각하면 5분 정도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머리를 식혔다.
  • 채윤아 . . . . 1회 일치
         [[분류:198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분류:한국방송공사의 아나운서]][[분류:대한민국의 아나운서]][[분류:경희대학교 동문]]
  • 철인 28호 . . . . 1회 일치
          2004년, 이마가와 야스히로 감독에 의해 리메이크판이 나왔으며 배경은 초대 철인의 시기다. 이 버전 이후 극장판인 '철인 28호 백주의 잔월'이 나왔다.
  • 청송군 . . . . 1회 일치
          * [[정병곤]] : [[삼성 라이온즈]] 야구선수
  • 최대원(정치인,국회의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분류:1956년 출생]] [[분류:김천시 출신 인물]]
  • 최두호 . . . . 1회 일치
         [[분류:1991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종합격투기 선수]][[분류:라이트급 종합격투기 선수]][[분류:페더급 종합격투기 선수]]
  • 최수진 (성우) . . . . 1회 일치
         [[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여자 성우]][[분류:살아있는 사람]]
  • 최수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최승욱 . . . . 1회 일치
         [[분류:1994년 태어남]][[분류:대한민국의 남자 농구 선수]][[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분류:경희대학교 동문]][[분류:계성중학교 동문]][[분류:대구해서초등학교 동문]]
  • 최승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시인]][[분류:1952년 출생]][[분류:세종특별자치시 출신 인물]][[분류:1979년 데뷔]]
  • 최운정 . . . . 1회 일치
         [[분류:1990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LPGA 투어 골프 선수]][[분류:대한민국의 여자 골프 선수]][[분류:세화여자중학교 동문]][[분류:세화여자고등학교 동문]][[분류:고려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최윤수(정무직공무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분류:김천시 출신 인물]][[분류:1967년 출생]]
  • 최윤정 (패션 디자이너) . . . . 1회 일치
         [[분류:197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패션 디자이너]]
  • 최진순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신문 기자]][[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1969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
  • 츠키시마 케이 . . . . 1회 일치
         중학교 때만 해도 주전으로 활동하던 아키테루는 카라스노고등학교 배구부에 입부하면서 주전에서 떨어졌다. 당시의 카라스노는 우카이 전감독과 [[히나타 쇼요]]가 동경하는 '작은 거인'이 활동하던 시기로(아키테루와 작은 거인은 아키테루쪽이 한 학년 위), 카라스노가 현내 톱의 강호였던 시절.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던 츠키시마는 카라스노의 경기를 보러 갔다가 코트도, 벤치도 아닌 응원석에 있는 형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형의 실력을 '에이스'라고 믿고 있던 어린 아이에게는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던 모양. 그 이후부터 '''노력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건 아니다'''라는 마인드가 머릿속 깊이 뿌리를 내렸고, '목숨 걸 필요도 없는 일에 쓸데없이 힘을 쓰는 사람'에게 회의감과 혐오감을 갖게 된 것이다. 노력이 배신당하는 순간의 목격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셈.
  • 타쿠마 마모루 . . . . 1회 일치
         타쿠마 마모루는 중학교에서 공업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야구부]]에 소속되었지만, 연습 태도가 나빠 상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고등학교 2학년에 [[중퇴]]했다. 중퇴 이후에는 이타미 시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하였다.
  • 토탈워: 쇼군 2 - 사무라이의 몰락/번 . . . . 1회 일치
          * 감독: 세금 수입 +5%
  • 토탈워: 쇼군 2/건물 . . . . 1회 일치
          * 해당 지역에서 무역선, 야구라부네를 건조할 수 있게 됨
  • 토탈워: 쇼군 2/세력 기술 . . . . 1회 일치
          * 뎃포 코바야(Matchlock Kobaya), 야구라부네(Siege Tower Bune)를 건조할 수 있게 됨
  • 토탈워: 쇼군 2/유닛 . . . . 1회 일치
         ==== 야구라부네(Siege Tower Bune) ====
  •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 . . . . 1회 일치
         감독은 팀 스토리. 배우는 리드 리처드에 이안 그루퍼드, 수 스톰에 제시카 알바, 휴먼토치에 크리스 에반스, 씽에 마이클 치클리스가 맡았다. 그리고 슈퍼 빌런인 닥터 둠은 줄리언 맥마혼이 연기.
  • 판타스틱 포: 실버 서퍼의 위협 . . . . 1회 일치
         영화 [[판타스틱 포(2005년 실사영화)|판타스틱 포]]의 속편. 감독은 전작과 동일하게 팀 스토리. [[판타스틱 포]]와 [[닥터 둠]]의 배우도 전작과 동일하다. 원작 코믹스에서도 등장한 [[실버 서퍼]]가 등장하며 배우는 더그 존스가 맡았다. 다만 목소리는 로렌스 피시번이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갤럭투스]]가 등장했다. 스탠 리도 등장. 리드 리처드와 수 스톰의 결혼식에서 하객으로 참석했다가 명단에 없다고 거절당한다.(...) ~~내가 이 만화 그린 스탠 리라니까!~~
  • 페이데이 2 . . . . 1회 일치
          [[핫라인 마이애미]]와의 콜라보 DLC. 러시아 마피아 두목을 족치는 Hotline Miami 하이스트와 기관단총 3개(Cobra, Blaster 9mm, Uzi), 야구빠따, 식칼, 정글도, 소방도끼가 들어있다.
  • 포항시 . . . . 1회 일치
         [[분류:포항시 출신|포항 출신 인물]][[분류:경상북도의 도시]][[분류:1949년 설치]][[분류:1995년 폐지]][[분류:1995년 설치]][[분류:대한민국의 항구 도시]]
  • 표창원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교수]][[분류:포항시 출신 인물]][[분류:1966년 출생]][[분류:무한도전의 역대 게스트]][[분류:1대 100 역대 1인]][[분류:대화의 희열 역대 출연자]]
  • 하이큐!!/등장인물 . . . . 1회 일치
          * 우카이 감독
  • 하이큐/212화 . . . . 1회 일치
          * 현장에 있던 코치와 우시지마, 와시죠 감독은 그의 묘한 웃음을 보고 변화를 감지한다.
  • 하이큐/214화 . . . . 1회 일치
          * 그리고 감독은 이 상황을 "괜찮네"라고 한다.
  • 하이큐/226화 . . . . 1회 일치
          * 그때 야치 히토카가 한 마디 거드는데, 사실 우카이 잇케 감독은 저 둘의 진정한 활용법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다는 것.
  • 하이큐/230화 . . . . 1회 일치
          주장 사와무라 다이치는 숙소에 짐을 풀고 네코마타 야스후미 감독의 협조로 얻은 체육관에서 현지 조정에 들어간다고 공지한다. 그러면서 특히 시끄러운 삼인조에게 "숙소에서 소란피우지 마라"고 경고한다. 조용히 대답하는 히나타, 타나카, 니시노야.
  • 하이큐/234화 . . . . 1회 일치
          공은 에치고에게 연결되지만 아즈마네와 사와무라, [[츠키시마 케이]]의 블록에 막혀 저지. 첫 블록과 동시에 득점한다. 츠바키하라의 오오사도 감독은 리시브가 늦다고 칼같이 지적,
  • 하이큐/241화 . . . . 1회 일치
          * 아테마는 에치고와 함께 블록하려 하는데 순간 라이트 측에서 뛰어오르는 히나타를 보고 망설인다. 하지만 그게 함정. 진짜는 레프트에서 뛰어오르던 아즈마네였다. 깨끗하게 꽂히는 아즈마네의 스파이크. 히나타를 너무 의식한 결과였다. 이 시점에서 츠바키하라는 두 번째 TO. [[오오사토 타츠미]] 감독은 다음 로테이션에 10번(히나타)가 내려가고 상대측 블록은 그렇게 위협적이지 않으니 눈 딱 감고 강하게 치라고 지시한다.
  • 하이큐/243화 . . . . 1회 일치
          * 츠바키하라 고교의 선수들은 응원단 일동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패했지만 선전한 그들에게 응원단이 격려를 보낸다. 객석에 있던 졸업생들도 함께 박수를 친다. 하지만 마지막 봄고 대회를 일찍 마무리하게 된 3학년들은 복잡한 감정의 눈물을 참을 수 없다. 2학년 [[츠키오카 치하루]]와 1학년 [[히메카와 아오이]]는 패배를 가슴에 새기고 다음을 기약한다. [[오오사도 타츠미]] 감독은 밥이나 먹자며 선수들을 다독인다.
  • 하이큐/244화 . . . . 1회 일치
          감독은 왜 쓸데없는 걸로 난리냐고 있는데로 갈구지만 그걸로는 보쿠토의 멘탈을 되돌릴 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일에 이골이 난 동료들은 신경끄고 경기에 집중하기로 결정한다. [[코노하 아키노리]]는 흔한 일이라며 빈축. [[오나가 와타루]]는 "메인 아레나가 부럽다"는 감상을 솔직히 말할 필요 있었나 의문시한다.
  • 하이큐/249화 . . . . 1회 일치
          * 공식 워밍업 시간 중에도 [[미야 아츠무]], [[미야 오사무]] 형제는 주목의 대상이다. [[오오미 타로]] 감독은 마지막 공을 미야 형제에게 띄운다. 그런데 둘은 동시에 뛰어 올라서 "유체이탈 시간차" 같은 장난이나 친다. 둘이 쌍둥이란 걸 이용한 장난. 딱히 시간차도 뭣도 아니지만 객석에는 멋지다고 호평한다.
  • 하태환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포항시 출신 인물]]
  • 한동근 . . . . 1회 일치
         [[분류:1993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남자 가수]][[분류:스타 오디션 위대한 탄생 참가자]][[분류:구미시 출신]][[분류:2012년 데뷔]]
  • 한상덕 . . . . 1회 일치
         [[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성우]][[분류:1944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1965년 데뷔]][[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핫라인 마이애미 . . . . 1회 일치
          * 야구방망이
  • 행복회로 . . . . 1회 일치
          * 비슷한 사례로 야구 팬덤에서 쓰이는 [[한화 이글스]]의 응원가 "나는 행복합니다~♪"가 있다.
  • 현진건 . . . . 1회 일치
         [[분류:1900년 태어남]][[분류:1943년 죽음]][[분류:병사한 사람]][[분류:대한제국의 사회 운동가]][[분류:이범석 (1900년)]][[분류:박헌영]][[분류:일제 강점기의 소설가]][[분류:대륜고등학교 동문]][[분류:일제 강점기의 언론인]][[분류:일제 강점기의 작가]][[분류:한국의 독립운동가]][[분류: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분류:연주 현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양호 (1955년)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통일부 차관]][[분류:경북고등학교 동문]][[분류:경북대학교 동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
  • 홍영철 . . . . 1회 일치
         [[분류:1955년 태어남]][[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명대학교 동문]][[분류:살아있는 사람]][[분류:대한민국의 시인]]
  • 홍해성 . . . . 1회 일치
         [[분류:1894년 태어남]][[분류:1957년 죽음]][[분류:일제 강점기의 연극인]][[분류:대한민국의 연극인]][[분류:대구광역시 출신 인물]][[분류:계성고등학교 (대구) 동문]]
  • 히나타 쇼요 . . . . 1회 일치
         인터하이 이후 도쿄 합숙에서 카게야마의 좀 더 강화된 떨어지는 토스[* 직선으로 날아가다가 히나타의 타점부근에서 떨어져 멈춘것 처럼 보인다]와 우카이 전 감독의 훈련으로 볼 컨트롤이 늘은 히나타가 괴짜 속공과 보통 속공을 합친 신 속공을 만들어 내어 공격방법을 나눌 필요가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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